"한번 실패하면 끝장… 불안한 사회구조가 사교육 낳는다"
"한번 실패하면 끝장… 불안한 사회구조가 사교육 낳는다"
  • 이중삼·최규화 기자
  • 승인 2020.02.07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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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살 사교육, ‘불안’을 팝니다⑧] 양신영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선임연구원·최현주 영유아사교육포럼 부대표 인터뷰(上)

【베이비뉴스 이중삼·최규화 기자】

연간 3조 7000억 원 규모로 추정되는 영유아 사교육비. 등골 휘는 비용에도 많은 부모들은 ‘불안’ 때문에 오늘도 사교육을 선택하고 있다. 그 불안의 실체는 무엇일까. 우리에겐 어떤 대안이 있는 걸까. 베이비뉴스는 사교육걱정없는세상과 공동기획으로 열두 명의 전문가들을 직접 찾아가 답을 구했다. - 기자 말

양신영 정책대안연구소 선임연구원이 영유아 사교육 문제에 대해 발언하고 있는 모습.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양신영 정책대안연구소 선임연구원이 영유아 사교육 문제에 대해 발언하고 있는 모습.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지난해 8월 MBC 프로그램 ‘공부가 머니?’에서 배우 A 씨와 엄마 B 씨는 자녀의 사교육 스케줄을 공개했다. 9세, 7세, 6세 세 아이는 ‘사교육 1번지’라고 불리는 서울 대치동에서 일주일에 무려 34개의 사교육을 받고 있었다. 세 아이는 밥도 제대로 먹을 시간 없이 각각 10~14개의 사교육을 매일 소화해내고 있었다.

당시 방송에서 엄마 B 씨는 “처음에는 공부 습관을 들이려고 했는데 욕심이 과해졌고, 남들도 다 하니까 멈춰지지가 않는다”며, “어디까지 (사교육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고민을 털어놨다. 그러면서 “주위 애들은 더하기도 한다”며, “저희 아이들이 하는 건 대치동에서 겉핥기 수준”이라고 말했다.

하다 보니 욕심나고, 남들도 다 하니까 멈출 수 없는 사교육. B 씨의 고민에 공감하는 부모들도 많을 것이다. 특히 최근 몇 년 사이 영유아 사교육 시장은 더 팽창하고 있다. 영유아 부모들이 사교육에 열을 올릴 수밖에 없는 이유는 뭘까. 그리고 해법을 찾기 위해 우리는 무엇부터 해야 하는 걸까.

지난해 11월 7일 서울 한강로1가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사무실에서 최현주 영유아사교육포럼 부대표와 양신영 정책대안연구소 선임연구원을 만났다. 두 사람은 현재 교육시민단체인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서 영유아 사교육의 실태를 조사하고 그 원인을 분석해 대안을 제시하는 일에 힘쓰고 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2013년 6월부터 2018년 5월까지 잘못된 영유아 사교육 정보를 찾기 위한 토론과 연구 및 강연을 총 103회에 걸쳐 진행한 바 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그러한 토론과 연구의 결과를 지난해 3월 「안심해요, 육아!」라는 소책자에 담아내기도 했다.

육아정책연구소가 2016년 발표한 「영유아 사교육 실태와 개선방안 - 2세와 5세를 중심으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아동의 75.7%가 취학 전에 사교육을 시작했다. 취학 전 받은 사교육 종류는 영어와 운동이 16.6%로 가장 많았다. 이어 악기(11.3%), 창의성(9.9%), 학습지(9.3%), 수학(9.3%), 미술(6.6%) 순이었다.

그렇다면 영유아 사교육에 대한 학부모 인식은 어떨까. 2014년 사교육걱정없는세상과 유은혜국회의원실이 학부모 762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만 5세 유아의 일주일간 총 사교육 시간은 1~3시간(31.0%)이 가장 많았고, 3~5시간(17.9%), 7시간 이상(15.3%) 순이었다.

학부모들은 자녀의 사교육 정도에 대해 ‘적절한 편’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65.9%로 가장 많았고, ‘다소 부족한 편’이라는 응답도 30.1%를 차지했다. ‘다소 부족한 편’이라고 응답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는 ‘남들에 비해서 조금 시키고 있기 때문에’라는 응답이 73.6%로 월등히 높게 조사됐다.

결국 많은 부모들이 ‘주변의 시선’을 기준으로 삼는다는 것. 내 아이에게 어떤 학습이 얼마나 필요한지 고려하기보다, 다른 아이보다 얼마나 적게 하고 있는지를 먼저 생각한다는 얘기다. 그 경쟁을 다른 아이보다 한 살이라도 먼저 시작하겠다는 심리 때문에 사교육을 시작하는 연령 또한 계속 어려지고 있다.

◇ 팽창하는 영유아 사교육 시장… 제대로 된 정부 통계 없어 '추정'만

최현주 영유아사교육포럼 부대표가 부모들의 심리적 불안을 자극하는 원인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최현주 영유아사교육포럼 부대표가 부모들의 심리적 불안을 자극하는 원인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덕분에 영유아 사교육 시장은 해를 거듭할수록 팽창하고 있다.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육아정책연구소가 매년 발표한 「영유아 교육·보육 비용 추정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영유아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11만 6000원. 연간 총액은 3조 7397억 원으로, 2016년 대비 2.7배가 오른 것으로 ‘추정’됐다.

그렇다면 영유아 사교육 시장의 규모는 ‘정확히’ 얼마나 될까. 안타깝게도 정부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교육부와 통계청은 급증하는 영유아 사교육비에 대해 2018년 시험조사를 거쳐 2019년부터 본조사를 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하지만 시험조사 결과는 발표되지 않았고, 본조사 실시 계획도 나오지 않고 있다.

현재까지는 육아정책연구소의 「영유아 교육·보육 비용 추정연구」 보고서가 영유아 사교육비를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는 유일한 지표인 셈이다. 하지만 그것도 2017년 이후 발간이 중단됐다.

Q. 영유아 사교육 시장 규모를 정부가 제대로 조사한 적도 없다는 점이 놀랍습니다.

양신영(아래 양) : “더 놀라운 건, 영유아 사교육에 대한 개념도 명확치 않다는 거예요. 육아정책연구소에서는 영유아 사교육비 추정연구를 하면서, 2014년까지는 어린이집과 유치원 특별활동비를 포함해서 집계했습니다. 그런데 2015년부터는 이것들을 제외하고 조사했습니다.

어디까지가 사교육인지 개념도 명확하게 세워놓지 않다 보니 조사를 하면서도 이랬다저랬다 하는 거죠. 심지어 특별활동비를 제외하고 조사했는데도 2017년에는 영유아 사교육비가 폭증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정부가 매년 영유아 사교육비 실태조사를 해야 한다고 요구해왔습니다. 정부의 약속대라로면 이미 조사가 진행됐어야 하지만, 교육부를 통해서 확인한 바로는 ‘논의 중’이라는 답변만 들을 수 있었습니다. 영유아 사교육비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는데도 해결 의지가 보이지 않아 안타깝습니다.”

Q. 다른 나라에도 영유아 사교육이라는 개념이 있나요?

최현주(아래 최) : “대부분의 나라에는 우리와 같은 방식의 영유아 사교육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습니다. 한번은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서 한국의 교육 문제에 대해 취재를 온 적이 있는데, 영유아에게 사교육이 이뤄진다는 것을 취재진이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지난해 유엔 아동권리위원회에서도 강력하게 지적한 바 있듯이, 영유아 사교육은 사실상 우리나라만의 고유한(?) 현상입니다. 정말 우리나라와 같은 과열된 사교육이 슈퍼 인재를 길러낸다면 따라하지 않을 나라가 없겠죠. 하지만 어느 나라도 이렇게 하고 있는 나라는 없습니다.”

양 : “부모 주머니에서 돈이 나가는 교육은 모두 사교육으로 봐야 하는데요, 우리나라 학습지 시장은 심지어 태교부터 시작합니다. 태교영어 교재가 상품으로 나와 있습니다.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늦습니다!’ 하고 불안을 부추기는 사교육 시장의 노골적인 광고가 태교 사교육까지 선택하게 만드는 게 현실입니다.”

1989년 채택된 유엔아동권리협약은 생존·보호·발달·참여를 핵심으로 한 아동의 기본권과 국가의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서울시의 ‘어린이·청소년 인권조례’ 역시 지나친 경쟁에 내몰리지 않을 권리, 놀이 여가 휴식권 및 수면권, 지나친 학습부담에서 벗어날 권리를 적시하고 있다.

과도한 사교육은 아동권리 침해 문제까지 야기하는 것. 특히 한국의 현실은 국제적으로도 그 심각성이 두드러진다.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지난해 9월 27일 대한민국 국가보고서 심의에 따른 ‘최종견해’를 통해 “유치원에서 시작되는 사교육 의존의 지속적인 증가”에 대해 “심각하게 우려한다”고 밝힌 바 있다.

◇ “한국식 사교육이 '슈퍼인재' 길러낸다면 왜 다른 나라는 따라하지 않나”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한 학원에서 영어유치부와 초등부를 모집한다고 홍보하고 있다. 서종민 기자 ⓒ베이비뉴스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한 학원에서 영어유치부와 초등부를 모집한다고 홍보하고 있다. 서종민 기자 ⓒ베이비뉴스

이렇게 불명예스러운 ‘우려’까지 받아가면서 영유아기부터 사교육에 열을 올리는 원인은 뭘까. 육아정책연구소가 2016년 발표한 「영유아 사교육 실태와 개선방안 - 2세와 5세를 중심으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미취학 자녀의 사교육에 대한 부모의 동기는 ‘열등감, 불안감에 대한 보상심리’(28.1%)가 가장 높았다.

다음으로는 ‘강한 성취 욕구’(18.8%), ‘자녀 성취를 통한 대리만족’(12.5%), ‘맞벌이에 대한 죄책감’(12.5%), ‘자녀에 대한 과잉 기대감’(9.4%) 순이었다. 연구보고서는 학부모 몇 명의 인터뷰 사례를 제시했다.

“우리 아이만 많은 양의 공부를 하는 게 아니잖아요. 이렇게 공부해도 대학을 못 갈 수도, 취업을 못해 먹고살기 힘들 수도 있잖아요.”(「영유아 사교육 실태와 개선방안」)

“제가 병원 갈 때마다 의사 선생님을 보면서 하얀 가운이 그렇게 멋지다고 생각했어요. 우리 남편도 나도 고등학교만 나왔잖아요. 돈도 없었지만 공부를 못하기도 했죠. 그런데 우리 아들이 똑똑하다잖아요. 우리 집에 ‘사짜’ 아들 하나 나오면 제가 소원이 없겠어요. 제가 왜 그 많은 돈을 애한테 투자하겠어요?”(「영유아 사교육 실태와 개선방안」)

“지금 애가 자신감 없이 저렇게 말도 안 하고 그래도, 공부를 어느 정도 하고 뭔가 특출 난 게 있으면 친구들이 붙겠죠. 솔직히 지금보다 초등학교가 걱정이에요. 초등학교 가면 애가 잘 적응하려나, 초등학교 때문에 지금 시키는 거예요.”(「영유아 사교육 실태와 개선방안」)

이들 사례에서도 미래에 대한 불안이 영유아 사교육의 원인이 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양육자의 죄책감을 사교육으로 보상하고자 하는 특징도 보인다. 또한 유아기 교육에 따라 초등학교 이후 학업의 성패가 갈린다고 보는 시각과, 좋은 성적은 긍정적인 또래관계로 연결될 것이라는 사고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영유아 사교육의 원인을 부모의 ‘마음’ 속에서만 찾는 것은 절반의 분석일 뿐이다. 부모들의 마음속에서 불안이나 죄책감이 자리 잡게 된 원인이 우리 사회의 ‘구조’ 속에 숨어 있기 때문이다.

Q. 영유아 사교육을 유발하는 요인은 어떻게 정리해볼 수 있을까요?

양 : “사립 초등학교에 가기 위해서 이른바 ‘영어유치원’, 즉 유아대상 영어학원을 다니고, 좋은 학군에 있는 중·고등학교를 가기 위해, 또 최종적으로는 명문 대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사교육을 시키죠.

명문 대학교에 들어가려는 이유는 또 노동시장의 현실과 연결돼 있습니다.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 전문직과 일반직, 정규직과 비정규직 등 노동의 종류와 형태에 따라 임금격차가 너무 크기 때문이죠. 취업시장에 진입할 때 학력과 학벌에 따른 차별이 극심하고, 대학은 촘촘하게 서열화 돼 있는 것이 현실이죠.

그렇기 때문에 부모들은 적어도 국영수 주요 교과목에 대해서는 한 살이라도 먼저 대학 입시를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많습니다. 사회구조적인 원인이 사교육을 결정하는 데 강력하게 작용하는 거죠.

심리적으로는 사교육 시장에서 업체 간 경쟁을 위해 ‘불안 마케팅’을 계속 강화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유아교육 박람회에서도 거대한 사교육 홍보의 장이 열리고 있습니다. 다른 아이보다 우위를 점하고 싶은 심리도 있지만, 우리 아이만 뒤처질까봐 방어적 심리 때문에 사교육을 선택하기도 합니다.

또 하나, 돌봄과 결합되는 문제도 있습니다. 사교육이 돌봄 공백을 메꾸는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거죠. 특히 방과후 돌봄이 해결되지 못하면, 이른바 ‘학원 뺑뺑이’를 돌려서 해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근본적으로 우리 사회는 개인에게 어떤 것도 보장해주지 않습니다.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사회, 한 번 실패하면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진다는 인식이 만연해 있습니다. 그런 구조적 원인이 아주 크다고 봅니다.”

Q. 부모들의 심리적 ‘불안’을 자극하는 원인에는 또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최 : “부모들은 ‘내 아이가 커서 뭘 해서 먹고살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이 너무 큽니다. 우리나라는 심각한 저출생으로 인한 학령인구 감소 때문에 중·고등학교 사교육 시장이 쪼그라들고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성인을 위한 사교육 또는 영유아 사교육으로 시장의 관심이 옮겨가고 있습니다.

저희 삼사십 대 젊은 부모들은 대개 사교육을 받고 자란 세대이기 때문에 사교육에 너무 익숙합니다. ‘사교육 없이 애를 어떻게 키우는지 모르겠다’라는 생각에, 자신의 사교육 경험을 자녀에게 투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녀 수도 많아야 두 명 정도라, 사교육에 ‘올인’ 할 수 있는 자금력도 되는 상황입니다.

또 아이 낳고 경력단절로 전업주부가 되신 분들 중에서는 꼭 회사에서 일하는 것처럼 전투적으로 아이를 키우는 분들도 있습니다. 온갖 교재·교구를 집에서 전부 만듭니다. ‘엄가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엄마 노가다’. 열심히 공부하고, 또 열심히 일했던 사람들이 아이 역시 얼마나 열심히 키우는지 보면 놀라울 정도입니다.”

☞ (하편) "부모 탓만 하면 사교육 못 잡는다… 아동권리 관점 가져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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