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긴 방학… 유튜브 보는 아이와 전쟁 중
'코로나19'로 긴 방학… 유튜브 보는 아이와 전쟁 중
  • 칼럼니스트 최은경
  • 승인 2020.02.24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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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한번 해봤어] 아이와 집에서 '함께' 논다는 것

얼마나 손꼽아 기다려온 안식월인가 싶었는데, 출근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시간이 이렇게나 빠르다. 하루 세끼 이렇게 밥을 열심히 차린 적이 또 있었을까 싶은 요즘. 오늘 하루도 멍 때리다 공칠 것 같아 지난 3주간 뭘 했나, 돌아보기로 했다.

그야말로 '코로나19'와 함께 한 안식월이었다. 지난 설 이후 내가 사는 지역에 코로나19 확진자가 다녀간 이후 모든 학원이 일주일간 휴원을 결정했다. 피아노와 태권도 학원에 다니는 둘째 아이는, 이 기간 이후로도 학원에 나가지 않고 있다. 내가 안식월이라 집에 있어서 내린 결정이었다. 이렇게 예비 중학생 첫째와 예비 초등 3학년 둘째와 지지고 볶는 두 번째 방학이 시작되었다(지난해 겨울방학 때는 남편 없이 베트남에서 한 달을 지지고 볶았다, 좋긴 그때가 더 좋았다).

◇ 예비 초3 둘째에게 준 자율적 3시간, 유튜브에 '올 인(All In)!'

우선 제일 크게 달라진 변화라면 아이들이 방학 때도 늦잠을 잘 수 있게 되었다는 거다. 내가 출근할 때면 아이들은 남편이 깨워서 밥을 먹인 뒤 근처 할머니 댁으로 데려다주고 출근했다. 이번 방학에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아이들이 늦잠을 자는 동안, 나는 남편이 아침을 먹을 때쯤 일어나 잠시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남편이 나갈 즈음 아이들이 일어나면(아이들은 8시에도 일어나고 9시에도 일어나고 10시 넘게까지 자고 일어날 때도 있다, 이때 자고 있는 모습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다) 아침을 차려서 함께 먹는다. 그리고 한동안 둘째 아이에게 종일 이 질문을 들어야 했다.

"엄마, 유튜브 봐도 돼요?"

"엄마, 이거 먹어도 돼요?"

아, 정말 너무 들어서 한탄이 절로 나왔다. 대책이 필요했다. 결단을 내렸다.

아이가 즐겨보는 유튜브 채널. ⓒ최은경
아이가 즐겨보는 유튜브 채널. ⓒ최은경

"윤아, 너 엄마한테 하루 종일 하는 말이 '유튜브 봐도 돼요?', '이거 먹어도 돼요?' 이거뿐인 거 알아? 그냥 하루 3시간 줄게. 티브이 보는 거, 게임, 유튜브 보는 거 다 합해서 하루 3시간 할 수 있어. 너도 이제 3학년이니까 자율적으로 해 보는 거야. 대신 한번 볼 때 1시간 이상 볼 수 없고, 1시간 쉬었다 보는 거야. 어때? 할 수 있겠어?"

"정말이야? 3시간? 응응!!!"

이렇게 내 발등을 내가 찍었다. 전에는 유튜브 영상은 하루에 두 개만 볼 수 있었다. 티브이는 오전 저녁으로 나눠 볼 수 있었고. 그런데!!! 이 세 시간을 하나에 올인할 수 있다는 생각을 못 했다. 예능 하나 보면 1시간은 족히 넘으니까, 당연히 유튜브 시청 시간이 줄어들 줄 알았는데….

유튜브를 하루 두 개만 보게 했을 때는 그렇게 하나 더 봐도 되냐고 묻더니, 3시간이라는 망망대해가 펼쳐지니 아이는 이걸 어떻게든 자기가 좋은 쪽으로 활용하려고 했다. 10년을 쌓아온 창의력이 폭발하는 순간이었다. 아이는 티브이는 재미없다면서 유튜브에 올인했다. 시간도 정확히 계산했다. 초 단위는 셈하지 않았다. 오로지 분 단위만 계산.

아이는 눈 뜨자마자 유튜브 채널을 확인했다. 그걸 보는 내 속은 까맣게 타들어 갔지만, 내 입으로 내뱉은 말이니 책임질 수밖에. 짧게 보고 쉬고 또 보라고 했더니, 며칠은 정말 종일 유튜브를 보는 것 같았다. 괴로웠다. '3시간이 너무 많았나' 한숨을 내쉬며 말했더니 옆에 있던 큰아이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위로한다.

둘째가 직접 유튜브 시청 시간을 기록해 놓은 종이. ⓒ최은경
둘째가 직접 유튜브 시청 시간을 기록해 놓은 종이. ⓒ최은경

"괜찮아. 할머니네 집에서는 더 많이 봐. 지금 엄청 줄어든 거야."

"그래? 그랬니? 아, 엄마가 뭔가 실수한 것 같아. 이러는 게 아니었는데…."

마음은 계속 불안했지만 위로가 되는 지점을 발견하기도 했다. 오전에 유튜브에 올인하고 오후 2시가 넘으면 아이는 심심하다고 이 방 저 방을 전전했다. 언니 방에서 주워들은 영어 문장 "아임 볼드(I'm bored)"를 중얼거리면서. "유튜브 봐도 돼요?" 질문 대신 "아임 볼드"라는 말을 종일 듣게 됐다. 그때 그동안 보고 들은 육아책 한 줄 내용이 생각났다.

'요즘 아이들은 심심할 틈이 없다. 유튜브에 학원에, 부모가 만들어낸 각종 체험 활동에… 아이들에게 심심할 시간을 줘야 한다. 심심한 시간에 아이들은 가만히 있지 않는다. 뭐든 놀 것을 만들어낸다. 문제는 우리 아이들에게 그럴 시간이 없다.'

"좀 심심해도 되지 뭐. 어떻게 하루 종일 신나고 재밌을 수 있어. 심심한 시간에 뭘 할지 생각해봐."

긴가민가했던 육아책에서 본 내용은 현실이 됐다. 아이는 뭔가를 찾기 시작했다. 인형 옷을 만들고, 집 안에 인형 수영장을 만들고, 책을 더 찾아 읽었다. 그리고 신기했던 건, 아이가 시청 시간을 계산하려고 써놓은 게 내 눈엔 수학 학습지를 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는 거다. 으하하하. 강제로 학습지 안 시켜도 되는 거로군. 그리고 헷갈리기 쉬운 시간 개념도 정확히 잡았다. 1시간이 60분이라는 걸 말이다(내 마음 편하자고 억지로 생각해낸 것일 수도 있다. 엉엉).

이것저것 다 해도 심심해 죽을 것 같은 순간이면 윤이는 나를 찾았다.

"나랑 부루마불(Blue Marble, 보드게임) 해."

솔직히 귀찮다. "엄마는 사실 공룡 안 좋아해"라고 말하던 어떤 광고의 대사처럼 "엄마 부루마불 안 좋아해"라고 말하고 싶지만 참고 보드판을 깐다. 아이는 내 말도 놔주고, 은행에서 돈도 계산해준다. 나는 주사위만 던져주기만 하면 되는 이상한 게임인데, 아이는 어쩐 일인지 너무나 좋아한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 좋아할 일이야? 생각하던 내 뒤통수가 뜨거워진다. 토드가 생각나서다.

◇ 그래도, 아직은 유튜브보다 엄마랑 노는 것이 더 좋은 나이 열 살

이것저것 다 해도 심심해 죽을 것 같은 순간이면 윤이는 나를 찾았다. "나랑 부루마불 해." ⓒ최은경
이것저것 다 해도 심심해 죽을 것 같은 순간이면 윤이는 나를 찾았다. "나랑 부루마불 해." ⓒ최은경

그림책 「텔레비전을 끌 거야」(제임스 프로이모스 글·그림, 강미경 옮김, 두레아이들, 2014년) 속 주인공 토드. 토드는 텔레비전과 너무 붙어 지낸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늘 바쁜 엄마 아빠가 일이 있을 때마다 "토드야, 가서 텔레비전을 보렴"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학교 학부모 회의에도 바쁜 부모 대신 텔레비전이 함께 간다. 텔레비전은 말한다.

"뭐 어쩌겠어요? 어른들은 늘 바쁘잖아요. 그래서 아이와 같이 놀아주기가 힘들죠."

윤이에게 나도 그런 존재가 아니었을까. 식탁 위에서 글을 쓰거나 책 보는 엄마. "엄마 오늘 원고 하나 써야 해" 이 말을 찰떡같이 믿고, 혼자 노느라 힘들었던 건 아니었을까. 뭔가 늘 바빠 보였기 때문에 엄마에게 놀아달라고 말하지 않았던 게 아니었을까. 놀자고 말하는 아이에게 "엄마, 글 쓰잖아. 너도 글 좀 써볼래?"라고 물었다가 "난 작가가 아니잖아"라며 돌아선 아이가 그제야 내 눈에 들어왔다. 그 마음이 어땠을까. 

그때부터 하루 오후 한 시간은 무조건 부루마불이다. 방에서 하루 종일 나오지 않는 예비 중학생도 예외 없다. 귀찮다는 말을 달고 살며 투덜대기 일쑤지만, 10분만 지나면 상황은 대반전. 세상에 워런 버핏도 울고 갈 투자의 귀재가 우리 집에 살고 있었다. 나는 자꾸 파산만 하는데. 유튜브를 보는 시간을 제외하고 종일 조용하기만 했던 윤이는 셋이 하는 게임판 앞에서 유튜브 볼 때 다음으로 많이, 크게 웃는다.

다 큰 것 같지만, 아직 어린 둘째. 제 말대로 이제 10대지만 짧고 굵게 집중해서 놀아주는 시간이 아직 필요하다는 걸 이렇게 알게 됐다. 많이 컸어도 둘째는 둘째고, 또 막내니까.

*칼럼니스트 최은경은 오마이뉴스 기자로, 두 딸을 키우는 직장맘입니다. [다다와 함께 읽은 그림책] 연재기사를 모아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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