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금치 안 먹겠다는 아이에게 '뽀빠이'는 무용지물
시금치 안 먹겠다는 아이에게 '뽀빠이'는 무용지물
  • 칼럼니스트 신혜원
  • 승인 2020.02.28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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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혜원의 열두 가지 채소 이야기] 겨우내 단맛 든 시금치로 아이와 함께 '시금치 수제비' 만들기

얼마 전 포항초, 섬초가 나란히 놓인 마트 채소 판매대 앞에서 시금치는 어디 있냐고 묻는 아이 엄마를 보았다. 바로 앞에 있는 포항초와 섬초를 가리키는 직원의 손길에 아이 엄마는 무안했는지 무슨 차이냐고 물었다. "다 똑같은 시금치"라는 직원의 무뚝뚝한 답변이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옆에 있던 내가 괜히 머쓱해졌다.

포항초는 포항의 바닷가에서, 섬초는 신안 비금도 섬에서 재배되는 겨울철 노지 시금치다. 여름 시금치보다 향이 진하고 식감이 좋으며, 맛이 달아 상표로 등록되었다. 그래서 자기들만의 이름이 있다. 비교적 깨끗하게 단으로 묶여있는 포항초는 국화 꽃다발처럼 가지런하다. 반면에 섬초는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보도블록 틈 사이에 핀 민들레처럼 잎이 넓게 퍼져있고, 커다란 봉지에 담겨있다.

겨울의 얼어붙은 땅과 바닷바람, 그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씩씩하게 자랐을 포항초와 섬초를 생각하니, 해 준 것도 없는데 어느새 훌쩍 자란 아이를 보는 것처럼 대견한 마음이 든다. 또 혹독한 추위를 견디기 위해 스스로 단맛을 만들어냈다고 하니 겨울 시금치가 새삼 고맙다. 시금치라고 다 같은 시금치가 아닌데, 아이 엄마가 알았더라면 더 맛있게 먹었을 텐데…. 아쉬움이 남는다.

◇ 추위 견디려 스스로 단맛 만들어냈다는 시금치, 알고 먹으면 더 맛있다 

겨울의 얼어붙은 땅과 바닷바람, 그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씩씩하게 자랐을 포항초와 섬초를 생각하니, 해 준 것도 없는데 어느새 훌쩍 자란 아이를 보는 것처럼 대견한 마음이 든다. ⓒ베이비뉴스
겨울의 얼어붙은 땅과 바닷바람, 그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씩씩하게 자랐을 포항초와 섬초를 생각하니, 해 준 것도 없는데 어느새 훌쩍 자란 아이를 보는 것처럼 대견한 마음이 든다. ⓒ베이비뉴스

“시금치를 먹어야 뽀빠이 아저씨처럼 힘이 세지지!”

어릴 때 고기만 좋아했던 나에게 엄마는 시금치를 먹이기 위해 식탁에서 뽀빠이 아저씨를 자주 등장시키셨다. 하지만 엄마의 노력이 무색하게 나는 먹지 않았다. 뽀빠이처럼 힘이 세진다는 말이 시금치가 먹고 싶어질 만큼 매력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뽀빠이 여자 친구 올리브처럼 날씬해진다고 했다면 한입 먹어봤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잘 먹지는 않았을 것 같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시금치를 먹으면~” 이라며 아이를 혹하게 만들어서 먹이기보다는, 음식에 대한 거부감을 서서히 줄일 수 있는 ‘푸드브릿지(Food Bridge) 방법으로 다가가 보자. 

푸드브릿지(Food Bridge)는 아이가 싫어하는 식재료를 4단계로, 점진적으로 노출 시키면서 거부감을 줄이는 방법이다. 그러나 최소한 여덟 번 이상 노출 시켜야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고, 10~20번까지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그러니 가랑비에 옷 젖듯이 조금씩, 서서히, 그리고 즐겁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처음에는 그림책을 보여주거나 소꿉놀이로 호기심을 갖게 한다. 그런 다음 아이가 좋아하는 식재료에 섞어주거나 다양한 조리법으로 제공하면서 단계별로 익숙해지게 한다.

식재료와 친숙해질 수 있는 최고의 놀이는 요리다. 식재료를 다듬으면서 보고, 만지고, 음식이 만들어질 때 나는 소리와 맛있는 냄새는 자연스럽게 오감을 자극한다. 단, “네가 만들었으니 다 먹어야지”하는 말만은 하지 말자. 부모가 맛있게 먹는 모습과 즐거운 식탁 분위기에 아이는 ‘나도 한 번 먹어볼까?’ 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자, 그렇다면 추위를 이겨낸 시금치와 겨울철 별미 수제비의 콜라보레이션, ‘시금치 수제비’를 아이와 함께 만들어 보자.

잠깐! 이런 고민이 들 수도 있다. 

‘아이가 가만히 앉아서 반죽할까?’

‘밀가루가 묻은 손으로 온 집안을 휩쓸고 다닐 텐데 청소는 어떡하지?’

‘끈적거리는 반죽이 옷이랑 머리에 묻으면?’

‘그래도 아이가 좋아하면 할 텐데, 안 만지겠다고 하면 어쩌지?’ 등의 생각이 든다면,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에 대한 걱정은 잠시 접어두고, 아이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파노라마처럼 펼쳐보자.

밀가루를 손으로 움켜쥔 채 흰 눈을 처음 만졌을 때처럼 놀란 눈, 엄마 얼굴에 묻은 밀가루가 재밌다고 깔깔거리며 웃는 모습, 맛있어진다는 말에 있는 힘껏 반죽을 두드리는 작은 주먹, 반죽으로 동글 납작 자기만의 세상을 만드는 손, 내가 만들었다고 뿌듯해하는 표정과 오물쪼물 맛있게 먹는 입… 이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즐거움이 작지만 확실한 행복, ‘소확행’을 선물해 줄 것이다.

청소 걱정은 잠시 미루고, 아이와 함께 '시금치 수제비' 밀가루 반죽을 만들어보자. ⓒ베이비뉴스
청소 걱정은 잠시 미루고, 아이와 함께 '시금치 수제비' 밀가루 반죽을 만들어보자. ⓒ베이비뉴스

◇ 시금치 수제비 만들기

재료= 밀가루(강력분) 300mL, 시금치즙 150mL, 냉장고 속 자투리 채소(감자, 당근, 애호박, 양파 등), 육수(멸치, 다시마)

▲멸치와 다시마를 물에 넣고 끓여 육수를 만든다.

▲감자, 당근, 애호박, 양파를 먹기 좋게 썬다. 이때 감자나 애호박을 얇게 썰어 아이가 플라스틱 빵칼로 조각내어보게 한다.

▲ 시금치는 깨끗이 씻어 믹서기에 갈아 즙을 만든다. 포항초나 섬초의 모양, 색, 냄새에 대해 이야기 나누면 더 좋다.

“시금치가 추운 겨울에 햇볕이 너무 그리웠대. 그래서 양팔을 벌린 것처럼 잎이 넓게 자란 거란다.”

“겨울바람을 이겨 낸 시금치는 잎이 이렇게 단단해. 그리고 우리에게 단맛을 선물로 줬어. 시금치한테 고맙다고 말해보자.”

▲시금치를 믹서기에 갈아서 즙이 되는 모습을 아이와 함께 관찰하고, 밀가루에 시금치즙을 부어 수제비 반죽을 만든다. 아이와 밀가루를 만지면 어떤 느낌이 나는지, 밀가루 반죽이 완성됐다면 반죽을 함께 만지며 어떤 느낌인지 이야기 나눠보자. 이때 밀가루 반죽은 밀대로 밀면 모양틀로 찍을 수도 있고, 클레이처럼 아이가 원하는 것을 만들 수도 있다.

▲준비한 육수에 채소와 수제비 반죽을 넣고 간을 해 완성한다. 수제비 끓는 냄새를 맡으며 "어떤 맛이 날까?" 아이와 함께 이야기하면 좋다. 완성된 수제비는 가족이 함께 맛있게 나눠 먹는다.

◇ 아이들 좋아하는 음식에선 ‘감초급 조연’, 영양만큼은 ‘주연’ 

시금치 프리타타. ⓒ베이비뉴스
시금치 프리타타. ⓒ베이비뉴스

시금치는 그래도 초록색 채소 치고 아이들이 잘 먹는 채소다. 다른 채소에 비교해 그 맛이 달기도 하지만, 김밥이나 잡채처럼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에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스크램블드에그, 프리타타(달걀에 채소, 고기 등을 넣어 두껍게 부쳐낸 이탈리아식 오믈렛. 우리나라 계란말이와 비슷-편집자 주)처럼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에 시금치를 넣으면 더 잘 먹을 수 있다. 맛있게 무친 시금치를 식탁 위에 자주 올려보자. 단짝은 아니더라도 우리 반 친구 대하듯 시금치가 친숙해진다.

시금치 하면 뽀빠이와 함께 철분이 떠오르지만, 사실은 비타민 A가 가장 많이 들어있다. 그 밖에도 비타민 C·K, 식이섬유, 엽산, 칼슘이 들어있어 성장기 어린이는 물론이고 임산부, 노인에게도 좋은 채소다. 맛도 좋고, 영양도 풍부한 시금치지만, 생으로 먹으면 시금치에 들어있는 수산이 몸속 칼슘과 만나 결석을 만든다. 그러나 살짝 데친 것만으로도 거의 없어진다고 하니 너무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자란 겨울 시금치는 흙이 많이 붙어 있어 깨끗이 씻어야 한다. 붉은색 뿌리에 붙은 흙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아 잘라내고 싶은 충동이 들 수도 있다. 그렇지만 뿌리에는 영양이 풍부해 약용으로 사용한다고 하니 너무 바짝 잘라내지 말자. 팔팔 끓는 물에 소금을 넣고, 30초 정도 뚜껑을 열고 데친다. 찬물에 바로 헹궈 꼭 짠 시금치, 선명한 초록 잎이 달달하고 아삭한 보약으로 변신한다. 오늘은 시금치를 어떻게 요리해서 먹어볼까? 

*칼럼니스트 신혜원은 육아종합지원센터와 어린이급식관리지원센터에서 10여 년간 일하면서 편식하는 아이와 부모를 많이 만났다. 현재는 식생활 교육 전문가로 활동하면서 ‘먹이고 싶은 부모’를 위한 교육과 ‘안 먹는 아이’를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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