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둥이 어린이집을 알아보며 가진 세 가지 '희망사항'
늦둥이 어린이집을 알아보며 가진 세 가지 '희망사항'
  • 칼럼니스트 노미정
  • 승인 2020.03.24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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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도서관과 함께하는 마을육아] 실컷 놀기·숲생태 활동·친환경 급식

아이에게 어떤 어린이집이 좋을지 고민한다. 1년 전 늦둥이 셋째 막내의 어린이집을 알아보면서 세 가지 희망 사항이 있었다. 첫째, 아이들이 실컷 놀 수 있는가? 둘째, 숲생태 활동이 많은가? 셋째, 친환경 급식을 하는가?

하지만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국공립인가였다. 다행히 셋째라 다자녀 우선순위가 있지만 맞벌이에 다자녀인 경우도 많아 안심할 수 없었다. 동구에 있는 국공립어린이집 세 군데 입소 대기 신청을 해 놓고 한동안 고민에 빠졌다. 사실 정말 마음에 드는 곳이 있었는데 차량운행을 안 한다고 해서 아쉽지만 포기한 상태였다.

첫째, 둘째 아이를 보육기관에 보냈을 때 차량을 태우면서도 매일 아침 등원 전쟁을 치렀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집 근처도 아닌 자동차로 10분 정도 걸리는 거리를 매일 간다는 게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우리 아이보다 한 살 많은 아이를 먼저 그곳에 보내는 한 친구는 어린이집 문제로 고민하는 내게 어린이집 활동계획안, 식단표 등 사진을 보내주며 정말 좋으니 꼭 보내라는 말을 계속했다.

내가 차량운행 때문에 고민하는 것을 알고, 매일 하다 보면 익숙해지고 무엇보다 어린이집 만족도가 커서 다 감수할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계속 망설이고 있는 내게 하루는 결정적인 말을 던졌다. “네가 도서관 일도 열심히 하고 여러 활동으로 바쁜 것은 알지만 그 시간 중에 조금만 아이한테 써라. 활동적인 준이한테 이 어린이집이 딱 맞다. 절대 후회 안 한다.”

아침형 인간이 아닌 내가 매일 자차로 등·하원을 시켜야 한다니 사실 너무 귀찮고 고민되는 문제였다. 그런데 친구의 얘길 듣고 나니 망설이던 마음이 사라졌다. ‘그래 다른 것 다 제쳐두고 아이 입장에서  좋은 선택을 하자.’

◇ 공동육아협동조합 어린이집이 없다면 '대안'이 필요하다

지난해 네 살 때 숲생태국공립어린이집에 다니는 막내가 숲활동을 하는 모습. ⓒ노미정
지난해 네 살 때 숲생태국공립어린이집에 다니는 막내가 숲활동을 하는 모습. ⓒ노미정

사실 예전부터 공동육아협동조합 어린이집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공동육아어린이집의 교육환경은 나무와 마당, 물과 흙, 햇빛과 바람, 생명이 있는 곳이다. 물 장난과 모래 장난을 할 수 있고, 텃밭이 있고, 나들이 가기 좋은 숲이 가까운 곳. 자연을 사랑하고 함께 사는 법을 배우며 공동체를 경험하는 곳. 서울 및 수도권, 다른 지방에는 다 있는 공동육아협동조합 어린이집이 울산에는 없다.

2013년도에 ‘놀이밥 공동육아협동조합 어린이집’이 생겼다가 2016년에 문을 닫았다. 자세한 이유는 모르지만 조합원 모집이나 재정적 이유가 아니었을까 추측해본다. 공동육아협동조합은 조합원으로 가입해서 출자금과 조합비를 내야 한다.

보통 300만 원 이상의 출자금과 매달 내는 조합비는 30∼50만 원 정도라 알고 있다. 교육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비용이 많이 들고  누구나 선택할 수 없다면 과연 좋은 제도인가 하는 고민도 있었다.

공동육아의 철학을 갖고 국공립으로 운영되는 어린이집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보내고 보니 막내가 다니는 어린이집이 그런 곳이었다. 어린이집을 소개해줬던 친구가 나를 추천해서 얼떨결에 1년 동안 운영위원도 했다.

그 당시 전국적으로 사립유치원 비리사태가 한동안 이슈였고, 울산의 사립유치원이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유치원 운영위원회가 제 역할을 못 하고 부모들에게 정확한 정보가 공유되지 않았다. 내 아이가 처음 만나는 사회 어린이집, 하루의 반 이상을 보내게 될 어린이집에 관심을 갖고 참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 열린 어린이집을 만나며 '마을공동체'를 경험하다

막내가 다니는 곳은 국공립어린이집이라 원비가 저렴하고 4~7세까지 운영하는 곳이라 7세까지 여기 보낼 생각이다. 놀면서 자라고, 놀면서 배우는 숲생태어린이집은 일주일에 두 번은 10시~3시까지 온종일 숲에서 논다. 남목 마골산, 봉대산, 남목체육소공원, 오치골, 녹수유아숲체험원, 대운산휴양림 등에 자주 간다.

숲 체험을 안 가는 날은 근처 공원이나 놀이터로 바깥나들이를 간다. 공원에서 밧줄놀이도 한다. 어린이집 주위로 걸어갈 수 있는 큰 놀이터와 공원이 네 곳이나 있다. 오랫동안 근무하신 조리사 선생님이 계시고, 안전한 먹거리 생협 친환경 급식을 한다.

아파트 관리동에 있는 어린이집이라 아파트 행사나 축제를 어린이집, 지역아동센터, 노인정, 관리소 등 다양한 마을 단위들과 함께 어울려 진행한다. 그동안 봄·가을에 돗자리 영화제, 마을축제, 벼룩시장 등을 열었다. 아이들이 마을공동체를 경험하는 소중한 시간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부모 참여가 가능한 열린 어린이집이다. 이 부분이 공동육아협동조합 어린이집과 가장 비슷한 부분이다. 관심 있는 어린이집 활동에 부모들이 참여할 수 있다. 숲 활동도우미, 급식검수, 책 읽어주는 엄마, 생태 만들기 활동, 운영위원회 등 어린이집 부모참여 활동으로 급식 차량봉사를 했다.

온종일 숲 활동하는 날 점심은 직접 가져다준다. 급식조리사 선생님이 튀겨주신 따뜻한 돈가스를 먹기 좋게 잘라서 통에 담고 보온밥통과 김치, 수저 그릇 등을 챙겨서 숲속 놀이터로 갔다. 오전 내내 숲에서 뛰어놀던 아이들이 밥이 오니 환호성을 질렀다. 나보다 밥이 반갑겠지만 아이들에게 이런 환대를 받으니 기분이 좋았다.

매일 등·하원을 직접 하다 보니 말하지 않아도 내가 누구 엄마인지 다 알고 있다. 아이들과 둘러앉아 소풍 나온 기분으로 숲속에서 밥을 먹었다.

“어머니, 바쁘지 않으시면 아이들과 좀 놀다 가세요.”

지난번 숲 활동 도우미 봉사를 처음 한날 아이들과 너무 실컷 놀아서인지 다음날 온몸이 쑤시고 결렸다. 그래서 오늘은 급식 배달만 하려고 했는데, 밥 먹고 벌써 뛰놀고 있는 아이들을 보니 나도 함께 놀고 싶어졌다.

어린이집 결정에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차량운행은 내가 부지런해지는 계기가 됐다. 하원 시간이 자유로운 편이라 볼일이 있거나 중요한 일이 있을 때도 안심하고 어린이집에 맡길 수 있었다. 매일 직접 등·하원을 하니 부모님과 선생님 친밀도도 높고 어린이집 형·누나·다른 부모님들과도 자주 만나게 되고 어린이집 행사나 활동에 관심도 많아졌다.

◇ 늦둥이 막내를 키우며 좋은 교육이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본다

숲생태어린이집은 일주일에 두 번은 10새~3시까지 온종일 숲에서 논다. 자료사진 ⓒ베이비뉴스
숲생태어린이집은 일주일에 두 번은 10새~3시까지 온종일 숲에서 논다. 자료사진 ⓒ베이비뉴스

1년 동안 운영위원을 하면서 어린이집 행사나 활동에 되도록 열심히 참여하려고 했다. 11년째 동결된 어린이집 급간식비 지원금 평균 1745원으로 친환경 급식이 얼마나 어려운지도 알 수 있었다.

지난해 어린이집 부모참여 활동으로 송편 만들기와 김장 담그기를 함께 했다. 명절에도 안 하는 송편을 어린이집에서 직접 빚어보니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부모 활동에 자주 참여하는 운영위원 엄마가 아이들에게 송편 빚는 법을 천천히 알려줬고 돌아가며 엄마들이 아이들을 도왔다. 선생님들도 아이들을 돕고 직접 만든 송편을 챙겨주시고 사진도 찍어주셨다.

집에서 김장도 잘 안 하던 엄마들이 어린이집 김장 날에는 팔을 걷어붙였다. 김장체험과 1년 동안 어린이집에서 먹을 김장도 함께 하는 날. 한쪽에서는 김장이 한창이고, 다른 쪽에서는 아이들 김장체험이 이뤄졌다. 앞치마와 비닐장갑을 끼고 4세반부터 차례로 체험이 시작됐다.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다. 고춧가루를 배추에도 몸에도 묻혀서 도우미 엄마들은 진땀을 뺐다. 4세를 한번 하고 나니 힘이 빠져 김장담그기를 하고 있는 엄마들에게 도움의 눈빛을 보냈다.

그렇게 엄마들이 돌아가며 아이들의 김장체험을 도왔고, 뒷정리와 청소까지 마무리하고 함께 점심을 먹었다. 어린이집에서 삶아주신 수육과 우리가 담근 김치로 맛있는 점심을 먹었다. 그날 엄마들 대부분 ‘다음 해 김장 때는 절대 안 와야지’ 하고 마음먹었을 것이다. 나도 그땐 그랬으니까. 하지만 직접 경험해보니 알게 됐다.

‘예전 큰아이 때 어린이집·유치원에서 찍었던 김장, 요리, 바깥놀이 사진은 정말 사진이 다였겠구나.’ 어린이집 부모참여 활동을 하면서 선생님 한 명이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체험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선생님들이 얼마나 애쓰고 계시는지 직접 눈으로 보게 됐다. 좀 더 많은 부모님이 관심을 갖고 함께하면 좋겠다.

늦둥이 막내를 키우며 좋은 교육이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본다. 부모와 선생님이 함께 소통하고 교육기관과 마을이 함께 어우러져 아이를 키우는 환경. 어린이집에는 아이가 다니는데 신기하게도 부모인 내가 배우는 게 훨씬 많다.

매일매일 어린이집 가는 걸 너무 좋아하는 아이를 보며, 웃으며 반겨주는 어린이집 아이들을 만나며, 힘들지만 그래도 올해 또 운영위원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는다. 어서 빨리 개학하는 날이 오기를.

*칼럼니스트 노미정은 중학생 둘에 늦둥이 다섯 살까지 세 아이를 키우는 엄마다. 울산 동구의 더불어숲작은도서관에서 친구들과 공동육아·마을공동체를 고민하며, 함께 읽고, 쓰고, 밥도 먹는다. 아이들을 함께 키우는 마을, 우리가 오래도록 살고 싶은 마을을 위해 지금 나부터 ‘꿈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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