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봄엔 집에서 상추 심으며 봄기운 '테이크 아웃(Take Out)' 
올봄엔 집에서 상추 심으며 봄기운 '테이크 아웃(Take Out)' 
  • 칼럼니스트 신혜원
  • 승인 2020.04.29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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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혜원의 열두 가지 채소 이야기] 아이와 키우기 쉽고, 먹기에도 좋은 '상추'

추운 겨울이 지나면 코로나 19 바이러스도 봄눈 녹듯 사그라질 줄 알았다. 하지만 초록 잎사귀 사이 노란 개나리꽃이 봄 편지를 전해 왔을 때도, 연분홍 벚꽃잎이 봄바람에 흩날리며 벚꽃 엔딩을 부를 때도, 무슨 미련이 남았는지 바이러스는 아직도 우리 곁을 맴돌고 있다. 불현듯 20년 전 음료 광고 속 남자 주인공의 울부짖음이 떠오른다. 

“가! 가란 말이야, 널 만나고 나서부터 되는 일이 하나도 없어!”

당연했던 일상이 송두리째 빼앗기고, 전 세계는 지금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팬데믹 상태다. 하지만 올해도 어김없이 봄은 왔으니… 세상은 온통 캔버스에 유화 물감을 덧칠한 듯 꽃 빛으로 물이 들었다. 여느 때 같았으면 가까운 근교에 꽃 구경이라도 갔을 텐데. 아쉬운 마음에 스마트폰 갤러리가 정리해 놓은 1년 전, 2년 전 봄꽃 사진만 뒤적거린다. 그러다 발견한 어릴 때 살던 아파트의 벚꽃 사진, 서울이지만 벚꽃축제로도 유명해 해마다 봄이면 찾던 곳이다. 매년 인산인해를 이루었던 그곳, 나의 성화에 온 가족이 집을 나선다. 물론, 자가용을 타고 말이다.

30년이 넘은 아파트 단지 안에 들어서자 펼쳐진 아름드리 벚나무 숲속, 하늘을 가득 메운 벚꽃 꽃망울이 빨랫줄에 매달린 양말처럼 바람결에 살랑거린다. 그동안 먹거리 장터의 인파와 소음 속에 보이지 않던 평화로움이 두 눈에 가득 담긴다. 띄엄띄엄 벚꽃길을 걷는 사람들,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우리 가족은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천을 위해 차에서 내리지 않았다.

대신 차창 밖으로 손을 내미니 벚꽃잎이 드라이브스루(Drive Thru) 커피처럼 손바닥 위에 살포시 앉는다. 마스크를 사이에 두고 “흠-- 하--” 봄 내음을 들이켜자 며칠째 집콕으로 답답했던 가슴이 뻥 뚫린다. “우와!” 연신 소리를 질러대니, 엄마는 꽃이 그렇게도 좋냐며 사춘기 아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다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아들과 말없이 운전대만 잡은 남편, 어쩐지 서운하지가 않다.

‘그래, 옆에 있어 줘서 고맙다.’

“벚꽃아, 잘 있어! 내년에는 봄바람과 함께 걷자!” 

◇ '화훼 농가 살리기'에 산 상추 모종… 단 돈 만원에 봄기운을 얻었다 

꽃상추, 치마상추, 아삭이상추, 로메인상추…. 그 상추가 그 상추같지만 다 다르단다. ⓒ신혜원
꽃상추, 치마상추, 아삭이상추, 로메인상추…. 그 상추가 그 상추같지만 다 다르단다. ⓒ신혜원

순식간에 지나간 드라이브스루 벚꽃놀이의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아치형 비닐하우스들이 나란히 붙어 있는 농원 앞으로 차를 돌린다. 졸업식과 입학식, 각종 행사가 전면 취소돼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기사를 접한 뒤, 우리 가족은 적게나마 ‘화훼 농가 살리기 운동’에 동참하기로 했다. 주말이면 꽃을 사기 위해 나온 차량으로 밀렸던 도로지만, 이번엔 기다리지 않고 바로 차를 세운다.

온실 비닐하우스 앞 보도블록에는 튤립, 프리지어, 로즈메리, 라벤더 등 형형색색 식물들이 옹기종기 모여 일광욕을 즐기고 있다. 문득 사회적 거리 두기는커녕 마스크도 없이 다닥다닥 모여있는 식물에게 부러운 마음이 든다.

무지갯빛 식물 옆으로 파릇파릇 채소 모종이 바둑판 모양의 작은 집에서 “나도 있어요”하고 고개만 삐죽, 부끄럼타는 아이 같다. 상추, 치커리 잎채소부터 쪽파, 셀러리 줄기채소, 고추, 방울토마토 열매채소까지, 그 모습이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러운지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종류별로 하나씩 키워볼까?”

“캐릭터 장난감도 아니고, 반려 식물인데. 정성을 다해야지.”

“우리 집은 아침 녘에만 해가 드는데 방울토마토는 열리기 힘들겠지?”

열매채소는 내가 자신이 없고, 향이 강한 채소는 무조건 싫다며 웬일인지 적극적인 남편과 아들. 우리 가족이 좋아하는 쌈 채소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상추 모종을 종류별로 데려온다. 이름도 생김새도 친숙한 꽃상추부터 치마 모양의 치마상추, 이름만 들어도 입안 가득 시원해지는 아삭이상추, 너도 상추였니 양상추, 로마인이 즐겨 먹었다는 로메인상추, 참나무(oak) 잎을 닮은 오크상추. 상추 종류가 이렇게 많았나 싶다가도, 내 눈에는 오크상추 빼고는 그 상추가 그 상추 같다. 친해지지 않으면 헷갈리는 일란성 쌍둥이처럼 말이다.

봄꽃놀이는커녕 가정양육으로 집안의 활기를 잃었다면, 이번 주말 온 가족이 농원으로 모종 투어를 떠나보자. 물론 마스크 착용과 거리 두기는 필수다. 혹시 가족 중에 확진자가 있거나 자가격리 상태라면 인터넷에서도 쉽게 모종 심기 재료를 구매할 수 있다. 상추 모종은 모종판 한 줄에 4개인데 천 원 정도이고, 화분은 크기나 종류에 따라 몇백 원에서 몇천 원, 흙은 큰 포대가 만 원도 안 하니, 그야말로 ‘만 원의 행복’이다.

◇ 꼬마 농부와 베란다 텃밭 만들기

‘만 원의 행복’ 준비물

▲상추 모종

▲상토 : 여러 가지 양분을 고루 갖춘 흙으로 물 빠짐이 좋아 모종 키우기에 적합하다. 화훼 농원이나 동네 꽃집, 종합생활용품 판매점에서도 쉽게 살 수 있다.

▲화분 : 스티로폼 박스나 재활용품(페트병, 일회용 커피 컵 등)에 물 빠짐 구멍을 뚫어서 활용해도 된다.

▲모종삽: 종이컵이나 그릇 등 다양한 도구를 사용해도 된다.

첫 번째. 상추 모종을 심기 전, 아이와 함께 신문지를 넓게 깔고 상토로 흙놀이를 해 보자. 뒤처리가 걱정된다면, 인터넷에 ‘놀이용 비닐 깔개’를 검색해 보자. 모래 놀이터가 사라져 흙을 만지며 놀기 힘든 요즘, 자연이 주는 장난감은 아이와 함께 동심의 세계로 인도해 준다. 분무기로 물을 뿌리면 여름날 바닷가 모래밭으로 변신, 아이 손바닥을 바닥에 놓고 손등이 보이지 않게 흙을 덮어 두꺼비 집을 만든다.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집 다오.”

“아기 상추가 집이 너무 작대. 아기 상추에게 큰 집을 선물하자.”

“상추야, 상추야, 큰집 줄게, 작은집 다오.”

실리콘 아이스크림 몰드에서 얼린 아이스크림을 꺼내듯 엄지손가락으로 모종 비닐 바닥을 누르면 아기 상추가 쏙. 상추 뿌리 다치지 않게 조심스레 꺼낸다. 아기 상추가 나간 빈집에는 다시 흙을 채워 꾹꾹, 아이스 큐브의 얼음을 빼듯 뒤집어서 톡톡, 흙을 뭉쳤다, 부셨다, 아이만의 상상 놀이가 펼쳐진다.

자연이 주는 장난감은 아이와 함께 동심의 세계로 인도해 준다. “케이크가 왔어요. 맛있게 드세요!” ⓒ신혜원
자연이 주는 장난감은 아이와 함께 동심의 세계로 인도해 준다. “케이크가 왔어요. 맛있게 드세요!” ⓒ신혜원

“칙칙폭폭 기차가 지나갑니다.”

“케이크가 왔어요. 맛있게 드세요.”

두 번째. 화분의 3/4을 상토로 채운다. 화분 중간에 손가락을 꽂고 구멍을 파듯이 돌리면 상추 모종이 들어갈 자리가 완성된다.

세 번째. 상추 모종을 넣고 뿌리가 다치지 않게 상토를 가볍게 덮어준다. 여러 개의 모종을 한 화분에 심는다면 손가락 한 마디 정도 간격으로 심어야 상추가 서로 잘 자란다.

네 번째. 화분에 물을 충분히 주고, 햇볕과 바람이 잘 드는 창가에 둔다.

◇ 상추를 키울 땐 아이를 키우듯, 적당한 사랑과 의연함으로 

제법 잘 자라는 상추, 구석자리 상추는 줄기가 가늘고 기다랗게 콩나물처럼 웃자랐다. ⓒ신혜원
제법 잘 자라는 상추, 구석자리 상추는 줄기가 가늘고 기다랗게 콩나물처럼 웃자랐다. ⓒ신혜원

봄볕에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상추는 열매채소에 비하면 비교적 키우기가 수월하다. 또 웬만한 장소에서도 잘 크니 부담이 없다. 하지만 아이를 키울 때처럼 ‘적당한’ 관심과 사랑, 때로는 경험에서 나오는 의연함이 필요하다. 정성을 다한다고 물을 너무 자주 주면 금세 시들고, 햇볕을 충분히 받지 못하면 웃자란다. 또 잎을 딸 때는 바깥 잎부터 바짝, 그리고 아기 다루듯 조심스럽게 따줘야 짓무르지 않고, 안쪽에서도 새잎이 계속 나온다.

어쩌다 보니 우리 집에 온 상추, 볕이 잘 드는 마당이 있는 집에 갔더라면, 도담히 잘 자랐을 텐데…. 제일 구석에 자리한 상추가 잠깐 드는 햇빛을 보겠다고 줄기가 콩나물처럼 가늘고 기다랗게 자랐다. 그 모습이 안쓰러우면서 자리를 옮겨주지 않은 내 탓인 것만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든다.

아이를 키울 때도 그랬다. 소문난 ‘엄마 껌딱지’였던 아들, 지금은 사춘기라 반대로 내가 매달리지만, 도대체 언제 떨어지나 마냥 귀찮았다. 돌이켜보니 사랑이 고프다고 말했던 건데, 부모가 처음이라 들리지 않았다. 아이를 키워봐야 비로소 어른이 된다는 말처럼 턱없이 작은 베란다 텃밭이지만, 채소를 키워보니 생명의 소중함과 농부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헤아릴 수 있다.

상추에는 비타민과 무기질도 풍부하지만, 특히 수분과 식이섬유가 많아 고기를 싸 먹으면 포만감도 들고, 나쁜 지방은 배출시킨다는 장점이 있다. 상추 줄기의 하얀 진액, 락튜카리움(lactucarium) 성분이 졸음을 유발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숙면과 스트레스 완화에 도움이 된다고 하니 잠 오는 것이 걱정된다면 저녁에 먹는 것이 좋겠다.

그럼 모종을 키우면 상추를 안 먹던 아이가 잘 먹게 될까? 매일 물을 주니 상추는 예뻐하지만, 먹기는 여전히 거부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오늘 저녁, 삼겹살에 상추쌈은 어떨까? 온 가족이 손바닥 위에 상추를 깔고, 흰 쌀밥 한 숟가락, 쌈장 조금, 삼겹살 한 점을 차례로 포개어 보자기 싸듯 오므려 입안 가득 우적우적, 보는 사람마저 군침이 돌게 먹어보는 거다.

부모가 맛있게 먹는 모습, 그리고 즐거운 식탁 분위기에 “나도 한 입만” 할 수도 있다. 물론 지금 당장 먹지 않아도 괜찮다. 모종을 심고, 키우면서 느꼈던 소소한 재미가 언젠가는 먹는 즐거움으로 연결될 테니 말이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 기다림의 미학을 믿어보자.

*칼럼니스트 신혜원은 다양한 현장에서 20여 년간 영양사로 일했으며, 현재는 수원여자대학교 식품영양과 교수로 일하고 있다. 영양 전문가로 편식하는 아이와 부모를 만나면 나름의 고충이 보인다. 먹는 것보다 스마트폰이 재미있는 아이, 스마트폰을 보여주면서라도 먹이고 싶은 부모, 밥 먹는 것이 그야말로 전쟁이다. 당장 한 입 먹이기 위한 노력보다는 먹는 것이 즐거운 일이라는 것을 알려주자. ‘열두 가지 채소 이야기’와 함께 가랑비에 옷 젖듯이 조금씩, 서서히, 그리고 즐겁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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