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이 함께하는 놀이터, ‘오래된 미래’를 상상한다
마을이 함께하는 놀이터, ‘오래된 미래’를 상상한다
  • 기고=이수정
  • 승인 2020.06.09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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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제 놀아요?⑤] 이수정 사단법인 놀이하는사람들 상임대표

놀이를 빼앗긴 대한민국 아이들. 놀이라는 ‘권리’를 되찾아주기 위해 우리 사회는 무엇을 해야 할까. ‘서울시 아동 놀이권 조례 제정을 위한 시민연대’의 연속 특별기고로 놀이의 의미를 다시 생각한다. - 편집자 말

놀이터는 어디에나 있다 ©이수정
놀이터는 어디에나 있다 ©이수정

요즘은 동네 어귀 한쪽이나 아파트가 있는 곳이라면 놀이터가 있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 놀이터라는 개념조차 없었던 때에 아이들은 어디에서 놀았을까?

그 시절 아이들의 놀이터는 어디에나 있었다. 동네 한편 아직 건물이 들어서지 않은 공터, 가끔 자동차가 다니는 길 한쪽, 수위 아저씨가 교문을 닫기 전 학교 운동장, 뒷동산과 어른들이 일하고 있는 논밭, 친구네 집과 우리 집 옥상 또는 다락방과 부엌에 이르기까지 아이들의 놀이터는 변화무쌍했다.

그곳에서 아이들은 개구리와 잠자리를 쫓아다니며 자연의 품에서 뛰놀기도 했고, 깨금발로 사방치기를 하느라 얼굴에 온통 땟구정물이 흘렀으며, 언니 오빠 동생들과 어울려 이 집 저 집 다니며 놀다가 함께 밥을 먹고 까무룩 낮잠을 자기도 했다.

놀이터라 이름 붙여진 곳이 없어도, 화려한 놀잇감이 없어도 그리 빈곤함을 느끼지 못했던 시절의 이야기다. 

요즘 아이들은 어른 못지않게 바쁘게 지낸다. 학교, 학원, 학습지에 갖은 특별활동까지 하다 보니, 마치 어른들처럼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그런 아이들도 가끔은 허락된 일탈을 즐기는 때가 있다. 학교 시험이 끝났다거나 방학이 시작되는 즈음이다. 삼삼오오 모인 이 아이들이 노는 곳은 어디일까?

모아둔 용돈으로 방방놀이터나 키즈카페 등으로 몰려가기도 하고, 쇼핑몰로 가서 이런저런 구경도 하고 간식도 사먹는다. 조금 더 큰 아이들은 PC방에 가서 왁자지껄 떠들며 온라인게임을 하기도 하고, 동전노래방에서 목청껏 노래솜씨도 뽐낸다.

주인공이 아이들일 뿐, 어른들의 놀이문화와 별다른 점이 없다. 게다가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그나마도 즐기기 어렵다. 동네마다 만들어진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에는 유모차를 탄 아가들이 한둘, 그리고 어르신들을 위한 운동기구, 먹이를 찾는 비둘기들이 주인 행세를 하는 경우가 더 많다.

◇ 아이들은 왜 놀이터에 모이지 않는 걸까

적지 않은 비용을 들여 만든 놀이터에 아이들이 모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놀 시간 부족, 미세먼지 등으로 인한 야외활동의 어려움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부모가 놀이터에 대해 갖는 막연한 두려움이 아닐까 싶다.

아이가 혼자 놀이터에 갔을 때 충분히 보호받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은 부모라면 다들 느껴봤으리라 생각한다. 보호자가 늘 같이 갈 수 있다면 모를까, 아이들끼리 있을 때 닥칠 여러 가지 위험들을 상상하다보면 부모는 자꾸 아이들을 실내에 묶어두려는 어리석은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다.

생각에 거기에 미치면 의문이 생긴다. 아이들이 있는 모든 곳에는 그 공간을 관리하며 아이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누군가가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학교나 유치원에는 교사가 있고, 도서관에는 사서가, 청소년 문화의 집에는 청소년지도사가, 복지관에는 복지사가 있다.

그런데 놀이터에는 왜 아무도 없을까?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라지만 누구든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으며, 담배를 피워도 술을 마셔도 제재할 사람이 없는 곳이 바로 놀이터다. 안전망을 구축한다며 CCTV를 달지만 그것으로 부모와 아이 모두를 안심시키기는 어렵다.

게다가 놀이터를 안전하게 한다면서 주로 하는 것은 놀이시설물들을 더 작게, 더 낮게, 더 적게 만드는 일이다. 때문에 아이들은 초등학생만 돼도 동네 놀이터를 시시해 한다.

‘놀이터’라고 하면 자동으로 떠오르는 미끄럼틀, 그네, 시소, 이 세 가지를 과감하게 지워보면 어떨까. 그리고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 수 있되 꼭 필요한 보호는 받을 수 있는 곳, 마을 사람들이 함께 드나들며 아이들을 중심으로 한 공동체를 만들 수 있도록 설계된 곳이 지금의 놀이터를 대신한다면 어떨까?

◇ 마을과 아이들과 놀이가 하나로 이어져 있는 공간

마을 사람들이 함께 드나들며 아이들을 중심으로 공동체를 만들도록 설계된 놀이터는 어떨까 ©베이비뉴스
마을 사람들이 함께 드나들며 아이들을 중심으로 공동체를 만들도록 설계된 놀이터는 어떨까 ©베이비뉴스

조금 더 상상을 이어가 보자.

“마을 가운데 공원이 있고, 숲이 우거진 곳을 지나니 놀이터가 있다. 놀이기구는 별로 없지만 마음껏 뛰놀 수 있는 공터와 나무 그네, 흙놀이를 할 수 있는 공간 등이 있다. 놀이터 옆에는 텃밭도 있고, 함께 생활하는 작은 동물들의 집도 있다.

또 사방이 바깥과 연결된 작은 건물도 있다. 건물 옆 창고엔 수시로 아이들이 가져다 놀 수 있는 놀잇감들이 쌓여 있고, 쉼터엔 읽을 수 있는 책들과 편안한 의자들도 있다. 한쪽 사무실에는 놀이활동가와 청소년전문가가 상주하고 있다.

아침을 먹고 난 아기들과 엄마 혹은 아빠들이 놀이터에 들어선다. 따사로운 햇살 아래 아이들은 흙놀이, 나무자동차 타기 등에 여념이 없고, 부모들은 바로 옆 평상에서 아이 키우는 이야기, 어제 읽은 그림책 이야기 등을 나누며 함께 차를 마시고 있다.

오후가 되자 어린 아기들은 낮잠을 자러 집으로 돌아가고, 학교를 마친 초등학생들이 삼삼오오 들어선다. 소꿉놀이도 하고, 나무에 맨 그네도 타고, 사방치기도 하고, 한쪽에선 놀이활동가와 함께 이마에 땀방울이 맺힌 채로 나무정자를 짓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그러는 사이 또 한 무리의 청소년들이 들어선다. 익숙한 듯 사무실 옆 작은 쉼터에 가서 책을 보기도 하고, 엎드려 친구와 이야기도 나눈다. 활동적인 아이들은 동생들과 어울려 놀고 있고, 다른 쪽에선 작은 동물들에게 보살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몇몇 아이들은 마당 한쪽에 마련된 불을 피우는 공간에서 연기를 마셔가며 불을 피우느라 바쁘고, 또 몇몇은 그 불에 구울 간식거리 준비에 바쁘다. 맛있는 냄새에 놀이터에 있던 아이들이 모두 모여들어 즐거운 간식시간을 갖는다.

뒷정리를 하고 난 아이들은 이 놀이터에서 다음 달에 열릴 마을축제 준비를 하러 사무실로 향한다. 어느새 퇴근한 부모님들, 마을활동가들이 함께 회의를 하기 위해 놀이터에 들어서고 있다.”

‘마을 따로, 아이들 따로, 놀이 따로’가 아니라, 마을과 아이들과 놀이가 하나로 이어져 있는 공간을 상상해봤다. 사실은 오래전에 있었던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마을 어느 곳이나 아이들의 놀이터였고, 보호자가 일일이 따라다니지 않아도 안전했던 그때의 마을 놀이터.

어른들은 학교나 학원, 집과 다름없는 실내공간을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공간’이라며 멋지고 화려하게 지어 올릴 생각을 한다. 아이들은 놀이기구보다는 친구를, 멋지고 화려한 곳보다는 마구 장난칠 수 있는 공간을 원한다. 그리고 부모들은 믿고 보낼 수 있는 공간을 원한다.

그런 공간, 마을이 함께한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 서울시 아동 놀이권 조례 제정 함께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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