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놀아본 아빠’가 쓴 놀이터의 작은 역사
‘좀 놀아본 아빠’가 쓴 놀이터의 작은 역사
  • 최규화 기자
  • 승인 2020.06.10 10: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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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놀이터 일기」 박찬희 박찬희박물관연구소 소장

【베이비뉴스 최규화 기자】

「놀이터 일기」를 쓴 박찬희 박찬희박물관연구소 소장을 만났다.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놀이터 일기」를 쓴 박찬희 박찬희박물관연구소 소장을 만났다.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니가 노는데 아빠가 왜 힘들지?”
“아빠는 안 노니까 힘들지. 어서 놀아. 안 힘들게.”(「놀이터 일기」 173쪽)

「놀이터 일기」(소나무, 2020년)는 ‘좀 놀아본 아빠’가 쓴 작은 역사책이다. 저자 박찬희 박찬희박물관연구소 소장은 놀이터에서 딸아이를 지켜보는 것 말고 자신도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시작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기록’. 딸과 함께 보낸 ‘놀이터의 시간들’을 차곡차곡 기록해 책으로 펴냈다.

박 소장은 아이가 유치원에 다니던 일곱 살 때, 봄부터 초겨울까지 놀이터에서 보낸 겪은 사계절을 「놀이터 일기」에 담았다. 카메라와 녹음기, 수첩은 그가 놀이터에 나갈 때마다 반드시 챙기는 필수품이었다.

박 소장의 ‘본업’은 사람들에게 박물관과 문화유산의 중요성을 알리는 박물관 전문가이자 역사교육 전문가. 그가 놀이터의 시간들을 기록한 이유도 간단했다. 그것이 바로 아이의 역사이고, 친구들의 역사이고, 박 소장 자신의 역사이기도 했기 때문에. 그는 “역사를 기록하는 마음으로” 놀이터 일기를 써나갔다.

박 소장은 아이와 놀아주지 데 머물지 않고 직접 놀았다. ‘좀 놀아본 아빠’인 그가 몸소 경험한 놀이의 의미는 무엇일까. 지난 4일, 그가 매일같이 아이와 뛰고 놀고 웃고 즐기던 그 놀이터에서 그를 만났다.

◇ 놀아보지 않은 어른에겐 보이지 않는 ‘아이들의 세계’

박찬희 소장의 놀이터 필수품은 카메라와 녹음기, 그리고 수첩이다.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박찬희 소장의 놀이터 필수품은 카메라와 녹음기, 그리고 수첩이다.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Q. 놀이터의 시간들을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아이가 태어났을 때부터 기록은 했어요. 그걸 모아서 「아빠를 키우는 아이」(소나무, 2013년)를 냈고, 놀이터 이야기를 기록하기 전에는 ‘마주이야기’라고, 딸하고 주고받은 대화를 기록했어요. 기록하는 걸 워낙 좋아하기도 하고, 아이랑 같이 있는 시간을 그냥 때우지 말고 나름 의미 있는 일을 해보자 한 거죠.

놀이터에 와서 보니 아이들 노는 게 너무 신기한 거예요. 아이들에게 놀이란 뭔지, 그게 나한테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 기록하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던 거죠. 틈날 때마다 메모를 했어요. 메모하기 힘들면 녹음기로 녹음을 하고, 집에 가서 다시 글로 바꿨어요. 놀이터 나갈 때 필수품이 카메라, 녹음기, 수첩이에요.”

Q. 역사교육 전문가인 본업이 이 책을 쓰는 데는 어떤 영향을 준 것 같으신가요?

“영향이 크죠. 이것도 역사니까요. 딸아이의 역사이기도 하고, 저의 역사이기도 하고, 같이 놀았던 아이들의 역사이기도 하고. 이 시간이 지나가면 기억하기가 어렵잖아요. 역사를 기록하는 마음으로 한 거죠.”

Q. 아이와 ‘놀아주기’가 아니라 ‘같이 놀기’를 하셨습니다. ‘같이 놀기’를 해보니 뭐가 제일 좋던가요?

“일단 제가 좋죠 뭐.(웃음) 아이가 노는 걸 보고만 있으면 ‘언제 들어가나’ 지루하잖아요. 하지만 제가 직접 아이들하고 놀면, 그 순간만큼은 아이들만큼 저도 시간 가는 줄 모르니까요.

두 번째는 아이들이 놀이를 통해서 무엇을 얻어가는지, 생각이 어떻게 확장되는지, 아이들이 어떻게 변해가는지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죠. 아이들은 갖춰진 틀 안에서 놀지 않더라고요. 놀이터 곳곳에는 어른들 눈에는 안 보이는 아이들만의 상상의 공간이 있어요. 함께 놀고 계속 지켜보지 않으면 알 수 없어요.

또 놀이는 맥락 속에 있어요. 아이가 옷에 흙이 묻었다고 하면, 어른들 눈에는 흙이 묻었다는 사실만 보여요. 지저분하게 놀지 말라고 혼낼 수도 있겠죠. 그런데 무엇을 하고 놀다가 왜 흙이 묻었는지 맥락을 알면 바로 혼내게 되는 일은 적을 거예요. 그렇게 아이들 놀이의 흐름을 직접 겪어보는 것도 재밌었어요.”

Q. 만약 그렇게 직접 놀지 못했다면, ‘놀이터 일기’라는 기록은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아이들의 생생함을 잘 몰랐을 것 같아요. 관찰하는 거랑 직접 놀이 속에 들어가는 거랑 감정교류가 다르거든요. 아이들하고 놀 때는 서로 감정이 왔다 갔다 해요. 결정적으로 유대의 끈이 달랐겠죠. 관찰자와 관찰대상의 관계에서 같이 노는 관계로 바뀐 거니까. 아이들의 세계 속으로 한 발짝 더 들어갈 수 있었죠.”

◇ “놀이의 이로움, ‘경쟁’의 눈으로 보면 다 쓸데없어 보여” 

박찬희 소장은 “아이와 직접 놀아본 덕분에 아이들의 세계 속으로 한 발짝 더 들어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박찬희 소장은 “아이와 직접 놀아본 덕분에 아이들의 세계 속으로 한 발짝 더 들어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Q. 놀이터에서 부모들이 ‘하지 마!’라고 말하는 순간은 대부분 ‘위험’과 관련된 때입니다. 제약이 많으면 놀 것이 줄어든다는 걸 알면서도 안전에 대한 걱정을 놓을 수는 없는 게 현실입니다.

“당연히 저도 갈등이 돼요. 그런데 아이들이 저런 도전을 하기까지 어떤 단계를 거쳤을까 생각을 해봤어요. 아이들은 어느 날 갑자기 위험한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고, 나름 단계를 거쳐서 도전하더라고요. 아이들한테는 ‘위험’이 곧 ‘도전’인데, 어른들이 너무 통제의 입장에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해요.”

아이들의 놀이터 활용법에 끝이란 없다. 아이들은 나이가 들어 현실이라는 경계선으로 넘어오기 전까지 상상의 세계에서 새로운 놀이를 만들고 실험하고 개선한다. 어른들의 예상을 뛰어넘는 곳에 아이들의 놀이가 있다.(133~134쪽)

Q. 놀이도 배워야 하는 시대입니다. 놀이학교나 체험 프로그램를 다니며 돈을 내고 노는 것이 흔합니다.

“그건 놀이라고 하기 어려울 것 같아요. 놀이에서 가장 중요한 건 자발성이잖아요. 어른들은 놀더라도 영어나 숫자를 가지고 노는 걸 좋아하지만, 이미 놀이 안에는 살아가는 데 중요한 것들이 들어 있더라고요.

먼저, 친구들과 관계는 사회관계잖아요. 놀다보면 싸우기도 하고 삐치기도 하고, 그러다 또 같이 놀고 화해하고 하는 과정의 연속이죠. 그게 우리가 사회를 이루고 같이 살아가는 모습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놀이는 문제해결의 연속이에요. 어떤 놀이를 하다가 재미가 없으면 다른 놀이로 바꿔야죠. 우리 이거 하자, 그다음엔 저거 하자, 의견들이 막 나오죠. 아이들은 모여서 소통하고, 그에 따라서 해결해요.

별 것 없는 것 같아도 아이들 눈에는 놀잇감 아닌 게 없어요. 주위에 있는 요소들을 전부 활용하는 거죠. 또 주어진 형태대로 놀지 않고 자기들이 알아서 규칙을 만들어요. 굳이 얘기하면, 그게 창의성인 거예요. 놀이에는 그런 이로움들이 굉장히 많은데, 다른 눈으로 보면 다 쓸데없어 보일 수 있죠.”

Q. 아이들을 놀지 못하게 하는 가장 큰 ‘적’은 무엇일까요?

“경쟁과 조바심이죠. 어렸을 때부터 시간이 있으면 하나라도 더 배우고, 뭔가 의미 있는, 성과를 낼 수 있는 일부터 해야 한다는 생각. 놀이 시간은 다른 것들을 다 하고 남으면 하는 시간, 필수가 아닌 시간이 됐죠. 또 아이들이 놀기에 안전한 공간이 점점 줄어든 것도 밖에 나와서 노는 아이들이 적어진 이유 같아요.”

◇ “놀이란 즐거움이다… 아이들한테 꼭 필요한 건강한 즐거움”

박찬희 소장 인터뷰는 그가 아이와 함께 놀면서 「놀이터 일기」를 쓴 놀이터에서 진행됐다.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박찬희 소장 인터뷰는 그가 아이와 함께 놀면서 「놀이터 일기」를 쓴 놀이터에서 진행됐다.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Q. “놀이는 ○○이다”라고 놀이의 의미를 한번 정의해보시면 어떨까요?

“‘놀이란 즐거움이다.’ 아이들한테 꼭 필요한 건강한 즐거움. 아이들은 물론이고, 사실 어른들도 노는 거 되게 좋아하잖아요.(웃음) 다른 것과 바꿀 수 없는 기본적인 권리라고 생각해요.”

Q. 딸아이와 친구들이 이제 초등학생이 돼서 이 책을 봤을 텐데, 소감은 어떻든가요?

“아이들은 자기가 책에 나왔다는 것 자체가 중요해요.(웃음) 아이들에게 책을 전해줄 때 엄청 기분이 좋았어요. 책을 통해서 나중에 아이들이 그 시절을 기억해주길 바라는 기대도 있고요. 저희 아이한테는 책 내기 전에 원고를 다 읽어줬어요. 신기하게도 그때 상황을 다 기억하더라고요. 그 과정도 재미있었어요.”

놀이터는 딸아이의 기억이자 나의 기억이었고 나아가 둘 사이의 공통된 기억이자 추억이었다. 함께할 추억을 만들었다는 것, 이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하다.(264쪽, 박찬희 작가가 직접 뽑은 ‘내가 사랑하는 문장’)

Q. 끝으로 독자분들께 하시고 싶은 이야기 있으면 말씀해주십시오.

“놀아주기와 같이 놀기의 차이는 딱 한번 마음먹기에 달린 것 같아요. 놀아주기는 솔직히 귀찮을 수 있잖아요. 계속 시계 쳐다보게 되고, 5분이 한 시간 같고.(웃음) 아이랑 같이 놀아주는 게 정말 쉽지 않아요.

근데 딱 한번 마음먹고 ‘같이 놀아보자!’ 한다면, 5분이든 10분이든 그 시간만큼은 정말 즐거울 수 있거든요. 아이를 대하는 태도나 마음가짐도 달라져요. 작은 결심 하나 딱 내서 같이 놀아보면, 이전과는 많은 것이 달라질 거예요. 또 중요한 건, 아이와 그렇게 같이 놀 수 있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는 사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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