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집은 ‘사는 거’야, 아니면 ‘사는 거’야?”
퇴근 후 늦게 저녁을 먹고 있는데 여덟 살 큰애가 다짜고짜 이런 질문을 던졌다. TV를 보다가 요즘 이슈인 ‘집값’ 뉴스를 본 모양이다. 그래도, 질문이 너무 이상해서 “뭐라고?”라고 다시 물었다.
“아~니, 집은 ‘사는 거’냐고, 아니면 ‘사는 거’냐고!”
말귀를 못 알아듣는 아빠가 답답했던지 아이는 계속해서 같은 질문을 던졌다. 아이와 이야기를 나눠 보니 아이의 질문이 무슨 말인지 그제야 알았다. 아이는 그동안 집은 ‘사는 곳(live)’이라고 생각했는데, 뉴스에선 자꾸 ‘사는 것(Buy)’이라고 하니 어린 마음에 이상하게 느꼈던 모양이다.
요즘 정부에선 집값 안정화를 위해 다양한 정책을 발표하고 있다. 그런데도 집값은 쉽게 잡히지 않을 것 같다. 누군가는 오르는 집값을 계산하며 흐뭇해하겠지만, 같은 시간 다른 한 편에서는 집값 걱정은커녕, 제대로 발 뻗을 공간도 없어 어려움을 호소한다. 그리고 이런 곳에 사는 아이들이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9조에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라고 쓰여 있다. 헌법 제35조에서는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진다’라고도 했다. ‘살 곳’이란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권리고, 국가는 이를 마땅히 해결해야 하는 의무를 진다.
유엔아동권리협약 제27조에서는 ‘아동은 안전한 곳에 살면서 건강한 발달에 필요한 생활 수준을 누릴 수 있는 권리가 있다’라고 강조한다. 그런데도 2015년 통계청 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주거 빈곤 아동은 94만 4000명으로 나타났다. 전체 아동의 9.7%를 차지한다. 고시원, 쪽방, 비닐하우스, 컨테이너 등 집이 아닌 곳을 집 삼아 사는 아이들도 8만 6000명에 달한다.
모두가 ‘집값’에 관심 두는 요즘, ‘살 곳’ 없는 아동에 그 관심을 돌려야 할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10월 유엔아동권리위원회에서는 대한민국 정부에 “아동의 주거 빈곤을 제대로 시정하고 효과적인 정책을 마련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얼마 전 ‘한국토지주택공사 아동 친화적 주거환경 정책자문단’으로 위촉받아 회의에 참석했다. 아동 주거권 보장을 위해 모인 자리에서 다양한 의견들을 나눌 수 있었다. 회의 시간 내내 큰 아이의 질문이 맴돌았다.
“아빠, 집은 ‘사는 것’이야? 아니면 ‘사는 곳’이야?”
*칼럼니스트 고완석은 여덟 살 딸, 네 살 아들을 둔 지극히 평범한 아빠이다. 국제구호개발 NGO인 굿네이버스에서 14년째 근무하고 있으며, 현재는 굿네이버스 아동권리옹호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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