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1년, 재난은 아이들에게 가혹하다
팬데믹 1년, 재난은 아이들에게 가혹하다
  • 기고=남상은
  • 승인 2021.03.11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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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남상은 월드비전 옹호&시민참여팀장
남상은 월드비전 옹호&시민참여팀장. ⓒ베이비뉴스
남상은 월드비전 옹호&시민참여팀장. ⓒ베이비뉴스

연주(가명)는 아버지의 폭력을 견디다 못해 집에서 탈출했다. 코로나19로 인한 실직 이후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아버지의 폭력은 더 심각해졌다. 연주는 6개월 째 청소년 쉼터에서 지내고 있다. 형편이 넉넉지 못해 그동안 방과 후 틈틈이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도 벌고 자립도 준비해왔지만 일하던 가게가 코로나19의 타격으로 임시휴업에 들어갔다. 단체 생활을 하는 쉼터는 방역에 더 신경을 써야 하기에 외출이 자유롭지 못해 새로 일을 구하기도 어려운 형편이다. 연주는 불안하다.

오랜 내전을 피해 인접국의 난민촌에서 10년째 살고 있는 자밀(가명)은 코로나19로 인해 작년 한 해 학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난민 어린이들을 위해 마련된 학습지원센터가 문을 닫았고 온라인 수업을 위한 여건도 마련되지 못했다. 인근 마을에서 가사 일을 도와 어렵게 생계를 이어가던 어머니는 봉쇄 조치로 일자리를 잃었고 식량배급소의 식료품 보급도 부족해 당장의 끼니가 걱정이다. 자밀은 내일이 두렵다.  

월드비전은 코로나19 팬데믹 선언 후 1년을 돌아보며, 국내외 아동·청소년들이 겪었던 어려움들을 살펴보고 다각적인 지원을 고민하기 위해 아이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아이들의 생생한 목소리는 예상했던 것보다 더욱 안타까웠다.

지난 1년간 코로나19는 우리에게 감염병의 위협만큼 사회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주었다. 코로나19는 특히 가난한 사람들의 취약성을 가중시키고 있다. 감염의 위험성뿐 아니라 가속화 되는 소득 격차와 불평등은 우리 사회의 가장 취약한 이들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특히 심화된 불평등과 차별, 배제는 전세계 아동의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봉쇄 조치는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았지만, 역설적으로 가장 취약한 아동·청소년들의 권리도 가로막았다. 아이들이 처해 있는 상황에 따라 코로나19 영향의 결과나 권리 침해의 정도가 다를 수 있는데 특히 가정이 안전한 울타리가 돼 주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지난 1년은 가혹한 시간이었다. 아동·청소년들의 건강, 교육 및 보호를 보장하는 공공 서비스 체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한 결과다. 방역이 의사결정의 최우선 원칙이자 기준이었던 1년 동안 학교는 물론 아이들을 위한 지역기반 시설들은 사회 안전망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었다. 그러는 동안 아이들은 불안과 두려움, 박탈과 배제를 오롯이 견뎌야 했다.

경제적 손실 복구에 초점이 맞춰진 코로나19 대응책은 가장 취약한 아동·청소년들을 포용하지 못하고 있다. 손실의 정도가 당장 수치로 환산되거나 가시적으로 보이지 않아 여전히 사회적 관심에서 배제돼 있다. 이 시점에서 유엔회원국들이 1989년 만장일치로 채택한 아동권리협약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아동의 권리를 차별없이 보호하고 보장하겠다는 약속이 코로나19 대응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팬데믹이 종식되고 경제 회복이 우선돼야 아이들도 건강하고 안전할 거라는 어른들의 계획이 혹시 재난의 한 복판에서 아이들이 겪고 있는 현재의 위기를 직시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더 이상 아이들을 외롭게 두지 않았으면 좋겠다.

연주에게, 자밀에게, 또다른 위기를 겪고 있는 아동·청소년들에게 묻자. 그동안 무엇을 견뎌야 했는지, 우리 사회가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 코로나19 속에서 아이들을 위한 공공서비스 체계는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자세히 듣고 아이들에게 우리 사회가 재난 속에서도 그들을 지켜내는 책임을 다한다는 믿음을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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