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아침이었다. 아이가 좋아하는 과일을 씻어 베이킹소다를 푼 물에다 잠시 담갔다.
보글보글거리는 물에다 담긴 포도를 만지작거리다 다가온 아이가 말했다.
“엄마, 뭐야?”
“응? 포도야~”
“포도~ 포도.”
빨리 먹고 싶은지 재촉하는 아이에게 “기다려”, “금방 될거야” 내가 할 수 있는 발화와 몸짓으로 설명했다. 그래도 기다리기 싫은지 자꾸 빨리 달라는 표현을 하는 아이 앞에서 그 순간 순발력을 발휘했다. 평소 목욕을 좋아하는 아이의 눈높이에 맞췄다.
“예준아, 포도가 지금 목욕하고 있어.”
“여기 봐봐. 보글보글. 포도가 목욕하네?”
“(예준) 포도, 목욕하네?”
“맞아, 머리부터 발까지 목욕해야 깨끗해~”
보글보글 목욕하는 포도를 방긋 웃으며 기다리는 예준이를 보며 새삼 생각했다.
우리의 시선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시선에서 본 세상은 얼마나 큰 세상일까? 그리고 못 듣는 엄마를 바라보는 아이의 시선도 궁금했다. 그럼에도 오늘도 아이는 엄마의 차이를 느끼지 않은 채 그저 엄마 그 자체로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이 아이에게 편견과 차이의 눈높이가 아닌 아이만의 속도와 자세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눈높이로 바라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물론 이 아이 덕분에.
꼭 말로 하는 사랑이 아니어도 눈빛으로 전해지는 아이의 사랑은 곧 엄마의 성장으로 이어졌다. 눈높이를 낮추는 게 아니라 맞출수록 아이와의 소통도 한 층 더 깊어지기 시작했다.
포도가 목욕하는 모습을 함께 지켜보며 서로를 마주 보는 이 풍경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을 정도로.
*칼럼니스트 이샛별은 경기도농아인협회 미디어접근지원센터에서 농인(=청각장애인)을 위한 보이는 뉴스를 제작하며, 틈날 때마다 글을 쓴다. 유튜브 ‘달콤살벌 농인부부’ 채널 운영, 다수 매체 인터뷰 출연 등 농인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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