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모차 들어주는 알바, 사라지지 않았네
유모차 들어주는 알바, 사라지지 않았네
  • 정가영 기자
  • 승인 2014.08.22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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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역-코엑스 잇는 계단서 유모차 알바 활동 매년 유아박람회 열릴 때마다 되풀이되는 풍경

【베이비뉴스 정가영 기자】

 

서울 동작구에 사는 김유영(30·가명) 씨는 21일 오전 서울 2호선 삼성역을 나와 코엑스몰로 향하던 중 고마운 경험을 했다.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이동하던 그의 눈앞에 놓인 계단을 보고 ‘유모차는 어떻게 들지’라는 고민을 하던 찰나, 젊은 청년들이 적극적으로 다가와 유모차를 계단 위까지 들어 올려준 것이다.

 

김 씨는 “코엑스에서 열리는 유아교육전에 처음 가는 길이었는데, 계단이 있다는 건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유모차를 끌고 가다 계단을 만나면 막막할 때가 많아 방금도 걱정했는데, 친절하게 유모차를 들어주니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김 씨에 이어 다른 엄마가 유모차를 끌고 계단 앞에 다다르자, 김 씨의 유모차를 들어준 젊은 청년들은 또 다시 유모차를 들고 계단을 올랐다. 어두운 계열의 반팔티 위에 모두 ‘안내 서울국제유아교육전’이라는 문구의 노란 띠를 두른 4명의 청년들. 청년들이 유모차를 들어 올려주는 모습을 보던 한 시민은 “뭐하는 사람들이냐?”며 궁금증을 드러냈다.

 

이 청년들은 지난 21일 개막해 오는 24일까지 코엑스 1층 A, B홀에서 열리는 제32회 서울국제유아교육전&어린이유아용품전(이하 유교전)을 주최하는 (주)세계전람 측이 스태프로 투입한 아르바이트생들이다. 이들은 매년 코엑스에서 유아용품 박람회가 한창일 때 모습을 드러낸다. 이들의 역할은 하나, 유모차를 끌고 유교전을 찾은 엄마들이 삼성역과 코엑스를 잇는 계단을 안전하게 올라갈 수 있도록 손수 유모차를 들어주는 것이다.

 

서울국제유아교육전(세계전람) 개막 이틀째인 22일 오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삼성역에서 코엑스를 잇는 지하1층 이동통로에서 유모차를 들어 주는 세계전람 알바생들이 코엑스로 가려는 유모차를 들고 계단 위로 오르고 있다. 이기태 기자 likitae@ibabynews.com ⓒ베이비뉴스
서울국제유아교육전(세계전람) 개막 이틀째인 22일 오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삼성역에서 코엑스를 잇는 지하1층 이동통로에서 유모차를 들어 주는 세계전람 알바생들이 코엑스로 가려는 유모차를 들고 계단 위로 오르고 있다. 이기태 기자 likitae@ibabynews.com ⓒ베이비뉴스

 

유모차를 들어주는 일에 처음으로 나섰다는 대학교 휴학생인 손용운(23) 씨는 “아르바이트 사이트에서 보고 지원하게 됐다”며 “어머니들이 혼자 유모차를 끌고 오시면 유모차를 들어드리고 길을 모르면 길도 안내하고 있다”고 전했다.

 

폭우가 내린 이날 오전에는 유모차를 끈 엄마들이 많지 않았지만, 손 씨를 비롯한 유교전 스태프들은 계단 앞에 자리를 지키고 선 채, 걸어오는 인파들 속에 유모차가 있는지를 지켜보고 있었다.

 

9개월 된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온 노설희(28) 씨는 “유모차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고 유모차를 갖고 왔다”며 유모차를 들어준 스태프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삼성역과 코엑스를 잇는 총 12칸의 계단은 유모차 이용자에게 불편을 주기로 악명높은 구간이다. 지하철을 이용해 코엑스를 갈 경우에는 꼭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코엑스는 서울국제유아교육전, 베이비페어 등 큼지막한 육아박람회는 물론, 아쿠아리움·극장·코엑스몰 등 다양한 볼거리가 있는 문화공간이라 많은 엄마들이 찾고 있다. 보통 사람에게는 12칸의 계단이 문제될 게 없지만, 유모차를 끌고 온 엄마들에게는 막막하기만 하다. 특히 유아 관련 박람회가 열릴 때는 하루 평균 2만 명 이상의 엄마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코엑스를 찾게 되는데, 이때마다 엄마들의 원성이 잦은 상황이다. 

 

 지난 2012년 9월에는 한 직장인이 포털 다음에 ‘삼성역과 코엑스 사이의 통로에 경사로를 만들어 주세요’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삼성역과 코엑스 사이의 계단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다.

 

당시 글쓴이는 “코엑스에서 유아교육 관련 행사를 하게 되면 어린 아기를 데리고 유모차를 끌고 코엑스 연결통로로 오게 되는데, 거기에 계단이 떡 하게 놓여 있어 유모차를 혼자 들고 올라갈 수가 없다”며 “물론 장애인들도 마찬가지다. 장애인용 리프트가 있지만 굉장히 천천히 올라가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도 불편함을 주고 있다”고 꼬집었다.

 

글쓴이는 “코엑스와의 연결통로가 길게 이어지는 만큼 경사로를 비스듬히 설치하면 유모차, 장애인들도 코엑스 시설을 자주 이용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고 제안했다.

 

지난해 이맘때 베이비뉴스가 이같은 상황을 알리는 기사를 보도했지만, 1년이 지난 후에도 달라진 것은 전혀 없는 실정인 것이다. 

 

서울메트로 측은 천장이 낮은 구조적인 문제 등을 이유로 경사로 설치가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서울메트로 관계자는 “경사로를 설치하기에는 구조적인 문제가 크다. 해결하려면 천장을 높이거나 계단 바닥을 아래로 내려야 하는데, 천장이나 바닥에는 배관, 소방설비 등이 매설돼 있어, 이걸 이전하는 문제도 크고 비용이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 아직까지 검토 중에 있다”고 설명했다.

 

삼성역사에 도움을 요청하면 역무원들이 유모차를 들어주기도 하지만, 유모차 이용객들이 많은 박람회 기간에는 박람해 주최 측이 인력을 투입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유교전을 주최하는 (주)세계전람 관계자는 “주말은 아빠랑 오는 가족이 많아 차에 유모차를 싣고 오지만, 평일에는 엄마 혼자 오기 때문에 전철을 타고 계단 쪽으로 온다”며 “지하철 쪽에 말해서 오르막길을 만들면 좋겠다고 제안도 해봤지만, 결국은 인력을 투입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는 28일 베이비페어를 개최하는 (주)베페도 세계전람과 마찬가지로 유모차를 들어주는 인력을 투입할 예정이다. (주)베페 관계자는 “전시에 오는 분들의 편의를 제공하고자 행사 기간에 가장 먼저 인력을 배정한다”며 “행사 전날 요원들이 모여서 업무 위치를 탐방하고 교육한다. 아이가 유모차를 탔을 때, 안탔을 때의 두 가지 상황에서 유모차를 어떻게 들지 교육하며, 유모차 작동법까지도 교육한다”고 말했다.

 

유모차를 들어주는 인력이 투입되는 건 1년에 4번 정도 박람회가 열리는 기간 때뿐이다. 결국 유모차가 마음껏 다닐 수 있으려면 제대로 된 보행시설이 마련돼야 한다는 게 엄마들의 한결같은 바람이다.

 

유모차 대신 아기띠를 매고 온 한 엄마는 “비가 와서 아기띠를 한 이유도 있지만, 모르는 사람이 유모차를 들어주는 것이 안전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 조금 힘들더라도 아기띠를 하고 왔다”며 “유모차를 갖고 오든 아기띠를 갖고 오든 엄마 마음대로 아기를 편안하게 데리고 다닐 수 있게 (보행 환경이) 만들어져야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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