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심파괴 언니, "달이 따라온다"는 동생 말에
동심파괴 언니, "달이 따라온다"는 동생 말에
  • 최은경 칼럼니스트
  • 승인 2015.12.29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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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계의 레전드 <달님 안녕>

[연재] 다다와 함께 읽은 그림책 


"엄마, 저기 달 좀 봐요."

"와... 큰 보름달이네."

"응... 근데 달이 자꾸자꾸 우릴 따라와요."

"그래? 그럼 달님 안녕 해야지."

"달님, 안녕. 응? 근데 지금은 안 보여요."

"구름이 가려서 그런가 봐. 그러면 안 돼요 안 돼, 구름 아저씨 비켜주세요, 달님 얼굴이 안보여요, 해야지."


어린 아이들은 그림책을 읽는 게 아니라 통째로 외운다더니, 애들만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엄마도 그렇다. 하도 많이 읽어서 너덜너덜해진 책 <달님 안녕> 이야기다.


차를 타고 가면서 애들이 보름달이 보이네, 초승달이 보이네 하는 이야기만 꺼내면 내가 먼저 <달님 안녕> 책 내용을 줄줄줄(이라고 하기엔 참 단순한 글과 내용이지만) 읊곤 했다. 책 내용이 익숙한 아이들도 그때마다 "달님 안녕" 하며 아는 척을 했다.


그런데 가만... 이 말을 누가 했더라? 만날 "달님 안녕"이라는 글만 생각했지, 정작 이 말을 누가 했는지는 기억에 없다! 생각난 김에 책을 다시 펼쳤다. 마르고 닳도록 읽었는데도 그림은 전혀 새롭게 느껴졌다. 자세히 보니 그림엔 '고양이들'도 있었다. '달님 안녕, 이게 고양이가 한 말이었나? 이 고양이들이 대체 어디서 튀어 나왔담?'


밤이 되고 하늘이 깜깜해지자 고양이 두 마리가 어슬렁 지붕 위에 올랐어요. 어? 지붕 위가 환해지네. 달님이 떴어요. 달님 안녕? 그때 였어요. 구름이 나타나 달님 얼굴을 가려버렸어요. 구름 아저씨, 비켜주세요. 달님 얼굴이 안 보여요. 고양이들은 꼬리를 세우며 몸을 잔뜩 웅크렸어요. 구름은 곧 사라지고 다시 웃고 있는 달님이 나왔어요. 달님 안녕? 

 

단순한 내용, 도대체 아이들은 왜 좋은 걸까?


<달님 안녕>글/그림 하야시 아키코 ⓒ 한림출판사
<달님 안녕>글/그림 하야시 아키코 ⓒ 한림출판사


큰아이 돌무렵 구입해 동생이 다섯 살이 될 때까지 둘 다 잘 읽었고 크고 작은 도서관은 물론 소아과, 카페, 치과, 미용실 등 웬만한 가게에 한 권 정도는 비치되어 있는 <달님 안녕>. 이 정도면 '그림책 계의 레전드'라는 말이 과언은 아닌 듯하다.


그런데 처음 이 책이 출간될 무렵(1990년)엔 나처럼 생각하는 독자들이 더 많았던 듯하다. 창고에 재고가 잔뜩 쌓여 있었다는 걸 보니. 그러다 점점 아이들이 좋아하더라는 입소문을 타고, 팔리기 시작해 100만부를 넘어선 게 몇 년 전이란다. 그런데 도대체 모르겠다. 왜 아이들이 이 단순한 이야기에 빠져드는 건지.


혹시, '안녕'이란 말이 아이들에게 익숙하기 때문은 아닐까. 이 책의 주 타깃층이 0~3세라는 걸 감안하면 더 그렇다. 아이가 이제 막 뱃속에 있는 걸 알았을 때부터 엄마들은 말한다. "아가야 안녕! 엄마아빠에게 와 줘서 고마워" 그 후로도 무수히 많은 말을 듣겠지만, 반복적으로 듣는 말 중에 하나가 '안녕'이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본다. 마치 아가들이 아빠 목소리를 알고 반응하는 것과 비슷한. 또 하나는 엄마 미소를 닮은 달님의 미소 때문일지도. 어른인 내가 봐도 볼수록 따뜻해지는 그림인데 아이들은 오죽하겠나.


그러나 분명한 건 다 때가 있다는 것. 언제 읽어도 좋은 그림책이 있는가 하면 적정한 때가 있는, 그때가 지나면 의미를 알 수 없는 그림책도 있다는 말이다. <달님 안녕>은 후자 쪽. "달이 우릴 따라온다"는 동생 말에 코웃음을 치는 동심파괴 아홉살 큰아이 말이 그 증거다.


"야, 그건 달이 따라오는 게 아냐. 달은 가만히 있는데, 우리가 움직이니까 그렇게 보이는 거야. 그치 엄마."

"응? 그렇긴 한데... 너 그걸 어떻게 알았어?"

"학교에서 배웠어."

"......"


그랬구나. 그런데 어쩌지? 엄마는 "달이 자꾸자꾸 우리를 따라 와요" 하는 말이 아직은 더 반갑고 좋은데... 한때는 "제발 좀 빨리 커다오" 했는데, 요즘은 너무 빨리 커버린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가끔 든다. 바로 오늘 같이 이런 날.


[저자 하야시 아키코는 누구?]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다. 미술을 전공했고 잡지 <엄마의 친구:후쿠잉칸쇼텐 발행> 등에 컷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그림책에 관한 공부를 시작했다. 다수의 작품을 발표했으나, 제목만 들어도 알 법한 작품으로는 <구두 구두 걸어라>, <목욕은 즐거워>, <손이 나왔네>, <싹싹싹> 등이 있다. 이 책들은 모두 한림출판사에서 나왔다.


*칼럼니스트 최은경은 오마이뉴스 편집기자로, 9살 다은, 5살 다윤 두 딸을 키우는 직장맘입니다. 두 딸과 함께 읽으며 울고 웃은 그림책을 소개합니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함께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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