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어린이집 등의 아동학대 사건이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켜 크고 작은 사건사고들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것과 반대의 일이 벌어졌다. 아동학대 의심을 받고 인터넷에 신상이 공개된 한 보육교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 어쩌면 예고되었던 일은 아니었을까.
보통 학대가 의심되는 정황이 발생하면 학부모는 해당 기관에 요청해 CCTV 등을 확인해볼 수 있고, 이를 통해 정확한 증거가 발견되면 경찰에 사건을 접수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단계를 거치지 않은 부모의 ‘감’, 혹은 불신,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어딘가에서 싹 트는 의심 등은 사실 제대로 상황을 전달하지 못하는 아이도, 확인조차 애매한 부모 입장에서도 답답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단계에서 우리는 갑자기 드라마에서나 나올법한 형사로 변하기 시작한다. ‘분명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거야!’라는, 근거 없는 믿음은 아이를 돌보는 보육교사에 대한 의심으로 이어지고 이는 곧 확신으로 바뀐다.
보도 채널과 뉴스의 다양성은 언론의 기능을 정말 충실하게 만들었을까? 잘은 모르겠지만 지금의 기사들은 먼저 시청자들의 이목을 끌고자 다소 자극적인 것들을 앞다투어 내보내는 경향이 다분해 보인다. 열 군데의 어린이집이 무탈하게 운영되고 있어도 한 곳의 사고가 유독 부각된다. 그리고 이것은 곧바로 여론을 형성한다.
과거와 달리 국민의 정책 참여와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이지만 아직까지 익명의 여론에 대해 이렇다 할 제재가 없다. 그래서 누군가 작성한 댓글이 공감을 많이 얻기 시작하면 여론은 그의 시각에 맞춰 눈덩이처럼 커진다. 결국 기사보다 더 팩트인 것 같은 하나의 사건이 재생산되거나 부풀려지고, 이것의 파급효과는 받아들이는 대다수의 입장에서 진실인 양 여겨지게 만드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가입자가 지역의 엄마들로 구성 된 인터넷 까페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개인이 개설한 까페이므로 제도적인 규제가 없는 것은 물론 이야기의 주제, 내용 또한 제약이 없다. 그러나 엄마들에게 유독 취약한 공통의 주제는 있다. 바로 육아와 교육, 이를 둘러싼 환경의 문제들이 그렇다.
나 또한 아이를 처음 등원시킬 때 지역 까페에서 평이 좋은 곳의 정보를 얻기도 했고 나와 비슷한 환경에서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의 고충을 읽으며 공감을 했던 적도 있다. 친구와 메신저로 나눌 법한 자신의 이야기, 소소한 일상들이야 무슨 이슈가 되겠는가. 그러나 문제는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 나는 어떤 마음으로 우리 아이를 선생님께 맡기고 있는지…
이곳에는 종종 특정 업소(식당, 뷰티숍 등)뿐만 아니라 교육 기관(어린이집, 유치원, 학원)에 대한 개인의 평이 실명 그대로 여과 없이 즐비하게 올라온다. 가끔은 본인이 정말 억울하게 당한 일들을 하소연하듯 써 내려간 글도 있고 밑도 끝도 없이 비판만 가득한 글들도 있다.
분명 어디까지나 글쓴이 개인의 생각에 불과하다. 그러나 까페의 개설자, 혹은 관리자는 이러한 글들에 별다른 개입을 하지 않는다. 주제에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면 사건의 진실 같은 것은 글쓴이의 양심에만 맡기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글을 접한 대다수의 가입자들은 사건의 관심도가 높아질수록 점차 사실처럼 받아들인다.
하나의 사건, 사고가 뉴스가 될 때는 반드시 ‘팩트 체크’가 필요하다. 그러나 까페에 가입한, 대부분의 평범한 엄마들은 이를 냉정하게 판단할 수 있는 여력이 없다.
이 정도에 그치면 그나마 다행이랄까. 어떤 사건에 함께 공감하여 힘을 얻기 시작한 소그룹은 즉각 마녀사냥을 시작하기도 한다. 이후로는 사건의 본질조차 중요하지 않다. 가해자인지 아닌지도 알 수 없는 대상의 일명 ‘신상털기’만이 목적인 이번 사건 역시 진실과는 전혀 관계없는, 일부 엄마들의 여론 몰이와 마녀사냥의 희생양으로 만들어졌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일전에 어떤 학습지 상담 센터에 전화를 걸었더니 아이의 목소리로 “나에게는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우리 엄마가 일하고 있어요. 그러니 잠시만 기다려주세요.”라는 멘트가 나오더라.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다. 나와 통화를 하게 될 상담원 또한 누군가의 엄마이고, 또 누군가의 소중한 딸이겠지. 우리는 가끔 내 아이가 너무 소중하고 사랑스러워 상대 또한 누군가에게 그러한 존재라는 사실을 잊고 사는 것은 아닐까?
분명한 것은 보육교사와 학부모는 서로 의심하고 견제해야 하는 사이가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 아이의 올바른 성장을 위해 서로 격려하고 도우며 함께 가야 하는 공동체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점에서 더욱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다.
여론몰이와 마녀사냥의 발판으로 변질되고 있는 지역 까페의 운영 시스템도 문제이지만, 그보다 앞서 나는 어떠한 마음으로 우리 아이를 선생님께 맡기고 있는지 다시 한번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칼럼니스트 여상미는 이화여자대학교 언론홍보학 석사를 수료했고 아이의 엄마가 되기 전까지 언론기관과 기업 등에서 주로 시사·교양 부문 글쓰기에 전념해왔다. 한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은 아이와 함께 세상에 다시 태어난 심정으로 육아의 모든 것을 온몸으로 부딪히며 배워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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