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이 어떻게 아이를 키워?’ 편견에 맞선 엄마들
‘장애인이 어떻게 아이를 키워?’ 편견에 맞선 엄마들
  • 권현경·최규화 기자
  • 승인 2019.08.28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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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퀴 달린 엄마 시즌3 ③] TLG 활동가, 주디 로저스 & 도나 화이트

【베이비뉴스 권현경·최규화 기자】

장애가 있는 부모들은 어떻게 아이들을 키우며 살아갈까? 베이비뉴스는 2017년, 2018년에 이어 특별기획 시리즈 ‘바퀴 달린 엄마’ 시즌3을 연재한다. 미국의 장애인 가족 지원단체 ‘스루더루킹글래스’(TLG)를 찾아, 미국 장애부모들의 양육 현실과 지원 서비스가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무엇인지 고민했다. - 기자 말

‘스루더루킹글래스’(TLG)에서 29년째 일하고 있는 활동가 주디 로저스(Judi Rogers) 씨. 뇌성마비 장애인인 그는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하다. 김동완 기자 ⓒ베이비뉴스
‘스루더루킹글래스’(TLG)에서 29년째 일하고 있는 활동가 주디 로저스(Judi Rogers) 씨. 뇌성마비 장애인인 그는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하다. 김동완 기자 ⓒ베이비뉴스

“1990년 ‘장애여성을 위한 임신·출산 가이드(The Disabled Woman's Guide to Pregnancy and Birth)’ 초판이 큰 관심을 받진 못했어요. 장애여성에게 ‘왜 네가 엄마가 돼야 해?’라고 묻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제 책은 ‘당신도 엄마가 될 수 있어!’라고 말했으니 사회 분위기와는 거리가 있었죠.”

미국 캘리포니아 주 버클리 시에 있는 장애인 가족 지원단체 ‘스루더루킹글래스’(TLG)에서 작업치료사(Occupational Therapist)로 29년째 일하고 있는 주디 로저스(Judi Rogers) 씨의 말이다.

뇌성마비 장애인인 그는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하다. 자신이 장애부모 당사자이면서 또 장애부모를 지원하는 활동가로도 살고 있는 로저스 씨를 현지 시간으로 지난 6월 19일, TLG 사무실에서 만났다.

전동휠체어를 타고 취재팀을 맞이해준 로저스 씨는 장애부모의 가정을 방문해 아이 양육에 필요한 장비를 개발하고 지원해주는 일을 한다. 30년에 가까운 활동 경력을 바탕으로, 후배 활동가들이 겪어보지 못한 장애유형이나 특히 임신기 장애여성의 가정을 방문해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 살피고 확인한다.

TLG 내에서도 장애여성의 임신·출산과 관련한 경험과 지식이 가장 탁월한 로저스 씨. 그는 1990년 ‘장애여성을 위한 임신·출산 가이드’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했다. 자신의 경험 위에 90여 명의 장애여성을 직접 인터뷰한 내용을 더해, 장애여성을 위한 임신·출산 정보를 한 권으로 정리한 책이다.

그는 1976년, 1980년 두 차례 아이를 낳았다. 둘째 아이를 낳은 뒤 육아를 하는 틈틈이 밤잠을 줄여가며 책을 쓰기 시작해, 초판이 나오기까지 꼬박 10년이 걸렸다. 2005년에는 개정판을 내기도 했다.

“IL센터(자립생활센터)에서 일할 때, 누군가 임신과 출산에 관한 정보를 찾기 위해 저한테 연락을 했어요. 그런데 그 사람에게 전해줄 아무런 자료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제가 직접 책을 쓰기로 결심했어요.”

책을 쓰게 된 계기에 대해 로저스 씨는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이 책을 쓰기 위해 임신과 출산을 경험한 90여 명의 장애여성을 인터뷰했다. 장애유형에 따라 임신과 출산에 예상되는 징후나 주의점을 설명해놨다.

“특정 장애가 있는 여성의 실제 경험에서 나타난 문제점이 무엇이었는지를 다룬 게 가장 큰 특징이죠. 같은 유형의 장애가 있는 여성들이 ‘나도 이것과 비슷한 문제가 있을 수 있겠구나’ 예상할 수 있게 한 거예요.”

◇ 두 아이 키우며 10년 동안 직접 쓴 ‘장애여성 가이드’

로저스 씨는 1990년 ‘장애여성을 위한 임신·출산 가이드’라는 제목의 책을 집필했다. 육아를 하는 틈틈이 밤잠을 줄여가며 책을 쓰기 시작해, 초판이 나오기까지 꼬박 10년이 걸렸다. 김동완 기자 ⓒ베이비뉴스
로저스 씨는 1990년 ‘장애여성을 위한 임신·출산 가이드’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했다. 육아를 하는 틈틈이 밤잠을 줄여가며 책을 쓰기 시작해, 초판이 나오기까지 꼬박 10년이 걸렸다. 김동완 기자 ⓒ베이비뉴스

로저스 씨는 장애여성이 알아야 할 출산 후 양육 방법, 그리고 그에 필요한 특수 장비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DVD로 제작하기도 했다. 지역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서 TLG의 지원 서비스를 직접 받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사진이나 영상을 통해서라도 정보를 전하기 위해서다.

한국에서는 임신한 장애여성들이 산부인과를 찾아갔을 때, 의사로부터 임신중절을 권유받기도 한다. 임신한 장애여성을 진료한 경험이 없는 의사들은 때때로 진료를 거부하는 경우도 있다. 미국은 어떨까.

“진료를 거부했다는 사례는 듣지 못했어요. 하지만 과거 1970년대에는 임신중절이 불법이었는데도 장애여성이 병원으로부터 임신중절을 권유받은 사례는 많아요. 상당히 보편적으로 일어난 현상입니다.

의사들이 보기에는 임신이 장애여성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아이를 낳더라도 잘 키울 수 없을 거라고 의문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예전 TV 프로그램에서는 척추를 다친 장애여성이 아이를 양육하는 것을 마치 기적이 일어난 것처럼 보도하기도 했어요. 그런 편견은 지금도 여전하다고 생각해요.”

미국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장애여성이 아이를 낳을 때 제왕절개수술 비율이 높은 편이다. 특히 장애여성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로저스 씨는 두 아이를 모두 자연분만으로 낳았지만, 이는 흔하지 않은 경우다.

“의사들은 대부분 산모의 장애를 잘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아주 높은 비율로 제왕절개를 추천합니다. (미국 의사들은) 장애여성에 대한 지식이 부족합니다. 제 남편도 의사였고, 제 딸도 현재 의사인데, 지난 40여 년 동안 의료교육기관에서 장애여성에 대해 배운 적이 없어요. 가르치지 않기 때문에 무지함이 여전하죠.”

인터뷰 말미에 로저스 씨는 “예전에 생후 100일도 안 된 아이를 키우는 한국인 장애여성을 만난 적이 있다”고 말했다. 1997년 미국에서 열린 국제 콘퍼런스에서, 한국인 참가자를 만나 대화를 나눴다는 것이다.

취재진은 깜짝 놀랐다. 취재진에게 TLG의 존재를 알려준 사람은 김미연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 위원. 김 위원도 1997년 미국에서 열린 국제 콘퍼런스에서 TLG 활동가를 만났고, 장애여성의 임신과 출산에 대한 책을 봤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김 위원이 그때 만난 활동가가 다름 아닌 로저스 씨였던 것이다.

두 사람 모두 서로의 이름은 기억하지 못했지만, 20여 년 전 단 한 번의 인연이 지금 새로운 만남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에 로저스 씨는 한동안 상기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 “임신중절 권유도 보편적… 의료진들 장애여성에 대해 무지”

TLG에서 일하는 임상심리학자 도나 화이트(Donna White) 씨. 그 역시 장애부모 당사자이면서 다른 장애부모들을 돕는 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김동완 기자 ⓒ베이비뉴스
TLG에서 일하는 임상심리학자 도나 화이트(Donna White) 씨. 그 역시 장애부모 당사자이면서 다른 장애부모들을 돕는 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김동완 기자 ⓒ베이비뉴스

“아이를 임신했을 때 의사가 저한테 임신중절을 권했습니다. 그 경험이 저를 장애인 활동가가 되도록 했어요. 또 제가 아이를 낳을 때, 그 순간을 지금도 기억해요. 간호사가 저한테, 예쁜 아들을 낳았는데 당신이 정말 ‘불구’가 맞냐고 물었어요. 굉장히 모욕적인 표현을 썼고, 저한테는 너무 큰 충격이었습니다.”

TLG에서 활동하고 있는 가족임상심리학자(Family Clinician), 도나 화이트(Donna White) 씨의 말이다. 그도 로저스 씨와 마찬가지로, 자신도 장애부모 당사자이면서 다른 장애부모들을 돕는 TLG의 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그는 선천적으로 골연화증(Osteomalacia)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

화이트 씨에게는 서른두 살이 된 아들이 있다. 아이를 임신했을 때 의료진은 아이가 화이트 씨와 같은 장애를 가지고 태어날 확률이 50%라고 했다. 의료진은 임신중절을 권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아이는 장애 없이 태어났다. 임신중절을 권유받은 경험이 화이트 씨가 활동가로 살도록 하는 계기가 됐다.

화이트 씨는 아이를 낳기 전에도 이미 재활치료와 가족상담 분야 전문가 자격증을 갖고 있었다. 아이가 태어난 뒤 다시 교육학을 공부하고, 자립생활센터를 거쳐 TLG에서 24년째 활동하고 있다. 현재도 스물두 곳의 장애인 가정에게 치료와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며 그들의 자녀 양육을 돕고 있다.

미국의 장애부모들은 어떤 어려움을 가장 많이 호소할까. 화이트 씨는 훈육과 사회화의 문제를 먼저 꼽았다.

“훈육은 모든 부모들의 공통적인 어려움이죠. 미국에서는 체벌을 아주 심각한 범죄로 여깁니다. 잘못 훈육하다가 신고를 당할 경우 문제가 커질 수 있어요. 그리고 사회화 문제는 장애부모와 아이 모두에게 해당됩니다. 장애인은 휠체어를 타고 집 밖으로 나오는 것에 제한이 있기 때문에 이웃으로부터 소외될 수 있죠.” 

그 다음으로 꼽은 것인 장애부모를 둔 아이들의 ‘따돌림’ 문제다. 화이트 씨는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줬다.

“세 여자아이가 엄마가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제 아들을 괴롭혔어요. 학교 선생님은 제 아이의 성격이 날카로워서 그렇다고 했지만 저는 동의할 수 없었죠. 학교에 가서 이 문제를 공론화했고, 세 아이들과 그들의 부모들을 함께 만나서 대화했어요. 결론적으로 제 아이와 그 아이들은 다행히 좋은 친구가 됐습니다.”

따돌림에 대한 걱정 때문에 화이트 씨는 자칭 ‘슈퍼맘’이 돼야 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직접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 주며 등하교 시켰다. 학부모회 등 아이의 학교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 “엄마가 됐다는 게 자랑스러워… 장애여성들, 포기하지 말길”

화이트 씨는 "엄마가 됐다는 게 정말 자랑스럽다"며 한국의 장애부모들에게 격려의 말을 전했다. 김동완 기자 ⓒ베이비뉴스
화이트 씨는 "엄마가 됐다는 게 정말 자랑스럽다"며 한국의 장애부모들에게 격려의 말을 전했다. 김동완 기자 ⓒ베이비뉴스

그는 “미국의 학교 교육 과정에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교육 프로그램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래서 아이가 다니던 학교에서 화이트 씨에게 장애 문제에 대한 특강을 요청한 적도 있다고 한다.

화이트 씨는 아이가 두 살쯤 됐을 때, ‘장애가 있는 여성 누구나 충분히 아이를 키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장애가 있는 부모가 아이를 낳고 키우기를 선택했다면 그렇게 하도록 두는 것. 나아가 사회적으로 그들에게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를 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TLG는 장애부모와 아이의 주변에서 계속 지켜보면서 무엇이 필요한지 고민합니다. 양육자는 고립돼서는 안 돼요. 장애부모는 자신의 장애도 돌봐야 하기 때문에 아이나 가족에 대한 돌봄이 뒤로 밀릴 수 있어요. 장애부모가 아이와 본인의 장애를 모두 돌볼 수 있게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해요.

제 경우에는, 제 뼈는 지금도 부러지고 있어서 병원을 계속 다녀야 합니다. 제가 병원을 갈 때는 여동생이 와서 아이를 돌봐줬어요. 사회적으로 이러한 돌봄을 지원하는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화이트 씨는 임신과 출산을 준비하고 있는 장애여성들에게 조언을 잊지 않았다. 그는 “아이를 가지기 전에 충분한 계획을 세워야 한다”며, “가족, 부모, 친구 등 개인적 환경은 물론, 의료 체계나 TLG와 같은 사회적 지원 시스템을 얼마나 잘 활용할 수 있는지 미리 잘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장애부모로, 또 자신과 같은 부모들을 돕는 활동가로 24년째 살아오고 있는 화이트 씨. 사실 그는 TLG에서 활동을 시작하기 전, IBM 등 실리콘밸리의 대기업에서 일한 적도 있다. 하지만 그가 24년이나 TLG에서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일이 내 삶을 바꿨고, 내가 나 자신이 될 수 있었다”는 이유 때문이다.

“TLG는 다른 나라에서도 적용될 수 있는 롤모델 역할을 하고 있다”는 그는, 마지막으로 한국의 장애부모들을 향해 연대와 격려의 인사를 남겼다.

“부모가 된다는 것, 엄마가 된다는 것은 매우 감사한 일입니다. 저는 제가 엄마가 됐다는 게 정말 자랑스러워요. 당신은 지금 당신의 아이를 위해 정말 중요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포기하지 마세요(Don't give up)!”

*본 기획물은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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