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선 그 어떤 차도 스쿨버스를 추월하지 않는다
미국에선 그 어떤 차도 스쿨버스를 추월하지 않는다
  • 칼럼니스트 이은
  • 승인 2020.01.07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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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영부영 육아인류학] 구급차·소방차 그리고 스쿨버스가 오면 ‘무조건’ 멈추는 운전자들

엄마로 살면서 해야 할 일은 참 많지만, 특히 미국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엄마의 임무 중 하나는 아이들을 차로 학교에 데려다주고, 다시 집으로 데려오는 드롭 오프(Drop Off)와 픽업(Pick Up)이다.

미국에서는 한국처럼 각종 학원 차량이 아이들을 데려다주는 경우는 거의 없는 데다가, 학교와 집의 거리가 일정 거리 이내라면 스쿨버스조차 오지 않아서 등하교는 물론이고 그 외의 특별 활동도 모두 엄마가 아이들을 데려다주고, 데리고 와야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아이들을 차에 태워 학교며, 방과 후 프로그램 기관으로 이동하는 엄마들이 많다. 거의 100%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때문에, 운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도 미국에 와서는 어쩔 수 없이 거의 매일 운전대를 잡는다. 

◇ 목덜미 서늘하게 만든 한마디 “아드님보다 더 어린 애들도 타는데요”

도로에 늘어선 어린이 등원차량. 미국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광경이다. 베이비뉴스 자료 사진. ⓒ베이비뉴스
도로에 늘어선 어린이 등원차량. 미국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광경이다. 베이비뉴스 자료 사진. ⓒ베이비뉴스

미국의 교통 문화는 여러모로 인상적이다. 특히, 미국에서 한국의 학원에 해당하는 각 기관이 차량을 운영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물론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바로 ‘안전’ 때문이다. 각각의 아이들에게 맞춘 카시트를 준비하는 일이 힘들 뿐만 아니라, 안전사고가 발생했을 때 법적 문제도 몹시 복잡하기 때문에 미국의 ‘학원’에서는 통원 차량을 거의 운행하지 않는다.

각 주(state)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미국의 대부분 지역에서는 영유아는 물론이고 만 8세 어린이까지도 자동차 부스터 시트를 이용해야 한다. 특히 만 2세 이하의 아기는 무조건 뒤보기를 해야 한다. 만 13세 이하의 어린이는 법규에 따라 차량 앞 좌석에 앉을 수 없으며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 모든 어린이와 청소년이 뒷좌석에 앉도록 권장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아이를 낳으면 병원에서는 반드시 영아용 카시트의 소지 유무를 확인하는데, 카시트가 제대로 준비되지 않았다면 아이를 데리고 퇴원을 할 수도 없다.

한국에 잠시 머무는 동안 아이가 관심을 보이는 활동이 있어 그 기관에 상담하러 간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내 기관 등록을 포기했는데, 이유는 아이가 타야 하는 통원버스의 늘어난 안전벨트와, 너무 빠른 운행 속도를 확인하고 “내가 직접 등하원을 시켜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등하원을 도맡기에는 시간이 모자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안전벨트를 보고 걱정하는 내 모습이 이미 그들에게 ‘유난스러운 학부모’로 보였을 것이며, “아드님보다 더 어린 아이들도 다 타는데요, 뭐”라고 말하던 선생님의 목소리에 목덜미가 서늘했다. 

미국의 스쿨버스는 가장 튼튼하고 안전한 차량 중 하나라서 액션 영화에도 자주 등장한다. 이런 미국의 스쿨버스도 안전 교육을 반복해서 받은 후에야 이용할 수 있도록 학교가 아이들에게 지도한다. 안전 인식과, 이에 대한 교육의 중요성이 드러나는 지점이다. 

◇ 미국의 운전자들이 '무조건' 멈추는 순간… 구급차, 소방차, 그리고 스쿨버스 

처음 미국에 와서 미국 운전면허를 딸 때, 가장 인상 깊었던 내용이 떠오른다. 바로 소방차, 구급차, 경찰차가 차도에서 사이렌을 울리며 지나갈 때, 운전자들은 무조건 양쪽 끝 차선으로 이동해 멈춰서야 한다는 점이다. 역방향도 예외는 없다. 가장자리 차선으로 이동하기 힘든 상황이라면 그 자리에 멈춰야 한다.

요즘에는 한국에서도 비슷한 방식으로 협조하는 경우가 많다고는 들었지만, 그 당시에만 하더라도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광경이었기 때문에 몹시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그에 못지않게 더 강렬한 인상을 받은 사실이 있다. 바로 스쿨버스가 멈춰 있을 땐 다른 차 역시 멈춰야 한다는 것이다. 당연히 역방향도 예외 없다. 아무리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하더라도 스쿨버스를 추월해 지나갈 수 없다. 미국에서 운전하던 중에 반대 방향에서 오고 있던 스쿨버스가 정차하는 바람에 처음 그런 상황을 마주했을 때, 기분이 정말 묘했다.

하지만 4차선 도로를 달리던 모든 차량이 일제히 멈추고 아이들이 안전히 버스에서 내리는 모습을 보면서, 당시 유치원에 다니던 아들을 떠올리며 “우리 아이도 학교에 다니면 저렇게 버스를 타고 내리겠다”는 생각이 들어 안심했다. 그리고 이런 장면은 이제 내게도 결코 신기한 일이 아니게 되었다. 

◇ 스쿨버스 추월 면허 정지 60일+벌금·벌점… 스쿨존 과속 벌금 500달러 

미국에서 운전자들이 무조건 멈추는 순간이 있다. 바로 구급차, 소방차, 경찰차가 지나갈 때, 그리고 스쿨버스가 멈췄을 때다. 아이들이 타고 내리기 때문이다. ⓒ베이비뉴스
미국에서 운전자들이 무조건 멈추는 순간이 있다. 바로 구급차, 소방차, 경찰차가 지나갈 때, 그리고 스쿨버스가 멈췄을 때다. 아이들이 타고 내리기 때문이다. ⓒ베이비뉴스

미국의 이런 법규는 스쿨버스를 이용하는 어린이들의 안전을 위한 것으로, 운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절대적으로 지켜야 하는 규칙 중 하나로 언급되곤 한다. 내가 지금 사는 펜실베이니아주는 멈춘 스쿨버스를 그냥 지나치면 60일의 면허 정지 처분과 벌점 5점을 받으며, 벌금 250달러를 내야 한다.

참고로 벌점이 6점 이상일 경우 면허가 정지되며, 처음 위반한 사람이라면 특정 필기시험을 다시 봐야 한다. 2회 이상 벌점 6점이 쌓인 사람에게 적용되는 특정 법규도 따로 있다. 

또한 스쿨존에서 과속하면 500달러 이하의 벌금과 벌점 3점이 부과되며, 2회 이상 이를 어겼을 경우 면허 정지 60일 처분을 받는다. 참고로 펜실베이니아주의 스쿨존 속도 제한은 15mph인데, 이는 약 24km/h에 해당한다. 

한국 법과 비교해 봤을 때, 상대적으로 과중한 규정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어린 학생들을 보호하는 법규이기 때문에 대외적으로는 적어도, 누구 하나 이를 불합리한 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한 스쿨존에 진입하면 누구나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눈에 잘 띄는 스쿨존 표지판이 있고, 스쿨존이 끝나는 지점에도 표지판이 있다. 또, 이 표지판에는 아이들의 등하교 시간 등 특정 시간을 함께 명시해놨기 때문에 언제 특히 더 조심해야 하는지를 확인하기도 쉽다. 

학교 근처가 아니더라도, 아이들이 많이 다니는 길목에는 해당 표지판이 설치돼 있어서 운전자들이 더 조심하기 쉽다. 한국에서도 표지판과 해당 구간 등을 잘 명시하고, 분명하게 포괄하는 제반 사항이 조금 더 잘 갖춰진다면 운전자들이 더욱 안전 운전에 신경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조심스레 품어본다. 

◇ 내가 사는 미국, 느리고 오류 많은 사회지만 ‘어린이 안전’만큼은 확실

미국에서 절대 짧지 않은 시간을 보내면서 가끔 지인들에게 “미국이 좋아? 왜 좋아?” 하는 장난스러운 질문을 들을 때가 있다. 그런 질문을 받을 때 나는 미국의 교통 문화를 떠올린다.

한국은 공공 서비스, 민간 서비스 모두 신속하고, 정확하며, 친절하다. 사람들은 정이 넘치고, 거리마다 볼 수 있는 섬세한 요소들도 근사하다. 그래서 나는 한국이 참 좋고, 그리울 때가 너무나도 많다. 사실 미국의 많은 부분은 때때로 한국보다 느리고, 부정확하며, 때로는 지나치게 많은 절차가 필요하다.

하지만 적어도 어떤 한 부분에서는 미국에서 사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하게 되는데, 바로 ‘약자에 대한 보편적인 배려’이다. 그리고 그 약자에 대한 배려를 많은 사람이 긍정하고, 또 지지한다. 여기서 말하는 약자란 무조건 나보다 약한 사람이거나 못한 사람이 아니라 ‘주어진 상황에서 더 많은 도움이 필요하거나 배려가 필요한 사람’을 지칭한다. 

누구라도 어떤 상황에서는 약자가 될 수 있다. 건물 주차장 입구의 장애인 전용 주차공간을 어느 누구도 불편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마트 앞쪽 영유아 동반 가족 전용 주차 장소에 그 누구도 의문을 품지 않는다. 느릿느릿 길을 건너는 바람에 수십 대의 차량을 기다리게 만든 할머니에게 눈치 주는 사람, 없다. 스쿨버스가 멈추고, 아이들이 모두 내려 안전한 길로 들어설 때까지 어떤 차도 움직이지 않고 기다린다. 

천방지축 아이들이나, 조용하고 얌전한 아이들 모두 약자다. 아직은 더 많이 배워야 하고, 더 많이 자라나야 할 약자다. 아들의 학교 근처 어느 주택가 마당에 이런 문구가 쓰여 있었다. 

“Drive like your kids live here.”

말 그대로 ‘당신의 아이가 여기에 사는 것처럼 운전한다면’, 우리에게도, 또 아이들에게도 조금 더 안전한 하루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칼럼니스트 이은은 두 아이를 키우고 있다. 미국과 한국에서 큰아이를 키웠고 현재는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논문작업을 하고 있다. 스스로가 좋은 엄마인지는 의구심이 들지만 아이들과 함께 하는 순간순간으로 이미 성장해 가는 중이라고 믿는 낙천적인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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