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차도 끝 재택도 끝… '양자택일' 위기 앞의 워킹맘
연차도 끝 재택도 끝… '양자택일' 위기 앞의 워킹맘
  • 기고=이민경
  • 승인 2020.04.07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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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이민경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공인노무사
초유의 온라인 개학 결정. 교과서를 받아 집으로 향하는 한 초등학생.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초유의 온라인 개학 결정. 교과서를 받아 집으로 향하는 한 초등학생.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코로나19로 인해 전국 어린이집에 휴원 명령이 내려진 게 지난 2월 27일. 한 달 하고도 열흘남짓 시간이 흐르는 사이 우리를 둘러싼 상황은 이미 많은 것이 변해버린 듯하다.

신청자 수도 몇 명 없는데 감염의 위험을 무릅쓰고 애를 굳이 기관에 보내야만 하느냐며 긴급보육을 반대하던 목소리는 그 사이에 쏙 들어가, 4월 1일 기준 서울 어린이집 긴급보육 이용률은 32.4%을 기록했다. 지역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사회적 거리두기 기한이 연장되면서 금주부터는 긴급보육 이용률이 50%까지 육박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또한 중앙방역대책본부의 통계에 따르면 1차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 동안 10세 미만 아동의 코로나19 감염자 증가 폭이 전 연령대를 통틀어 가장 컸다고 한다. ‘학교가 더 안전하다’며 3월에 개학을 강행했던 싱가포르는 이틀 만에 학교발 집단감염이 터지면서 다시 학교를 폐쇄하기로 결정했고, 대한민국은 결국 오프라인 개학을 포기하고 건국 이래 초유의 ‘온라인 개학’을 실시하게 되었다. 수능 연기는 덤이다.

연차, 가족돌봄휴가, 재택근무는 물론 조부모, 이모, 삼촌 찬스 등 가용 돌봄자원을 모조리 끌어다 쓰며 버티던 맞벌이 가정은 이미 2주 단위로 반복되는 개학연기 발표와 사회적 거리두기 추가 연장 발표에 무너져가고 있다. 이제 그들에게 남은 선택은 하나뿐이다. 감염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짤리지 않기 위해’ 직장으로 복귀할 것인가, 아니면 내 아이의 안전을 위해 나의 경력을 희생할 것인가. 

시시각각 바뀌는 급박한 상황에서 정부 각 부처들도 저마다 바삐 움직이며 관련 대책들을 쏟아내고 있다. 고용노동부도 예외가 아니다. 

실업급여 수급방식을 변경하고 고용유지지원금 지원대상과 금액을 확대하는 한편, 유연근무제 및 올해 처음으로 시행되는 가족돌봄휴가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각 권역 고용센터에서는 실업급여 및 고용유지지원금에 대한 문의가 빗발치고 있으며 해당 지원금 신청건수와 금액도 사상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이밖에도 자녀돌봄 등의 사유로 근로시간 단축을 시행했을 때 지급하는 ‘워라밸일자리 장려금’의 지원수준을 한시적으로 인상한다는 소식도 최근에 전해진 바 있다.

노동부가 쏟아낸 대책들의 특징은 모두 기존에 있던 제도들의 지원금액을 상향조정하거나 지원요건을 완화하여 수혜대상과 규모를 넓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제도는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까?

◇ 연차·돌봄휴가·재택근무·할머니 찬스까지… 더 이상 쓸 카드가 없다

사회적 거리두기 초창기에 노동부가 가장 먼저 꺼내들었던 카드는 가족돌봄휴가 유급화였다. 남녀고용평등법에 근거를 두고 올해 처음으로 도입된 이 제도는 원래는 10일의 무급휴가였지만, 코로나19 대책의 일환으로 한시적으로 10일 중 5일에 한해 하루에 5만 원씩 최대 25만 원까지 근로자에게 지급하고 있다. 지난 4월 1일 기준 신청자 수가 4만 명을 돌파했다고 노동부는 발표했다. 

물론 없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4만 명이 신청했다고 자랑할 일인가 싶다. 전국의 만 8세 이하 자녀 또는 만 18세 이하 장애인 자녀를 둔 노동자는 모두 몇 명일까? 그 중에 4만 명은 몇 %를 차지할까?

그리고 만 8세 이하 자녀 또는 만 18세 이하 장애인 자녀를 둔 사람 중 가족돌봄휴가를 신청하기 전에 이미 노동시장에서 이탈‘당한’ 사람은 몇 명일까? 가족돌봄휴가가 있어도 해고의 위협 때문에 쓸 수 없는 사업장의 비중은 어떠한가? 그들이 실제로 겪고 있는 해고의 위협은 어느 정도인가? 노동부는 이와 같은 질문에 먼저 대답해야 한다.

역시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그 비용 역시 생각해볼 문제이다. 2020년도 최저임금이 8590원이니 8시간을 곱하면 6만 8720원이다. 이것을 5만 원에 ‘퉁치겠다’는 건데, 순수하게 경제적 관점에서만 보면 당연히 밖에 나가 최저임금 받고 8시간 일하고 오는 게 더 이득이다.

심지어 가정돌봄은 8시간이 아니라 24시간이다.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경제인이라면 5일밖에 못 쓰고 5만 원밖에 못 받는 가족돌봄휴가를 눈치 보며 쓰기보다, 똑같이 눈치 보이더라도 일단 임금이 100% 보장되는 연차휴가를 먼저 소진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이와 같은 기존 제도 중심의 소극적인 지원책은 애초부터 ▲가족돌봄휴가라는 제도를 인지하고 있고 ▲사용할 수 있는 여건이 되는 사업장의 근로자들 중 ▲휴가기간 동안 일을 안 하더라도 생활이 유지될 수 있는 경제적 여건을 가진 근로자가 ‘쉬는 김에’ 신청하는 정도 수준의 극도로 제한적인 지원방식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여기에는 더 중요한 전제조건이 있다. 바로 가족돌봄휴가를 쓰고 와도 ‘짤리지 않는가’ 하는 점이다.

현재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달력의 ‘빨간 날’은 원칙적으로 유급휴일이 아니라 ‘근로일’이다. 이 날에 근로자들이 쉴 수 있는 건 사업장에서 ‘약정휴일’로 특별히 유급휴가화 했거나, 본인이 알게 모르게 ‘연차휴가사용 대체합의서’라는 문서에 동의를 했기 때문이다. 특히 후자의 경우 실질적으로 사용가능한 연차휴가 자체가 이미 ‘0’이거나 심지어 ‘마이너스‘인 경우도 발생한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의 개학은 기한 없이 연기됐다.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어린이집과 유치원의 개학은 기한 없이 연기됐다.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 감염 위험에도 긴급보육을 보낼 것인가, 아니면 '경단녀'가 될 것인가

이렇게 없는 연차휴가를 끌어다 쓰고, 무급인 가족돌봄휴가를 쓰고, 눈치 보며 재택근무를 하고,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출근해야 해서 연로하신 부모님과 일가친척에게 아이를 맡기고 출근했던 가정은 이제 해고의 실질적 위협 앞에 더 이상 꺼내들 수 있는 카드가 없다. 한 달 동안 시골 부모님 댁에 맡겼던 아이들도 결국은 부모님들이 ‘GG’ 치시는 바람에 다시 부모 곁으로 돌아오고 있다.

남은 선택은 한 가지뿐이다. 내 아이들을 감염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어린이집에 긴급보육을 보내고 가정경제를 지킬 것인가. 아니면 언제나 그랬듯이 부모 중 한 명의 경력(주로 엄마)을 희생해서 내 아이와 가정을 지키기 위해 눈물을 머금고 ‘경단녀’가 될 것인가. 이는 대한민국의 수많은 엄마들이 출산휴가, 육아휴직을 써보기도 전에 ‘자발적으로 퇴사당하는’ 구조와 100% 일치한다.

최고의 복지는, 겉만 번드르르하고 한번 신청하려면 상상 이상으로 신청절차가 복잡한 지원금이 아니라 바로 ‘일자리’이다. 고용노동부의 2020년도 일자리 예산은 25조 8000억 원에 육박한다. 이 예산의 유일한 목표는 바로 ‘일자리 창출’이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일단 없어진 일자리를 다시 창출하는 것보다 기존의 안정적인 양질의 일자리를 유지하는 것이 더 나은 선택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일자리 정책은 이 점을 방관하고 있다.

노동부는 경영계의 목소리만 듣고 이 기회를 틈타 주 52시간제 위반사업장 단속 및 처벌을 유예하거나, 산업안전 관련 사업장 점검을 유예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근로시간 단축을 적극 권장하고 감염병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일터로 향할 수밖에 없는 근로자들을 적극적으로 보호할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각 사업장별 육아휴직, 가족돌봄휴가 등 모성보호규정 준수 실태를 고용보험 데이터를 바탕으로 빅데이터 분석하여 스마트 근로감독을 적극적으로 실시함으로써 명확한 '신호'를 주어야 한다. 정부 각 유관부처가 모두 '적극적 고용유지'라는 명확한 목표를 공유하고 이를 위해 모든 리소스를 쏟아부어야 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컨트롤 타워는 보이지 않는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셰익스피어의 비극 속 햄릿이 했던 실존에 대한 고민은 2020년 대한민국 양육자들에게 이렇게 다시 돌아왔다. 노동부는 대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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