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 여동생 대신해 두 살 조카, 내가 돌보기로 했다
워킹맘 여동생 대신해 두 살 조카, 내가 돌보기로 했다
  • 칼럼니스트 김보민
  • 승인 2020.06.22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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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에서 지구인으로 살아가기] 아이도 어른도 행복한 '육아의 방법'을 찾고 싶었다

자가 격리 기간 두 달 동안 아이들이 꽤 많이 컸다. 특히 말을 배우기 시작한 둘째의 표현력은 어제 다르고 오늘 또 다르다. 처음 한 달간 둘째는 어른들의 말을 따라 하기 바빴다. ‘밥 먹을까?’하고 물으면 ‘밥 먹을까?’하고 답하고, ‘재미있었어?’라고 물으면 ‘재미있었어?’라고 되물어서 늘 돌림노래를 부르는 느낌으로 대화를 했다.

두 번째 달에 접어드니 아이는 대답을 하기 시작했다. ‘밥 먹을까?’하고 물으면 ‘아니’라고 답하고, ‘잘까?’라고 물으면 ‘아니’라고 답한다. 대답의 태반은 ‘아니’지만 말을 건네면 이해하고 반응하는 것만으로 그저 신기해 온종일 온갖 질문을 던지게 된다.

가끔 주변에서 둘째가 몇 개월이냐고 물어볼 때가 있다. 다른 양육자들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럴 때마다 일일이 계산을 해야 아이의 월령을 알 수 있다. ‘1월에 24개월이었으니까, 6월에서 1을 뺀 5를 24에 더하면 둘째의 월령이네’라고 주절주절 읊으며 머릿속으로 계산을 한다.

둘째는 이번 달에 29개월이 되었다. 키와 몸무게, 머리둘레가 100명 중 몇 번째인지는 잘 모른다. 또래와 비교해 키가 얼마나 큰지, 몸무게는 적당한지 그런 것도 사실 크게 관심을 두고 본 적이 없는 게으른 엄마다. 

다만 아침, 점심, 저녁, 간식 꼬박꼬박 잘 챙겨 먹고, 잘 뛰어놀고, 잘 자는 것으로 아주 건강하게 크고 있다고 생각한다. 가끔 해당 월령에 뭘 할 수 있는지 궁금할 때가 있는데 이럴 땐 첫째 어릴 때 찍어놓은 영상이나 사진을 훑어본다. 큰애가 벌써 일곱 살이지만, 지나간 세월을 일일이 기억하면서는 못 살아 둘째도 처음 애 키우는 사람처럼 키우는 셈이다.

큰아이가 29개월이었던 2017년 2월 영상과 사진을 훑어본다. 큰아이 곁에 아이 하나가 더 있다. 그때도 나는 아이 둘을 키웠다는 것을 기억해낸다. 

◇ 애는 대구에, 부모는 서울에, 할머니는 육아하다 아프고…이렇게는 안 된다!

2017년 4월의 사진. 이 속도로 시간이 계속 흐르면 곧 할머니가 되어버릴 것만 같다. ⓒ김보민
2017년 4월의 사진. 이 속도로 시간이 계속 흐르면 곧 할머니가 되어버릴 것만 같다. ⓒ김보민

2013년 12월, 임신 소식을 듣고 일찌감치 출산 후 회사 복귀만 생각했다. 출근하는 나를 대신해 아이를 키워줄 사람을 찾거나 그런 상황만 마련하면 언제든지 회사에 바로 복귀할 생각이었다. 아이를 낳기도 전에 어린이집 입소를 신청했고, 정부에서 제공하는 각종 육아 관련 서비스도 살펴봤다. 아이가 6개월 정도만 되어도 나를 대신할 육아 환경을 완벽하게 마련해두고, 회사에 나갈 수 있을 거라 여겼다. 

2014년 9월, 아이를 낳고 집에서 아이와 단둘이 온종일 생활하는 시간이 시작되었다.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런 핏덩이를 도대체 누구에게 맡기고 나가서 일할 수 있을까, 아이는 낳으면 쑥쑥 자란다고 하던데 도대체 얼만큼 자라면 많이 키웠다는 소리를 하며 안심하게 될까, 나는 이 아이를 두고 정말 일 하러 나갈 수 있을까, 과연 나는 워킹맘이 될 수 있을까? 

그때 나와 아주 가까이 지내던 워킹맘이 있었다. 바로 여동생이다. 여동생은 2013년 1월 첫아이를 낳고, 아이가 6개월이 될 무렵 회사에서 복귀하라는 명(?)을 받았다. 복귀하라고 하니 회사 복귀는 하는데 아이는 맡길 곳이 없었다. 

결국, 대구에 계신 친정 부모님 댁에 아이를 맡기고 여동생과 조카는 졸지에 이산가족이 되었다. 한 달에 두어 번 동생 부부는 대구에 내려가 아이와 주말을 보내고 펑펑 울면서 KTX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다. 조카는 외할머니의 사랑으로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었다. 엄마는 늘어나는 조카의 몸무게 속도보다 더 빨리 늙어가고 있었다. 동생은 어린 자식을 멀리 두고 왜 이렇게까지 열심히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하며 깊은 한숨을 내쉬곤 했다.

큰아이가 5개월, 조카가 25개월이 되었을 무렵이었다. 나는 조카를 서울에 데려와서 돌봐 주겠다는 마음을 먹었고, 남편에게 내 의사를 밝혔다. 우린 첫 아이를 5개월 키운 햇병아리 같은 부모였고, 이런 일을 상상도 하지 않은 남편은 크고 작은 걱정들을 먼저 했다.

이제 5개월 동안 애를 키운 내가 훨씬 큰 아이를 감당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걱정, 우리 집에서 조카에게 문제라도 생기면 어쩌냐는 걱정, 자매가 생각이 달라 감정이 상할 수 있다는 걱정. 그는 걱정이 많았지만 내 의지는 그보다 더 활활 불타올랐기에 결국 남편은 나의 결정을 지지했다(지금 생각해보면 포기일 수도 있겠다).

그리하여 엄마보다 외할머니와 더 오랜 시간을 함께했던 조카가 엄마와 같이 살기 위해 서울로 올라왔다. 우리의 공동 육아의 룰은 간단했다. 동생네 부부가 출근길에 아이를 우리 집에 데려다주면 내가 아침을 먹이고 어린이집에 보낸다.

아이가 하원을 하고 돌아오면 동생 부부가 퇴근해 올 때까지 놀아주고 저녁을 먹이고 샤워를 시키고 기다리는 것이었다. 가끔 동생 부부 모두 야근을 하거나 회식이 있으면 우리 집에서 재우기도 했고, 집으로 못 데리고 가는 날은 다음 날 아침 일정을 쭉 이어 진행하기도 했다. 

다행히도 아이 둘을 3월 입학 시기 맞춰 어린이집에 보낼 수 있었다. 길 건너에는 동네 도서관이 있어서 하원하고 오후 시간을 보내기도 참 좋았다. 도서관 가는 길목에 있는 슈퍼에 가서 간식으로 유아용 쿠키와 음료를 사서 길을 건너면 횟집이 있었다. 횟감용 물고기와 멍게와 오징어로 가득 찬 유리 어항을 셋이 나란히 바라보며 신기해했고, 도서관 휴게실에 옹기종기 앉아 음료와 커피를 마시며 여유를 부렸다. 

도서관 유아실 선생님들은 모두 우리를 좋아했고, 우리도 선생님들과 책과 이야기를 좋아했다. 날씨가 푸근해지던 5월부턴 놀이터에서 동네 친구들도 사귀며 놀았고, 6월엔 메르스로 어린이집에 등교하는 게 신경 쓰여 집에서 한 달 내내 음악을 틀어 놓고 춤을 추며 놀았다. 7~8월 여름엔 땀을 뻘뻘 흘리며 놀다가 욕조에서 첨벙첨벙 물놀이 하며 해가 지기만 기다렸다. 

해가 지면 조카는 같은 질문을 계속해댔다. "이모, 엄마 아빠는 언제 와?", "이모, 지금 몇 시야?", "이모, 몇 시가 되면 엄마랑 아빠가 와?" 동생 부부가 모두 바빠 제시간에 못 오는 저녁은 참 힘든 시간이었다. 하염없이 현관문만 바라보는 아이에겐 놀이도 간식도 다 부질없는 것들이었다. 

◇ 이모는 너 키우면서 함께 한다면 육아는 충분히 행복한 일이란 걸 알았어

우리 셋이 다니면 재미 없는 게 없었고, 심심할 겨를이 없었지. 우리 셋은 삼총사였어! ⓒ김보민
우리 셋이 다니면 재미 없는 게 없었고, 심심할 겨를이 없었지. 우리 셋은 삼총사였어! ⓒ김보민

왜 나는 조카 봐줄 생각을 했을까? 내 동생을 보면서 나의 미래를 머릿속으로 그렸다. 내 주변 대부분의 워킹맘은 모두 친정어머니나 시어머니가 아이를 봐주고 있었다. 부모님과 같이 살며 아이를 맡긴 가정도 많았고,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니가 새벽같이 집으로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하는 가정도 많았다. 

나에게 출산 준비는 아이 물건으로 뭘 사고, 어떻게 태교를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아니었다. 아이를 낳고 회사에 복귀할 때 나를 대신해 아이를 키울 방법을 서둘러 찾아보는 것이었다. 여기서 한가지 지키고 싶은 게 있었다. 부모님의 손을 빌리지 않고, 어르신들을 고단하게 만들지 않고 아이를 키우고 싶었다. 보육 기관과 정부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를 이용해 아이를 키우고 싶었다. 

그런데 이게 쉽지 않다는 것을 육아휴직 내내 느꼈다. 수시로 터지는 보육 기관의 아동 학대 기사를 보며 불안했고, 그때 당시 복지부에서 제공하던 육아 도우미 서비스는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도우미 선생님 연결에만 수개월을 기다렸다. 그렇게 어렵게 연결받았는데, 약속 시각 한 시간 전에 못 오신다는 문자 통보도 받아본 적 있다.

복지부에 항의 메일도 쓰고 항의 전화도 했지만, 매번 듣는 말은 "선생님, 죄송합니다" 였다. 결국, 민간 업체를 통해 아이를 돌봐 주는 이모님을 고용했지만, 첫 번째 이모님은 3개월 만에 그만두겠다고 하셨다. 그때 구인 정보를 업데이트하던 허탈한 심정이 아직도 생각난다.

복직 후 큰아이는 폐렴으로 분기마다 일주일씩 병원에 입원했는데 그때마다 미안한 마음으로 멀리 사는 엄마에게 SOS를 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엄마 말고는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 때였다.

나는 왜 조카를 먼저 돌봐 주겠다고 자청했을까? 나보다 먼저 워킹맘의 길을 걷고 있는 동생을 위해, 손주를 수시로 안아주다 팔이 아픈 늙은 엄마를 위해, “엄마, 엄마” 보고 싶다고 울어도 엄마를 만날 수 없는 조카를 위해, 그리고 곧 워킹맘이 되는 나를 위해…. 우리 모두 행복해지는 육아 방법을 계속해서 찾자고 말하고 싶었다. 그리고 괜찮은 방법을 찾아내고 싶었다. 

완벽한 방법은 아닐지라도 뭐든 해보면서 길을 내고 방법을 찾아가는 것도 아이를 키우는 방법이라 생각했다. 늦게 퇴근해서 아이를 데리러 오는 동생 부부의 일정 때문에 남편 눈치를 봤던 때도 있었고, 동생과 티격태격 싸운 적도 있었고, 애 둘 뒤치다꺼리와 집안 살림에 몸과 마음이 지칠 때면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조카를 봐주겠다고 했냐며 나를 자책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함께한 시간의 힘은 참 컸다. 서로 의지하고 격려하며 아이를 함께 키운 경험, 너의 아이와 나의 아이가 결코 따로 있지 않다는 경험이 나에겐 그 무엇보다 소중했다. 내가 회사에 복귀하고도 우리의 공동 육아는 계속되었고 내가 싱가포르로 오면서 우린 애틋한 마음을 안고 헤어졌다.

◇ 함께 먹고, 자고, 살며…조카야, 난 너에게 ‘좋은 어른’이 되어주고 싶었어 

사진을 찍은 다음날 우리는 헤어졌다. 이 날 눈물이 조금 났고 가슴 한 쪽이 저릿했다. ⓒ김보민
사진을 찍은 다음날 우리는 헤어졌다. 이 날 눈물이 조금 났고 가슴 한 쪽이 저릿했다. ⓒ김보민

우리 조카에게 나는 어떤 이모인지 궁금할 때가 있다. 같이 생활했던 시간을 기억은 할까, 기억하고 있다면 좋은 기억으로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을까, 조카에게 나는 좋은 어른이었을까. 언젠가 조카가 더 크면, "난 너에게 가족 구성원 중 한 명인 ‘이모’이기 보다 좋은 어른으로 다가가고 싶었다"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아이들은 이제 나보다 학교에서 또래 친구들과, 선생님과 함께 하는 시간을 더 많이 가지게 되었다. 이런 아이 곁에 좋은 어른이 많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겉모습으로 쉽게 사람을 판단하지 않고, 이해심이 많고, 긍정적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어른들이 아이 곁에 머무른다면 아이가 마주하는 세상은 언제나 좋은 기운이 가득할 테니 말이다.

그리고 어른들도 아이와 마주치고 그들과 마주할 때마다 밝고 건강한 모습으로 대해주면 좋겠다. 어른의 눈빛과 말, 행동 하나하나에 아이들은 크고 작은 것들을 배우고 경험하고 알아가는 존재들이니 말이다.

오늘 아침에도 큰아이는 학교 친구 두 명과 함께 스쿨버스를 기다렸다. 나는 그 친구들을 만나자마자 세상에서 가장 맑고 영롱한 눈빛을 뿜어내기 위해 애쓰며 아침 인사를 건넸다. 우리 아이들이 기분 좋게 아침을 시작할 수 있도록 작지만 거대한 에너지를 건네는 어른이 되고 싶어서. 

내 아이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아이와 함께 성장하며 영향을 주고받는 주변 모든 아이가, 그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가, 그 부모가 살아가는 세상이 모두 행복해야 한다고 믿는다. 내 아이의 행복을 위해 주변 모든 이들에게 거대한 긍정과 감동의 에너지를 내뿜는 어른으로 평생 살아가고 싶다.

*칼럼니스트 김보민은 '한국땅을 떠나 다른 나라에서 산다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까'라는 호기심으로 2년째 싱가포르에 체류 중이다. 싱가포르에 올 때 4살이던 첫째와 생후 2개월이던 둘째는 어느덧 각각 6살, 26개월로 훌쩍 자랐다. 365일 여름이고, 아시아인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주로 영어를 쓰고, 작은 나라이면서도 어마어마하게 큰 아시아를 가르쳐주고 있는 싱가포르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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