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 호진이는 묻습니다 '우리도 행복할 수 있나요'
발달장애 호진이는 묻습니다 '우리도 행복할 수 있나요'
  • 김재희·이중삼 기자
  • 승인 2020.07.23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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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키우러 제주 왔수다③] 발달장애아동 호진이와 엄마 희선 씨의 하루

【베이비뉴스 김재희·이중삼 기자】

바람도 돌도 많은 섬, 제주도. 제주 땅의 척박함만큼, 한국에서 발달장애 아동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 또한 척박하다. 자녀에게 좋은 세상을 만들어주고자 옥답을 가꾸듯 투쟁하는 부모들이 제주에 있다. 발달장애·발달지연아동 부모모임 ‘제주아이 특별한아이’를 만나 조금 느릴 뿐인 아이들과 함께하는 가족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우리 사회는 어느 방향으로 변화해야 할지 모색했다. - 기자 말

심리운동치료를 받으러 가는 길. 호진이는 엄마의 무릎에 앉아 엄마를 쳐다봤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심리운동치료를 받으러 가는 길. 호진이는 엄마의 무릎에 앉아 엄마를 쳐다봤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호진이가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18개월까지 알지 못했어요. 개월 수에 따라 해야 하는 행동들, 까꿍놀이나 눈맞춤도 잘했거든요. 뒤집기랑 걸음마도 했고요. 그런데 18개월 지나서부터는 멍 때리는 시간이 길어지더니, 낯선 사람은 아예 투명인간 취급하는 모습을 보고, 다르다는 걸 느꼈죠.”

지난 7일 제주도에서 발달장애아동 강호진 군(6)의 엄마인 현희선 씨(46)를 만났다. 현 씨는 아이의 장애를 알아채게 된 일을 담담하게 말했다. 호진이는 “여느 다른 아이와 다를 것 없이 씩씩하고 잘 웃는 아이”라고 말하는 현 씨. 그는 아이가 발달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후 인정하기까지 1년이 걸렸다. 여전히 마음으로는 100% 인정하지 않지만 말이다.

“아이가 조금 다르다는 걸 느껴서 제주대학교 병원에 진단을 예약했어요. 병원에서는 검사까지 1년이 걸린다고 했어요. 그 기간 동안 기다리면서 아이가 상호작용을 잘하는 날엔 ‘자폐가 아닐 거야’라고 마음을 놓고, 문제행동을 보이면 '자폐가 맞나봐' 하고….”

현 씨는 말을 끝맺지 못하고 한참 눈물을 쏟았다. 초기 발달과정에서 아이의 장애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은 현 씨뿐이 아니다. 

박창현 육아정책연구소 부연구위원의 보고서 ‘2019 장애 영유아 양육 정책의 현주소와 해결해야 할 정책 과제를 살펴본다’는 이같은 경향을 잘 보여준다. 이 연구는 장애영유아 부모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부모가 아이의 장애를 발견한 나이는 영아가 80.8%, 유아가 19.2%에 달했다. 장애영유아 중 장애를 등록한 경우는 69.9%였다.

장애를 등록하지 않은 부모 중 절반 가까이가 ‘앞으로 상태가 호전될 것 같아서’(46.7%)를 꼽았다. 이들은 장애 진단 시 가장 어려웠던 점으로 ‘자녀의 장애를 인정하는 것이 어려워서’(47.0%)라고 답했다. 

“지금도 주변 부모들을 보면 아이가 발달장애가 있다는 것을 100%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어요. 혹시나 치료나 교육으로 아이가 많이 바뀌진 않을까 하는 희망 때문이죠.”

◇ 평생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 속 매순간 아이 돌보는 부모

현희선 씨의 집안에는 발달장애아동과 관련된 책들이 많았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현희선 씨의 집안에는 발달장애아동과 관련된 책들이 많았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지난 7일 현 씨의 집을 찾았을 때 가장 먼저 ‘책더미’가 눈에 띄었다. 현 씨는 “호진이를 이해하기 위해 발달장애에 대해 공부를 많이 했다”고 설명했다. 책장에 언어치료, 미술놀이, 특수아동 심리 등 발달장애아동과 관련된 책들이 빼곡히 꽂혀 있었다. 현 씨의 남편은 초등특수교사로 일하고 있다. 현 씨는 “남편의 전공서적과 더불어 아동치료 책도 많이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현 씨의 하루는 온전히 호진이에게 맞춰져 있다. 호진이가 학교에 간 시간을 제외하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모든 시간을 아이를 돌보는 데 사용했다. 발달장애아동을 키우는 양육자는 자녀의 일생을 평생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 속에 온전히 아이를 돌보는 데 매시간을 보내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보고서 ‘발달장애인 통합적 복지지원체계 구축을 위한 정책 방안’에 따르면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는 평일엔 하루 평균 돌봄 시간이 8.8시간, 주말엔 14.9시간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주말에 20시간 이상 돌본다고 응답한 비율이 19세 이하, 20~29세, 30세 이상 모든 연령대에서 각각 41.2%, 39.8%, 37.6%로 나타났다.

부모가 느끼는 돌봄 부담도 적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자녀를 돌보는 데 있어 가족이 겪는 돌봄 부담감 정도는 ‘약간 부담된다’는 비율이 전체 37.0%로 가장 높았다. 특히 19세 이하 자녀를 둔 부모 아홉 명 중 한 명(85.7%)은 높은 부담감을 느꼈다. 이들 중 ‘매우 부담된다’고 답한 부모도 15.1%에 달했다. 

자녀가 나이를 먹어도 부담감이 크게 덜어지지는 않는다. ‘부담감을 느낀다(약간 부담됨, 많이 부담됨, 매우 부담됨)’고 응답한 30대 이상 자녀를 둔 부모도 72%를 차지했다.

◇ 부모가 나서야 보장되는 장애영유아 교육권 

호진이와 현 씨가 손을 붙잡고 학교로 들어가는 모습.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호진이와 현 씨가 손을 붙잡고 학교로 들어가는 모습.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호진이가 어린이집을 다닐 때 친구한테 전혀 관심이 없더라고요. 다른 아이들은 점심시간 때 자리에 앉아 밥을 먹는데, 호진이만 돌아다녔다는 거예요. 선생님께 ‘아이가 돌아다닐 때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더니, ‘그냥 가만히 둔다’고 답해서 화가 났어요. 교육기관에서는 교육할 의무가 있는 거잖아요.”

현 씨는 호진이를 낳기 전 5년간 보육교사로 일했다. 어린이집 보육환경을 잘 알고 있었지만, 막상 호진이가 이런 일을 겪자 제대로 된 기관에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애전담학교인 영지학교로 옮겼고 여기서 호진이는 잘 적응해 나갔다고 했다. 이때를 회상하며 “천만다행이었다"고 말했다.

현 씨는 제주도 토박이로 지내면서 놀랐던 게 있었다고 말했다. 제주도는 단설 유치원이 단 한 곳도 없었다는 것. 특히 도내 병설유치원이 101곳이 있지만, 특수학급이 있는 곳은 단 8곳에 불과했다. 그중에서도 만 3살 유아가 갈 수 있는 특수학급은 아예 없었다.

“지난해까지는 6세 반도 없었어요. 놀랐던 건 단설유치원은 아예 없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아이를 특수학급에 보내는 게 쉽지 않고, 대기를 걸어놔도 확실히 보낼 수 있는지도 모르고요. 지난해는 제주도교육청 앞에서 1인시위도 했어요. 장애가 있는 아이는 의무교육 대상인데, 교육받을 곳이 없으니까요.”

장애영유아 의무교육은 소수에게만 이뤄지고 있다. 장애영유아 보육교육정상화를 위한 추진연대는 지난 2016년 기준 보육 대상 장애영유아 3만 8274명 가운데, 유치원에서 의무교육을 받고 있는 유아는 5186명에 불과하다는 조사 결과를 내놨다. 교육부는 2018년 특수교육 연차보고서에서도 총 특수교육대상자 9만 780명 중 특수교육을 받는 ‘특수교육대상유아’는 총 5630명에 그쳤다는 점을 밝혔다.

현재 제도는 어린이집을 특수교육기관으로 보지 않는다. 다만, 특수교육법 제19조 제2항을 단서로 만 3세부터 만 5세까지의 특수교육대상자가 일정한 조건의 어린이집을 이용하는 경우 유치원 과정의 의무교육을 받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을 뿐이다.

1인시위의 효과였을까. 지난해 제주도는 병설유치원 내 6세 반을 만들었다. 현 씨는 이때 상황을 언급하며 “교육 환경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면서 “의무교육 대상자인 아이들이 집 앞 가까운 곳에서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이들의 공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공직자라면 이 문제를 더 세심하게 들여다보고 해결해야 한다”고 했다.

“우리 아이들은 근거리에서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어요. 그런데, 왜 먼 곳으로 가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심각한 건 우리가 직접 요구하기 전까지 교육청 관계자는 인지도 못 하고 있었다는 거예요.”

◇ “치료는 ‘보조’일 뿐… ‘사회성’ 기르기 위해 다녀요”

호진이가 심리운동치료사 지시에 따라 그물사다리를 타는 모습.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호진이가 심리운동치료사 지시에 따라 그물사다리를 타는 모습.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언어치료를 받고 있는 호진이의 모습.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언어치료를 받고 있는 호진이의 모습.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호진이의 일과는 유치원이 끝나도 끝나지 않는다. 곧바로 치료를 받으러 가기 때문이다. 오후 2시 10분, 현 씨는 호진이를 데리러 유치원으로 갔다. 아이는 엄마를 보자마자 안겼다. 현 씨는 선생님에게 호진이가 보낸 하루를 전해 들었다. “호진이가 학교에서 밥을 잘 먹었다”는 선생님의 말에 현 씨는 안도했다. 

호진이와 현 씨는 심리운동치료를 받으러 가기 위해 버스에 몸을 실었다. 20여 분을 달려 도착한 심리운동치료실에서 호진이는 30분간 심리운동을 했다. 심리운동치료는 운동으로 사회성과 관계성을 회복시키는 데 있다.

“아이가 사회성을 만드는 사람은 엄마가 제일 먼저라고 하잖아요. 다음이 아빠고, 그다음이 주변 어른, 형이나 누나. 맨 마지막이 또래라고 해요. 호진이는 부모하고는 상호작용이 되지만, 자주 보는 이모나 다른 낯선 사람은 아직 어려워해요. 결국 사회성을 길러줘야겠다 싶어서 치료를 받으러 다니고 있어요.”

“5살 후반부터 치료를 많이 늘리기 시작했다”고 한 현 씨는 “치료가 크게 효과가 있다고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치료는 보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센터에서 배우는 치료들이 일상에서 아이에게 대했던 거랑 별반 차이가 없다”며 “일반 아이들도 보면 학원 많이 다닌다고 공부 잘하는 거 아니지 않느냐”고 말했다.  

또한 현 씨는 아이와 치료실을 다니는 이유로 ‘불안감’을 들었다. 그러면서 “발달장애아동마다 필요한 특성이 다르다”며 “꼭 필요한 치료 기관과 정보가 부족한 것도 문제”라고 짚었다. 

호진이는 심리운동치료를 받은 후 언어치료를 받고 나서야 일과를 마무리했다. 치료가 전부 끝나고 밖으로 나서면서 호진이는 엄마의 손을 잡고 해맑게 웃었다. 이내 엄마의 손을 놓고 힘차게 앞으로 달려가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현 씨는 호진이에게 바라는 점과 앞으로 아이가 살아갔으면 하는 나라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유치원에 가기 전, 호진이는 기자들에게 밝은 미소를 보여줬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유치원에 가기 전, 호진이는 기자들에게 밝은 미소를 보여줬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저는 호진이가 치료센터 다니면서 인지가 높아진다거나 언어수준이 높아진다거나 그런 걸 크게 기대하지는 않아요. 우리 아이가 치료를 받는 이유는 ‘사회성’을 길러주기 위해서거든요. 그래서 주변 사람들하고 관계를 잘 맺는 아이로 성장했으면 좋겠어요.

또, 자기가 속한 세상에서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엄마들 모두 소망을 가지고 있다고 봐요. 성인이 돼서도 장애인으로 남을 수 있고, 발전해서 장애진단을 벗어날 수도 있겠지만 결국 어디 있든지 아이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본 기획물은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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