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아동의 삶도 충분히 주체적일 수 있습니다
발달장애아동의 삶도 충분히 주체적일 수 있습니다
  • 칼럼니스트 박현주
  • 승인 2020.08.25 13:5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래 꿈을 꾸는 아이] 유아기 발달장애아의 자기결정권⓶

지난 글에서는 발달장애인의 자기결정권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풀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구체적으로 유치원이나 어린이집, 그리고 가정에서 발달장애 아동의 자기결정권을 지도하는 방법에 대해 말해보려 합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바로 아이에게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 ‘선택의 양’은 아이 수준에 맞게, 선택지는 책임감과 동기부여 얻을 수 있게

스스로 선택 할 기회를 아이들에게 주세요. 어떤 색으로 칠하고 싶은지, 외식할 때 어떤 음식을 먹고 싶은지. 자기결정권은 거기서 부터 시작합니다. ⓒ베이비뉴스
스스로 선택 할 기회를 아이들에게 주세요. 어떤 색으로 칠하고 싶은지, 외식할 때 어떤 음식을 먹고 싶은지. 자기결정권은 거기서 부터 시작합니다. ⓒ베이비뉴스

▲선 긋기나 색칠하기를 할 때 아이에게 어떤 색으로 칠하고 싶은지 물어봐 주세요. 지적하기의 방법으로도 아이는 제 의사를 표현할 수 있습니다.

▲ 비장애 아동들에게 선택의 기회를 제공했다면, 그건 발달장애 아동에게도 당연한 권리임을 잊지 마세요. 선택할 방법을 아이에게 맞춰서 다양하게 물어봐 주세요. 그림으로 선택하게 하거나, 대답할 수 있는 질문으로 아이 스스로 선택할 기회를 주세요. 

▲아이들은 다섯 살만 돼도 스스로 고른 옷을 입고 싶어 합니다. 아이에게도 스스로 옷을 고를 수 있게 선택권을 주세요. 선택지가 많으면 고르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어른들도 이른바 ‘결정 장애’가 오는 순간이 있잖아요. 부모가 미리 고른 두 개 정도의 의상에서 아이에게 선택기회를 주시면 됩니다.

▲외식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족 외식 메뉴를 통일해야 할 때, 아이가 먹고 싶은 것이 선택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의 의견을 물어보고 가족이 조율하는 과정을 꼭 함께해주세요. 이건 교육이자 연습입니다.

▲아이가 오늘 해야 할 공부, 무조건 제시하지 말고, 아이가 공부 순서 또는 학습량을 스스로 선택할 기회를 주세요. 공부를 스스로 할 때 동기부여가 잘 됩니다.

▲의사 표현이 좀 느린 아이라면 충분히 기다려주세요. 의사 표현 방법이 좀 다른 아이라면, 아이에게 맞게 선택지를 제공해주세요. 그림이나 사진도 괜찮습니다. 

▲아이에게 주어선 안 되는 선택권도 있습니다. 아침에 밥을 먹을지 초콜릿을 먹을지 선택하게 한다거나, 어린이집에 갈지 말지 스스로 선택하게 하는 일은 안 됩니다. 조금 더 성장한 후에야 아침을 먹을지 말지, 대학을 갈지 말지를 선택할 수 있겠지요.

▲아이의 수준에 맞게 정보를 제공해주세요. 아이가 선택하려면 정보의 양이 충분해야 합니다. 아이스크림 두 개 중 하나를 골라야 하는데, 무슨 맛인지 아이스크림에 써진 정보만으로 알 수 없다면 어른이 대신 설명해주면 됩니다. 기회가 된다면 두 개 다 먹어보고 고르는 게 아이의 취향에 가까운 선택을 할 수 있겠지요.

▲상자에 들어 있는 보드게임을 고르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두 가지 게임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을 때 그 상자 안에 들어 있는 게임이 어떤 게임인지 아이가 알 수 있게 잘 설명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인터넷에서 내용물이나 게임 방법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아이에게 선택권 줄 때 어른의 선입견 반영되지 않게 주의 

문득 한 아이가 떠오릅니다. 중학교 진학을 앞둔 아이였습니다. 이 아이는 비장애 아이들과 함께 있으면 움츠러들고 그 아이들이 자신을 놀리는 것만 같다고 느꼈습니다. 비장애 아이들 사이에서 스스로 ‘비교하는 나’를 만난 아이는, 내가 친구들보다 힘이 세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늘 의자를 던지고 책상을 부쉈습니다. 

하지만 자기보다 어린 동생들 앞에선 한없이 순한 한 마리의 양이 되었습니다. 저는 아이의 부모에게 아이의 ‘자존감’을 위해, 조금 더 ‘유능한 나’를 만나게 해주기 위해 특수학교 진학을 권했습니다. 그러면서, 아이가 어느 곳에서 좀 더 편안함을 느끼는지 알아보라고 조언했습니다. 아이와 함께 특수학교도 가보고, 일반 중학교도 가보며 장단점을 찾아보라고요. 

그런데 어느 날 부모가 아이에게 “너 또 친구들에게 의자 던지면 특수학교에 보낼 거야!”라고 소리쳤습니다. 그 후 아이는 절대로 특수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선택을 위한 정보전달 과정에서 부모의 선입견이 반영되어, 아이는 스스로 선택할 기회를 잃고 말았습니다. 

즉, 아이의 특성을 존중하려면 부모와 교사부터 편견을 버려야 합니다. 아이에게 선택권을 주려면 아이에게 제대로 된 정보도 함께 제공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선택에 대한 결과를 아이가 책임지는 연습, 이것이 바로 자기결정권의 시작입니다.

◇ ‘성공감’ 쌓은 아이의 삶은 조금 더 주체적으로 변한다 

자기결정권을 충분히 연습했다면, 발달장애아이도 얼마든지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베이비뉴스
자기결정권을 충분히 연습했다면, 발달장애아이도 얼마든지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베이비뉴스

자기결정권을 성공적으로 주장하려면, 내가 어떤 주장을 했을 때 수용되는 경험이 필요합니다. 안 되는 일을 주장해서 거절당하는 경험이 누적되면 더 이야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누구라도 그렇습니다. 유아기에 이런 무기력감이 학습되면 곤란합니다. 유아기에 습득해야 하는 것은 ‘성공감’입니다. 

두 개 중에 하나 고르기는 평생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가 경험한 성공감의 양이 누적돼야 합니다. 그래야 둘 중에 뭘 골라야 ‘성공’할지 알게 됩니다. 

그래서 유아기에는 ‘성공할 수 있는 범주’를 제한해서 제공합니다. 선택에 따른 오류를 최소화해(무오류학습방법) 성공감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죠. 성공감이 쌓이면 자아존중감도 향상됩니다. 자기가 선택한 결과가 늘 좋지 않아서, 어른이 선택하는 것이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인지구조가 만들어지면 아이들은 스스로 선택하기를 주저하게 될 것입니다.

차츰 자신의 선택에 따라 성공 또는 실패를 경험할 수 있게 조금씩 조금씩 늘려줍시다. 물론 실험적인 아이들은 엉뚱한 것을 골라 실패를 경험하기도 합니다. 이는 아마 경험치로 피드백되겠지요. ‘기회의 제공 - 선택 - 선택에 대한 책임’의 방법으로 아이들의 자기결정의 경험을 하나씩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누적된 작은 단위의 ‘선택 책임지기’ 학습은 아이의 삶을 좀 더 주체적으로 만들어줄 수 있습니다. 이렇게 키워낸 아이가 이후 성인이 되었을 때, 자신의 삶을 책임지는, 삶의 주체로서 당당히 살아가기를 바라봅니다.

*칼럼니스트 박현주는 유아특수교육을 전공해 특수학교에서 근무했다. 결혼과 출산을 겪으면서, 내 아이를 함께 키우고 싶어 어린이집을 운영하게 됐다. 화성시에서 장애통합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으며, 부모님들과 함께 꿈고래놀이터부모협동조합을 설립하는 데 동참해, 현재 꿈고래놀이터부모협동조합에서 장애영유아 발달상담도 함께 하고 있다. 다양한 아이들을 키우는 일, 육아에서 시작해 아이들의 삶까지, 긴 호흡으로 함께 걸음으로 서로의 고민을 풀어내고자 한다.

【Copyrightsⓒ베이비뉴스 pr@ibabynews.com】

베사모의 회원이 되어주세요!

베이비뉴스는 창간 때부터 클린광고 정책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작은 언론으로서 쉬운 선택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이비뉴스는 앞으로도 기사 읽는데 불편한 광고는 싣지 않겠습니다.
베이비뉴스는 아이 낳고 기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 대안언론입니다. 저희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좋은 기사 후원하기에 동참해주세요. 여러분의 기사후원 참여는 아름다운 나비효과를 만들 것입니다.

베이비뉴스 좋은 기사 후원하기


※ 소중한 후원금은 더 좋은 기사를 만드는데 쓰겠습니다.


관련기사

베이비뉴스와 친구해요!

많이 본 베이비뉴스
실시간 댓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마포구 마포대로 78 경찰공제회 자람빌딩 B1
  • 대표전화 : 02-3443-3346
  • 팩스 : 02-3443-3347
  • 맘스클래스문의 : 1599-0535
  • 이메일 : pr@ibabynews.com
  • 법인명: 베이컨(주)
  • 사업자등록번호 : ​211-88-48112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서울 아 01331
  • 등록(발행)일 : 2010-08-20
  • 발행·편집인 : 소장섭
  • 저작권자 © 베이비뉴스(www.ibabynew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개인정보보호 배상책임보험가입(10억원보상한도, 소프트웨어공제조합)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유미 실장
  • Copyright © 2024 베이비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r@ibabynews.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