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 발표회, ‘칼군무’ 해야 잘한 건가요 
어린이집 발표회, ‘칼군무’ 해야 잘한 건가요 
  • 칼럼니스트 박현주
  • 승인 2020.11.05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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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꿈을 꾸는 아이] 무대에서도, 아이들이 자란다

우리 어린이집의 발표회 준비가 시작됐다. 일각에선 어린이집 발표회가 아이들에게 백해무익한 것처럼 이야기하곤 한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어린이집 아동학대 기사 장면으로 종종 발표회를 준비하는 과정이 나오곤 한다. 아이들이 줄을 제대로 못 서거나, 이른바 ‘칼군무’를 못하면 교사 손이 아이를 향해 나아간다. 그런 장면을 볼 때마다 내 가슴이 다 저릿했다.

발표회는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을 홍보하기 위한 수단도, 교육의 성과를 보고하기 위한 장도 아니다. 물론, 그런 부수적인 효과도 완전히 무시할 순 없겠으나 발표회의 주된 목적은 아이들의 ‘자존감’을 높이는 것이다.

아이들은 발표회처럼 큰 무대에 서는 것만으로도 한 뼘 더 자란다. 그러니, 발표회의 수준은 칼군무 수준이 아니라, 객석에 앉은 부모의 수준이다. 관객의 수준으로 발표회의 수준을 알 수 있다. 아이들이 잘해서 손뼉 치는 것이 아니라, 관객이 훌륭한 눈을 가져, 무대에 오른 아이의 긴장감을 읽어내고, 혹은 아이의 자랑스러움을 읽어내고, 그 수준에 맞추어 호응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 아이들 자존감 높이는 발표회가 아동학대 온상으로 알려지다니

아이들은 발표회처럼 큰 무대에 서는 것만으로도 자란다. 발표회의 성공 여부는 아이들의 칼군무가 아니라 무대를 바라보는 부모의 태도에서 결정된다. ⓒ베이비뉴스
아이들은 발표회처럼 큰 무대에 서는 것만으로도 자란다. 발표회의 성공 여부는 아이들의 칼군무가 아니라 무대를 바라보는 부모의 태도에서 결정된다. ⓒ베이비뉴스

몇 해 전 어린이집 발표회를 준비하던 때, 중증 자폐가 있던 한 아이의 이야기를 해 보려 한다. 이 아이는 음악이 나오면 귀부터 막았고, 조명이 반짝이면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못했다. 감각이 극도로 예민해서 까슬까슬하고 반짝이는 옷은 절대 입지 않으려던 아이였다. 그래서 옷 입는 시간마다 사투를 벌이곤 했다.

나는 담임교사와 함께 진지하게 고민한 끝에 의상대여 업체에 사정을 말하고 발표회 한 달 전부터 무대의상을 빌렸다. 아이가 옷에 적응할 시간을 주기 위해서다.

사정을 아는 사장님이 흔쾌히 이 아이를 위해 여러 종류의 무대의상을 빌려주셨다. 그날부터 자유 선택 영역 중 역할영역 옷장에 반짝이는 무대의상이 자리 잡았다. 우리는 아이와 이 옷을 조금씩 입어보는 연습을 했다. 가정에도 한 벌 보내서 함께 입혀볼 수 있도록 했다.

이 다섯 살 아이는 성공적으로 무대의상을 입고 무대에 오를 수 있었을까? 결론만 말하면, 실패였다. 그렇게 애를 썼음에도 발표회 당일, 대기실에선 난리가 났다. 아이는 가정에서 입고 온 하얀 타이츠와 티셔츠만 입은 채 무대에 섰다. 음악이 시작되니 아이는 귀를 막았다. 이 아이의 부모가 내게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

“원장님, 아이를 무대에서 내려오라고 하고, 집으로 데리고 갈까요?”

왜 묻는지 충분히 짐작이 갔다. 하지만 어떤 점이 불편해서 그러시냐고 되물었다. 그는 “아이가 불편해하기보다, 보는 사람들이 더 불편해할까 봐, 우리 아이 때문에 반 전체 공연을 망했다고 생각할까 봐 마음이 불편하다”라고 말했다. 나는 그런 이유라면 그냥 계시라고 했다. 대신 아이 앞에서 “잘했다”라고 응원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공연이 끝나고, 아이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부모가 준비한 사탕 부케를 받아들고 웃었다. 다섯 살에 그 정도면 훌륭했다. 비장애아 부모의 불만은 없었다. 오히려 공연이 끝나고 다른 아이의 부모님이 “그 아이는 괜찮냐”고 조용히 물어왔을 뿐이었다.

아이는 매년 눈부시게 성장했다. 그다음 해에는 울지도 않고, 반짝이는 옷도 입고 무대에 섰다. 교실에서는 제법 엉덩이도 흔들고 손도 친구들을 따라 들었다 놨다 했다. 

아쉽게도 그런 모습은 본무대에선 기대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정도만 해도 부모 얼굴에 웃음이 피어났다. 발표가 끝나고 비장애아반의 한 부모가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

“원장님, 우리 애도 우리 애지만, OO이 보고 감동했어요. 작년 발표회 때에는 옷도 안 입고 무대에 올라왔잖아요. 그런데 올해는 옷도 다 입고, 울지도 않고 무대에 오른 것 보고 역시 경험이 중요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가 못하는 것을 비난하거나 지적하지 않고, 내 아이가 아님에도 함께 이 아이가 자랄 때까지 기다려 주셨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느리게 크는 아이와 함께한다는 것은, 아이를 바라보는 부모의 눈을 세세하게 만들어준다.

세 번째 발표회. 일곱 살 졸업식을 앞둔 발표회에서 아이는 반짝이는 의상을 멋지게 소화해냈음은 물론, 비록 몇 가지 안 되는 동작이었지만 친구들 따라 손도 들고 몸도 흔들었다. 다만, 줄을 바꾸거나 짝을 바꾸는 어려운 동작에서는 검은 옷을 입고 그림자처럼 아이 뒤에 쪼그리고 앉아 있던 선생님의 도움이 필요했지만 말이다.

발표회 끝나고 며칠 뒤 운영위원회 시간에 모인 학부모들이 자신의 아이보다 OO이의 눈부신 성장에 대해 한마디씩 했다.

“이래서 경험이 중요한가 봐요.”

“역시 장애가 있다고 못 하는 게 아니라, 천천히 배우는 것뿐이었나 봐요.”

이 말을 듣고 나는 아이가 부모와 함께 더불어 성장하고 있음에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 훈련하지 않고 비교하지 않고 그저 즐겁기만 한 발표회 되길 

올해 발표회는 코로나19로 동영상으로 제작해 각 가정에 나눠드릴 예정이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아이 성장의 기쁨을 나누길. 아이는 그 모습에 또 한뼘 자랄 것이다. ⓒ베이비뉴스
올해 발표회는 코로나19로 동영상으로 제작해 각 가정에 나눠드릴 예정이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아이 성장의 기쁨을 나누길. 아이는 그 모습에 또 한뼘 자랄 것이다. ⓒ베이비뉴스

내가 기대하고 꿈꾸는 발표회는 이런 것이다. 아이의 성장을 기뻐하고, 온 마음으로 아이의 성장을 응원하는 날. 관객의 표정이 어두우면 아이들의 마음이 무거울 테다. 옆의 아이와 비교하는 눈을 거두고 내 아이만 바라보자. 세상에서 제일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아이를 바라보자. 그거면 된다.

무대에는 거울이 없다. 사실 아이들은 내 팔의 각도가 어떤지 내가 다른 아이들보다 어떤 점이 부족한지 알지 못한다. 그저 앞에 앉은 부모의 표정을 보고 내가 잘하는지 틀렸는지 짐작할 뿐이다. 그러니 관객의 수준이 공연의 수준일 수밖에 없다.

발표회가 아동학대의 온상이라는 언론 보도를 가지고 교사 회의를 열었다. 기사가 나오자마자 교사들은 한목소리로 “아니~ 왜요?”라고 반문했다. 우리는 발표회란 교사도, 아이들도 즐기는 축제의 장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준비과정 또한 즐거워야 한다는 원칙하에 과하지 않게 준비해왔다.

사실 다른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의 공연에 비교하자면 우리 어린이집 공연은 미숙하기 짝이 없다. 언젠가 발표회 때, 리허설로 본 아이들 모습이 너무 예뻐서 인근 어린이집 원장님을 발표회 당일 초대한 적 있다. 공연이 시작되고, 너희들이 자랑스럽다는 눈빛을 가득 담아 아이들을 바라보는 내게 그 원장님이 조용히 이렇게 물어보셨다.

“아이들이 해맑아서 좋긴 한데…, 연습은 한 거예요?”

그렇다. 내 가족이니 마냥 예쁘고 잘하는 것처럼 보이지, 비교하는 눈으로 보면 한없이 미숙하기만 한 공연이 우리 어린이집의 공연인 듯했다. 뭐, 우리만 즐거우면 됐으니 어찌 됐든 상관은 없지만.

우리가 발표회를 준비하는 과정은 이렇다. 우선, 과정은 무조건 즐거워야 한다. 모든 수업이 그렇듯 선생님이 설레고 즐거우면 아이들도 설레고 즐겁다. 미숙한 교사는 잘 못 하는 아이를 지적하고, 유능한 교사는 잘하는 아이를 칭찬한다. 못함을 지적할 필요가 없다. 발표회 연습 중간중간에 교사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00이는 손을 정말 높이 잘 든다. 그렇지~ 정말 잘한다.”

“00처럼 멋지게 돌면 되는 거야. 정말 잘한다.”

“00이는 환하게 웃으면서 율동하니까 더 예뻐 보인다.”

교사의 말이 끝날 때마다 칭찬받으려고 손이 올라가고 동작에 힘을 주는 것이 보인다. 아이들이 잘하는 한가지씩의 포인트를 잡아 음악이 끝날 때까지 칭찬만 하다 보면 곡이 끝난다. 아이들은 “한 번만 더~!” 를 외치고, 교사는 다시 음악을 틀어준다. 이것이 발표회 연습의 전부다.

사실 아이들을 혼내거나 소리치는 일은 거의 없다. 발표회 후 평가지에도 “아이가 공연 준비로 인한 스트레스를 호소한 적이 있습니까?”를 포함한다. 여태 ‘그렇다’에 체크되어 온 경우는 없었다.

코로나19로 일상의 풍경이 달라진 올해도 발표회에 대한 의견은 분분했다. 그래서, 모두 함께 모이는 것이 두려워 원내에서 조촐하게 공연을 준비 중이다. 의상을 대여하고 촬영기사가 방문해 함께 동영상을 만들 예정이다. 부모가 아이를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은 아이에게 꼭 필요한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아이의 모습을 함께 보며 성장의 기쁨을 나눌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래서 난 이번 발표회가 무척 기대되고, 설렌다. 세상 모든 발표회가 이렇다면 좋겠다. 비교하지 않고, 훈련하지 않고. 아이들을 위한, 가족을 위한 즐거운 축제의 장으로.

*칼럼니스트 박현주는 유아특수교육을 전공해 특수학교에서 근무했다. 결혼과 출산을 겪으면서, 내 아이를 함께 키우고 싶어 어린이집을 운영하게 됐다. 화성시에서 장애통합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으며, 부모님들과 함께 꿈고래놀이터부모협동조합을 설립하는 데 동참해, 현재 꿈고래놀이터부모협동조합에서 장애영유아 발달상담도 함께 하고 있다. 다양한 아이들을 키우는 일, 육아에서 시작해 아이들의 삶까지, 긴 호흡으로 함께 걸음으로 서로의 고민을 풀어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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