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 전화’ 받고 얌전해진 아이… 만족하십니까?
‘도깨비 전화’ 받고 얌전해진 아이… 만족하십니까?
  • 칼럼니스트 이수경
  • 승인 2020.09.16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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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중으로 키우는 부모, 권리로 자라는 아이] 내가 하면 훈육, 남이 하면 학대?

"얘들아 나오너라 달 따러 가자. 장대 들고 망태 메고 뒷동산으로…. 엄마, 망태가 뭐야?”

맞벌이 가정이라 할아버지와 자주 시간을 보내서일까? 내가 어렸을 때나 부르던 동요를 흥얼거리던 아이들이 문득 ‘망태’가 뭐냐고 물었다.

“아, 망태기라고 옛날 사람들이 새끼줄을 꼬아서 어깨에 멜 수 있게 가방처럼 만든 거야. 달도 담을 수 있고, 엄마가 아주 어렸을 땐 말 안 듣는 아이들을 망태에 담아 데리고 가는 망태 할아버지도 있었대.”

내 머릿속에서 오래 장수하시던 망태 할아버지를 소환해 추억담처럼 들려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유난히 고되고 피곤했던 그 날. 둘째가 당최 내 말이라곤 듣질 않아 “망태 할아버지 아직 살아 계시는가? 전화번호가 어디에 있더라?”라고 말하며 아이의 반응을 살핀 적 있었다.

참고로 여섯 살 우리 둘째는 열두 살 첫째와 열한 살 사촌 형과 함께 크다 보니 어른의 공갈 협박 따위 믿어 주지도, 속아 주지도 않는 단단한 내공의 소유자다. 그런데, 그런 아이가 “세상에 망태 할아버지가 어딨어? 그런 건 없어!”라고 소리치며 별안간 내 휴대폰을 숨기는 것 아닌가?

문제행동을 멈춘 아이를 보며 상황이 쉽게 정리됐다는 짜릿함과 망태 할아버지를 직접 등장시키지도 않고 그저 전화번호를 찾는 척하며 문제를 해결한 나의 유능함에 살짝 자부심마저 느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날 이후 며칠 동안 내가 휴대폰만 찾으면 부지런히 휴대폰을 숨기는 둘째의 행동을 보곤 후회가 밀려왔다. 말로만 망태 할아버지를 찾았을 뿐인데, 이미 아이에겐 ‘공포’가 심어진 것이다.

◇ 말 안 들으면 삶아서 잡아먹겠다는데… 100만 건 이상 다운로드

"이놈! 말 안들으면 아주 아주 뜨거운 냄비에 삶아서 잡아 먹을 테다!"라는 도깨비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도깨비 전화 앱 통화 화면. ⓒ도깨비전화
"이놈! 말 안 들으면 아주 아주 뜨거운 냄비에 삶아서 잡아먹을 테다!"라는 도깨비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도깨비 전화 앱 통화 화면. ⓒ도깨비전화

망태 할아버지의 존재는 진화를 거쳐 21세기 ‘도깨비 전화’라는 애플리케이션으로 태어났다. 이 도깨비는 한동안 ‘육아 도우미’로 화제였는데, 아이가 밥을 먹지 않거나 잠을 자지 않을 때, 씻지 않을 때 등 문제 상황에 따라 도깨비를 골라 아이를 혼낼 수 있다.

사용자가 직접 혼내는 내용을 무섭게 녹음해 아이에게 들려주는 기능도 있다. 이런 앱은 앱스토어에 네다섯 개 정도 있고, 100만 번 이상 다운로드됐으며, 만족도가 5점 만점에 4.5~5점에 달할 정도로 높았다.

2~5세 아이들은 발달 과정상 자기 욕구가 많아지고, 놀이와 상상을 통해 학습을 확장한다. 이 시기에는 상상력이 발달하면서 무서운 상상도 함께 한다. 이것은 지적 성장의 징후이기도 하지만, 이 시기는 위험에 경각심이 생긴 아이에게 상상력이 더해지면서 유령, 괴물, 마녀 등을 두려워하게 되는 때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이 시기 부모는 아이가 스스로 안전하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아이의 질문에 조심스럽고, 정직하게, 간단히 답변함으로써 아이의 두려움을 자극하지 않는 방식으로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

그런데, 혀를 날름거리며 “언제 잡아갈까”라며 지켜보는 도깨비가 항상 내 주변에 머물고, 전화 한 통에 달려온다고 생각한다면, 아이 인생은 얼마나 힘들고 무서울까. 게다가 부모가 도깨비를 고용한 고용주라니. 매번 도깨비에게 전화하는 부모를 보면서 아이는 세상의 공포로부터 나를 지켜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느낀다.

또, 스스로 경험하며 세상을 학습해야 하는 시기임에도, 도깨비든 부모의 협박이든 과도한 통제 아래 놓인 아이에겐 욕구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것은 우울감으로도 나타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 타인과 이견을 조율할 때 공포로 협박하는 방법을 사용해도 된다고 배우게 될 것이다. 

◇ ‘감정적 폭행’도 아동학대임을 잊어선 안 된다 

도깨비에게 전화 하는 부모를 보며 아이는 '세상 믿을 사람 하나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때리는 것만이 학대가 아니다. 감정적 폭행도 아동학대임을 잊어선 안 된다. ⓒ베이비뉴스
도깨비에게 전화 하는 부모를 보며 아이는 '세상 믿을 사람 하나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때리는 것만이 학대가 아니다. 감정적 폭행도 아동학대임을 잊어선 안 된다. ⓒ베이비뉴스

지난 2015년, 인천의 한 어린이집 교사가 낮잠을 안 자는 세 살배기 아이에게 지속해서 도깨비 전화를 사용해 학부모들 사이 큰 충격과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 적 있다. 도깨비 전화를 본 아동은 불안과 두려움을 호소하며 심리치료를 받았고, 보육교사는 아동학대 유죄를 선고받았다. 아동학대는 물리적 폭행 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닌, 신체적, 정신적, 감정적, 성적 폭행, 강간 등을 모두 포함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도깨비 전화는 만족도 높은 앱으로 많은 부모가 사용하고 있다. 학교에서 체벌이 금지되었음에도 여전히 ‘사랑의 매’라는 이름의 회초리가 판매되는 것과 비슷한 양상이다. 훈육과 학대. 그 경계의 근간을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마냥 적용하는 것 아닐까?

부모는 애가 유난히 별나서, 산만해서, 내가 스트레스받아서, 오늘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 등 다양한 사연과 이유를 들며 체벌과 학대에 관대해질 수 있다. 하지만 아이 훈육법이 고민될 땐, 망태 할아버지나 도깨비를 부르는 것 아닌 ‘다른 사람이 이 행동을 우리 아이에게 한다면 나는 어떤 생각이 들까?’라는 삼자적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어떨까? 

이 글을 마치는 대로 호기심에 깔아 보았던 도깨비 전화는 당장 삭제하려고 한다. 말 안 듣는 아이와 싸우며 힘 빼는 것과 도깨비의 힘을 빌려 “딱 한 번만”. “딱 여기까지만…”을 시도하고 싶은 못난 유혹을 견디는 일의 갈등을 더는 겪고 싶지 않다.

또, 나를 포함한 세상의 모든 부모는 아이가 당장 무서운 공포를 벗어나기 위해 억지로 옳은 행동을 선택하기보다는 안전하고 평안한 보호 속에서 안정감을 찾길 바라고, 건강하게 자라서 마음이 선하고 정의로운 가치관을 갖길 바라며, 그 가치관에 맞게 스스로 바른 행동을 선택할 줄 아는 당당하고 멋진 사람이 되길 바라기 때문이다.

*칼럼니스트 이수경은 두 자녀를 둔 워킹맘이다. 사회복지대학원을 졸업한 후 복지관에서 근무했고 2010년부터 국제 구호개발 NGO 세이브더칠드런에서 아동의 권리를 위해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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