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아서 잘 컸다"는 말에 담긴 체벌의 오류
"맞아서 잘 컸다"는 말에 담긴 체벌의 오류
  • 칼럼니스트 이수경
  • 승인 2020.08.24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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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중으로 키우는 부모 권리로 자라는 아이] ‘다 너 잘되라고 때리는 거야’

“우리 집 애들은 성격이 무던하잖아. 엄청나게 맞았거든. 내성이 생겨서 어지간한 일에는 눈도 끔쩍 안 해.”

20년 전 대학 후배가 내 성격에 대해 '매 없이 곱게(?) 커서 작은 일에도 예민하다’라며 한 말이다. 솔직히 그땐 이 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음을 고백한다. 하지만 지금, 같은 생각을 하는 분들이 있을까?

세이브더칠드런을 포함한 몇몇 아동 단체들은 친권자가 자녀를 징계할 수 있다는 민법 제915조, ‘친권자는 그 '자'를 보호 또는 교양하기 위하여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다’라는, 일명 '징계권'의 규정이 체벌을 합법화하는 근거로 활용되지 않도록 징계권 조항 삭제 캠페인을 진행해왔다.

최근 이슈가 된 극단적인 아동학대 사건들이 가정 내에서 훈육의 이름으로 행해진 신체적, 정신적 체벌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 드러나면서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세이브더칠드런을 비롯한 아동단체들은 이른바 '징계권' 조항 삭제 캠페인을 진행해왔다. 세이브더칠드런 영상, '지금 화가 난 이유가 정말 아이 때문인가요?' 영상 갈무리. ⓒ세이브더칠드런
세이브더칠드런을 비롯한 아동단체들은 이른바 '징계권' 조항 삭제 캠페인을 진행해왔다. 세이브더칠드런 영상, '지금 화가 난 이유가 정말 아이 때문인가요?' 영상 갈무리. ⓒ세이브더칠드런

국제 아동구호 기관에 10년째 몸담은 나로서는 여러 아동학대 사건들을 볼 때마다, 어떻게 해야 아이들이 안전하게 보호받으며 살 수 있을지 고민이 더욱 깊어진다. 그렇기에 징계권 삭제를 적극적으로 찬성한다. 하지만 일부 부모들 사이에서는 징계권이 사라지면, 아이가 올바르게 잘 자라도록 훈육할 부모의 권리 또는 의무가 침해당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다 너 잘되라고 때린 거야”라는, 아이가 잘못된 길로 가지 않게 때린다는, 하도 많이 들어서 의심조차 않고 믿었던 그 말에서 나는, 재미있는 오류를 발견했다.

◇ 아이 가르친다고 때리면, 교육은 간데없고 공포만 남는다 

첫 번째 오류는 ‘체벌을 자녀에 대한 양육자의 권리’라고 인지한다는 것이다. 사실 체벌은 서로 존중하는 관계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다. 실수했다고 해서 옆집 아이를, 혹은 직장 동료나 후배, 친한 친구를 때리지 않는다. 이렇게 타인에게조차 감히 옳고 정당한 권리라고 적용할 수 없는 체벌을 내가 가장 소중하고 사랑하는 자녀에게 행한다는 것은 매우 아이러니한 일이다.

두 번째 오류는 체벌이 자녀가 올바르게 자라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는 잘못된 신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아이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걷다가 지나가는 오토바이에 부딪힐 뻔했다는 상황을 가정해보자. 이때 예상할 수 있는 부모의 반응은 무엇일까?

하나. 아이의 등을 힘껏 때리며 “조심하라고 그랬지!”라고 잔소리하며, 아이가 오늘 일을 잊지 않고 다음번에는 조심성을 갖길 바란다.

둘. 우선 놀란 아이를 다독인다. 그리고 오토바이와 자동차 등 길에서 조심해야 할 것을 이야기해주며 조심성 있게 걷는 방법을 가르친다.

아마 대부분의 부모는 첫 번째 반응을 보일 것이다. 한편 우리의 자녀들은 어떨까? 멀리 찾지 않아도 내 딸이라면, 평소 할 말은 할 줄 아는 씩씩한 이 아이는 대놓고 내게 “엄마, 도대체 언제 조심하라고 말했는데? 엄마한테 맞느니 차라리 오토바이에 부딪히는 게 훨씬 덜 아프겠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이 정도면 준수하다. 마음이 여린 아이라면, 본인의 실수가 여러 사람에게 폐를 끼친 것 같아 놀랐음에도 놀랐다는 표현을 못 하거나 오히려 주눅이 들어 혼자 끙끙 앓기도 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아이가 놀랐다는 것이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법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인데, 아이를 때리면 길 조심 등의 교훈 따위는 온데간데없이 체벌만 남는다. 이러면 아이는 자신이 위험한 상황에서도 부모의 눈치를 보는, 그야말로 '삼천포 미궁' 속으로 빠지고 만다.

◇ 부모-자녀 신뢰 깨지는데 어떻게 아이가 잘 자라나

부모의 체벌과 아이의 반항이 반복되면 이 관계는 회복하기 어려운 최악의 상황에 놓인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아이가 잘 자라길 바라나. 세이브더칠드런 영상, '지금 화가 난 이유가 정말 아이 때문인가요?' 영상 갈무리. ⓒ세이브더칠드런
부모의 체벌과 아이의 반항이 반복되면 이 관계는 회복하기 어려운 최악의 상황에 놓인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아이가 잘 자라길 바라나. 세이브더칠드런 영상, '지금 화가 난 이유가 정말 아이 때문인가요?' 영상 갈무리. ⓒ세이브더칠드런

징계권 삭제를 반대하는 사람 중 일부는 엉덩이나 등을 살짝 내려치는 것, 딱밤이나 아이와 합의한 매 등 어느 정도의 적정선을 지킨 체벌은 허용해도 되지 않느냐고 말한다.

그 얄팍한 기준에 대한 논의는 다음으로 넘기더라도 결론적으로 체벌은 안 하는 것이 맞다. 의도가 어떻게 되었든 간에 체벌은 자녀의 몸과 감정을 상하게 하고, 상한 감정은 부정적 행동(아이의 반항적 행동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맞겠다)으로 드러날 수 있다. 

자녀가 반항적 행동을 보이면 부모는 이를 바로잡아줘야 한다는 의무감이 발동해 ‘기선제압’이라는 기술에 들어가게 된다. 이런 과정이 반복된다면 결국 부모와 자녀는 회복할 수 없는 최악의 관계에 놓이게 되고 신뢰가 깨질 수밖에 없다. 부모와 자녀 간의 신뢰 관계가 깨졌는데 자녀가 올바르게 자라길 바란다는 것은 너무 큰 비약과 욕심이 아닐까.

이 시대를 사는 어른들이 체벌에 대한 잘못된 기대를 버리고 아동 체벌 근절에 동참해 준다면 우리의 자녀는 더 안전하고 평안한 환경에서 자랄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잘 가르치려고, 훈육하려고 때렸다”는 부모로부터 학대받는 아이들, 사망의 위험에 놓인 아이들도 보호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해보고 싶다.

다시 이 글의 처음으로 돌아가서, 대학 후배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맞아서 잘 자란 게 아니다. 그때 맞지 않고 자랐더라면 지금 우리는 좀 더 따뜻하고 좋은 관계를 맺는 사람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자녀가 잘 되길 바라는 마음에 때린다는 명제 사이에 나 자신을 스스로 가두지 말자. 아이가 잘되길 바라는 마음만큼 아이를 사랑해주고, 나 자신이 아이에게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도록 고민하고 배우는 것에 열정과 에너지를 쏟을 때라고 조심스럽게 제안해본다.

*칼럼니스트 이수경은 두 자녀를 둔 워킹맘이다. 사회복지대학원을 졸업한 후 복지관에서 근무했고 2010년부터 국제 구호개발 NGO 세이브더칠드런에서 아동의 권리를 위해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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