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가족조차 허락되지 않는 ‘가장 작은 이들'
대안가족조차 허락되지 않는 ‘가장 작은 이들'
  • 칼럼니스트 최가을
  • 승인 2020.11.17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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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 엄마의 방구석 심야 영화관] ‘어느 가족’(2018)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여기, 한 여자아이가 있다. 추운 날씨에도 늘 아파트 테라스에 나와서 혼자 놀고 있는 걸 보면 부모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아이인 듯하다. 이웃에 살던 한 아버지와 아들이 며칠 동안 이 아이를 보다 못해 집으로 데려온다. 

원가족에게 학대 받다가 오사무와 노부요 가족에 편입되는 린. ⓒ (주)티캐스트
원가족에게 학대 받다가 오사무와 노부요 가족에 편입되는 린. ⓒ (주)티캐스트

그런데 여자아이를 데려온 이 가족이, 기묘하다. 영화는 이 가족의 비밀에 대한 단서를 툭툭 던지면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영화가 던져주는 퍼즐을 다 맞춰보면, 이들 중 혈연으로 연결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부모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였던 오사무와 노부요는 쇼타와 린, 모두 길에서 ‘주웠다’. 주차장에 버려져 있던 쇼타를 구해줬고, 린은 부모가 안 낳고 싶어했던 아이였음을 알고 계속 데리고 있기로 한다. 린의 친부모가 실종신고도 하지 않은 걸 보면 정말 원치 않는 아이였음이 분명하다.

오사무와 노부요는 집 주인 하츠에 할머니와 아무런 혈연관계 없이 하츠에의 돈에 의존해서 산다. 게다가 법적으로 이 집에는 하츠에 할머니 혼자 사는 걸로 돼 있다. 나머지 다섯 식구는 법의 그물망에 잡히지 않는다.

다 쓰러져 가는 구옥에 도시 빈민층에 속하는 이들 여섯 명이 복닥거리고 사는데, 이들은 즐겁다. 집에는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어른이 없다. 오사무는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놀아주고, 하츠에는 린의 몸에 남은 학대 받은 상처에 약을 발라준다. 노부요는 린에게 말한다.

“맞고 지냈던 건 네가 나빠서가 아니야. 사랑해서 때린다라는 건 거짓말이야.”

아무도 자신을 때리지 않고, 모두가 자신을 귀여워해주는 새로운 가족을 만난 린은, 당연하게도 원가족에게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건 유괴일까 구출일까, 답을 내리기 힘든 동거다.

형편은 넉넉하지 않지만, 서로에게 다정하고 화목한 가족. ​ⓒ (주)티캐스트​
형편은 넉넉하지 않지만, 서로에게 다정하고 화목한 가족. ​ⓒ (주)티캐스트​

영화는 중반부까지 마치 대안가족을 지지하는 듯한 태도를 취한다. 대사로도 직접적으로 전한다.

“보통은 부모를 선택할 수 없는데 (우리는 서로를 선택했으니) 스스로 선택한 게 더 강하지 않겠어? 유대라든가 정 같은 거.”

“피가 안 이어져서 좋은 점도 있잖아."

"괜한 기대를 안 하게 되는 건 좋지.”

아무 연고도 없이 학대 아동을 품어주는 대안 가족. 아름다운 그림이다.

그런데 감독은 이 아름다운 그림에 조금씩, 서서히 균열을 낸다. 우선, 이들은 쇼타를 학교에 보내지 않는다. 오사무는 쇼타에게 도둑질을 가르치고 함께 도둑질을 하고 다니며 “아직 아무도 사지 않은 물건은 누구의 것도 아니”라고 정당화한다. 도덕성이 마비된 것으로 보이는데, 도둑질을 대물림하는 것에 대해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

좀도둑질로 가족의 생필품을 충당하는 오사무와 쇼타. ⓒ (주)티캐스트
좀도둑질로 가족의 생필품을 충당하는 오사무와 쇼타. ⓒ (주)티캐스트

어른들이 이렇게 눈을 감고 있을 때, 쇼타만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는다. 훔치는 건 나쁜 짓 아니냐고. 그렇지만 어른들은 소년의 질문을 못 들은 척한다. 린에게까지 도둑질을 가르치지 말라는 문방구 주인 아저씨의 말을 전해 듣고도 무시한다. 하츠에 할머니가 죽은 후 그가 남긴 돈을 보며 즐거워하는 노부요와 오사무를 보며 쇼타는 천천히 의문을 품기 시작한다.

쇼타가 각성하는 순간은, 린이 자신을 따라 도둑질을 시작하는 때다. 어른들이 자신들이 만든 가족의 울타리 안에 안온하게 머물려고 할 때, 쇼타만이 이 울타리를 부숴버린다. 쇼타는 린이 도둑질하는 모습을 보자마자, 린을 보호하기 위해 도둑을 자처하며 도망치다가 부상을 입는다.

린을 진심으로 생각해준 사람은, 어른들이 아니라 소년 쇼타였다. ⓒ (주)티캐스트
린을 진심으로 생각해준 사람은, 어른들이 아니라 소년 쇼타였다. ⓒ (주)티캐스트

쇼타가 경찰서로 넘어가자 이들 가족은 경찰에게 발각될 위기에 처한다. 그러자 남은 어른들의 선택이 점입가경이다. “쇼타는 병원에서 밥도 나오니까” 자기들끼리 도망치려고 한다. 그러다 이들 일가족 모두가 경찰에게 붙잡히면서 이 가족은 산산이 흩어지게 된다.

나중에 오사무를 만난 쇼타가 묻는다. 자기를 버리려고 했냐고. 오사무는 대답한다. 그렇다고, 미안하다고. 나는 이제 아빠가 아니라 아저씨로 돌아가겠다고. 그런데 쇼타의 대답이 의외다.

“사실 나 그때 일부러 잡힌 거였어.”

일본의 영화 감독 기타노 다케시는 “가족이란 누군가 보는 사람만 없다면 어디다 갖다 버리고 싶은 존재”라는 발언을 한 적이 있다. 친부모에게서 버림 받은 자신을 구해준 대안가족조차, 쇼타에겐 탈출하고 싶은 가족이었던 것이다. 세상 천지에 기댈 곳은 두번째 가족뿐이었는데도.

바닷가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가족. ⓒ (주)티캐스트
바닷가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가족. ⓒ (주)티캐스트

마지막 장면에 다시, 여자아이가 있다. 린은 경찰 조사 후에 원가족에게 돌아갔다. 린의 친부모는 린을 다시 학대한다. 린은 다시 추운 테라스로 쫓겨나 혼자 노래를 부르며 시간을 보낸다.

성경에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라는 구절이 있다. 약자 중의 약자인 어린 아이들은 이 ‘가장 작은 이들’에 해당할 것이다. 감독은 원가족도, 대안 가족도 허락되지 않는 ‘가장 작은 이’를 우리 앞에 들이민다.

바닷가에 놀러 가 해맑게 웃는 린. 린의 행복은 너무 짧고, 부서지기 쉬운 것이었다. ⓒ (주)티캐스트
바닷가에 놀러 가 해맑게 웃는 린. 린의 행복은 너무 짧고, 부서지기 쉬운 것이었다. ⓒ (주)티캐스트

영화에서는 이들 가족 외의 타인이 거의 전무하다. 린을 숨기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입을 다무는 노부요의 친구가 한 명 있을 뿐이다. 이들 가족을 보호하는 국가의 존재도 희미하다. 하츠에 할머니에게 오래된 집을 팔라고 권하는 사회복지사와 학대 받는 아동을 학대의 가해자에게 돌려보내는 무심한 국가가 있을 뿐이다.

린이 창 밖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장면으로 영화는 조용히 끝이 난다. 초점을 잃은 아이의 눈동자가 절박한 구조신호 같기도 하고 거대한 질문 같기도 했다. 원가족도 아이를 버리고, 대안 가족도 답이 되지 못할 때, 이 아이의 이웃, 이 아이가 속한 사회, 국가는 어디에서 무엇을 했는가.

*칼럼니스트 최가을은 구 난임인, 현 남매 쌍둥이를 둔 워킹맘이다. 영화관에 갈 시간이 없어 아이들을 재우고 휴대전화로 영화를 본다. 난임 고군분투기 「결혼하면 애는 그냥 생기는 줄 알았는데」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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