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 먼저' 교통정책… 아이들 생명을 '재수'에 맡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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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규화 기자
  • 승인 2020.12.02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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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통학로 안전지수 개발’ 허억 가천대학교 국가안전관리전공대학원 교수

【베이비뉴스 최규화 기자】

지난달 17일 경기 성남시 복정동 가천대학교에서 허억 가천대학교 교수를 만났다.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지난달 17일 경기 성남시 복정동 가천대학교에서 허억 가천대학교 교수를 만났다.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통학로 안전지수 조사 결과, 점수가 낮다고 기사가 나가자 항의를 해온 지자체도 있었다. 하지만 그럴 자격이 없다. 원래는 감점 가중치도 있었는데, 그랬더니 100점 만점에 ‘0점’을 받는 학교도 있었다.”

통학로 안전지수를 개발한 허억 가천대학교 국가안전관리전공대학원 교수의 말. 허 교수는 전국 50개 초등학교 통학로를 평가해, 그 결과를 지난달 2일 ‘통학로 어린이 교통안전 증진을 위한 토론회’에서 발표했다. 평균 점수는 100점 만점에 54.7점. 허 교수는 “학점으로 치면 F, 낙제점”이라고 실망감을 표현했다.

통학로의 환경적 측면, 시설적 측면, 제도ㆍ단속적 측면, 운영ㆍ관리적 측면을 16개 항목, 100점 만점으로 점수화한 통학로 안전지수. 이처럼 수치화된 지수로 통학로 안전을 평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은 4000만 원의 예산으로 통학로 안전지수 개발을 지원했고, 향후 활용 방안을 논의 중이다.

허 교수가 통학로 안전지수를 만든 이유는 뭘까. ‘낙제점’ 수준인 통학로 안전을 강화하기 위해 우리 사회는 무엇부터 해야 할까. 지난달 17일 경기 성남시 복정동 가천대학교에서 허 교수를 만나 물었다.

- 통학로 안전지수 개발의 목적부터 설명해달라.

“통학로 안전지수를 개발한 근본목적은 통학로 사고 예방이다. 지수 항목을 전적으로 사고 예방에 초점을 맞췄다. 통학로 안전의 일곱 주체가 있다. 어린이, 부모, 교사, 운전자, 지자체, 경찰, 지역사회와 NGO. 이들 주체들이 각각 노력할 방향을 제시하고 그것을 점수화해서 지수를 만든 거다.

결국 이 항목들을 통해서 우리가 구체적으로 노력할 방향을 다 제시해준 거다. ‘이렇게 하면 안전지수 올라가고, 그만큼 우리 아이가 안전해진다’는 뜻이다. 또 지수를 가지고 평가한다고 발표하는 순간, 지자체나 학교는 신경을 쓰게 된다. 구체적 점수와 순위를 매겨서 발표하면 긍정적인 동기부여도 이뤄질 거다.” 

- 통학로 안전지수 개발에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인가.

“시설적 측면에서 가장 중요한 건 안전한 인도 확보다. 차량 동선과 보행자 동선을 근본적으로 분리시키는 것. 대부분 이면도로는 도로 폭이 7~8미터밖에 안 된다. 차로는 폭이 약 3미터, 인도는 1.5미터 이상 확보돼야 하는데, 이런 도로에서 양방 통행을 하면 양방향 인도 폭이 나올 수가 없다.

그래서 통학로는 다 일방통행으로 바꿔야 한다. 일방통행 하면 인도 폭이 나온다. 그 항목 점수를 굉장히 많이 줬다.(보ㆍ차도 분리 포함 ‘안전한 인도 확보’ 17점) 또, 인도를 만들면 최소한 10센티미터 이상 단차를 둬서 차량이 침범 못하게 해야 하는데, 조사해보니 차도와 보도의 단차를 전혀 안 둔 곳도 있었다.”

◇ 스쿨존에 ‘가짜’ 과속방지턱 수두룩… 통학로 안전 ‘낙제점’

허억 교수는 통학로 안전지수를 개발해 전국 50개 초등학교의 통학로를 평가했다.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허억 교수는 통학로 안전지수를 개발해 전국 50개 초등학교의 통학로를 평가했다.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 그밖에 현장조사 과정에서 확인한 위험 사례들을 좀 더 소개해달라.

“보도와 차도가 만나는 상충지점에서 차량은 보행자 속도로 가게 해야 한다. 상충지점 높이를 높여서 과속방지턱형 인도로 만들면 시속 5킬로미터로 안 달릴 수가 없다. 그런데 이번에 조사 과정에서, 과속방지턱이 있어도 규격에 맞지고 않고 ‘가짜’로 설치된 곳이 너무 많더라. 그런 것도 원래는 감점을 줬다.

간선도로에서 이면도로로 진입하는 구간에는 반드시 횡단보도가 있어야 한다. 거기는 인도 단절 구간이다. 횡단보도가 없는데 거기서 사고가 나면 무단횡단 사고가 된다. 그런 곳도 감점 처리했다.

횡단보도 바로 앞에 노상 주차장을 만들어둔 곳도 있었다. 과거 인천의 한 초등학교 앞에서 사고가 있었다. 아이가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노상 주차장에 있는 차량에 가려서 운전자에게 안 보였다. 차에 치였고, 아이가 죽었다. 노상 적치물도 상당히 많았다. 보도에 물건을 쌓아놓으면 아이들이 차도로 내몰리게 된다.

원래 계획에는 이런 게 모두 감점 가중치 요인들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적용하니까 감점이 너무 많아서 ‘0점’을 받은 학교도 나왔다. 결국 가ㆍ감점 가중치는 참고자료로만 활용하고 실제 점수에는 미반영했다.”

- 지난 3월부터 8월까지 현장조사를 진행한 걸로 안다. 조사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었나.

“지자체나 경찰, 학교에서 관련 자료를 확보하는 게 쉽지 않았다. 학교별 통학로 안전 관리 현황과 소요 비용, 학교별 단속 관련 자료 등을 요청했지만 협조가 어려웠다. ‘통학로 안전 조례 제정’ 항목이 2점이었는데, 지자체에 통학로 안전 조례 자료를 요구하면 대충 어린이와 관련된 다른 조례 자료를 주는 식이었다.

또 당초 계획에는 교육적 측면 비중을 크게 잡아서, 어린이, 선생님, 부모님, 운전자 설문조사를 하려 했다. 안전은 지식과 의식이 더해질 때 지킬 수 있다. 아무리 시설이 잘 돼 있어도 내가 위험하게 행동하면 사고 위험이 높아진다. 또 아무리 시설이 잘못돼 있어도 내가 안전하게 행동하면 사고 위험은 낮아진다.

안전한 행동을 얼마나 알고 있고 실제로 얼마나 실천하는지를 평가 항목에 넣은 거다. 하지만 코로나19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대면조사를 진행하기가 어려워 해당 항목들은 지수에 포함시키지 못했다.”

- 지난달 2일 토론회에서 ‘통학로 안전지수 활용 전국 초등학교 전수조사’를 제안하셨다.

“올해는 10개 도시, 50개 학교에 대해서만 시범적으로 조사해본 거다. 조사에는 꽤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 광범위하게 하려면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같은 민간의 예산으로는 안 된다. 정부 예산으로 해야 한다. 행정안전부에서도 지난달 2일 토론회에 참석했는데, 내년에는 행정안전부도 조사를 같이했으면 좋겠다.

통학로 안전지수로 학교 간, 지자체 간 선의의 경쟁을 벌이도록 유도하고, 노력하는 곳에는 컨설팅도 해줄 수 있다. 행정안전부가 예산을 그냥 일괄적으로 나눠줄 게 아니라, 전수조사를 한 뒤에 점수가 가장 낮게 나온 부분, 가장 위험한 지점부터 예산을 지원해야 한다. 그런 식으로 하면 정말 안전해질 수 있다.”

◇ “100점 만점에 ‘0점’도… 통학로 안전지수 전수조사하자” 

서울의 한 어린이보호구역에서 택시가 속도를 위반해 주행하고 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서울의 한 어린이보호구역에서 택시가 속도를 위반해 주행하고 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 토론회에서 13개 항목의 안전 증진방안을 제시했다. 그중 스쿨존 시인성 항목이 ‘1번’인 이유는?

“‘민식이법’ 영향으로 스쿨존에 대한 관심은 많은데, 운전자들은 여전히 스쿨존이 어딘지 잘 모른다. 그래서 스쿨존 진입로에 흰 삼각형으로 ‘용의 이빨(Dragon's teeth)’을 표시해둔 호주의 사례를 소개한 거다. 운전자들이 그걸 보고 ‘아 여기부터 스쿨존이구나, 조심해야겠구나’ 생각하게 만드는 방법이다.

스쿨존을 조성한 근본 목적은 운전자의 의식과 행동 변화다. 운전자에게 ‘스쿨존에서는 어린이들을 우선 보호해야 한다’는 의식을 갖게 하고, 그 다음에 실제로 운전하면서 방어운전, 서행, 양보를 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첫 번째는 당연히 ‘어디가 스쿨존인지 알게 하는 것’이 돼야 한다.

스쿨존 진입로를 지그재그로 만드는 것도 좋다. 지글바(Jiggle bar)나 럼블 스트립(Rumble strip) 등 방식으로 도로에 홈을 파서 요철 포장을 하는 방법도 있다. 차량 진동을 통해 느끼게 하는 거다. 지금 하고 있는 유색포장만으로는 부족하다. 미끄럼 성분이 있어서 오히려 제동거리만 길어진다. 다른 대안이 필요하다.” 

- ‘용의 이빨’처럼 우리가 참고할 만한 해외의 시도들을 더 소개해달라.

“‘미노베 방정식’이라는 굉장히 유명한 말이 있다. 1967년 일본 도쿄 도지사로 취임한 미노베 료키치(Ryokichi Minobe)는 ‘도로의 주인은 차가 아니라 사람이다’라고 천명했다.

기존의 공식은 ‘도로-차도=인도’였다. 도로를 만들 때 차도를 만들어놓고 남는 공간을 인도로 쓴다는 거다.. 하지만 미노베는 이걸 ‘도로-인도=차도’로 바꿨다. 도로를 만들 때 인도부터 만들고, 그러고 나서 차도를 만들 자리가 나오지 않으면 만들지 말라는 뜻이다. 차보다 사람을 우선하는 교통정책이다.

네덜란드에는 보네르프(Woonerf) 정책이 있다. 보ㆍ차도 경계턱부터 없애버렸다. ‘보도와 차도를 분리시키는 게 안전하지 않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 반대로 한 이유는, 도로는 차와 보행자가 공존하는 곳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보네르프 구역에는 ‘운전자는 사람의 보행속도보다 빨리 운전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이 있다.

토론회 때 스쿨존 ‘카파라치’를 도입하자고 제안했다. 뉴질랜드는 훈련받은 고학년 학생들을 ‘스쿨 패트롤’로 임명하고 단속권까지 준다. 그 정도로 아이들 안전을 신경을 쓴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너무나 자동차 위주의 정책을 하고 있다. 속된 말로, 재수 없으면 사고 나는 거다. 아이들 생명을 재수에 맡겨서야 되겠나.”

- 등교시간 차량 통행금지 조치를 시행하는 지자체와 학교들도 생기고 있다. 어떻게 평가하나.

“아주 바람직하다. ‘어린이ㆍ노인 및 장애인 보호구역의 지정 및 관리에 관한 규칙’(제9조 보호구역에서의 필요한 조치)에 근거 조항도 있어서, 법적으로도 전혀 문제가 없다. 운전자들이 조금 불편하면 아이들의 안전이 보장되는 거다. 불편 없이 어떻게 안전이 보장되겠나. 등교시간 차량 통행금지도 필요하다고 본다.”

◇ “스쿨존에서도 보호 못 받는 아이들… 특단 처방 필요하다”

허억 교수는 통학로 안전을 위해 일곱 주체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허억 교수는 통학로 안전을 위해 일곱 주체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 최근 1년 사이 어린이 교통안전 문제가 이슈가 된 것은 ‘민식이법’ 영향이 크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처벌 수위에 대한 논란도 있었다. 그간의 과정을 어떻게 봐왔나.

“처벌이 과하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처벌은 강화돼야 한다. 그동안 아이들이 스쿨존에서조차 보호받지 못했다. 어른들의 부주의로 한순간에 목숨을 잃었다. 특단의 처방이 필요하다. 제도가 잘 자리 잡아서 운전자의 의식과 행동이 바뀌고, 실제로 사고가 줄어들면 그다음에는 처벌 수위를 낮출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민식이법이 올해 3월 25일부터 시행됐는데, 아직도 운전자의 의식과 행동은 별로 바뀐 게 없다고 본다. 스쿨존 내 과속 단속 건수도 여전히 많다. 시행 한 달 동안 단속된 건수가 12만 5000건이다.

작년 같은 기간 동안 단속된 13만 6000건보다 약 1만 건 줄었다고 이게 민식이법 효과라고 하는데, 한 달에 12만 건이 적다 할 수 있나. 그동안 얼마나 위반을 많이 해온 건가. 또 올해는 코로나19 때문에 학교가 휴교를 많이 했기 때문에 민식이법 효과로 스쿨존 사고 위험이 줄었다고 판단하기는 이르다.”

- 어린이 교통안전 운동을 시작하신 지 올해로 만 30년 되셨다. 1990년 안타까운 교통사고로 조카를 잃고 인생의 길이 완전히 바뀌셨는데, 지난 30년 세월에 대한 소회 한마디 부탁드린다.

“1990년 6월에 직장을 그만두고 활동을 시작했으니 벌써 30년이 넘었다. 그때는 얼마나 심각했냐면, 1990년 한 해에 교통사고로 죽은 어린이 수가 1537명이었다. 지금은 2018년 기준으로 34명까지 줄었다.

최근에는 우리의 어린이 교통안전 노하우를 개발도상국에 전해주는 일도 하고 있다. 내 정년이 5년 남았으니까, 그때는 그 일을 더 많이 할 계획이다. 30년 전 조카의 죽음이 승화된다고 할까, 안타까운 죽음이지만 그로 인해서 우리 사회에 어린이 안전의식을 더 확산시키는 데 동기부여가 되지 않았나 싶다.”

- 끝으로 하고 싶은 말씀 있으면 해달라.

“12월 중 개교를 목표로 사이버 어린이안전학교를 만들고 있다. 열두 개 교실을 만들고, 연령대에 따라 많이 일어나는 사고와 예방법을 중심으로 강의할 계획이다. 교통 분야는 내가 직접 강의한다.

특히 내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이들이 약 40만 명 되는데, 아이의 행동반경이 넓어지면 사고 위험도 높아진다. 프랑스에서는 어린이 교통안전교육 인증 제도가 있다. 아동이 초등학교 입학 전에 부모와 함께 교육을 받고 소정의 시험에 합격하면 인증서를 준다. 우리도 그런 모델을 좀 만들고 싶다.

안전교육만큼 좋은 보약이 없다. 한순간에 아이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사고가 너무나 많다. 끊임없이 주변의 위험요소를 찾아내고 꾸준한 교육을 통해서 사고 위험을 낮춰야 한다. 주변에서 발생하는 어린이 사고는 내 아이에게 또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교육과 노력을 통해 아이의 안전을 지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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