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편식이 속상한 이유…걱정일까, 실망일까 
아이의 편식이 속상한 이유…걱정일까, 실망일까 
  • 칼럼니스트 이미연
  • 승인 2020.12.30 16: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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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이맘 Says] “이거 안 먹어”란 아이의 의견 존중하기

영이가 이유식을 먹던 시기. 나는 영이의 이유식을 정말 열심히 준비했다. 영이가 잠든 이후에 갈고, 다지고, 끓이다 보면 어느새 새벽 2시는 훌쩍 넘기던 많은 날들….. 

영이가 이유식만으로 세끼를 먹기 시작한 후로 나는 매 끼니 영이에게 매번 다른 이유식을 먹이기 위해 매일 밤마다 이유식을 준비했고, 나와 신랑은 먹어본 적도 없는 각종 재료로 월 식단도 짜고, 신선한 재료를 구하고자 매일 같이 유기농 식재료를 판매하는 곳에 방문하여 장을 보았다.

◇ 손 느리고 요리 늘 어려웠지만, 언제나 이유식에 진심이었다 

매 순간 이유식에 진심이었던 날의 흔적. 매 끼니 영이에게 다른 맛을 보여주고 싶어서 얼마나 노력했는지. ⓒ이미연
매 순간 이유식에 진심이었던 날의 흔적. 매 끼니 영이에게 다른 맛을 보여주고 싶어서 얼마나 노력했는지. ⓒ이미연

그렇다고 내가 요리를 잘하거나 요리에 흥미가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나는 손이 느려서 여느 사람보다 음식 만들기에 훨씬 오랜 시간이 걸리고, 하물며 요리는 나보다 신랑 솜씨가 단연코 더 낫다. 그런 내가 이유식이 이토록 진심이었던 이유는 내가 영이에게 해주는 첫 음식이었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다. 나는 영이가 음식에 관심을 갖고, 스스로 먹는 식습관을 갖기를 바라며 아이주도 이유식(Baby-led Weaning)을 실천했다. 영이에게 이유식은 그저 처음 보고 만져보는 신기한 물체였을 뿐이기에, 먹는 것보다 찔러보고, 으깨보고, 던져보며 버려지는 이유식이 더 많았다. 

만드는 시간 못지않게 치우는 시간도 훨씬 길어졌지만, 매 끼니 영이가 즐거워하며 먹는 모습을 볼 수 있었기에 먹고, 묻히고, 던져진 이유식들을 치우는 과정 또한 나는 참 즐거웠다.

이제 만 3세가 된 영이는 주변의 도움 없이도 혼자 밥을 먹을 수 있다. 가끔 잘 먹지 않아 엄마 노파심에 수저에 떠줄 때도 있지만 대부분 자신의 양만큼은 스스로 잘 먹는 편이다. 혼자서도 잘 먹는 모습을 볼 때면, 나의 노력이 빛을 내는 것만 같아 뿌듯함을 느끼곤 한다.

하지만 영이가 모든 음식을 잘 먹는 것은 아니다. 영이는 싫어하는 음식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오이, 파프리카, 브로콜리는 전혀 먹지 않는다. 어떻게든 먹길 바라며 이런저런 요리법을 찾아 슬쩍 넣어둔 파프리카를 금방 찾아내서는 “나는 파프리카 싫어해”라며 이야기하는데, 단호함이 날이 갈수록 더 단단해진다. 그때 느껴지는 나의 속상함은 무엇 때문일까. 문득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영이가 모든 음식을 좋아할 것이라 기대했던 걸까?'

'왜? 내가 이유식을 열심히 만들었기 때문에?'

돌이켜 생각해본다. 요리에 흥미도 없고,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내가 그토록 최선을 다해 이유식을 만들었던 이유는 내가 만들어주는 첫 번째 음식이라는 그 특별한 의미를. 세상에 나와 처음 맛보는 새로운 음식이 맛있었으면 했고, 음식을 먹는 시간이 즐겁길 바랐다. 재미있게 먹고 잘 먹는 영이를 볼 때 내가 즐거워 더 열심히 했었다.

◇ 어떤 음식이 싫다고 말하는 것 또한 아이의 권리

기껏 마련한 음식을 "안 먹어!" 아이가 안 먹는다고 할때, 더없이 섭섭하지만, 그것 또한 아이의 의견이고, 존중해야 한다. 편식에서 비롯한 영양불균형을 다양한 방식으로 해소하는 것은 어른의 몫이다. ⓒ이미연
기껏 마련한 음식을 "안 먹어!" 아이가 안 먹는다고 할때, 더없이 섭섭하지만, 그것 또한 아이의 의견이고, 존중해야 한다. 편식에서 비롯한 영양불균형을 다양한 방식으로 해소하는 것은 어른의 몫이다. ⓒ이미연

어쩌면 영이의 편식이 불편한 내 마음은 골고루 안 먹어서 발생할 영양의 불균형에 대한 걱정보다는 ’내가 이렇게까지 했는데 편식을 하는거야?‘ 하는 노력에 대한 실망과 보상심리가 발동한 것은 아닐까.

먹고 싶은 것과 먹고 싶지 않은 것에 대한 영이의 의사는 당연히 존중받아야 하는데, 나의 노력에 대한 ’당연한 기대‘를 꿈꾸며 아이의 의사를 간과하거나 무시한 것은 아닐까.

모든 사람에게는 자신의 견해와 감정을 표현할 권리가 있다.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영유아도 권리의 주체자로서 그들의 견해와 감정을 표현할 권리가 있으며, 영유아의 의견은 연령과 성숙도에 따라 정당한 비중이 주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영유아는 말로 의사소통이 가능하기 훨씬 이전부터 울음, 표정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감정, 생각과 희망을 전달하고, 선택한다. 성인은 유아의 의견을 존중하기 위해 저마다 가진 표현의 의미를 이해하고, 귀 기울여야 한다.

아이들은 ’싫어하는 음식을 꼭 먹어야 할까?‘ 의문이 든다. 성인인 나도 좋아하지 않는 음식이 있다. 그 누가 먹으라고 권해도, 아무리 몸에 좋다고 설명해줘도, 굳이 먹지 않는 몇몇 음식들. 그런 음식이 살다 보니 언젠가부터 먹게 되거나, 좋아질 때도 있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좋아하는 음식이 있고, 싫어하는 음식이 있을 뿐. 자라면서 더 좋아하는 음식이 있고, 어느 날부터 안 먹게 되는 음식도 있겠지.

한편, 영이가 편식을 해서 특정 영양소 결핍이 걱정된다면 다른 재료나 음식으로 보완할 수도 있다. 볶고, 굽고, 삶고, 찌고, 튀기고, 다양한 요리법을 활용하여 싫어하는 음식을 맛있게 만들어볼 수도 있다. 그 과정을 영이와 함께 하며 음식 자체에 흥미를 갖는 방법도 가능할 것이다. 이건 어른인 나의 몫이다.

기왕이면 좋은 재료로 건강한 음식을 만들고, 다양한 맛을 경험할 기회를 제공하고 싶었던 것처럼, 이유식을 만들고 끼니를 준비하는 일련의 과정은 내가 해야 할 당연할 일을 했을 뿐이다.

그 음식들을 먹어 본 후에 자신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선택하고 표현하는 것은 영이의 당연한 권리임을 불편해하지 말자. 부모의 의무에 따른 보상을 아이에게 요구하고 아이의 의사를 무시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엄마와 아이 또한 서로 다른 인간 대 인간으로서 아이의 모든 마음과 표현을 이해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렇기에 내가 생각하는 것이 곧 아이의 생각일 거라는 추측과 자신이 아이를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접어두고, 아이의 표정과 행동, 표현을 바로 들을 수 있는 눈과 귀와 마음을 열어두는 노력이 필요하다.

*칼럼니스트 이미연은 아동인권옹호활동을 하는 국제아동인권센터의 연구원으로, 가장 작은 자를 위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작은 힘을 보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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