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하니까 파견 발령… 육아휴직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죠”
“임신하니까 파견 발령… 육아휴직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죠”
  • 권현경 기자
  • 승인 2021.09.08 09: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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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대한민국 워킹맘 보고서①] 24개월 자녀 둔 금융사무직 강희수 씨

【베이비뉴스 권현경 기자】

코로나19가 집어삼킨 대한민국, 워킹맘들은 그야말로 ‘멘붕’에 빠졌다. 2021년을 살아가는 열 명의 워킹맘을 만나 생생한 목소리를 직접 듣고 정부 정책이 개별 가정에 잘 전달되고 있는지 확인했다. 가정·직장·사회 내에서 차별받는 워킹맘들을 위해 우리 사회는 어떤 대안이 필요한지 고민했다. -기자 말 

24개월 된 자녀를 둔 증권사를 다니는 강희수(가명·34) 씨는 16년 차 직장인이다. 강 씨는 지방에 있는 친정에 아이를 맡긴 채 ‘맞벌이 주말부모’로 지내고 있다. ⓒ베이비뉴스
24개월 된 자녀를 둔 증권사를 다니는 강희수(가명·34) 씨는 16년 차 직장인이다. 강 씨는 지방에 있는 친정에 아이를 맡긴 채 ‘맞벌이 주말부모’로 지내고 있다. ⓒ베이비뉴스

“아이는 지금 지방에 계시는 친정 부모님께서 봐주고 계세요. 금요일 퇴근해서 아기 아빠랑 친정으로 내려가서요, 일요일에 서울로 돌아와 다음 날 출근합니다. 아이가 아직 어려서 엄마 아빠와 헤어지는 걸 몰라요. 아이가 다른 데 신경 쓰고 있을 때 몰래 도망치듯 같이 있는 공간을 빠져나와 서울로 옵니다.”

증권사를 다니는, 24개월 자녀를 둔 강희수(가명·34) 씨는 16년 차 직장인이다. 강 씨는 지방에 있는 친정에 아이를 맡긴 채 ‘맞벌이 주말부모’로 지내고 있다. 친정에는 아이의 할머니, 할아버지와 남매 동생이 강 씨의 아이를 돌본다.   

강 씨는 “출근 시간이 다른 사람보다 빠르고 퇴근이 늦는 경우도 종종 있어 아이를 양육하기에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면서 “출산 후에 한 달씩 두 차례 서울에서 아이를 키우면서 직장을 다녀보려고 해봤으나 서울에 있는 시댁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강 씨는 일과 육아를 병행하면서 신체적으로 심리적으로 너무 지쳐 있었다. 강 씨의 친정엄마는 한 날 강 씨에게 “딸인 너부터 좀 살고 보자”고 하셨단다. 강 씨는 과감하게 양육을 포기하고 아이를 친정으로 내려보내게 됐다고 털어놨다.   

강 씨는 2005년부터 다닌 이 직장에서 결혼하고, 임신·출산했다. 그런데 출산휴가만 쓰고, 육아휴직은 쓰지 못한 채 업무에 복귀했다. 지난 7월 27일 오후 5시 서울 서초동 베이비뉴스 스튜디오에서 강 씨를 만나 직장생활을 하면서 임신·출산·양육 과정에서 있었던 일을 자세히 들어봤다. 인터뷰는 취재원 보호를 위해 가면을 쓰고 진행했다.
  
◇ “임신 사실 알리니까…‘축하한다’가 아니라 ‘긴급회의하자’”

강희수 씨는 회사에 임신 사실을 알리자, '축하한다'가 아니라 '긴급회의하자 강희수 임신했대'였다. 임신 중에 배려 없는 업무 지시, 파견 발령 등도 이어졌고 결국 육아휴직은 쓰지 못했다. ⓒ베이비뉴스
강희수 씨는 회사에 임신 사실을 알리자, '축하한다'가 아니라 '긴급회의하자 강희수 임신했대'였다. 임신 중에 배려 없는 업무 지시, 파견 발령 등도 이어졌고 결국 육아휴직은 쓰지 못했다. ⓒ베이비뉴스

결혼 후 일 년쯤 지나 강 씨는 임신 사실을 확인했다. 강 씨는 회사에 임신 사실을 알렸다. “‘축하한다’가 아니라 ‘긴급회의하자 강희수 임신했대’였다”면서 반응은 놀랍지도 않았다고 했다. 강 씨는 “임신하기 전부터 몇 월부터 몇 월 사이에 출산을 안 하는 조건으로 제가 그 부서에 합류하길 상사가 바랐다”면서 놀라지 않은 이유를 설명했다. 

특정 시기에 아이를 가지지 말라는 건 누가 얘기했을까. 강 씨는 “상사끼리 이야기를 했던 것”이라고 했다. 부서 이동 전에 상사들끼리 “얘는 아이 낳을 기혼자인데 우리 부서에 와서 막 맘대로 임신하면 내가 필요할 때 얘를 쓸 수가 없잖아”, “그러니 몇 월부터 몇 월 사이에는 출산 안 하는 조건으로 우리 부서로 오는 거로 이야기해.” 이런 말이 오고 갔던 것. 강 씨는 그 조건에 동의해야 해당 부서로 옮길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실제 강 씨는 그 기간을 피해 임신하고 출산했다. 

임신 초기, 퇴근 5분 전. 직장 상사 A 씨는 강 씨에게 “내일 상품 설명서 고객한테 줘야 하는데 OO 회장님이니까 예쁘게 제작해봐, 알았지?”라고 했다. A 씨는 퇴근 시간 무렵, 여의도 인쇄소 상황을 모르지 않을 터. 요구가 황당해 강 씨는 “내일까지 필요하다고요?”하고 되물었더니, “못 들었어? 내일. 나 퇴근할 테니까 네가 알아서 하고 올려놔. 안 하면 알지?”라고 하곤 퇴근해버렸다. 

그날은 미세먼지도 심한 날이었고, 퇴근 5분밖에 안 남았는데 임신한 직원에게 굳이 일을 시켰다. 인쇄소도 퇴근 시간이 있으니 그 시간엔 새 일거리를 잘 받지 않으려고 한다. 수십 군데 인쇄소에 들러 인쇄가 가능한 곳을 찾아다녔다. 인쇄소를 찾아 맡기고 다 될 때까지 기다렸다. 두 시간이 더 걸렸다.  

며칠 후, 상사 A 씨는 이 일을 두고 강 씨에게 업무 지시를 했는데 받아들이는 태도가 불편했다고 지적했다. 강 씨도 임산부를 전혀 배려해주지 않은 부분에 대해 마음에 담아뒀던 것들을 쏟아냈다. “아랫배가 당기고 콕콕 찌르고 이러다가 하혈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얼마 후 임신 중인 강 씨가 인사이동을 해야 한다는 말이 돌았다. 강 씨는 상무에게 원하는 부서에 좀 보내 달라고 했더니, “야 너 같은 헌 거를 어디서 써? 나 같아도 새것 쓰고 싶지 헌 거 쓰고 싶냐?”라고 했다. 그날 밤, 강 씨는 하혈을 했다. 

강 씨는 임신 중에 파견 발령을 받았다. 당시 회사는 신입사원을 채용할 상황도 아니었고, 채용하더라도 바로 현장에 투입할 수 없어 유경험자인 강 씨가 가야 하는 상황. 게다가 그 자리에서 일하다 출산휴가를 다녀오면 그 직군에서는 파견 근무조차도 못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얘길 상사로부터 들었다. 울며 겨자 먹기 심정으로 갈 수밖에. 문제는 강 씨도 해당 업무 공백이 있어서, 수시로 바뀌는 제도와 정책을 즉각 업무에 반영하려면 공부하고 확인할 시간이 필요했다. 임신 후 파견 발령, 그리고 퇴근 후 늦게까지 나머지 공부를 해야만 했다.  

◇ “여자들이 다 독해 빠져서 아이를 버리다시피하고 회사를 나오는 것 같아”

강희수 씨는 출산휴가 후 회사에 복귀해서 처음 들은 얘기는 “우리 회사 여자들이 다 독해 빠져서 아이를 그냥 버리다시피하고 회사를 나오는 것 같아”이었다고 말했다. ⓒ베이비뉴스
강희수 씨는 출산휴가 후 회사에 복귀해서 처음 들은 얘기는 “우리 회사 여자들이 다 독해 빠져서 아이를 그냥 버리다시피하고 회사를 나오는 것 같아”이었다고 말했다. ⓒ베이비뉴스

“너는 내가 아끼니까 너에게만 하는 말이지만 다른 사람 다 써도 너는 육아휴직은 절대 쓰지 마라. 네가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쉬고 싶은 거 다 쉬고 나오면 회사는 너를 예쁘게 봐주겠어?”

출산휴가 쓰고 복귀하기 전에 친한 선배가 강 씨에게 한 얘기다. 강 씨는 파견 상태에서 출산휴가에 들어갔기 때문에 돌아갈 곳이 불분명한 상태라 굉장히 불안하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다. 

“육아휴직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건 행선지가 없었기 때문이에요. 회사에서 저와 같은 사례(파견 상태에서 출산휴가)는 한 명도 없었던 것 같아요. 출산휴가 후 복귀하기 3일 전에서야 근무지가 결정됐어요. 그것도 출산 전 소속이 아닌 다른 소속으로 이동해서 근무하게 됐고요, 만약에 육아휴직까지 쓰고 나왔더라면 지금 일하는 부서에서는 일 못 하지 않았을까요?” 

승진 시기에 잘못 육아휴직을 썼다가는 원하지 않는 부서로 빠질 수 있다는 말이 있어 회사 내 10% 정도는 출산 후 육아휴직을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일에 대한 열정과 욕심이 많은 사람에게는 육아휴직은 ‘짐’이에요.” 

100일쯤 된 아이를 두고 회사에 나오려니 모든 게 걱정인 강 씨는 피눈물이 났지만 어쩔 수 없었다. 회사에 복귀해서 강 씨가 처음 들은 얘기는 “우리 회사 여자들이 다 독해 빠져서 아이를 그냥 버리다시피하고 회사를 나오는 것 같아”였다고. 강 씨는 “아이를 버린 게 아니라 아기와 함께 질 높은 삶을 살기 위해 회사에 나오는 것”이라고 항변했다.  

◇ “아이한테 미안한 마음은 항상 가지고 있어요”

강희수 씨는 아이가 커서 "저처럼 당당하게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면서 "나도 엄마처럼 멋진 커리어우먼이 될거야라는 생각을 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베이비뉴스
강희수 씨는 아이가 커서 "저처럼 당당하게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면서 "나도 엄마처럼 멋진 커리어우먼이 될거야라는 생각을 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베이비뉴스

“제가 원하는 부서에서 원하는 일을 하는 게 보장됐다면 백번 생각해도 육아휴직을 썼을 거예요.” 강 씨는 유아교육을 전공했다. 누구보다 옆에서 아이 발달이 잘 진행되고 있는지 확인하고 발달에 맞춰 잘 키우고 싶다. 

매주 금요일 주중에 아이를 위해 준비한 장난감, 책 등 물품을 양손 무겁게 들고 친정으로 향한다. 현관에 들어서면 아이가 뛰어나와 손에 뭐가 들렸는지 보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힘들었던 한 주간의 피로도 싹 사라진다. 요즘엔 영상통화도 하루에 서너 시간씩 한다. 그래도 엄마와 상호작용이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면 부족하지 않을까 걱정. 

친정엄마에 대한 미안함도 크다.

“엄마가 아이 보면서 엄지손가락을 많이 사용하셔서 엄지손가락을 접으면 다시 잘 안 펴지더라고요. 아이 때문에 무리해서 그런 게 아닌지…. 병원에서는 충분히 쉬고 손가락도 많이 사용하지 말라고 하는데 현실은 그럴 수 없으니 제가 불효자구나 싶어요. 저희 엄마는요, 저한테 내 딸만큼은 당당한 커리어우먼, 당당한 엄마가 돼서 엄마처럼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세요. IMF 때 아빠가 가정주부였던 엄마한테 일을 좀 해줘야겠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때 엄마가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대요. 그래서 엄마는 그런 심적 고통을 물려주고 싶지 않으셨대요. 좋은 직장 다닐 수 있을 만큼 다니라고 응원하고 지지해주세요.”

강 씨도 아이가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당당하게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제 딸이 저처럼 당당하게 삶을 살았으면 좋겠어요. 저희 딸이 엄마의 성장 과정을 보면서 ‘나도 엄마처럼 열심히 공부하고 잘 성장해서 멋진 커리어우먼이 될 거야’라는 생각을 했으면 좋겠어요.”

사회에 바라는 건 없을까. “임신 중에 인사이동을 할 수 없다는 단서 조항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출산휴가나 육아휴직 이후에는 현재 소속된 부서에서 이동할 수 없다는 단서 조항도 추가되면 좋겠고요.” 강희수 씨의 간절한 바람이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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