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뉴스 권현경 기자】
코로나19가 집어삼킨 대한민국, 워킹맘들은 그야말로 ‘멘붕’에 빠졌다. 2021년을 살아가는 열 명의 워킹맘을 만나 생생한 목소리를 직접 듣고 정부 정책이 개별 가정에 잘 전달되고 있는지 확인했다. 가정·직장·사회 내에서 차별받는 워킹맘들을 위해 우리 사회는 어떤 대안이 필요한지 고민했다. -기자 말
“아이는 지금 지방에 계시는 친정 부모님께서 봐주고 계세요. 금요일 퇴근해서 아기 아빠랑 친정으로 내려가서요, 일요일에 서울로 돌아와 다음 날 출근합니다. 아이가 아직 어려서 엄마 아빠와 헤어지는 걸 몰라요. 아이가 다른 데 신경 쓰고 있을 때 몰래 도망치듯 같이 있는 공간을 빠져나와 서울로 옵니다.”
증권사를 다니는, 24개월 자녀를 둔 강희수(가명·34) 씨는 16년 차 직장인이다. 강 씨는 지방에 있는 친정에 아이를 맡긴 채 ‘맞벌이 주말부모’로 지내고 있다. 친정에는 아이의 할머니, 할아버지와 남매 동생이 강 씨의 아이를 돌본다.
강 씨는 “출근 시간이 다른 사람보다 빠르고 퇴근이 늦는 경우도 종종 있어 아이를 양육하기에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면서 “출산 후에 한 달씩 두 차례 서울에서 아이를 키우면서 직장을 다녀보려고 해봤으나 서울에 있는 시댁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강 씨는 일과 육아를 병행하면서 신체적으로 심리적으로 너무 지쳐 있었다. 강 씨의 친정엄마는 한 날 강 씨에게 “딸인 너부터 좀 살고 보자”고 하셨단다. 강 씨는 과감하게 양육을 포기하고 아이를 친정으로 내려보내게 됐다고 털어놨다.
강 씨는 2005년부터 다닌 이 직장에서 결혼하고, 임신·출산했다. 그런데 출산휴가만 쓰고, 육아휴직은 쓰지 못한 채 업무에 복귀했다. 지난 7월 27일 오후 5시 서울 서초동 베이비뉴스 스튜디오에서 강 씨를 만나 직장생활을 하면서 임신·출산·양육 과정에서 있었던 일을 자세히 들어봤다. 인터뷰는 취재원 보호를 위해 가면을 쓰고 진행했다.
◇ “임신 사실 알리니까…‘축하한다’가 아니라 ‘긴급회의하자’”
결혼 후 일 년쯤 지나 강 씨는 임신 사실을 확인했다. 강 씨는 회사에 임신 사실을 알렸다. “‘축하한다’가 아니라 ‘긴급회의하자 강희수 임신했대’였다”면서 반응은 놀랍지도 않았다고 했다. 강 씨는 “임신하기 전부터 몇 월부터 몇 월 사이에 출산을 안 하는 조건으로 제가 그 부서에 합류하길 상사가 바랐다”면서 놀라지 않은 이유를 설명했다.
특정 시기에 아이를 가지지 말라는 건 누가 얘기했을까. 강 씨는 “상사끼리 이야기를 했던 것”이라고 했다. 부서 이동 전에 상사들끼리 “얘는 아이 낳을 기혼자인데 우리 부서에 와서 막 맘대로 임신하면 내가 필요할 때 얘를 쓸 수가 없잖아”, “그러니 몇 월부터 몇 월 사이에는 출산 안 하는 조건으로 우리 부서로 오는 거로 이야기해.” 이런 말이 오고 갔던 것. 강 씨는 그 조건에 동의해야 해당 부서로 옮길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실제 강 씨는 그 기간을 피해 임신하고 출산했다.
임신 초기, 퇴근 5분 전. 직장 상사 A 씨는 강 씨에게 “내일 상품 설명서 고객한테 줘야 하는데 OO 회장님이니까 예쁘게 제작해봐, 알았지?”라고 했다. A 씨는 퇴근 시간 무렵, 여의도 인쇄소 상황을 모르지 않을 터. 요구가 황당해 강 씨는 “내일까지 필요하다고요?”하고 되물었더니, “못 들었어? 내일. 나 퇴근할 테니까 네가 알아서 하고 올려놔. 안 하면 알지?”라고 하곤 퇴근해버렸다.
그날은 미세먼지도 심한 날이었고, 퇴근 5분밖에 안 남았는데 임신한 직원에게 굳이 일을 시켰다. 인쇄소도 퇴근 시간이 있으니 그 시간엔 새 일거리를 잘 받지 않으려고 한다. 수십 군데 인쇄소에 들러 인쇄가 가능한 곳을 찾아다녔다. 인쇄소를 찾아 맡기고 다 될 때까지 기다렸다. 두 시간이 더 걸렸다.
며칠 후, 상사 A 씨는 이 일을 두고 강 씨에게 업무 지시를 했는데 받아들이는 태도가 불편했다고 지적했다. 강 씨도 임산부를 전혀 배려해주지 않은 부분에 대해 마음에 담아뒀던 것들을 쏟아냈다. “아랫배가 당기고 콕콕 찌르고 이러다가 하혈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얼마 후 임신 중인 강 씨가 인사이동을 해야 한다는 말이 돌았다. 강 씨는 상무에게 원하는 부서에 좀 보내 달라고 했더니, “야 너 같은 헌 거를 어디서 써? 나 같아도 새것 쓰고 싶지 헌 거 쓰고 싶냐?”라고 했다. 그날 밤, 강 씨는 하혈을 했다.
강 씨는 임신 중에 파견 발령을 받았다. 당시 회사는 신입사원을 채용할 상황도 아니었고, 채용하더라도 바로 현장에 투입할 수 없어 유경험자인 강 씨가 가야 하는 상황. 게다가 그 자리에서 일하다 출산휴가를 다녀오면 그 직군에서는 파견 근무조차도 못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얘길 상사로부터 들었다. 울며 겨자 먹기 심정으로 갈 수밖에. 문제는 강 씨도 해당 업무 공백이 있어서, 수시로 바뀌는 제도와 정책을 즉각 업무에 반영하려면 공부하고 확인할 시간이 필요했다. 임신 후 파견 발령, 그리고 퇴근 후 늦게까지 나머지 공부를 해야만 했다.
◇ “여자들이 다 독해 빠져서 아이를 버리다시피하고 회사를 나오는 것 같아”
“너는 내가 아끼니까 너에게만 하는 말이지만 다른 사람 다 써도 너는 육아휴직은 절대 쓰지 마라. 네가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쉬고 싶은 거 다 쉬고 나오면 회사는 너를 예쁘게 봐주겠어?”
출산휴가 쓰고 복귀하기 전에 친한 선배가 강 씨에게 한 얘기다. 강 씨는 파견 상태에서 출산휴가에 들어갔기 때문에 돌아갈 곳이 불분명한 상태라 굉장히 불안하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다.
“육아휴직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건 행선지가 없었기 때문이에요. 회사에서 저와 같은 사례(파견 상태에서 출산휴가)는 한 명도 없었던 것 같아요. 출산휴가 후 복귀하기 3일 전에서야 근무지가 결정됐어요. 그것도 출산 전 소속이 아닌 다른 소속으로 이동해서 근무하게 됐고요, 만약에 육아휴직까지 쓰고 나왔더라면 지금 일하는 부서에서는 일 못 하지 않았을까요?”
승진 시기에 잘못 육아휴직을 썼다가는 원하지 않는 부서로 빠질 수 있다는 말이 있어 회사 내 10% 정도는 출산 후 육아휴직을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일에 대한 열정과 욕심이 많은 사람에게는 육아휴직은 ‘짐’이에요.”
100일쯤 된 아이를 두고 회사에 나오려니 모든 게 걱정인 강 씨는 피눈물이 났지만 어쩔 수 없었다. 회사에 복귀해서 강 씨가 처음 들은 얘기는 “우리 회사 여자들이 다 독해 빠져서 아이를 그냥 버리다시피하고 회사를 나오는 것 같아”였다고. 강 씨는 “아이를 버린 게 아니라 아기와 함께 질 높은 삶을 살기 위해 회사에 나오는 것”이라고 항변했다.
◇ “아이한테 미안한 마음은 항상 가지고 있어요”
“제가 원하는 부서에서 원하는 일을 하는 게 보장됐다면 백번 생각해도 육아휴직을 썼을 거예요.” 강 씨는 유아교육을 전공했다. 누구보다 옆에서 아이 발달이 잘 진행되고 있는지 확인하고 발달에 맞춰 잘 키우고 싶다.
매주 금요일 주중에 아이를 위해 준비한 장난감, 책 등 물품을 양손 무겁게 들고 친정으로 향한다. 현관에 들어서면 아이가 뛰어나와 손에 뭐가 들렸는지 보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힘들었던 한 주간의 피로도 싹 사라진다. 요즘엔 영상통화도 하루에 서너 시간씩 한다. 그래도 엄마와 상호작용이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면 부족하지 않을까 걱정.
친정엄마에 대한 미안함도 크다.
“엄마가 아이 보면서 엄지손가락을 많이 사용하셔서 엄지손가락을 접으면 다시 잘 안 펴지더라고요. 아이 때문에 무리해서 그런 게 아닌지…. 병원에서는 충분히 쉬고 손가락도 많이 사용하지 말라고 하는데 현실은 그럴 수 없으니 제가 불효자구나 싶어요. 저희 엄마는요, 저한테 내 딸만큼은 당당한 커리어우먼, 당당한 엄마가 돼서 엄마처럼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세요. IMF 때 아빠가 가정주부였던 엄마한테 일을 좀 해줘야겠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때 엄마가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대요. 그래서 엄마는 그런 심적 고통을 물려주고 싶지 않으셨대요. 좋은 직장 다닐 수 있을 만큼 다니라고 응원하고 지지해주세요.”
강 씨도 아이가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당당하게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제 딸이 저처럼 당당하게 삶을 살았으면 좋겠어요. 저희 딸이 엄마의 성장 과정을 보면서 ‘나도 엄마처럼 열심히 공부하고 잘 성장해서 멋진 커리어우먼이 될 거야’라는 생각을 했으면 좋겠어요.”
사회에 바라는 건 없을까. “임신 중에 인사이동을 할 수 없다는 단서 조항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출산휴가나 육아휴직 이후에는 현재 소속된 부서에서 이동할 수 없다는 단서 조항도 추가되면 좋겠고요.” 강희수 씨의 간절한 바람이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Copyrightsⓒ베이비뉴스 pr@ibaby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