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이 낳기 직전까지 일했는데, 넌 왜 그러냐는 말에...”
“나는 아이 낳기 직전까지 일했는데, 넌 왜 그러냐는 말에...”
  • 조강희 기자
  • 승인 2021.09.09 09: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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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대한민국 워킹맘 보고서②] 12년차 엄마 겸 5년 경력 간호사 최정원 씨

【베이비뉴스 조강희 기자】

코로나19가 집어삼킨 대한민국, 워킹맘들은 그야말로 ‘멘붕’에 빠졌다. 2021년을 살아가는 열 명의 워킹맘을 만나 생생한 목소리를 직접 듣고 정부 정책이 개별 가정에 잘 전달되고 있는지 확인했다. 가정·직장·사회 내에서 차별받는 워킹맘들을 위해 우리 사회는 어떤 대안이 필요한지 고민했다. -기자 말

11살 아들을 키우면서 이직을 열 번도 넘게 한 12년차 워킹맘 최정원(가명·36) 씨는 요양병원 야간 전담 간호사다. 그는 야간 간호사가 직접 육아와 직장 생활을 병행할 수 있는 최적의 대안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베이비뉴스
11살 아들을 키우면서 이직을 열 번도 넘게 한 12년차 워킹맘 최정원(가명·36) 씨는 요양병원 야간 전담 간호사다. 그는 야간 간호사가 직접 육아와 직장 생활을 병행할 수 있는 최적의 대안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베이비뉴스

11살 아들을 키우고 있는 12년차 워킹맘 최정원(가명·36) 씨는 이직만 10번이 넘는 ‘프로 이직러’(?)다. 좋은 직장에서 오랫동안 일하고 싶은 것이 당연할 터인데, 무엇이 그를 '프로 이직러'가 되게 만들었을까?

유명 대학병원 간호사로 출발한 그녀는 신규 간호사 시절 갑작스런 임신으로 워킹맘이 됐다.

어느 덧 초등학생이 된 아들을 키우는 지금은 요양병원에서 밤 9시부터 다음날 아침 7시까지 야간전담 간호사로 근무한다. 퇴근 후 아이들의 아침 점심 저녁 식사를 챙겨 주고 남아 있는 집안 일을 하고서야 간간이 쪽잠을 청하고 저녁이 되면 또 출근하는 일상이 반복된다. 저녁 시간에는 퇴근하는 남편이 아이를 돌본다.

“아이가 어릴 때, 손길이 많이 필요하잖아요. 남편은 직장생활과 농구동호회 같은 외부활동때문에 집을 비울 때가 많았어요. 맞벌이였지만 결국 저 혼자 육아를 담당했어요. 물론 돌 때부터 15개월 때까지, 또 간간이 어린이집·유치원 방학이며 아이가 아플 때 친정 어머니랑 시어머니께 맡기곤 했어요. 어르신들이 손주 보시는 것도 너무 길어지면 힘들더라구요. 그래도 남편이 4~5년 전부터는 설거지나 빨래, 아이와 놀아주기 같은 건 잘하는 편이에요.”

한국사회에서 남성의 육아휴직은 여전히 흔하지 않다. 남편은 아이를 낳던 날도 출근할 뻔했다고 한다. “제가 이제껏 남편한테 육아휴직 못하냐고 몇 번이나 물었어요. 그런데 자기 회사에는 그런 거 없다고 하던데요. 나중에 알게 됐지만, 어느 회사든 남편도 육아휴직을 쓸 수 있어야 한대요. 남편 회사가 육아에 대한 인식이 앞선 곳은 아니었던 듯합니다.”

◇ “나는 아이 낳기 직전까지 일했는데, 넌 왜 그러냐” 상사의 말에…병가 대신 사직 선택

첫 직장에서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임산부가 된 그는 “아이가 있다는 게 간호사를 포기할 조건은 되지 않는다”고 말한 첫 번째 수간호사를 비롯해 상사와 동료들의 애정 어린 도움을 받으며 근무했다.

하지만 임신만큼이나 갑작스런 조기진통에 병가를 신청하자, 두 번째 수간호사는 “너에게 허락된 더 이상의 휴가는 없다”며 병가를 만류했다. 육아휴직을 쓰기 위한 조건인 경력 1년을 못 채웠다는 게 이유였다. 현재도 6개월 미만 근로자는 사업주에 의해 육아휴직이 거부될 수 있다. 

“‘나는 아기 낳기 직전까지 병동에서 일하다가 아이 낳으러 갔는데, 너는 왜 그러냐’고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 그 말을 들은 지가 10년이 훨씬 지났는데도 절대 잊지 못합니다.”

간호사들의 ‘임신 순번제’는 암암리에 있었던 그 시절의 풍경이다. 간호사들이 임신을 하면 교대근무조차 운영이 어렵기에, 3년차 이하는 눈치를 많이 봤던 게 사실이라고 했다. 야간 근무자가 부족해 유산 뒤 산후조리도 못한 채 바로 복귀한 간호사도 있었다.

임신한 상태에서, 또한 출산을 하고 나서 일을 하기 쉽지 않다는 걸 깨닫고 아이를 어떻게든 지켜야겠다는 마음에 병가 대신 사직을 택한 후, 간호사로서 일한 시간은 5년 남짓. 엄마로 산 12년의 절반 밖에 되지 않는다.

두 번째 직장을 그만둔 것도 아이에 대한 고려 때문이었다. 어린이집에서 아이가 27개월 때 선생님에게 발길질을 당해 아이를 치료하면서 법적 절차를 진행했다. 어린이집에서 그런 일을 당하자, 역시 돌볼 수 있는 건 자기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최 씨.

“제가 그 때 1년 조금 넘게 아이를 돌봤어요. 지금까지 미안한 마음과 트라우마가 너무 심해요.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았으면 생기지 않았을 일이라고 생각하니까요. 아이는 기억나지 않는다지만, 저는 절대로 잊지 못할 것 같아요. 만약에 아이를 다시 키우게 된다면 일은 안 하고 싶어요. 정말로, 아이만 키우고 싶어요.”

4살 때도 집 근처 어린이집을 보냈지만, 화장실에서 넘어진 것을 선생님이 알려 주지 않아 한 달 만에 퇴소시켰다. 다섯 살에 연장보육이 가능한 유치원을 보낸 뒤부터 다행히 순탄하게 성장했다. 그 시절 아이를 양육하고, 육아 정보도 공유하기 위해 키즈카페를 열었지만 얼마 못 가 접고 또다시 간호사로 돌아갔다.

◇ 육아와 직장 사이 갈팡질팡…‘더 좋은 직장’ 아닌 ‘이직 그 자체’가 고민

최정원(가명) 씨는 워킹맘으로서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는 직업선택이 여성에게는 특히 더 어렵다고 말한다. 간호사에 대한 만족도와 자부심이 높은 그는 아이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임시직도 계약직도 마다하지 않았다. ⓒ베이비뉴스  
최정원(가명) 씨는 워킹맘으로서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는 직업선택이 여성에게는 특히 더 어렵다고 말한다. 간호사에 대한 만족도와 자부심이 높은 그는 아이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임시직도 계약직도 마다하지 않았다. ⓒ베이비뉴스  

워킹맘으로 살아온 12년. 일 때문에 아이를 놓을 수도, 아이 때문에 일을 놓을 수도 없었다는 최 씨. 하지만 1년 내외의 단기 근무가 대부분인 그의 이력서를 보면 ‘경력관리’라는 말은 낯설다. 현직 역시 ‘요양병원 야간전담 계약직 간호사’다. 육아에 대한 시간 안배를 해 줄 수 있는 직장을 수도 없이 찾아다닌 여정의 결과다.

“아이가 11살이니, 몇 년 지나면 중학교에 가겠죠. 육아는 한시름 놨겠지만, 그 때면 제가 마흔이 다 되는데 이직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그는 ‘간호사’라는 일에 대해 만족도가 높은 편이어서 마음이 더욱 복잡하다. 일하고 싶은 욕구가 항상 있고, 아이의 안전만 보장된다면 계약직이든 뭐든 가리지 않고 일해 왔다.

“‘나도 첫 번째 직장에서 그만 두지 않고 원하는 부서에서 오랫동안 일을 했으면 어땠을까’ 상상도 하고, ‘조금 어렵긴 했지만, 일을 안 그만 뒀어도 좋았을 걸’ 그렇게 생각하기도 하죠. 그렇다고 아이가 걸림돌이라는 생각은 하고 싶지 않아요.”

최 씨에 따르면 취업 시장에서 미혼자와 경쟁해야 하는 워킹맘 간호사는 상대적으로 불리하다. 가장 최근에 봤던 블라인드 면접에서 면접관들은 워킹맘인 그에게 주 양육자와 일-육아 병행의 방법, 둘째 계획 등을 질문했다. 솔직한 대답 후에 합격 통보와 불합격 통보가 동시에 왔다는 게 일말의 희망일까. “하지만 질문을 받는다는 그 자체는 면접관들도 그런 것을 신경 쓴다는 거잖아요.”

3교대가 기본인 간호사의 직장생활로는 코로나19 상황에서 육아를 병행하기 어렵다. 학교는 물론 돌봄교실과 학원도 운영과 휴업을 반복해, 양육과 직업을 양손에 잡고 있기가 버거웠다. 탄탄하다 싶은 직장은 출퇴근 거리가 만만찮았다.

꾸역꾸역 교대근무를 이어 오다 지난해 결국 몇 달 쉬었고, 그 사이 모아놓은 돈은 반토막이 났다. 아이는 학교에 정식 등교를 못하고, 감염병에 대한 간호사로서의 불안감도 컸다. 남편과 육아 교대를 할 수 있는 야간 전담 간호사가 일과 아이를 동시에 돌볼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었다.

“보호자 1명이라도 같이 집에 있어 줘야 해서 제가 야간 전담을 하는 거죠. 잠이 많은 편이었는데, 4~5시간 정도로 줄였어요. 제가 조금만 무리를 하면 아이를 키울 수 있으니까요. 그렇다고 저도 아이도 대단한 걸 하진 않아요. 그냥 제가 자는 동안 혼자서 책 보거나, 게임하거나, TV 보는 거죠. 어쨌든 코로나19가 끝나야 안정되게 아이를 키울 수 있어요.”

◇ ‘기피직종’ 야간전담 상당수가 워킹맘… “일 안 하면 안 돼요?” 아이 질문에 커지는 고민

최 씨와 같은 야간전담 간호사의 상당수는 워킹맘이다. 간호사 세계에서는 기피 직종이지만 워킹맘 간호사들은 경력 단절을 비켜가면서 아이도 키우는 일석이조의 기회라고 여긴다. ⓒ최정원(가명) 씨 제공
최 씨와 같은 야간전담 간호사의 상당수는 워킹맘이다. 간호사 세계에서는 기피 직종이지만 워킹맘 간호사들은 경력 단절을 비켜가면서 아이도 키우는 일석이조의 기회라고 여긴다. 사진은 한 요양병원의 모습. ⓒ베이비뉴스

야간전담 간호사는 기피 직종이다. 하지만 야간전담자의 상당수는 워킹맘이다. “이거 없었으면 일도 쉬어야 되고, 경력도 단절됐을 거예요. 저에게는 일도 하고 아이도 키우는 일석이조의 기회죠. 코로나19 끝나기 전까지는 계속해야 될 것 같아요.”

코로나19가 없다면 워킹맘의 모든 걱정은 사라질까. 그렇지도 않다. 어릴 때 겪는 병치레만으로도 직장에 있는 최 씨의 마음은 조마조마했다.

“어린이집에서 아이가 열난다고 연락이 오면 참 난감하거든요. 데리러 가야 되는데 남편은 빠질 수 없다고 해요. 그러면 제가 직장에 사정을 얘기해서 조퇴해야 했죠. 하지만 육아와 관련된 조퇴나 휴가를 자유롭게 사용하지는 못했어요.”

세 살 때 아이는 기관지염이 심해 3박 4일 입원을 했다. 회사 사정상 전 직원 야근을 하고 있을 때였다.

“집에서 전화가 온 거에요. 너무 아팠는지 전에 들어보지 못한 울음소리를 내더라고요. 그래서 병원에 말씀드리고 저만 일찍 나와서 집으로 막 뛰어갔어요. 열이 40도가 넘어 울고 있는 아이 얼굴을 보니 마음이 너무 아팠죠. 아빠가 옆에 있어줬지만, 아이는 엄마를 먼저 찾으니까요. 입원시키고 휴가를 쓰고 싶었지만, 사정이 안 돼 친정 어머니께 맡겨 놓고 출근했어요. 만약 아이를 못 봐주실 상황이었으면 아찔했을 거예요.”

아이가 눈에 밟혀 직장을 그만 두고 싶은 적은 많았지만, 그 무렵엔 그 마음이 특히 커졌다.

“제가 아동간호를 배울 때 보니까, 아이가 36개월 이전까지가 양육의 ‘결정적 시기’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세 돌 까지는 어떻게든 제가 직접 키우고 싶었어요. 하지만 아이 돌 때부터 일을 했고, 한창 엄마만 찾을 나이의 아이를 두고 출근을 한다는 게 많이 힘들었어요. 새벽에 출근하려고 살금살금 문을 열어도 아이가 어떻게 알았는지 일어나서 바지 붙잡고 가지 말라고 울고불고 떼를 쓰더라고요. ”

아이에 대한 사랑만큼이나 직업에 대한, 간호사에 대한 그의 소신 역시 확고하다. 하지만 여전히 엄마와 간호사 사이에서 완전히 어느 한 쪽을 택하기 어려운 자신을 발견한다.

“직장 일은 사회 구성원의 한 몫을 한다는 의미가 있어요. 그러기 위해서 제 시간과 돈을 투자해서 공부도 했잖아요. 가족들에게도 보탬이 되고 자녀에게 더 해줄 수 있는 게 많아져요. 그런데 아이는 엄마와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드는 걸 많이 아쉬워해요. 그래서 아이가 ‘엄마, 일 안 하면 안 돼요?’라고 물으면 저 역시 ‘내가 일을 계속 하는 게 맞나?’ 고민이 됩니다.”

◇ 누구나 아이 낳아 키우려면… 근무 구조 개선해 육아기 워킹맘 경력단절 최소화해야

최정원(가명) 씨는 육아와 직장을 병행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당시의 자신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묻자 “힘들면 안 해도 돼. 꾸역꾸역 안 해도 돼.”라고 대답했다. ⓒ베이비뉴스

아이를 도맡아 키우면서 일한 사람도, 베이비시터를 고용한 사람도, 할머니·할아버지에게 맡긴 사람도, 아이를 키우면서 일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선지 같은 처지의 워킹맘들과 대화하다보면 다들 이런 말만 반복하게 된다. “어쩔 수 없지, 뭐.” “답이 없네.”

하지만 그 세월 나 혼자 힘들었던 게 아니라는 걸 확인하면서, 어디서 나오는지 모를 배짱 같은 것도 생겼다. 육아와 직장을 병행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당시의 그에게 지금 그는 이렇게 말한다. “힘들면 안 해도 돼. 꾸역꾸역 안 해도 돼.”

보육 시설은 늘었고, 제도도 개선됐다. 이제는 육아기에 근무하는 워킹맘은 경력 단절을 최소화할 수 있게 근무 구조를 새로 짜야 한다는 게 그의 바람이다. 그래야만 누구나 자신 있게 아이를 낳아서 키울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저희는 둘째가 안 생기기도 했지만 남편도 저도 둘째를 원하지는 않아요. 둘째까지 양육할 자신이 없는 거예요. 하물며 첫째도 부담스러워하는 부부들을 보면 마음이 안타까워요. 부모가 자녀를 양육하는 기쁨이 되게 크고 정말 큰 복인데, 쉽지 않다는 분들이 계시니 제도가 보완돼야죠.”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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