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 키우는 엄마가 무슨 정치를?” 정치인 엄마도 피해갈 수 없는 편견
“애 키우는 엄마가 무슨 정치를?” 정치인 엄마도 피해갈 수 없는 편견
  • 권현경 기자
  • 승인 2021.09.15 18: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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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대한민국 워킹맘 보고서⑤] 6살 된 자녀 둔 싱글맘 부산광역시의원 구경민 씨

【베이비뉴스 권현경 기자】

코로나19가 집어삼킨 대한민국, 워킹맘들은 그야말로 ‘멘붕’에 빠졌다. 2021년을 살아가는 열 명의 워킹맘을 만나 생생한 목소리를 직접 듣고 정부 정책이 개별 가정에 잘 전달되고 있는지 확인했다. 가정·직장·사회 내에서 차별받는 워킹맘들을 위해 우리 사회는 어떤 대안이 필요한지 고민했다. -기자 말 

지난 8월 4일 서울시 서초동 베이비뉴스 스튜디오에서 구경민 부산광역시의원을 만나 싱글맘으로서, 정치인으로서 일·가정 양립한 삶의 이야기를 들어 봤다. ⓒ베이비뉴스
지난 8월 4일 서울시 서초동 베이비뉴스 스튜디오에서 구경민 부산광역시의원을 만나 싱글맘으로서, 정치인으로서 일·가정 양립한 삶의 이야기를 들어 봤다. ⓒ베이비뉴스

“매일 아침 5시 반에서 6시 사이 눈을 뜹니다. 조간 뉴스 스크랩 다 하고요, 아이가 7시 반쯤 일어나면 아침 먹여 유치원 등원시키고 저도 의회로 출근합니다. 하루 일이 언제 끝나는지는 알 수가 없어요. 정치인에게 퇴근 시간은 없거든요. 늦어도 9시 이전에는 들어와서 아이 잠은 제가 재우겠다고 스스로 정했습니다. 씻기고 책 읽어주고 좀 놀다 재워놓고 그때부터 집안일을 합니다. 하루는 자정이 넘어야 끝나요.”

여느 워킹맘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일과. 여섯 살 된 자녀를 둔 부산광역시의원(기장군2 정관읍·장안읍·일광면·철마면) 구경민(42) 씨의 하루다. 구 씨는 2018년 6월 지방선거에 출마했을 때, 베이비뉴스 ‘우리동네 엄빠후보’ 기획보도 인터뷰로 소개된 주인공이다. 당시 ‘우리동네 엄빠후보’로 소개된 후보 중에서 당선에 성공한 몇 안 되는 당선인이었다.

당시 구 씨는 세 살 된 아이를 업고 선거 출마해 당선됐다. 이제 내년에 있을 재선을 바라보는 4년 차 의원. 그동안 싱글맘 정치인으로서 어떻게 아이 키우면서 일·가정을 병행하며 지냈을까. 지난 8월 4일 서울시 서초동 베이비뉴스 스튜디오로 구 씨를 초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 임신과 출산 그리고 폐업

구 씨는 간호대학을 나와 간호사 생활을 했다. 이후 기업에서 일하다 작은 개인사업을 시작했고 임신을 했다. 구 씨는 임신 중독으로 임신 기간 거의 절반 이상을 병원에 입원해 있어야 했다. 출산도 난산으로 굉장히 힘들어 일을 병행할 수 없었던 상황. 

“제가 하던 일이 육아휴직이나 출산휴가가 보장되는 일이 아니다 보니 일을 당장 그만두어야 했어요. 사업주는 대체할 수 있는 사람이 없으니 모든 게 정지가 돼 버리더라고요. 사회로부터 보호받지도 못하고 당장 생계와 연결돼 있는데 그만둘 수밖에 없었죠.” 

폐업하고 아이를 가정에서 돌보다가 아이가 태어난 지 14개월 될 때부터 어린이집에 맡기고 병원에 파트 타임으로 일을 재개했다. 병원은 3교대 정상적인 근무 형태를 요구했다. 14개월짜리 아이를 3교대 하면서 맡길 곳을 찾는 건 불가능했다. “아침 8시부터 오후 1시까지 5시간 일하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어요. 거의 최저 생계비를 받으면서 생활했어요.” 

6개월 정도 이렇게 지내다 구 씨는 지방선거에 출마하게 됐다. 19살 때부터 정당 생활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왔던 그는 크고 작은 각종 선거마다 캠프에 뛰어들어 도왔다. 그 당시 구 씨의 지역구에 출마하기로 한 후보자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출마할 수 없게 되자, 신도시가 만들어진 곳이라 출생률도 높고 아이 키우고 있는 엄마가 많은 특성을 살려 당에서는 구 씨에게 출마를 권유했다. 23년 동안 민주당을 비롯한 진보정당에서 당선된 적 없는 지역이었지만 구 씨는 도전했고 당선됐다. 

◇ “네가 싱글맘이어서 정치인이어서 아이가 아픈 게 아니야” 

구경민 씨의 2018년 6월 선거운동 모습, 당선 후 주말 의정활동에는 아이를 데리고 다니기도 하고, 긴급돌봄을 할 수 없을 땐 의회 사무실에 데리고 가기도 한다. ⓒ구경민 씨
구경민 씨의 2018년 6월 선거운동 모습, 당선 후 주말 의정활동에는 아이를 데리고 다니기도 하고, 긴급돌봄을 할 수 없을 땐 의회 사무실에 데리고 가기도 한다. ⓒ구경민 씨

“‘아이를 데리고 선거를 한다’, 그리고 ‘혼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게 선거에서 굉장히 공격포인트가 됐습니다. ‘아이 키우는 여자가 무슨 정치를 하겠어’, ‘애 키우는 데 정치할 시간이나 있겠어?’, ‘민원 처리를 뭘 하겠어’, ‘무슨 정책을 알고, 무슨 예산 심의를 하겠어’, 그 공격이 많은 유권자들에게 먹힐 때 마음이 많이 아팠죠.”

선거 당선되고 2주 후, 아이는 만 두 살 생일을 맞았다. “제가 너무 생생히 기억나는데요, 그때 전국 여성기초·광역의원, 단체장 워크숍이 수원에서 있었어요. 생일날인데 애랑 같이 못 있고 수원으로 가고 있는데, 엄마가 애가 열이 너무 많이 난다고 전화가 왔어요. 엄마한테 빨리 병원에 가라고 했죠. 병원 갔더니 바로 입원을 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속으로 '이제 시작이구나' 생각했죠.”

1박 2일 일정의 워크숍에서 첫날 밤에 빠져 나왔다. “행사장이 외진 곳이라 콜택시를 부르고 어떻게 어떻게 기차역까지 가서 막차를 잡고 막 울면서 부산까지 내려왔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도 그 생각하면 마음이 좀 그래요. 그때 차 안에서 정말 많이 울었어요.” 

“병원 도착하니까 새벽 1시가 넘었더라고요. 6월 말, 날도 얼마나 더울 때예요. 폐렴이라 에어컨도 못 틀고 저희 엄마가 저를 마흔 살에 낳아서 연세가 많으세요. 여든 노인하고 세 살짜리 애하고 둘 다 땀에 기진맥진해서 병실에 있는 거 보니까 ‘내가 뭐 하려고 이 길을 시작했나’ 막 회한이 밀려오더라고요.” 

4년 전 그날을 이야기하면서 구 씨의 눈은 촉촉해졌다. 아이가 아프면 모든 엄마는 죄책감 때문에 힘들어한다. 구 씨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이 태어난 지 100일 지나서부터 이혼을 결정하고 혼자 아이를 키웠어요. 나의 선택이 잘못된 것은 아닌가, 내가 정치를 할 게 아니라 좀 더 일반적인 직업을 선택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까….” 

구 씨가 이런 감정을 이야기하면 선배들은 이렇게 조언한단다. “네가 싱글맘이든 아니든 아이가 아픈 건 어쩔 수 없고, 아이가 아프면 할머니든 누구든 손을 빌리게 돼 있으니 네가 정치인이고 싱글맘이라서 그렇다(아이가 아프다)는 자책에 빠질 필요는 없다. 대한민국 모든 워킹맘들은 다 그렇다.” 

구 씨는 “이런 얘기를 들으면 이성적으로 ‘그렇지’ 하고 이해하는데, 마음으로는 자꾸만 자책이 될 때가 많아요”라고 말끝을 흐렸다.  

◇ “엄마 삶에 무슨 자격으로 노후를 갈취하고 있나…근본적인 죄책감과 미안함이 들죠”

구경민 부산광역시의원은 “제가 엄마의 삶에 무슨 자격으로 이렇게 노후를 갈취하고 있나 하는 아주 근본적인 죄책감과 미안함이 든다”고 털어놨다. ⓒ베이비뉴스
구경민 부산광역시의원은 “제가 엄마의 삶에 무슨 자격으로 이렇게 노후를 갈취하고 있나 하는 아주 근본적인 죄책감과 미안함이 든다”고 털어놨다. ⓒ베이비뉴스

코로나19 확산으로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돌봄 공백. 예상치 못한 일들이 돌발적이고 급박하게 돌아가는 하루하루. 구 씨도 그랬다. 긴급돌봄 신청 대기자가 너무 많고 미리 신청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아이를 데리고 의회에 출근했다. 한 날 의회에서 한 의원이 “오늘 우리 의회 구경민 의원이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의회로 데리고 출근했다. 지금 우리 돌봄 공백의 현실이다”라는 이야기를 공식적으로 한 적도 있다고 했다. 

의회 본회의가 열리면 아이는 의원실에 두고 회의에 들어간다. 그나마도 집에 혼자 두고 오는 것보다는 훨씬 안심이 된다. “직원들이 왔다 갔다 하면서 아이가 괜찮은지 챙겨봐 주시고, 중간중간 정회할 때마다 사무실에 가서 애 얼굴 보고 그러죠.”

구 씨는 공공보육과 공공돌봄에 대한 정책적 고민이 많다. “몇 년을 싸우고 고민하고 공부하면서 정작 저희 집 돌봄과 보육은 방치되고 있어요”라면서 씁쓸하게 웃는다. 그래도 부산시만큼은 의회에서 돌봄과 관련해 모든 예산과 인력을 총 투입했다고 구 씨는 평가했다.

아이를 사무실에 데리고 간 날도 있지만 대부분 유치원 하원은 친정엄마가 해주신다. “친정엄마가 몸도 안 좋으신데 딸 위해서 손주를 봐주시는데 제가 엄마의 삶에 무슨 자격으로 이렇게 노후를 갈취하고 있나 하는 아주 근본적인 죄책감과 미안함이 들죠. 여든이 넘어서 좀 쉬어야 할 인생의 안식년을….”

늘 미안하지만 제일 편한 사람도 엄마. 마음과는 다르게 늘 말은 퉁명스럽게 나온다고 털어놓는다. “늦은 시간에 엄마 집에 갔는데 엄마랑 딸 자는 모습 보면 마음이 뭉클하고 눈물이 날 것 같애요. 그런데도 엄마가 아이가 사달라는 젤리 다 사주고 하면 ‘엄마 사주지 말라니까’ 하면서 짜증을 내요. 엄마가 너무나도 짠하고 고맙고 미안한데 엄마가 손주한테 이기지도 못하고 끌려다니면서 애 버릇 나빠지게 하는 거 생각하면 폭풍 잔소리를 하게 되는 거예요(웃음). 또 돌아서서 후회하고 그래요.(글썽)”

친정엄마는 구 씨에게 “‘내가 너한테 해준 게 별로 없어서 이거(손주 돌봄)라도 해주겠다’고 말씀하세요. 그 말이 너무 고맙잖아요(눈물). 언제까지 엄마의 도움을 받아야 할지, 그게 제일 두려워요. 언제까지가 될지. 엄마도 언젠가는 아이를 돌봐줄 수 없고 자기 몸을 가누지 못할 때가 올 거예요. 자식으로서 너무 이기적인데 제발 아이가 스스로 학교 갈 때까지 엄마 버텨주시면 좋겠는 거예요.” 

◇ “제가 일을 하지 않는다면 무엇으로 저다움을 표현해내겠어요?”

구경민 의원은 "양육과 돌봄, 저만큼 현실적으로 잘 아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면서 "당장 제 문제이기도 해서 가장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베이비뉴스
구경민 의원은 "양육과 돌봄, 저만큼 현실적으로 잘 아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면서 "당장 제 문제이기도 해서 가장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베이비뉴스

“양육과 돌봄, 저만큼 현실적으로 잘 아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그러니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저 아니면 현실적인 목소리를 낼 사람이 없다는 사명감도 있고요, 이게 당장 제 문제이기도 해서 가장 집중하고 있습니다.”

출·퇴근 시간도, 주말과 휴일도 없는 정치인의 삶. 일과 가정을 어떻게 병행하고 있을까. 구 씨는 두 가지 원칙을 정했단다. “사회적인 시선 때문에 내 생활이 무너지면 안 되고, 내 아이가 무너지면 안 된다는 생각. ‘아이 잠은 내가 재운다’, ‘토·일요일은 어떤 정치적 외부행사가 있더라도 아이와 함께한다’는 것.”

구 씨에게 일은 어떤 의미일까. “정치를 하든 안 하든 저한테 일은 저희 아이를 지켜낼 수 있는 생계수단인 게 사실이고요, 저는 한 아이의 엄마이기 이전에 인간 구경민이거든요. 저라는 사람이 저답게 사는 방법이죠. 제가 일을 하지 않는다면 무엇으로 저다움을 표현해내겠어요?”

구 씨는 2019년에 부산광역시의회 최연소 여성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적이 있다. 포털에 관련 기사가 나가자, “‘저런 여자가 무슨 예산을 볼 줄 알겠어’, ‘집에서 애나 키워라, 세금 축내지 말고’ 이런 댓글이 달렸더라고요. 보다가 덮어버렸어요. (댓글 보면) 그날은 기분이 너무 안 좋고요, 멘탈이 좀 흔들리고요. 제가 아이를 키운다고 해서 예산 심의를 제대로 못 한다는 근거는 하나도 없는데 그렇게들 생각하는구나. 그렇다고 한다면 내가 끝까지 버텨야겠다. 그게 아니라는 걸 꼭 보여줘야겠다는 그런 오기가 생기죠.”

정치인에게 저녁 자리와 술자리는 업무의 연장선이다. 저녁 자리에서 논의되는 주요한 정보들도 많다. 그러나 구 씨는 일부를 선택하거나 포기할 수밖에 없다. “제가 저녁 자리나 술자리에 편중하다 보면 우리 아이는 일주일 내내 방치가 되는 거니 선택적으로 행보를 할 수밖에 없어요. 그러다 보니 제 마음으로는 늘 뒤처지는 것 같은 불안감이 있어요. 대신 일을 더 잘 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죠.”

“저는 최소한 5년 정도는 보육과 양육, 돌봄에서 제가 몸으로 부딪치고 살아야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우리 아이가 성장하는 그 수준에 맞춰 정책을 계속 토해낼 겁니다. 그렇게 해야만 하고요.”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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