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히 주무세요" 평생 인사할 거라는 아이
"안녕히 주무세요" 평생 인사할 거라는 아이
  • 칼럼니스트 최은경
  • 승인 2021.11.22 09: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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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 육아] 매일 '밤인사 6종 세트'를 듣는 마음

언제부터였을까. 열한 살 둘째 아이가 밤마다 안방에 와서 6가지 버전으로 “잘 자요” 하고 밤인사를 하게 된 것이. 아마도 그 말이 시작이었던 것 같다. 올해 초 일본어 공부를 막 시작할 무렵인가 내가 물었다. “일본어로 '잘 자'는 뭐라고 해?” 그러다가 영어로는 "굿나잇"이라는 말이 나왔고, 재미가 들린 아이는 한국말 버전, 일본어 버전에 영어 버전, 그리고 제가 하고 싶은 말까지 끼워 넣어 밤 인사 6종 세트를 마련했다. 그 이후로 하루도 빠짐없이 우리는 매일 밤 인사를 나눈다.

"안녕히 주무세요... 사요나라, 오야스미, 굿나잇, 바이바이... 엄마아빠, 내일 봐요.”

처음엔 그저 귀엽고 좋았다. 황송하게도 들렸다. 문제라면, 단 하나의 문제가 있다면 둘째 아이의 목소리 톤이 평균보다 높다는 것. 아니, 많이. 하이톤으로 저 밤인사를 할 때면 다소 소란스러운 게 사실이다. 시끄럽다 여겨질 정도다. 아이는 조금만 목소리를 작게 해도 좋을 텐데라는 내 말에도 절대 굴하지 않고 제 스타일을 고수한다. 이렇게 하면 기분이 좋다나?

한밤중 하이톤 밤인사를 받은 지도 어느새 11개월이 넘었다. 좋은 것도 한두 번이지… 이렇게 오래 꾸준히 할지 몰랐다. 좋고 뿌듯한 마음을 한참 벗어나 지금은 좀 조용하게 밤을 맞이하고 싶은 심정이다. 반면 남편은… 역시 나와는 급이 다르다. 아이가 하는 말을 그대로 한번 더 메아리처럼 응답해준다.

솔직히 피곤할 때는 그 짧은 시간도 길게 느껴져서 "오늘은 안 해도 된다"거나 "이제 그만 하라"는 말이 나올 뻔한 적도 많다. 그러다가 내가 복에 겨운 생각을 하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아이들이 먼저 방에 와서 엄마 아빠에게 "안녕히 주무세요, 내일 봐요"라고 인사하는 집이 몇이나 될까 싶었기 때문이다.

사춘기 아이들은 대부분 방에서 나오지 않는다. 저녁 먹고 들어가 좋아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나 해야 거실로 나와 그것만 보고 쏙 다시 제 방으로 들어간다. 밤인사는 대부분 그런 아이들의 방 문을 부모가 빼꼼히 열고 "핸드폰 좀 그만 하고 이제 자라" 하는 경우가 더 많지 않을까? 사춘기 이전의 아이들이라면 부모가 방 불을 꺼주면서 "잘 자" 하고 인사를 할 것이고.

사춘기 이전의 아이들이라면 부모가 방 불을 꺼주면서 "잘 자" 하고 인사하지 않을까? @pexels(무료이미지 사이트)
사춘기 이전의 아이들이라면 부모가 방 불을 꺼주면서 "잘 자" 하고 인사하지 않을까? @pexels(무료이미지 사이트)

아이들이 밤인사를 하면서 매일 밤 우리 집 안방은 대체로 시끄럽다. 말이 인사를 하러 온 거지 간단히 침대에서 몸 장난을 하기도 하고, 낮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동생이 밤인사를 하기 시작하면 열다섯 살 큰아이도 안방에 온다. 그렇게 20~30분 수다 한 판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럴 때면 나는 꼭 묻는다.

나 : "아니, 왜 낮에는 핸드폰에 텔레비전에 너희들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보내면서... 밤이면 왜 여기 와서 토크를 벌이는 건데... 왜냐고. 엄마 자야하는데..."

큰 딸 : "왜... 엄마, 싫어?"

나 : "아니, 안 싫은데... 낮에는 말이 없다가 밤에는 왜 말이 많아지는 건지 그건 좀 궁금해."

큰 딸 : "그러게, 나도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난 이렇게 이야기하는 거 좋은데..."

가족이 모두 침대 주변으로 모여들어 그날 하루 있었던 일을 이야기 하는 게 공부하는 것보다 좋은 거겠지. 알면서도 모른 척 해준다. 핸드폰도 없고 텔레비전도 없는데 가족들과 순수하게 이야기 하러 모이는 이 시간이 다소 특별하게 여겨지기 시작한 건 최근이다. 특히 요즘 둘째 밤인사 내용을 들어보면 이건 단순히 인삿말이 아니라, 한 줄 일기를 듣는 느낌이다.

"안녕히 주무세요... 사요나라, 오야스미, 굿나잇, 바이바이... 오늘은 주짓수가 너무 재미있었어. 또 빨리 가고 싶다. 엄마아빠, 내일 봐요.... "

둘째 아이의 밤인사는 수능 전날에도 여전했는데... 그날은 좀 달랐다.

"안녕히 주무세요... 사요나라, 오야스미, 굿나잇, 바이바이... 수능 보는 옆집 오빠 파이팅... 엄마아빠, 내일 봐요.... "

생각하지도 못한 밤인사 내용에 놀랐다. 아이가 저만을 생각하지 않고 공동체속에서 잘 자라준 것 같아 어느 때보다 사랑스럽게 들렸다. 이런 밤인사를 지금 아니면 못 들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어쩐지 아쉬운 마음마저 들었다. 오늘은, 또 내일은 어떤 한줄일기를 들려줄지 궁금했다. 곧 끝나버리면 아쉬울 것 같아서 내가 둘째에게 물었다.

"그런데 이 밤인사 언제까지 할 거야?"

"평생!"

감동이라는 말로는 모자란 뭉클한 기분이었다. 결혼 안 하고 평생 엄마 아빠랑 같이 산다는 말보다 더 달콤하게 들렸다. 땡아(둘째 아이의 별칭), 매일 하루의 마지막 시간 너에게 받은 이 사랑을 꼭 기억할게. 시끄럽더라도 감사하며 살게. 너 말대로 우리 밤인사 계속 하면서 살자.

*칼럼니스트 최은경은 오마이뉴스 기자로, 두 딸을 키우는 직장맘입니다. [다다와 함께 읽은 그림책] 연재기사를 모아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성에 대해 아는 것부터 솔직하게 말하고 싶어서 성교육 전문가에게 질문한 성교육 책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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