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하차 인원까지 포함해 하루 이용객이 최대 50만 명에 달하는 신도림역. 1호선과 2호선이 있는 이곳은 환승 수요가 많아 수도권 지하철역 중에서 가장 혼잡한 역으로 손꼽힌다. 한 설문조사에서는 직장인들이 가장 스트레스 받는 지하철역으로 꼽히기도 했다. 신도림역은 특히 유모차를 이용하는 엄마들에게는 이동이 어려운 곳으로 악명이 높다. 2호선 까치산역 방향 승강장을 제외한 1호선, 2호선 승강장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돼 있지 않아, 유모차를 이용하는 부모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 엘리베이터 없는 신도림역, 엄마들은 ‘난감’
신도림역은 주변에 테크노마트와 디큐브시티가 들어서면서 아이를 동반한 부모들의 발길이 더욱 잦아지고 있는 추세다. 29일 오후 기자가 직접 신도림역에 나가보니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부모들을 종종 만날 수 있었다.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나온 부모들은 1호선에서 2호선으로, 2호선에서 1호선으로 환승하며 꼭 거쳐야 하는 계단 앞에서 당황함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일행이 있는 경우에는 대개 일행의 도움을 받아 같이 유모차를 들어 계단을 오르내렸다. 엄마 혼자인 경우에는 어찌할 바를 몰라 역무원에게 도움을 청했다. 역무실과 연결된 벨을 통해 유모차 이동을 도와달라고 민원을 제기하면 역무원들이 현장으로 달려와 유모차를 옮겨주는 것. 이 벨이 있는지 모르는 부모들은 혼자서 유모차를 들고 올라가거나 내려갔다. 하지만 붐비는 계단에서 유모차를 들고 오르내리는 일은 남성에게도 쉽지 않은 일. 혼자 낑낑대며 유모차를 들어 올리던 한 아빠는 승강장에 유모차를 내려놓자마자 “이 역은 왜 엘리베이터가 없느냐”며 불만을 털어놓았다.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도 신도림역에 엘리베이터가 없어 유모차 이용이 불편하다는 부모들의 불만이 빗발치고 있다. 한 엄마는 페이스북을 통해 “서울역에 가느라 환승하려 했는데 환승시설이 없어 한참 방황한 후에 역무원에게 호출했다”고 토로했다.
◇ 유모차뿐 아니라 장애인, 노인도 모두 불편
엘리베이터가 없어 불편한 건 엄마들만이 아니었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이나 다리가 불편한 노인들도 계단 앞에서는 난감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1호선 인천, 신창 방향 승강장으로 올라가는 2홈(현재 3, 4홈도 같은 방향) 계단. 다리를 다친 한 여성은 휠체어를 탄 채 휠체어리프트에 몸을 실었다. 계단 스텝은 총 57개. 이 여성은 남들이 1분도 안 돼 오를 계단을 휠체어리프트에 앉아 5분여동안 이동했다. 긴 시간동안 요란한 음악소리를 내며 올라가는 휠체어리프트 위에 앉은 여성은 사람들의 시선이 민망한지 손으로 얼굴을 가리기 바쁜 모습이었다.
그나마 1호선 쪽은 휠체어리프트가 운영되고 있지만 2호선 쪽은 휠체어리프트가 고장 나 교체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휠체어리프트는 고장도 잘 나고 사고도 빈번해 장애인들이 기피하는 시설이다. 고장이 나는 경우엔 역무원 4명이 200kg이 넘는 전동휠체어와 장애인을 들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수고를 할 수밖에 없다. 유모차, 휠체어 이동과 관련한 민원이 많이 들어오고 있지만 역무원들의 인력으로는 버거운 상황. 신도림역사 한 관계자는 “우리도 정말 죽을 맛”이라고 토로했다.
◇ 넘치는 인파 속, 유모차 보행 돕는 시민 있을까
퇴근 인파가 밀려들기 시작한 오후 5시 40분. 기자는 1호선 인천, 신창 방향 승강장인 2홈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서서 유모차를 들고 나온 엄마들이 어떻게 계단을 오르내리는지를 관찰했다. 베이비뉴스와 뉴시스는 ‘유모차는 가고 싶다’ 공동기획 연중캠페인의 일환으로 ‘유모차 보행을 돕는 따뜻한 시민상’을 선정해 시상하기로 하고, 이날 첫 시민상 주인공을 만나기 위해 이곳을 찾은 것이다. 역무원의 도움이 닿기 어려운 상황에 누군가가 유모차를 든 엄마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지 지켜봤다.
퇴근시간이라 그런지 유모차를 끄는 엄마들의 모습이 많진 않았다. 따뜻한 시민상 주인공을 만나기 위해 기다리기 시작한 지 15분 뒤 쯤 유모차를 끄는 엄마가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는데, 일행과 함께 유모차를 들고 올라갔다. 곧 이어 나타난 또 다른 엄마도 친구로 보이는 일행 2명과 함께 유모차를 들어 올렸다.
오후 6시가 넘어서자 이동하는 사람들로 가득 찬 계단은 한 치의 여유 공간도 없었다. 물밀 듯이 밀려드는 사람들에 밀려 계단 아래쪽에 서있던 기자도 원치 않게 몇 계단 올라가야하는 상황도 펼쳐졌다. 이후 혼자 유모차를 끄는 엄마를 발견하고 계단을 오르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봤다. 이 엄마는 계단 앞에 서자마자 유모차를 혼자 들어 올렸다. 밀려드는 인파 때문에 망설일 틈도 없어 보였다. 이 엄마는 힘이 들었는지 계단 중간쯤 가서 잠시 유모차를 내려놓았지만 이내 다시 유모차를 들었다. 승강장에 도착할 때까지 도움을 내미는 손길은 없었다.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짐까지 실은 무거운 유모차를 들고 혼자서 계단을 오르는 것이 위험해 보이기까지 했다. 이후에도 유모차를 끄는 몇몇 엄마의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모두 주변 사람들의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한 채 혼자서 계단을 올랐다.
그렇게 얼마가 흘렀을까. 사람들의 모습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퇴근 인파가 몰릴 때쯤 한 엄마가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계단 앞에 섰다. 그 옆으론 친정엄마로 보이는 한 할머니와 유치원생으로 보이는 아이의 모습도 보였다. 엄마가 유모차 손잡이 부분을 잡자 잠시 망설이던 할머니는 힘겹게 아래쪽을 잡아들었다. 사람들 틈 속에서 혼자 걸어가는 아이가 걱정되는지 할머니는 “잘 보고 올라가라”는 말을 연거푸 던졌다. 유모차에는 분홍색 부채를 한손에 움켜쥔 아기의 모습이 보였다. 그렇게 계단 중간에 이르렀을 즈음, 3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한 남성이 재빠르게 유모차 곁으로 와서는 할머니가 잡은 유모차 아래 부분을 잡아들었다. “고맙다”는 할머니의 인사에 당연한 듯 묵묵히 아이 엄마와 함께 승강장까지 유모차를 들고 올랐다. 1시간 20분이 넘는 시간 동안 처음으로 벌어진 따뜻한 모습이었다.
◇ “아이 안고 있어도 자리 양보 없어…어쩔 수 없이 유모차 이용”
30대 중반 남성의 도움을 받아 계단을 오른 엄마는 오산에 사는 정승연(35) 씨. 24개월 딸과 친정엄마, 조카와 함께 코엑스 아쿠아리움에 들렀다 오는 길이라는 정 씨는 “유모차를 끌고 혼자 나왔을 때 엘리베이터가 없으면 아이를 든 채로 유모차만 질질 끌고 가거나 유모차를 뒤로 하고 후진 형태로 간다. 오늘 같은 경우는 친정엄마도 있었고, 또 (한 시민이) 도움을 주셨다”고 말했다.
정 씨는 “친정이 부천이라 1호선 구로역에서 환승해서 가야하는데, 구로역에 엘리베이터가 없어 엘리베이터가 있는 영등포역까지 더 가서 환승하고 있다”며 “유모차 무게도 무게지만 아이, 짐까지 있으면 혼자 계단에서 아이를 태운 유모차를 끌고 올라가는 것은 매우 힘들다”고 설명했다.
엘리베이터가 없어 몇 정거장을 더 가서 환승하느라 불편한데, 굳이 유모차를 사용하는 이유는 뭘까? 정 씨는 “오산에서 급행을 탄다고 해도 친정까지 40분이 걸리는데 그 시간동안 자리가 있으면 다행이다. 하지만 자리가 없으면 아이를 안고, 짐까지 든 채 서서 와야 하는데 많이 힘들다”며 “아이를 안고 있어도 사람들이 자리 양보를 잘 안 해 줄 때가 많아, 어쩔 수 없이 유모차를 이용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 씨는 “엘리베이터가 설치돼 있으면 정말 편할 것”이라면서도 “엘리베이터가 설치돼 있어도 너무 구석에 있거나 멀리 있어 찾기 힘들 때도 있다. 영등포역은 엘리베이터가 가운데 있어서 타러 가기도 수월하다. 찾기 쉽고 이용하기 쉬운 곳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되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베이비뉴스와 뉴시스가 ‘유모차는 가고 싶다’ 공동기획 연중캠페인의 일환으로 진행하는 ‘유모차 보행을 돕는 따뜻한 시민상 1호’로 선정된 송준호(36) 씨는 “구일역이 집이고 강남역이 회사라 평소 신도림역을 자주 이용한다. 평상시 짐을 들거나 유모차를 들고 가시는 분이 있으면 같이 올려드리려고 하고 있다”며 멋쩍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송 씨는 “지난 7월 1일에 아들이 태어나서 그런지 유모차를 들고 가는 사람들은 좀 더 신경이 쓰인다”고 말했다. 승강장에서 기념촬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송 씨는 “당연한 일인데···”라며 따뜻한 시민상을 받는 것이 민망하다고 했다. 하지만 1시간 20여분 동안 10여 대의 유모차가 계단을 오르내렸지만, ‘당연한 일’은 딱 한 번 벌어졌을 뿐이다.
◇ “더 이상 늦어지면 안 된다” 신도림역 엘리베이터 설치공사 중
현재 신도림역 측은 시민들의 불편함을 고려해 1호선, 2호선 쪽에 엘리베이터 설치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1호선 쪽은 역사신축공사를 진행하면서 1~3홈 승강장에 엘리베이터를 모두 설치하고, 빠르면 내년 9월 운행에 들어갈 계획이다.
1호선 신도림역사 관계자는 “엘리베이터가 없어 민원이 많았지만 유동인구가 많아 공사할 엄두를 내지 못했었다. 하지만 더 이상 늦어지면 안 된다는 판단 하에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며 “공사가 완료되면 엘리베이터 이용에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2호선 쪽도 오는 12월 말 완공할 목표로 엘리베이터 설치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2호선 신도림역사 관계자는 “엘리베이터를 설치할 장소를 비워주는 것과 관련해 점포업자들과 문제가 있었는데, 최근 문제가 해결되면서 대림-문래역 방향 승강장에 엘리베이터 설치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유모차는 가고 싶다' 베이비뉴스·뉴시스 공동기획 연중캠페인 http://safe.ibaby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