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녀 돌보는 조부모 절반 이상 “원치 않았지만 맡아”…돌봄수당 재검토 목소리
조부모가 생각하는 적정 돌봄임금 월 107만원…지자체 수당 평균 30만원과 큰 격차
이유주 기자[email protected]수정 2026.10.26 16:15
손자녀를 돌보는 조부모 상당수가 체력적 피로와 정신적 스트레스를 겪는 것은 물론, 여가와 건강관리, 사회적 관계를 위한 시간까지 줄어드는 등 노년기 삶의 질 저하를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손자녀 돌봄을 원하지 않았지만 자녀의 사정 때문에 거절하지 못하고 돌보는 노인도 절반을 넘어, 가족에게 돌봄 부담을 떠넘기는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은 최근 발간한 ‘가족 내 손자녀 돌봄 현황과 정책방안 연구’ 보고서를 통해 이같이 밝히고, 조부모 돌봄수당의 전면적인 재검토와 부모의 돌봄시간 보장, 공적 돌봄서비스의 질적 개선 등을 제안했다.
손자녀를 돌보는 노인의 72.1%는 돌봄으로 인해 체력적으로 힘들다고 느낀 것으로 조사됐다. 자신의 시간을 충분히 갖지 못했다는 응답은 64.8%, 공연이나 전시, 여행 등 문화활동을 하고 싶지만 하지 못한 경험이 있다는 응답은 59.8%였다.
손자녀 부모와 돌봄 방식이 달라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노인은 47.6%였으며, 손자녀를 돌보다가 다치거나 병이 난 경험이 있다는 응답도 45.4%에 달했다. 아파도 병원에 갈 시간이 없어 진료를 받지 못한 경험이 있다는 노인은 42.8%였다. 노년에도 자신만의 삶을 찾지 못해 우울감을 느꼈다는 응답은 39.3%로 나타났다.
손자녀 돌봄이 자발적인 선택이 아닌 경우도 적지 않았다. 손자녀를 돌보고 싶지 않았지만 자녀 사정 때문에 거절하지 못했다는 노인은 53.3%로 절반을 넘었다. 배우자 등 다른 가족 구성원까지 돌보면서 손자녀를 함께 돌보는 ‘다중돌봄’으로 어려움을 겪는 노인도 51.1%에 달했다.
손자녀 돌봄 이후 신체적·정신적 건강이 악화됐다는 응답도 높았다. 육체적 피로감이나 정신적 부담, 스트레스 증가 등 신체적·정신적 건강에 부정적인 변화를 경험했다는 응답은 각각 73.7%, 60.4%였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질환이나 통증이 심해졌다는 응답도 47.8%로 절반에 가까웠다.
노년기 삶의 질을 높이는 활동 역시 위축됐다. 개인적인 시간과 여가활동, 운동 및 건강관리 활동, 친구·이웃과의 교류나 각종 모임 참여 등이 줄었다는 응답이 50~60% 수준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손자녀 돌봄이 조부모의 건강과 삶의 질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는 만큼, 현재의 조부모 돌봄수당 제도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는 것이 보고서의 주장이다.
보고서는 조부모 돌봄이 여성의 노년기 돌봄 부담을 심화시키고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데다, 현재 지급되는 돌봄수당만으로는 돌봄 과정에서 발생하는 체력적 부담 등을 충분히 보완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한 조부모 돌봄수당이 자원 배분 측면에서 효율성이 낮고, 공적 돌봄의 책임을 가족에게 다시 전가해 공적 돌봄체계 개선 노력을 약화시킬 우려가 있다고 봤다.
특히 조부모가 생각하는 손자녀 돌봄의 적정 임금과 실제 지급되는 돌봄수당 사이의 격차도 큰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조부모 돌봄에 대해 "조부모 돌봄 수당은 돌봄 노동의 가치에 대한 사회적 인정과는 거리가 있다"며 "가족 돌봄에 대한 현금 보상은 '가족이기 때문에' 돌봄 노동의 가치를 정당하게 평가하지 않으며 오히려 낮은 수준으로 평가절하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손자녀를 돌보는 노인들이 생각하는 적정 돌봄 임금은 평균 107만 원으로 조사됐다. 반면 현재 다수 지자체가 지급하고 있는 손자녀 1인당 돌봄수당은 평균 30만 원 수준에 그쳐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
보고서는 조부모에게 수당을 지급하는 방식에만 의존하기보다 부모가 직접 자녀를 돌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부모의 돌봄시간을 실질적으로 보장할 수 있도록 노동시간을 재편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보고서는 "최근 핵심 국정과제로 추진 중인 주 4.5일제 도입 논의는 단순한 근로시간 단축 정책이 아니라 돌봄 중심의 노동시간 재편을 위한 중요한 전환점으로 인식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공적 돌봄서비스의 양적·질적 수준을 높여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
특히 미취학 아동 돌봄서비스는 방과후 시간대의 질적 수준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봤다. 유보통합을 계기로 돌봄기관 자체의 서비스 수준을 높이고, 부모가 학원이나 조부모의 도움을 별도로 동원하지 않더라도 기관의 방과후 돌봄서비스에 만족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의 질을 높여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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