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슬픈 법을 만드는 부모들
세상에서 가장 슬픈 법을 만드는 부모들
  • 김재희 기자
  • 승인 2019.10.20 13: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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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법으로 아이를 기억하는 사회는 이제 되지 말아야

【베이비뉴스 김재희 기자】

안타까운 사고로 아이를 잃은 부모들은 아이들의 이름을 딴 법으로 남은 아이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투사가 되고 있다. 자료 사진 ⓒ베이비뉴스
안타까운 사고로 아이를 잃은 부모들은 아이들의 이름을 딴 법으로 남은 아이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투사가 되고 있다. 자료 사진 ⓒ베이비뉴스

세림이, 해인이, 한음이, 하준이, 태호, 유찬이, 민식이… 어느 유치원의 원아 명단이 아니다. 이 아이들은 공통점이 있다. 사고로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이 아이들 부모는 자녀의 이름을 붙인 법을 만들어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자신의 자녀처럼 목숨을 잃는 아이들이 다신 없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송도 축구클럽 사고’로 세상을 떠난 태호와 유찬이. 이들의 부모가 국회를 다녀간 지 불과 109일만인 지난 13일. 국회 정론관에 또 다른 부모가 기자회견을 열었다. 아이를 잃은 또 다른 이들이다. 이들은 지난달 11일 어린이보호구역을 지나던 과속 차량에 아들 김민식 군(9)을 잃었다. 

민식 군 부모는 강훈식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과 함께 제2의 민식이가 생기지 않게 해달라고 눈물로 호소했다. 이 자리에서 이들은 국민청원 참여를 국민에게 요청하고, 아들의 이름을 딴 법 ‘민식이법’을 통과시켜 달라고 국회에 촉구했다.

민식 군 부모는 지난 1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린 글 ‘제아들의억울한죽음에 죽을것만같습니다..’에서 “학교 앞에 신호등도 없고, 안전펜스도 없고, 과속 카메라도 없었다”고 지적하며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이기 때문에 제 아이들에게 과실을 물을 수도 있다고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아들같이 억울한 죽음을 당하는 아이가 없도록, 자식을 먼저 잃고 억울함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집이 생기지 않았으면 한다”며 ▲어린이보호구역 내 신호등·과속카메라 설치 의무 ▲어린이보호구역 내 사고 시 가중처벌 ▲11대 중과실 사망사고 시 가중처벌 ▲변사자 인도규정 변경 등을 요청했다. 이 청원은 오는 30일 종료된다. (▶ 청원 바로가기)

강훈식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은 11일 “어린이 보호구역 내에서 교통사고를 내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 처벌 수위를 강화하고, ‘12대 중과실 교통사고’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일명 ‘민식이법’을 대표발의했다. 

어린이보호구역은 1995년에 지정되기 시작했다. 어린이를 교통사고 위험에서 보호하기 위해 마련된 어린이보호구역은 서행·횡단보도 예고 등이 도로 바닥에 표시되며, 주정차금지·속도제한·일시정지 등의 안전조치를 적용받는다. 

어린이보호구역 지정제도는 오는 2020년에 시행 25년을 맞이하지만, 지난 1년 간 전국 1만 6765곳에서 435건의 13세 미만 어린이 대상 교통사고가 발생했다. 이 중 목숨을 잃은 어린이는 3명이다. 2015년부터 2017년까지 매년 8명의 아이들이 보호구역 안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국회 정론관에서 아이 잃은 부모는 눈물의 기자회견을 열고, 의원회관에서는 아이들 이름을 딴 법을 두고 토론회가 열린다. 자료 사진 ⓒ베이비뉴스
국회 정론관에서 아이 잃은 부모는 눈물의 기자회견을 열고, 의원회관에서는 아이들 이름을 딴 법을 두고 토론회가 열린다. 자료 사진 ⓒ베이비뉴스

◇ 법 통과가 늦어지는 사이에 아이들 이름 딴 법은 계속 만들어져

오는 21일 시민단체 정치하는엄마들은 아이를 잃은 부모와 함께 국회 앞으로 나선다. 이곳에서 이들은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안타깝게 목숨을 잃는 아이들이 없어지도록 국회에 계류 중인 아동 생명안전 관련법을 통과시켜 달라고 촉구할 예정이다.

‘해인이법’은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어린이 안전사고 피해자의 응급처치를 의무화한 어린이안전기본법이다. ‘하준이법’은 이용호 의원이 발의한, 운전자의 안전 의무를 강조하고 주차장 관리자의 책임을 강화하자는 취지의 도로교통법 개정안이다. 특수학교 차량 내 CCTV 설치를 의무화하는 권칠승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한음이법’과, 모든 통학차량을 어린이 통학차량으로 포함하는 이정미 정의당 의원의 ‘태호·유찬이법’도 국회에 머물러 있다. 

아이 잃은 부모를 투사 만드는 사회. 지난 7월 9일 국회 정론관에서 ‘하준이법’ 통과를 호소한 하준 군의 부모 고유미 씨. 고 씨는 자신의 아들과 같은 피해자가 나타나지 않도록 백방으로 나섰지만, 돌아온 것은 악성민원인 취급뿐이었다고 밝혔다. 

언제까지 아이들 이름을 붙여 법을 만들어야 할까. 국회와 사회가 무관심한 사이에 아이들은 다치고 죽는다. 어린이보호구역에서조차 보호 받지 못하고 있다. 아이들을 먼저 잃은 부모들은 이 세상에 남은 다른 아이들이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위해 기꺼이 투사가 됐다. 그리고 법을 만들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법, 아이들 이름으로 만들어진 법들이 계속 만들어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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