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아이들의 문제에 ‘수정’과 ‘협상’을 말하는가?
누가 아이들의 문제에 ‘수정’과 ‘협상’을 말하는가?
  • 기고=이원혁
  • 승인 2019.12.05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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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이원혁 아이가 행복한 사회적협동조합 이사
지난달 28일 국회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유치원 3법 통과를 촉구하는 발언 중인 이원혁 아이가 행복한 사회적협동조합 이사. ⓒ이원혁
지난달 28일 국회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유치원 3법 통과를 촉구하는 발언 중인 이원혁 아이가 행복한 사회적협동조합 이사. ⓒ이원혁

일상을 살아가는 엄마아빠들에게 정치와 정치인은 항상 먼 곳의 일이었다. 지난해 유치원 비리문제가 터졌을 때도 엄마아빠들의 항의와 고발을 통해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으리라 생각했다. 

2018년 화창한 가을날 아이들 손잡고 소풍을 왔어야 할 동탄 센트럴파크, 지난해 500여 명의 엄마아빠들은 소풍 대신 비장한 마음으로 사립유치원 비리문제로 모였었다. 수많은 매체들이 관심을 가졌고 정부와 정치권도 대책을 마련한다고 했고 대대적인 감사가 시작됐다.

그렇게 우리 엄마아빠들은 일상으로, 아이들은 정상적인 교육환경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런데 한 달 두 달이 지나고 달라지는 건 없었다. 문제의 유치원들은 사과 몇 마디에 버젓이 ‘영업’을 계속했고 당장이라도 통과될 기세였던 유치원 3법은 여기저기서 정치적 수사(修辭)와 논쟁 속에서 아무런 진척을 보이지 못 했다. 

정치인들이 쉽게 이야기하는 회기, 협의과정, 법적 절차들 속에서 우리 아이들의 5살과 6살의 시절은 지나가고 있었다. 노회한 정치인들에게야 봄, 여름, 가을, 겨울은 쉽게, 자주 찾아오는 기온의 변화일지 몰라도 나비와 낙엽, 소나기와 첫눈을 맞이하는 우리 아이들에게는 일생에 한 번밖에 없는 소중한 유년기가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 “유치원 만들기에 나선 엄마아빠…그 사이 유치원 3법은 통과될 줄 알았지만”

결국 엄마아빠들이 직접 만들어주기로 했다. 이 핑계, 저 핑계로 국회에서 미뤄지는 유치원 3법을 자체적으로 준수하는 유치원, 아이가 안전한 먹거리를 풍족하게 먹을 수 있는 유치원, 내 아이에게 배정된 교육비가 온전히 내 아이에게 가는 유치원, 부당한 업무지시와 박봉으로 스트레스에 가득찬 교사가 아닌 교육에만 전념할 수 있는 교사가 있는 유치원을 한번 만들어 보기로 했다. 

아이를 낳기 전, 아이가 아직 갓난쟁이일 때는 모든 유치원이 당연히 그렇게 운영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참담했고 정상적인 유아교육을 위한 최소한의 법적 장치가 마련되지 않은 곳에 아이를 보낼 수 없었다. 난방비를 아끼기 위해 아이들에게 웃옷을 입혀 뛰게 하고, 닭 한 마리로 삼계탕을 끓여 20명에게 나눠 먹이는 유치원이 더 이상 과거의 사례만으로 남지는 않겠다는 불안감이었다. 

그렇게 10여 가족으로 출발해 조합을 결성하고 인가와 장소를 배정받으며 유치원 준비를 해가며 내년 3월 개원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그러는 와중에도 한 가닥 희망은 가지고 있었다. 우리는 우리 아이의 유년기를 보낼 유치원을 세우고 있었지만, 우리의 준비와 별개로 유치원 3법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통과되리라 믿었다.

1년이었다. 법안이 국회에 제출 된지 1년 동안 국회는 단 한 번의 토론을 하지 않았다. 국민의 대표들 간의 건설적인 토론대신 언론 등을 통해 부모들의 귀에 들리는 것은 야당의 반대,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과 같은 단체들의 로비활동이었다. 

다행히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을 통해 본회의에 올랐으나, 역시 토론은 없었고 등 떠밀리듯이 자동 상정을 앞뒀다. 뭐 어쨌든 상관없었다. 어떻게 가든 서울만 가면 된다고 정부의 지원금을 유용할 수 없도록 보조금으로 바꾸고, 교비회계를 교육 목적 이외에는 쓸 수 없도록 하며, 아이들의 안전한 급식을 보장하는 유치원 3법이 통과만 된다면 입법과정 상의 야속함이야 부모들의 마음으로 감내할 수 있었다.

◇ “1년 기다린 부모에게 국회가 준 답은 수정, 연기, 파행, 재논의”

그런데 본회의 상정 일주일 전부터 국회가 술렁였다. 이익단체의 로비활동에 대한 소문은 더 커져가고 야당의 반대는 확고해져 가는데 일부 여당의원들이 불참할 수 있다는 소문마저 돌았다. 급기야 자유한국당은 유치원 3법 수정안을 제출했다. 그리고 자신들이 발의한 법안까지 포함해 그날 상정된 199개 법안 모두에 필리버스터를 걸었다. 

지난 1년간 어떠한 협의와 대화도 하지 않던 정치인들이 그제서야 ‘나홀로 끝장 토론’을 하겠다고 하니 힘없는 부모로서는 가슴에 울화통이 치밀 수밖에 없었다.

정치적 쟁점이 강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과 선거법은 당초 상정되지도 않았는데 자신들이 발의한 법안까지 포함해버렸다. 그날 열릴 예정이었던 국회를 사실상 마비시키려한 필리버스터가 겨냥한건 누가 보더라도 유치원 3법이었다. 1년을 기다린 부모에게 국회가 1년 만에 준 답은 수정, 연기, 파행, 재논의였다. 

여당은 최후의 통첩을 하고, 이것이 통하지 않으면 4+1으로 강행한다고 한다. 최후의 통첩은 왜 지금까지 아껴놨는지, 왜 아직까지 협의와 협상을 이야기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흔히 ‘정치는 생물’이라고 정치인들은 부끄럽지도 않게 말한다. 국민의 대의가 그때그때 바뀔 수 있음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모습에 회의감마저 든다. 다른 여러 현안들은 협의와 조율을 통해 둘러도 가고 수정도 될 수 있다. 그러나 아이들의 문제는 수정할 문제도 합의할 문제도 후퇴할 문제도 아니다. 

유년시절 교육과 한 끼 식사는 평생의 기억과 습관으로 남는다. 누가 아이들의 밥상과 책상을 가지고 정치적 계산기를 두드릴 수 있겠는가. 우리 아이가 살아갈 나라는 주식회사 대한민국이 아니라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이다. 대의 정치가 대변해야할 것은 로비단체의 금권이 아니라 꽃처럼 피어나는 우리 아이들이다. 

아이들의 일상을 정쟁의 대상으로 삼는 정치인이 있다면 그는 국민 중 과연 누구를 대변하고 있는가. 엄마와 아빠의 간절한 마음으로 유치원 3법의 조속한 통과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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