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개월이 지나 자아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영이와 함께하는 시간은 점점 만만치 않아진다. 특히 외출할 때면 꼭 가야 하는 방향의 반대로 가고, 밥은 안 먹고 돌아다니려 하고, 지저분한 물건을 만지는 등 하지 않았으면 하는 행동은 기가 막히게 찾아서 한다. 그럴 때면 덥지도 않은데 등줄기에는 땀이 흐른다. 좀 더 바르게 앉았으면 좋겠는데, 좀 더 밥을 먹었으면 좋겠는데, 내 뜻대로 안 된다는 사실을 이미 알면서도 아이의 행동을 통제하고 싶은 욕구가 샘솟는다.
통제는 ‘일정한 방침이나 목적에 따라 행위를 제한하거나 제약함’이란 뜻이다. 엄마가 정한 목적에 따라 영이의 행위를 제한하고 제약하는 것이니 당연히 영이는 순순히 따라주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요즘은 영이도 자기주장이 강해지면서 엄마의 통제에 따르지 않는 것을 넘어 심지어 엄마를 통제하고 싶어 한다. 결국, 상대를 통제하고 싶어 하는 24개월 딸과 34세 엄마는 매일매일 ‘전쟁 같은 사랑’을 하는 것이다.
전쟁 같은 사랑의 끝은 결국 둘 중 한 사람만 만족하고 끝나게 된다. 때로는 애교로, 때로는 울음으로 버티는 영이의 승리로 끝나기도 하고 때로는 젤리로, 때로는 우는 아이를 억지로 안고 오는 엄마의 뜻대로 되기도 한다. 물론 둘 다 마음이 상해 씩씩대며 누구도 만족하지 못하고 끝날 때가 많다.
둘 중 한 사람만 만족하는 것이 아닌 엄마도, 아이도 함께 만족할 수는 없는 걸까? 과연 아이는 부모가 일방적으로 통제할 대상일까? 부모는 아이가 통제받는 것에 익숙해진 삶을 살기를 바라는가?
많은 부모들은 아이가 능동적인 삶을 살기를, 제 생각과 감정을 건강하게 표현할 줄 아는 자기주도적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아이가 내 품에 있는 지금은 그저 내 말을 잘 듣기를 바라는 이중성을 가진다.
어린 시절 부모의 통제에 순응하기만 하던 아이가 성인이 되면 자연스레 자기주도적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일까? 전혀 그렇지 않을 것이다. 물론 아이의 모든 의견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아이의 안전을 위해서, 아이의 건강을 위해서, 때로는 엄마가 의도한 바를 이루기 위해서 아이의 행동을 제한해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과정이 어떠해야 하는가다.
배우자와 생활습관을 맞추어 가는 과정이나, 직장 상사와 업무를 조율해 가는 과정, 운전하며 다른 운전자와 차선을 조율하는 과정까지 모든 과정은 일방적이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24개월 딸과의 조율과정 역시 일방적이어서는 안 될 것이다. 물론 매일 매일의 이 과정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답답할 때가 많다.
영유아의 아동권리에 관한 일반논평에 이런 글이 있다
‘성인은 유아의 이익, 이해의 정도와 선호하는 의사소통 방식을 받아들임으로써 인내심과 창조성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그래. 오늘도 비도 안 오는데 장화를 신겠다고 하는, 다 차려놓은 밥은 안 먹고 빵을 먹겠다고 하는 영이와의 관계를 위해서 나에게 필요한 것은 으름장이나 젤리가 아닌 인내심과 창조성일 것이다.
*칼럼니스트 이미연은 아동인권옹호활동을 하는 국제아동인권센터의 연구원으로, 가장 작은 자를 위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작은 힘을 보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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