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에도 ‘악보’와 ‘지휘자’가 필요합니다 
육아에도 ‘악보’와 ‘지휘자’가 필요합니다 
  • 칼럼니스트 이미연
  • 승인 2020.07.03 11: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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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이맘 Says] 아이 사랑하는 방식에도 가족 간 '규칙'이 있어야 한다

‘그날’은 혼란의 연속이었다. 바로, 산후조리원에서 나와 영이와 처음 함께 자동차를 탄 날이다. 찻길 위 과속방지턱은 왜 그렇게 많은지, 도로는 왜 이렇게 패였는지, 갑자기 끼어들거나 별안간 경적을 울리는 차량은 또 얼마나 많게 느껴지던지…. 조리원에서 나와 친정으로 향하던 그 시간은 혼란과 긴장이 가득한 시간이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 영이가 조금 크니, 카시트에 앉은 영이가 엄마를 보며 ‘방긋’ 웃기도 한다. 차 안에서 지루해 보채는 영이에게 “괜찮아~금방 갈 거야. 조금만 기다려줘”라고 침착하게 말할 수 있는 여유도 내게 생겼다.

영이와 엄마와 아빠가 카시트에 익숙해질 즈음 영이의 할머니 할아버지와 저녁 식사를 함께할 일이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 영이는 피곤했던지 출발한 지 10분도 안 되어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몸을 뒤척이며 서럽게 울어댔다. 평소 영이 우는 모습을 본 적 없던 할머니 할아버지는 힘들어하는 영이가 카시트에 앉아있는 게 영 마음이 쓰이셨던 모양이다. 영이의 할머니가 조심스럽게 물어보셨다.

“카시트 태우지 않고, 안고 가야 하는 거 아니야?”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안고 가는 건 영이에게 더 위험해요. 그리고 지금은 카시트에 적응하는 중이라 운다고 내려주면 적응하기 더 어려워해서 안 돼요.”

딸의 단호한 태도에 어쩔 수 없이 수긍은 하셨지만, 영 불안한 눈치다. 영이 울음소리가 점점 커지자 결국 영이의 할아버지는 언성을 높이셨다.

“조심히 운전하면 되지, 애가 이렇게 힘들어하는데 그걸 그냥 두나! 너희들 애기 때는 카시트 같은 거 없이도 잘 다녔어!”

카시트 사용이 의무라서 지키지 않으면 벌금을 내야 한다는 나의 항변은 전혀 통하지 않았다. 결국, 우리는 영이를 카시트에서 내려놓았다. 그리고 안아서 집으로 돌아왔다.

영이를 품에 안으며 아이의 안전과, 부모로서 육아에 대한 일관성을 지키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 속상했다. 그래서 입이 이만큼 나와 있었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고 내 품에서 곤히 잠든 아이를 보며 낯선 곳에 외출해 피곤했을 영이의 컨디션을 미처 알아주지 못한 것이 미안해졌다.

그렇다면, 영이의 안전과 영이의 컨디션을 위해 우린 어떻게 해야 했을까? 아직 카시트가 익숙하지 않은 할머니, 할아버지를 어떻게 이해시킬 수 있었을까?

​영이의 컨디션을 고려했다면, 우리는 늦은 시간에 외출을 하지 않거나, 일찍 귀가했어야 했다. 영이가 울 때 잠시 차를 멈추고 안아서 재운 후, 카시트에 앉히는 방법도 있었을 것 같다. 하지만 더 어려운 문제는 카시트가 익숙하지 않은 할머니, 할아버지를 이해시키는 것이었다.

영이는 이제 카시트에 앉아 창밖 풍경도 즐길 줄 알게 됐다. ⓒ이미연
영이는 이제 카시트에 앉아 창밖 풍경도 즐길 줄 알게 됐다. ⓒ이미연

이후에도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카시트를 타는 영이를 불안하게 보셨다. 그래서 집에 가는 길 카시트에 잘 앉아 있는 영이와 영상통화도 시켜드리고, 함께 있을 때 기회가 생기면 카시트의 필요성을 열심히 설명하며 두 분을 설득하기도 했다. 우리의 노력을 이해해주신 덕분에 할머니 할아버지는 지금 영이가 카시트에 앉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고, 오히려 카시트에 잘 앉는 영이를 신통방통 기특해하신다.

‘독박육아’에서 벗어나는 데 필요한 것 중 하나는 ‘정보공유’다. 양육을 함께하는 가족 등에게 아이의 기질, 상태, 그리고 현재 달성해야 할 발달목표 등을 제공하는 것은 그들 모두가 ‘우리는 양육을 함께하는 파트너’라는 인식을 할 수 있게 돕는다. 또, 정보의 불확실성을 줄여 아이의 불안감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아직 어려서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고 해도 지속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아이가 적응하고 준비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게 됐다.

‘한 아이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이야기가 있다. 그런데 이 ‘온 마을’의 사람들이 저마다의 기준으로 아이를 대한다면 아이는 오히려 불안해질 것이다.

오케스트라가 악보라는 합의된 규칙 안에서, 그리고 지휘자의 안내에 따라서 각자의 파트에 충실할 때 아름다운 음색이 연주되는 것처럼, 우리는 육아에 ‘악보’를 준비할 필요가 있다. 이 악보는 가정 내의 약속일 수도 있고, 법이나 제도 같은 사회적 약속일 수도 있을 것이다.

아이를 중심에 두고 아동 최상의 이익을 고려한 악보가 준비된다면, 그리고 우리 모두가 아이를 위해 많은 고민과 조율을 통해 각자가 맡은 역할을 할 수 있을 때 아이의 삶도 안정적이고 풍요로울 수 있을 것이다. 

*칼럼니스트 이미연은 아동인권옹호활동을 하는 국제아동인권센터의 연구원으로, 가장 작은 자를 위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작은 힘을 보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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