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내게, 이리 와서 구름 좀 보라는 아이 
매일 내게, 이리 와서 구름 좀 보라는 아이 
  • 칼럼니스트 최은경
  • 승인 2020.09.11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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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한번 해봤어] 집에 갇힌 열 살 아이 마음 헤아리기

지난 1월 말. 무슨 바람이 불었던 건지 집을 계약했다. 집을 알아본 지 2주 만이었다. 지금 사는 집은 둘째가 태어난 집이자, 신혼집에서 4년을 살고 이사한 집이었다. 그 후 10년을 이 집에서 살았다. 올해 큰아이가 중학교에 가고, 작은아이가 열 살이 되면서 각자 제 방을 마련해 줘야겠다 싶었다.

미적거릴 시간이 없었다. 2월은 내가 안식월을 쓰는 때였기에 지금이야말로 이사할 적기라고 생각했다(물론 내 뜻대로 일이 되진 않았다). 이사 갈 곳은 미리 정해 놨다. 아파트도 평수도 정했는데, 썩 마음에 드는 집이 보이지 않았다. 집 구조는 어딜 가나 똑같은데, 마음에 드는 동이 따로 있어서 더 그랬다.

계약 직전까지 갈 뻔했던 곳은 시야가 막혀 있어 답답했다. 동 간 거리도 그다지 넓지 않았다. 거실 창문 끝에서 끝을 봐야 멀리서 겨우 뒷산이 보였다. 사방이 답답했다. 아쉬운 대로 계약해야 하나 싶을 때, 원하던 동에 집이 나왔다. 거실 베란다, 주방 베란다 앞뒤로 막힘이 없는 탁 트인 곳이었다. 시원했다. 남향이었고, 고층이었다. 이 집이다. 그날로 마음을 정했다.

코로나 와중인 3월 말 이사했다. 둘째는 방 중에 제 방이 제일 좋다면서 마음에 무척 든다고 했다. 아이 방은 막힘이 없다. 고층이라 하늘도 가깝고, 날이 좋으면 멀리 있는 관악산까지 보이는 전망이 꽤 좋다. 몇 개월째 재택근무하는 내가 거실에서 일하고 있을 때면 아이는 “엄마, 이리 와서 하늘 좀 봐요” 하며 부르곤 했다. 몇 번이나 가서 아이와 함께 구름을 보며 “예쁘다, 참 예쁘다…” 그랬다.

◇ 집에 갇힌 아이가 볼 것이라곤 창밖 구름과 유튜브뿐…

. "엄마, 오늘은 하늘이 '핑꾸핑꾸'해. 이것 좀 봐." 왜 매일 아이가 내게 구름을 보라고 하는지 궁금했다. 그리고 아이의 외로운 마음이 보였다. ⓒ최은경
. "엄마, 오늘은 하늘이 '핑꾸핑꾸'해. 이것 좀 봐." 왜 매일 아이가 내게 구름을 보라고 하는지 궁금했다. 그리고 아이의 외로운 마음이 보였다. ⓒ최은경

그러다 하루는 아이가 부르는 소리가 귀찮기도 하면서, 왜 매일 구름을 보라고 하는지 궁금했다. 그제야 아이의 마음을 헤아려 보게 됐다. 나를 부르는 아이 마음이 보였다. 외롭고 외로운 마음. 온라인 수업이 시작되는 오전 9시부터 잠을 자기까지 열 살 아이가 매일 혼자 있는 작은 방. 책상 위 몇 가지 장난감을 제외하고는 크게 변하는 게 없는 공간. 그 공간에서 유일하게 변화를 느끼는 게 바로 창밖으로 보이는 구름이었던 거다.

“엄마! 오늘은 곰을 닮은 구름이 있어.”

“엄마! 오늘은 비행기가 날고 있어. 코로나인데 저 비행기는 어디로 가는 걸까?”

“엄마! 하늘이 ‘핑꾸핑꾸’해. 너무 예뻐 이리 와 봐.”

“엄마! 툭 툭 툭 소리가 나서 보니, 비가 너무 많이 오네. 여기 와서 봐봐.”

”엄마! 하늘이 너무 파래. 여기 누워서 한번 봐봐. 아니 여기 누워서 보라니까.”

무심코 듣고 넘겼던 나를 부르는 이유가 모두 창밖에서 보이는 구름과 날씨 때문이었다. 그걸 깨닫고 아이 말을 들으니 왜 그렇게 짠하던지. 창살 없는 감옥은 나뿐만이 아니고 아이도 겪고 있었던 거다. 매일 밖을 내다보는 아이 마음이 어땠을까. 아마도 이러지 않았을까.

‘종일 일하는 엄마에게 놀자고 하기도 뭐하고(놀아줄 리도 없고), 뭘 물어봐도 듣는 건지 마는 건지 시큰둥한 엄마(대답도 시원찮고, 맨날 기억 못 하는 엄마). 뭘 말해도 “엄마, 일하는 중이야”라며 기대하는 리액션을 해주지 않는 엄마(매번 엄청난 리액션을 해주기는 너무 힘들어). 네 살 많은 언니는 제 방에 콕 박혀서 동생과 놀아줄 생각이 ‘1도’ 없고.’

이런 상황에서 혼자 놀기 심심한 열 살 아이에게 흥미로운 것은 그저 유튜브와 변화무쌍한 구름뿐이었을 거다. 그렇다고 유튜브를 마음대로 실컷 볼 수나 있나. 불시에 엄마의 불호령이 떨어진 날, 아이는 얼마나 억울했는지 그날 일기장에 이렇게 적었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유튜브도 다 못 보고 (오래 봐서 미안하다고) 사과도 했는데, TV도 못 보고, 먹을 것도 없다. 난 다 잃었다.’

◇ 당분간 살아내야 하는 ‘불안 일상’… 이나마 다행이라며 스스로 다독인다

아이가 내어준 창가에서 바라본 하늘과 구름. 불안의 증세 중 하나가 상대를 통제하는 것이라고 한다. 나를 두고 한 말 같았다. 당분간 살아내야 하는 이런 일상. 불안해말자고, 이나마 다행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이기로 했다. ⓒ최은경
아이가 내어준 창가에서 바라본 하늘과 구름. 불안의 증세 중 하나가 상대를 통제하는 것이라고 한다. 나를 두고 한 말 같았다. 당분간 살아내야 하는 이런 일상. 불안해말자고, 이나마 다행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이기로 했다. ⓒ최은경

문제는 이런 아이 마음을 이해하는 것과 내 행동이 늘 따로 논다는 거다. 매일 오후 네 시면 아이와 한판 전쟁이 시작되곤 한다. 아침부터 종일 일하던 나에게 아이들 행동이 거슬리기 시작하는 게 보통 그 시간이다. 어쩐지 종일 유튜브만 보는 것 같아 갑자기 속에서 열불이 나는 거다. 아이 입장에서는 그거밖에 할 게 없으니까 보는 건데….

그만 보라고 해도 말을 듣지 않으면 목소리가 자연 높아진다. 더 보려는 자와 끝내려는 자의 치열한 기 싸움이 시작되는 시간. 어느 작가는 ‘질 때마다 이기는 법을 배운다’는데, 나는 아이와의 싸움에서 질 생각이 전혀 없으면서도 ‘싸울 때마다 루저(Loser, 패배자)’가 되는 기분이다. 승자도 패자도 없는, 양쪽이 그야말로 초토화가 되는 싸움. 안 해도 되는 말을 아이에게 하고 난 뒤엔 어찌나 후회되는지. 늘 후회만 남는 그런 싸움. 저녁 밥상 분위기가 아이스링크처럼 꽁꽁 얼어붙은 적이 많았다.

아이 마음 이해 못 하는 것도 아니지만, 학원도 안 가, 공부도 안 해, 이러다가 학습 결손을 안은 채 3학년 과정을 지나게 될까 봐 사실 나는 하루하루가 불안하다. 사교육을 시키지 않은 우리 집이 믿을 곳이라고는 공교육뿐인데, 공교육이 하루아침에 이렇게 비대면으로 바뀌니 아이들 관리하기가 쉽지 않다. 이런 생각을 하는 부모가 나만은 아닌 듯하다. 온라인 수업 이대로는 안 된다며 언제까지 우리 아이들을 방치할 거냐는 국민청원까지 올라왔다는 걸 보면. 

어찌 됐든 당분간은 나도 아이도 이런 일상을 살아내야 한다. 우선 내 불안한 마음부터 다독여야겠다. '불안의 증상 중 하나가 바로 상대를 통제하는 것'이라고 하더라. 딱 나를 두고 하는 말 같았다. 그러니 불안해하지 말자고 나를 다독여 본다. 일도 육아도 살림도 모두 잘 할 수 없다고 나를 다독인다. 아이를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니라고 나를 다독인다.

내가 대답 못 하는 아이 질문은 메모했다가 퇴근 후에 검색해서 알려주거나, 아빠가 퇴근하고 오면 물어보라고 해도 되니까 괜찮다고 다독이고, 내가 일하는 동안 꾀부리지 않고 온라인 수업 다 들으면서 그날그날 숙제도 밀리지 않고 있으니 괜찮다고 다독인다. 제일 중요한 것 아이들 모두 아프지 않고 건강하니까 다행이라고 나를 다독인다.

유튜브를 많이 보는 것 같기는 하지만, 중독은 아닌 것 같으니까 아직은 괜찮다고 나를 다독인다(엉엉, 이게 제일 힘들어). 조금 외롭겠지만 그나마 제가 좋아하는 방에서 하늘을 마음껏 볼 수 있으니 다행이라고 다독인다. 덕분에 자연 현상에 호기심이 많은 아이로 자라고 있어 다행이라고 다독인다. 또 뭐가 다행이려나. 좋은 점을 하나라도 더 찾는 긍정적인 나라 다행이라고 또 다독인다.

*칼럼니스트 최은경은 오마이뉴스 기자로, 두 딸을 키우는 직장맘입니다. [다다와 함께 읽은 그림책] 연재기사를 모아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성에 대해 아는 것부터 솔직하게 말하고 싶어서 성교육 전문가에게 질문한 성교육 책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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