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다 잊고, 성탄절 하루 마냥 행복할 수 있다면
세상만사 다 잊고, 성탄절 하루 마냥 행복할 수 있다면
  • 칼럼니스트 이은
  • 승인 2020.12.16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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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영부영 육아인류학] 산타할아버지, 제가 바라는 선물은요…

아이들의 크리스마스 선물 준비가 해가 가면 갈수록 어려워진다. 옛날 큰아이 크리스마스 선물 위시 리스트(Wish list)는 통장 잔고를 걱정하게 할지언정, 그래도 어디서, 어떻게 구해야 하는지 고민할 필요까진 없는 종류의 것들이었다.

대게 특정 캐릭터 피겨, 아이가 좋아하는 로봇이나 직접 만들 수 있는 복잡한 블록 같은 것들이 늘 관심 대상이었다. 하지만 큰아이 관심사가 날로 진화해서, 아이는 이제 물질적인 것 만으론 결코 해결하기 어려운 복잡한 선물을 원한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돌아왔다. 올핸 산타할아버지가 어떤 선물을 주실까? ⓒ베이비뉴스
크리스마스 시즌이 돌아왔다. 올핸 산타할아버지가 어떤 선물을 주실까? ⓒ베이비뉴스

예컨대, 본인이 설계한 설계도대로의 로봇이나, 태양광 발전이 가능한 패널 재료들, 정체 모를 실험 약품(알고 보니 독성이 포함돼있었다. 남편이 이과 출신이라 알아챘기에 다행이지, 남편이 아니었다면 얼마나 인터넷을 뒤지고 확인에 확인을 거듭하며 아들을 설득시켰을까?) 등을 요구했다. 올해는 여왕개미를 비롯해 개미집을 구성할 개미를 원한다.

둘째는 모든 선물에 무조건 ‘좋아요’ 모드에서 이젠, ‘세상의 모든 물건을 내게 사주세요’ 모드로 전환했다. 선물을 두 개 주면, 마음에 드는 것 하나만 갖고 다른 하나는 필요 없다고 돌려주던 그녀가, 이젠 세 돌이 가까워지자 물욕에 눈을 뜬 것인지 모든 광고와 TV 방송에서 본 아이템 중 마음에 든 것들을 모두 일일이 알려준다.

“나는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아! 산타할아버지가 선물 많이 주실 거야”라고 말하는 그녀에게, 산타할아버지의 진실을 당장이라도 고백하고픈 충동마저 느꼈다. 올핸 둘째가 말하는 것 중 제일 갖고 싶어 하는 것을 물어보고, 확인한 뒤에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해야겠다.

◇ 12월엔 바쁘다… 산타도 해야 하고, 요정도 돼야 한다

선반 위의 크리스마스 요정(Elf and the Shelf)이라고 불리는 인형. 보통 한 집에 하나씩만 있는데, 우리 집은 두 개다. 뭐든지 오빠 것과 제 것을 챙기는 딸내미 덕에. ⓒ이은
선반 위의 크리스마스 요정(Elf and the Shelf)이라고 불리는 인형. 보통 한 집에 하나씩만 있는데, 우리 집은 두 개다. 뭐든지 오빠 것과 제 것을 챙기는 딸내미 덕에. ⓒ이은

아이가 있는 미국의 가정은 12월이 되면 크리스마스 선물 말고 준비하는 것이 더 있다. 그중 하나가 선반 위의 크리스마스 요정, ‘엘프 온 더 쉘프 (Elf on the Shelf)’와의 숨바꼭질이다. 

북극에 사는 엘프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아이가 있는 집에 찾아온다. 그리고, 그 아이들이 착하게 잘 지냈는지 여부를 산타할아버지에게 알려준다. 엘프는 매일 밤 산타할아버지를 만나러 북극에 다녀오기 때문에, 엘프의 위치는 아침마다 달라져 있다.

때론 새로운 옷을 입기도 하고, 눈에 띄지 않는 장소에 숨기도 한다. 아이들은 엘프를 함부로 만져선 안 된다. 실수가 아닌 고의로 엘프를 만지면, 엘프는 마법에 걸려 북극으로 영영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엘프는 12월 초순쯤 갑자기 어디에선가 나타나야 하고, 크리스마스가 될 때까지 매일 위치를 바꿔야 한다. 그리고 크리스마스가 끝나면 또 감쪽같이 사라진다. 그러니, 엄마가 일찍 잠든 날에는 어째서 밤사이에 엘프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느냐며, 북극에 다녀오지 않은 것 같다고 걱정하는 아이의 고민을 종일 들어야 한다. 

엘프의 존재는 엄마에겐 또 하나의 미션이지만, 그래도 아이들 추억이 새록새록 쌓이는 데다가, 이렇게 할 수 있는 때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 여전히 재밌다.

큰아이 같은 반 친구 중 몇몇이 “산타는 없다”고 목놓아 외치는 바람에 큰아이는 산타의 존재를 잠시 의심했는데, 그런 큰아이조차 엘프의 존재는 철석같이 믿는다. 그리고 엘프가 진짜니까, 산타도 진짜일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어느 날, 큰아이가 엄마와 함께 자고 싶다고 해서 같이 누웠다. 선잠이 든 아이가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며 깼다. 아이는 화장실 다녀오는 길에 엘프를 한번 쳐다보고 다시 잠들었다. 나는 순간 엘프가 아직 자리를 옮기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잠결이었음에도 벌떡 일어나 엘프가 북극에 다녀오도록 도와줬다.

큰아이는 다음 날 아침, “엄마는 나와 함께 잤고, 아침에도 거의 같은 시간에 깼는데, 엘프가 원래 있던 자리에서 새로운 자리로 옮겨갔어”라고 말하면서도, 뭔가를 자꾸만 의심하는 눈초리다. 엄마 가슴은 콩닥콩닥 뛴다.

◇ “산타할아버지, 마스크 없이 다녀도 되는 ‘세상’을 선물로 주세요”

매일 아침 달력을 열면 작은 선물이 나오는 애드벤트 캘린더. 12월의 소소한 행복. ⓒ베이비뉴스
매일 아침 달력을 열면 작은 선물이 나오는 애드벤트 캘린더. 12월의 소소한 행복. ⓒ베이비뉴스

두 번째는 애드벤트 캘린더(advent calendar) 만들기. 12월 달력엔 각 날짜별로 하나씩 작은 선물을 넣어 놓는다. 집에서 제일 일찍 일어나는 사람이 해당 날짜의 숫자를 열면 작은 피겨나 초콜릿 같은 선물을 만날 수 있다.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에서도 많이들 하는 작은 이벤트다. 아이용뿐만 아니라, 성인용도 있다. 작은 액세서리나 커피, 와인 샘플이 들어있기도 하다. 

최근 초콜릿에 눈을 뜬 둘째도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올해 애드벤트 캘린더는 남편과 아이들이 직접 만들었다. 색종이를 접어 날짜를 만들고, 매일 아침 오빠보다 늦게 일어나는 동생을 위해 초콜릿은 두 개씩.

이 부분은 큰아이에게 특별히 동생이 일어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둘이 함께 날짜를 열어달라고 부탁했다. 덕분에 아침 식사 시간 내내(초콜릿은 아침 먹은 다음에 먹을 수 있으므로) 손에 초콜릿을 꼭 쥔 작은아이의 조바심 가득한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작년, 커다란 쇼핑몰에서 산타클로스를 직접 만났던 작은아이는 산타클로스의 압도적인 모습에 놀라 목놓아 울면서 무섭다고 외치고 내 품을 떠나지 않았다. 심지어 산타클로스가 준 선물도 거부하고 집에 가겠다고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 그랬던 아이가, 이제는 산타클로스가 나오는 크리스마스 영화도 찾아보고, 산타클로스가 줄 선물에 두 눈이 기대감으로 반짝거린다. 

오래된 크리스마스트리를 꺼낸다. 큰아이가 만들어놓은, 조금은 구겨진 오너먼트를 함께 걸어본다. 함께 색종이를 잘라 눈꽃송이도 만든다. 코로나 때문에 답답하지만, 그래도 하루쯤은 쉬어가고 싶은 마음이 든다.

산타할아버지가 오시면 드시고 갈 쿠키도 밀가루 묻혀가며 구워 놓고, 썰매 끄느라 힘든 순록에게 줄 당근도 함께 놓아두면 크리스마스 준비는 끝. 이번 크리스마스엔 마스크 없이 다닐 수 있는 내년을 선물로 받고 싶다. 아이들과 함께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세상을 선물로 받고 싶다.

*칼럼니스트 이은은 두 아이를 키우고 있다. 현재는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논문작업을 하고 있다. 스스로가 좋은 엄마인지는 의구심이 들지만 아이들과 함께하는 순간순간마다 성장하는 중이라고 믿는 낙천적인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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