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너무 무거운 살림… ‘미니멀라이프’가 필요해
내겐 너무 무거운 살림… ‘미니멀라이프’가 필요해
  • 칼럼니스트 이은
  • 승인 2020.10.23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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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영부영 육아 인류학] 미국에서 두 아이 키우는 맞벌이 가정의 미니멀라이프란

나 스스로 살림에 능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딱히 살림에 관심이 많은 편도 아니고 그렇다고 부지런한 축도 아니다. 뒹굴뒹굴 이불과 물아일체를 즐기지만, 아이가 생긴 이후 어쩔 수 없이, 타의에 의해, 낮에 직립보행을 꾸준히 유지하는 보통의 엄마가 되었다. 

하지만 지난 3월 중순부터 지금까지 거의 외출하지 않고, 코로나를 피해 집 안에서만 머물다 보니 전에는 눈에 잘 띄지 않았던 사실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일단 내 생각보다 집안 곳곳 숨겨진 먼지가 많았다는 사실. 이건 물론 순전히 꼼꼼하게 청소를 하지 않고 술렁술렁 청소하는 우리 탓이다. 가끔이라도 가구를 들어 올리고, 물건을 내려놓은 뒤 물걸레로 먼지를 닦아내는 것으로 조금이나마 해결한다. 부끄럽지만 이마저도 연례행사에 가깝다.

◇ 태생이 '귀차니스트'라서 당연히 미니멀리스트인 줄 알았는데

본의 아니게 미니멀한 욕실. 아이들의 샴푸 겸용 보디 클렌저를 온 가족이 함께 쓴다. 그래서 목욕탕엔 살림이 없다. ⓒ이은
본의 아니게 미니멀한 욕실. 아이들의 샴푸 겸용 보디 클렌저를 온 가족이 함께 쓴다. 그래서 목욕탕엔 살림이 없다. ⓒ이은

우리 집에 짐이 절대적으로 많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애초에 가지고 있던 것도 많지 않았고, 이사를 자주 다닌 탓에 물건 비울 기회가 많아서 오히려 4인 가족 평균보다 조금 덜 가지고 있지 않나 생각해왔다.

그릇은 모두 합쳐 열 개가 안 되고, 머그컵도 딱 가족 수만큼만 있다. 여자로서 나는 완벽한 자연인이다. 평소에 화장도, 네일 아트도 하지 않기 때문에 화장대도 없고 서랍 안에 스킨이나 다른 크림 하나 없이 로션 하나, 선크림 하나가 전부다. 이마저도 잘 못 챙겨 바르고 우리 집 아이들이 쓰는 베이비로션이나 베이비선크림을 같이 쓴다.

강의가 있는 날이나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땐 쿠션 팩트, 립스틱 하나가 나의 ‘풀메(풀 메이크업, 완벽한 화장)’다. 아이들도 남편도 기본 로션과 선크림 하나면 끝이다. 

또, 우리 가족 머리는 모두 남편이 짧게 잘라 주기 때문에(남편은 심지어 본인 머리도 직접 자른다), 딱히 머리카락을 관리할 필요성을 잘 못 느낀다. 그래서 아이들이 쓰는 샴푸 겸용 보디클렌저로 온 가족이 머리도 감고 몸도 닦는다. 아끼려는 게 아니라 그냥 이런 쪽에 관심이 없고 시간을 뺏기고 싶지도 않은 ‘귀차니스트’라서 그렇다.

그 때문에 나는 나 자체를 미니멀리스트라고 생각해 본 적도 없고, 미니멀리스트가 되어야겠다는 다짐조차 해 본 적 없었다. 딱히 외모 치장에 욕심도 없고, 생활 패턴도 단조로운 우리 가정은 적어도 몇몇 부분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용품만으로 공간을 유지하고 있었다.

물론, 미국 소도시에 사는 데다가, 부부가 모두 학계에 종사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여기서 한국에서처럼 외모를 지적하거나, 평가, 그리고 조언하는 일은 무례한 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화장하면 예쁠 것 같은데, 왜 화장을 안 해요?”

이런 말을 한국에선 끊임없이 들었는데, 미국에선 10년 가까이 사는 동안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남편도 마찬가지다. 남편이 몸담은 미국 대학교에선 가죽 재킷이나 반바지를 입고 강의하는 교수님도 있다. 누구도 남편의 반삭발 머리 모양을 문제 삼지 않는다. 이렇게, 의도치 않게 원래 취향대로 단순하게 살던 우리에게도 더 미니멀해져야 할 부분이 많이 남아 있음을 알게 됐다.

◇ 코로나 때문에 살도 늘고 살림도 늘어나 버렸다 

코로나 이후 집에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늘어나다 보니, 집이 답답하고 수납공간이 부족하단 생각이 점점 강하게 들기 시작했다. 그동안 눈에 띄지 않았던 필요 없는 물건이 가뜩이나 좁은 집을 다 차지하고 있는 것만 같아졌다.

가장 큰 문제는 아무래도 책이다. 남편이나 나나 아무래도 공부가 직업이다 보니, 책을 줄이기 쉽지 않았다. 한국으로 귀국을 앞둔 몇몇 한국 가족들이 우리에게 주고 간 아이들 한국어책도 꽤 많았다. 미국에서 한국어책 구하기가 쉽지 않았기에 고마운 마음으로 받거나, 덜컥 중고 구매를 한 경우도 있었는데, 아예 책장 하나가 늘어나 버렸다. 

거기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아이들이 보고 싶어 하는 책도 점점 늘어났는데, 코로나 때문에 도서관이 문을 닫아 최근 여러 권의 새로운 책을 집에 들이고야 말았다. 책이 점점 늘어나는 게 두려워서 아이에게 전자책 리더를 하나 사줬는데, 아이가 종이책을 더 선호하는 바람에 이마저도 또 다른 짐이 되고 말았다.

다음으론 장난감이다. 우선 큰아이는 피겨를 너무 사랑하고, 블록으로 어마어마한 크기의 우주선도 뚝딱 만들어내는 블록 마니아다. 이러니 큰아이에게는 늘 블록과 피겨가 부족하다.

코로나 때문에 집에 머물다 보니 나도 모르게 장난감으로 아이들의 무료함을 채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다. 벌써 꽤 많은 양의 장난감을 두 아이에게 사주고 말았다. 몇 달 사이 인형의 집도 생기고, 블록도 늘어나고, 주차장 놀이터와 로봇 등 너무 많은 장난감이 늘어났다. 

이걸로 끝이라면 좋겠는데, 나도 집에 있으면서 베이킹에 취미를 붙인 탓에 케이크 틀, 식빵 틀, 밀대, 계량컵까지 샀다. 직접 만든 빵을 야무지게 먹으며 늘어난 것은 뱃살뿐만이 아니었다. 수많은 베이킹 용품도 함께 늘어났다. 다행히, 반죽기나 제빵기를 살까 망설이던 수많은 번뇌의 시간을 좁은 부엌을 보며 힘겹게 물리쳤다. 과거의 나에게 무척 감사하다.

이렇게 물건들의 존재가 전에 없이 벅차게 느껴지다 보니 탈출구가 필요했다. 한국에 있는 동생과 화상채팅을 하다가 이야기를 꺼내 보니 그녀가 ‘미니멀라이프(minimal life, 삶에 필요한 최소한의 물건만 갖추고 사는 생활)’를 추천해준다. 

동생은 이미 십여 년 전부터 미니멀라이프를 고수하고 있는데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이 환경을 생각하고, 집의 주인이 물건이 아닌 사람이 되는 경험을 해보라고 추천했다. 나도 최소한의 것으로 최선의 평온함을 지키는 경험을 해보고 싶었다.

가족이 공간을 불편하게 느낀다면 가족을 위해서 해볼 만한 도전이라고 생각했다. 극단적일 것도 없이, 본인이 불편함을 크게 느끼지 않는 선에서 매일매일 조금씩 꾸준히 도전해보라는 말에 용기를 내서 미니멀라이프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 채우기 위해 비우는 것 아닌, 비우며 살아가기 위한 비움 

아직 정리가 덜 된 놀이방. 아이들이 노는 중에는 치우거나 정리하지 않고 마음껏 어지럽히게 놔두는 편이다. 정리도, 비우기도 아직 멀지만 조금씩 해나갈 생각이다. ⓒ이은
아직 정리가 덜 된 놀이방. 아이들이 노는 중에는 치우거나 정리하지 않고 마음껏 어지럽히게 놔두는 편이다. 정리도, 비우기도 아직 멀지만 조금씩 해나갈 생각이다. ⓒ이은

아이들에게 작은 옷과 신발은 기증하거나 다른 아이들에게 물려줄 수 있게 깨끗이 세탁해 모아두었다. 물려주기에는 나이가 애매하면서 동시에 상태가 좋은 옷은 지역에 있는 아동 중고용품점에 판매해서 아이들의 간식값을 벌기도 했다. 

어른들 책 중 PDF 파일이 있는 책은 기증하거나 재활용하기 위해 정리했다. 아이들 책 중 1년 동안 한 번도 안 본 책은 따로 꺼내 기증하기로 했다. 둘째 낳기 전에 입던 옷, 살 빼고 다시 입으려고 넣어놨는데, 그것도 다 기증하기로.

빠지기는커녕, 자가 격리로 점점 더 불어나는 체중에 마음을 접고, 그리운 옛날 옷들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이미 뒤축이 많이 닳고 구멍까지 났지만, 발이 편해 애용하던 신발에게도.

연필꽂이와 서랍 구석구석 숨어있던 필기도구도 꺼낸다. 잉크를 다 쓰거나, 다 쓰기도 전에 잉크가 말라버린 수많은 필기도구. 정리하기 전에 이렇게 못 쓰는 필기도구가 많을 줄 몰랐다.

장난감은 아이들에게 동의를 얻은 뒤 처분한다. 한동안 못 보던 장난감을 오랜만에 보면 다시 갖고 놀겠다고 할 수 있으니 처분 전 2~3일간 잘 보이는 곳에 놓아두었다가 아이들에게 물어본 뒤 기증하거나 분리 배출한다.

나름 물욕 없이 살아왔다고 믿었는데, 처분해야 할 물건들을 꺼내 놓으니 그 수가 생각보다 많다. 며칠에 나눠서 물건들을 처리하고 나니 거실과 놀이방, 옷장이 제법 넓어졌다.

원체 부지런하거나 깔끔한 성격은 아니라서, 물건을 정리했다고 갑자기 어디 방송에 나오듯이 완벽하고 각 잡힌 깨끗한 집이 되지는 않았다. 그래도 덜 답답하고 생각할 공간이 생긴 것 같아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진 것 같다. 

프랑스의 인류학자 마르크 오제 (Marc Auge)는 일상 속 행복이 중요한 이유로 “개인의 삶을 영위하게 하는 것은 물론, 타인과 관계를 유지하고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 길을 열어가게 해주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한 바 있다.

요즘 나의 ‘일상 속 행복’이란, 집과 내가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고 공간과 비움이 만들어주는 새로운 기회에 기인하는 것 같다. 비우기를 배웠으니 앞으로도 꾸준히 더 빈, 그래서 더 가벼운 것으로 채울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나가고 싶다. 

“엄마, 집에 뛰어놀 공간이 많아져서 좋아”라고 말하는 우리 아이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것 같다. 비울수록 넓어지는 마음의 공간. 우리 아이들이 좋으면 나도 참 좋다.

*칼럼니스트 이은은 두 아이를 키우고 있다. 현재는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논문작업을 하고 있다. 스스로가 좋은 엄마인지는 의구심이 들지만 아이들과 함께하는 순간순간마다 성장하는 중이라고 믿는 낙천적인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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