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에게 내 아이의 좋은 점만 이야기하라?
선생님에게 내 아이의 좋은 점만 이야기하라?
  • 칼럼니스트 백운희
  • 승인 2018.03.29 09:4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부모를 키우는 아이] 새학기 공개수업과 상담에 대한 단상
새학기가 시작되는 3월은 집중되는 행사로 학사달력이 빼곡하다. ⓒ백운희
새학기가 시작되는 3월은 집중되는 행사로 학사달력이 빼곡하다. ⓒ백운희

아이의 새 학기가 시작된 지도 어느새 한 달이 다 돼 간다. 지난 주 공개수업과 학부모 총회라는 산을 넘었으니 이제 담임선생님 상담까지 마치면 숙제를 끝낸 홀가분함이 찾아오리라, 생각했다.

새로운 환경에 긴장하는 것은 아이만이 아니다. 준비물을 꼼꼼히 챙겨줘야 하고, 같은 반이 된 친구들과 바뀐 담임선생님의 성향에까지 신경이 쓰인다. 특히 학기 초에 집중적으로 이뤄지는 학사일정은 양육자의 촉각을 곤두세우게 한다. 학교 운영과 관련된 사안을 확인할 수 있고, 같은 반 학부모들을 만나 교류할 수 있는 시간.  무엇보다 내 아이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 중에 하나가 여기 있다.

공개수업에 참여하면 평소와는 다른 모습의 아이가 보인다. 학교에서 어떤 태도와 자세로 수업에 참여하는 지 알 수 있고, 짝이나 주변 친구들과 상호작용하는 모습도 엿보인다. 작년 공개수업에서 나는 아이가 뭔가에 집중하거나 긴장을 하면 손을 계속 턱이나 입술 주변으로 가져가는 버릇이 있음을 처음으로 발견했다. 아, 유레카.

학부모 총회에서는 대게 교장선생님에게 직접 학교의 전반적인 운영방향과 특징을 들을 수 있다. 조금 지루할 수 있다는 건 함정이다. 여기에 녹색어머니회로 불리는 등굣길 교통지도, 급식모니터링, 책 읽기나 도서관 운영 등 학부모단체 임원을 구성하고 자원봉사자를 정하는 자리이기도 해 부담감은 있다. 그렇다고 총회 참석 자체를 꺼릴 필요는 없다. 여력이 되면 할 수 있는 봉사에 자원하면 되고, 참여할 자신이 없더라도 이른바 ‘침묵타임’을 잘 견뎌내면 된다. 기다리면 담임교사와 사실상 처음 얼굴을 마주하는 시간이 다가온다. 이때 교실에 남아있는 학부모는 소수에 불과하다. 교사가 특별히 강조하는 점을 기억해두면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상담은 학기 초 학사일정의 정점에 있다. 교사의 성향에 따라 상담의 질감은 차이가 날 수 있다. 아이들을 좀 더 집중해서 관찰하고 특징을 잘 잡아내는 담임을 만나면 양육자 입장에서는 더욱 고마운 일이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교사의 눈으로 바라본 내 아이의 기질이나 학습태도, 교우관계는 새겨들을 것이 많다.

우리 아이의 경우 유치원에서 종종 부딪쳐 온 친구가 다시 초등학교 때 같은 반이 됐다는 얘기에 혹시 마찰을 빚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상담시간에 담임선생님이 들려준 얘기는 예상과 달랐다. 활동성이 좋은 두 친구는 쉬는 시간이면 손을 붙잡고 복도를 종횡무진 한다는 것. 덧붙여 아이가 친구들의 다툼을 중재하는 데 공정함과 탁월함을 갖췄고, 의사전달이 원활하지 않은 친구를 돕는 경우가 많아 친구들이 많이 의지한다는 얘기는 엄마로선 다소 놀라웠다. 내 눈엔 아직 아기 같기만 한데 의지하는 친구라니.

공개수업에 참여하면 평소와는 다른 모습의 아이가 보인다. ⓒ베이비뉴스
공개수업에 참여하면 평소와는 다른 모습의 아이가 보인다. ⓒ베이비뉴스

올 해는 또 선생님과 어떤 이야기를 나누게 될 지 걱정 반, 기대 반의 마음이었다. 그런데 며칠 전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가 또박또박 전달해 준 이야기에 난감해졌다.

“선생님과 우리가 만난 지 이제 겨우 2주 밖에 되지 않아서 서로를 잘 알 수가 없고, 그러니 상담시간에 특별히 해줄 이야기가 없다고 꼭 필요한 상황이 아니면 가을에 있을 2학기 상담을 활용하라고 하셨어요.”

담임선생님의 입장은 이해가 됐다. 서른 명에 가까운 아이들을 한 달도 안 돼 속속들이 안다는 건 역부족이다. 바쁜 시간을 쪼개어 걱정과 기대를 안고 찾아온 학부모들에게 특별히 들려줄 말이 없다면 그도 곤혹스러울 것이다.

이해한다면서도 한편 난처했다. 부모 눈에 2학년 아이는 여전히 못 미더운 구석이 있다. ‘특별한’ 이나 ‘굳이’ 라는 수식어를 달고 상담을 해야 할 이유는 없지만 그래도 “아이가 학교생활 잘하고 있으니 걱정 마시라”는 안심 처방을 받고 싶었다.

다른 학부모들도 갈팡질팡하기는 마찬가지. 평소 주변 눈치를 많이 보는 이는 "상담을 해도 알맹이가 없을 것 같다"며 부정적이었고, 상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들은 교사가 아이에 대해 잘 모르면 부모가 이야기를 해주면 된다는 입장이었다.  일 년에 두 번 교사를 만나 아이에 대해 얘기 나눌 수 있는 것은 학부모에게도 보장된 권리라며. 교육의 주체는 교사와 아이뿐 아니라 학부모도 함께여야 한다는 점에서 나는 이 의견에 동감했다.

사실 자녀들의 생애주기별로 이어지는 상담은 부모에게도, 교사에게도 민감한 사안이다. 육아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학교 상담이 진행되는 시기면 고민 사연들이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이른바 ‘김영란 법’이 시행되기 전에는 상담시간에 빈손으로 가기 민망한데 무엇을 가져가면 좋을 지, 나아가 어떤 점을 물어볼 지 의견을 묻고 나누는 모습도 많았다. 모범 답안도 등장한다. 고학년 자녀를 둔 학부모들은 “담임에게는 내 아이의 좋은 점만 이야기하라”고 조언한다. 걱정되는 마음에 아이의 단점을 많이 얘기하면 오히려 담임에게 아이에 대한 편견을 심어줄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여기에는 교사에 대한 신뢰 문제가 담겨있으니 이를 전적으로 옳다고 보기는 어렵다.

맞벌이 부모에게는 상담시간을 내기 힘든 고충이 얹힌다. 최근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이와 관련, 낮 시간대 진행되는 학교 학부모 상담으로 맞벌이 부모가 소외되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야간이나 주말에 상담시간을 조정하도록 유인하겠다고 밝혀 빈축을 사기도 했다. 노동시간 단축처럼 양육자에게 돌봄에 필요한 시간을 보장하는 근본적 대책이 아니라 땜질식 처방에 불과한데다 이는 교사집단의 초과근무를 담보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상담이 대체 뭐기에, 하는 말이 나올 만도 하다.

교사와 학부모가 얼굴을 마주할 기회가 줄어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흐름이다. 수기 알림장을 통해 학사정보를 공지하기도 하지만 정확성과 시의성을 위해 대부분의 학교와 학급이 별도로 지정한 앱을 이용하는 것이 추세다. 학부모의 피드백도 마찬가지 온라인 공간에서 이뤄진다.

1학년 때 담임교사가 교문이나 주요 통학로까지 아이들을 이끌어주는 하교지도도 학년이 올라가면 사라지거나 축소된다. 양육자가 담임교사와 1대 1로 만나 소통할 일은 특수한 경우가 아닌 이상 상담을 제외하고는 없다고 봐야한다.

그래서 여러 불편한 상황과 감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양육자들은 상담에 가치를 둔다. 디지털 시대라지만 자녀문제에서 만큼은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소통하는 방식을 선호하는 정서가 남아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왕이면 상담이 소통의 공간이 되면 좋겠다. 학기 초에는 주로 교사가 양육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다음에는 부모가 교사의 이야기를 경청해 내 아이에 대해 좀 더 알아가는 기회로 여기면 더욱 의미가 깊지 않을까. 

나부터 마음을 열고 교실 문을 두드려야겠다.

*칼럼니스트 백운희는 여전히 육아와 관련한 이야기에는 흔들리는 눈빛과 팔랑거리는 귀를 가지고 초등생 딸을 키우고 있는 전업모입니다. 아이와 함께 부모로 성장하며 겪은 시행착오들을 통해 조금 덜 실망하고 좌절하는 육아 팁을 나누고 싶습니다.

【Copyrightsⓒ베이비뉴스 pr@ibabynews.com】 

베사모의 회원이 되어주세요!

베이비뉴스는 창간 때부터 클린광고 정책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작은 언론으로서 쉬운 선택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이비뉴스는 앞으로도 기사 읽는데 불편한 광고는 싣지 않겠습니다.
베이비뉴스는 아이 낳고 기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 대안언론입니다. 저희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좋은 기사 후원하기에 동참해주세요. 여러분의 기사후원 참여는 아름다운 나비효과를 만들 것입니다.

베이비뉴스 좋은 기사 후원하기


※ 소중한 후원금은 더 좋은 기사를 만드는데 쓰겠습니다.


베이비뉴스와 친구해요!

많이 본 베이비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마포구 마포대로 78 경찰공제회 자람빌딩 B1
  • 대표전화 : 02-3443-3346
  • 팩스 : 02-3443-3347
  • 맘스클래스문의 : 1599-0535
  • 이메일 : pr@ibabynews.com
  • 법인명: 베이컨(주)
  • 사업자등록번호 : ​211-88-48112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서울 아 01331
  • 등록(발행)일 : 2010-08-20
  • 발행·편집인 : 소장섭
  • 저작권자 © 베이비뉴스(www.ibabynew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개인정보보호 배상책임보험가입(10억원보상한도, 소프트웨어공제조합)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유미 실장
  • Copyright © 2024 베이비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r@ibabynews.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