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이 여행을 가기로 했습니다. 여행 전 날부터 저는 우리 딸 리예(6)를 설득하려고 했습니다. 평소 같으면 마냥 좋다고 따라 나설 친구인데, 그 날은 다음 날 '선머걷기(?)'를 해야 해서 못 간다는 겁니다. 여행지에 가면 리예가 제일 좋아하는 수영장도 있고, 고래가 있는 바다도 있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을 수 있다고 아무리 설득을 해도 소용이 없더라고요.
아이가 기특하게 여행도 안 가고 유치원에 간다고 하는데, 부모 입장에서 계속 여행 가자고 하는 게 좀 아닌 것 같아서 그냥 여행 날 아침에 다시 설득하기로 했습니다. 아침엔 여행을 바로 가야 하니까 더 손쉽게 설득이 될 거라고 생각한 거죠. 스케줄 때문에 밤에 없었던 우리 아내도 함께 할 테니 더 쉬울 겁니다.
아침이 왔습니다. 먼저 아내가 리예에게 어제 제가 했던 대사와 아주 유사한 멘트를 날립니다. 역시 부부네요. 헉! 안 먹힙니다. 신기할 정도로 전 날 저와 리예가 했던 말을 둘이 반복하고 있네요.
울음 떼를 쓰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저항을 시작합니다. 사실 이 정도까지 떼쓰는 일이 없는 친구인데, 대체 왜 유치원을 가야하는지 알고 싶어지더라고요. 그러기 위해서 문제의 단어 선머걷기가 뭔지 정확히 알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차분하게 물었죠.
"리예야! 어제 말했던 그게 뭐야?"
"선머거기."
"웅얼거리지 말고, 제대로 말해 봐봐. 아빠가 단어가 이해가 안돼서 그래~."
"선상걷기! 줄을 따라 걷는 거야."
"선상걷기? 선상걷기? 그건 뭐지? 어딜 걷는 거야?"
그렇게 '선상걷기'라는 단어를 따라가면서 계속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사춘기 학생처럼 "아! 나도 몰라~" 소리를 빽 지릅니다. 화가 덜컥 나더라고요. 평소 화를 내지 않아도 아이를 컨트롤 할 수 있다고 자신하던 저지만, 진짜 "확 마!" 소리를 지르고 싶더라고요. 하지만, 일단 그 상황에서 한 발 물러났습니다.
그리고 유치원을 보낼 준비를 했죠. 물론 여행 시간을 까먹는 것이긴 하지만 아이의 기분을 상하게 하면서까지 떠나는 여행이 얼마나 재미있겠습니까? 그래서 일단 보내고 좀 일찍 데리고 오기로 했습니다. 등원을 시키고 돌아오는 길에 유치원에 전화를 했습니다. 대체 그 선상걷기가 뭔지 알기 위해서요. 그래서 물었더니 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 선상걷기요! 선을 따라 걷는 거예요. 아이들에게 규칙을 지키고 협동할 수 있게 하는 수업 중에 하나에요."
리예와 비슷한 내용의 설명이었고 역시나 이해는 잘 안 됐습니다. 그러던 중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리예는 아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설명을 한 거였구나? 그런데, 그 최선의 대답을 했는데도 내가 이해를 못하니 본인도 어지간히 답답했겠네.’
그러고 보면 우리들은 아이가 최선을 다하고 있는 상황임에도 그것을 헤아려주지 못할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런 것을 헤아릴 수 있다면 분노보다는 칭찬거리가 훨씬 더 많아질 텐데 말입니다. 오늘 하루도 최선을 다해서 살아준 우리의 아이들에게 이해와 칭찬을 더 줘야겠습니다.
*칼럼니스트 이정수는 ‘결혼은 진짜 좋은 것’이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가며 살고 있는 연예인이자 행복한 남편, 그리고 아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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