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뉴스 김재희 기자】
“아이돌봄을 시작한 지 햇수로 13년이지만 아직도 교통비를 논하고 있다는 게 아이돌보미로서 자존감이 떨어집니다.”
서울 서대문구 건강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 소속 아이돌보미 강순애 씨는 교통비를 내고 나면 최저시급도 손에 쥐지 못하는 아이돌보미의 노동현실을 토로했다. 강 씨는 “지금 아이돌보미는 60시간을 제대로 채우지 못하면 4대보험 혜택, 주휴수당, 퇴직금 혜택도 받지 못한다”며 “한 달 평균 임금이 40만 원밖에 되지 않아 이직률이 높고 정착이 힘들다”고 설명했다.
아이돌보미 10년 차 활동 중인 장경순 씨도 “월수입 40만 원 벌겠다고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봉사하는 마음으로 근무해야 한다’고 한다”고 말했다. 이어 “아이돌보미 사업비까지 부담하며 일해야 한다는 현실이 황당하다”며 “이용자는 토요일 이용요금을 1.5배를 부담하지만, 아이돌보미는 시급 8400원을 받는다”고 말했다.
아이돌보미 노동 현실에 대한 증언은 26일 서울 홍제동 서대문구 근로자복지센터에서 열린 돌봄노동자 노동환경 실태조사 결과발표회에서 나왔다. 이번 행사는 공공연대노동조합 서울경기지부 아이돌봄지회 서대문구분회와 민중당 서대문구위원회가 주최했다.
아이돌보미들은 올해 여성가족부가 위치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집회를 열었고, 추석을 앞두고는 서울시청사 앞에서 노숙농성도 진행했다. 이번 행사는 '아이돌보미 처우문제를 지방자치단체도 함께 책임져달라'는 의미로 열렸다. 이 자리에는 서대문구 건강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 소속 아이돌보미 30여 명과, 서대문구청 여성가족과 담당자, 서대문구의회 소속 차승연 의원이 참석했다.
아이돌봄을 이용하는 가정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박희진 민중당 서대문구위원회 위원장은 “지역구는 주민이 일하고 생활하는 데 어떤 도움을 주고 개선할 것인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사업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고, 돌봄노동자를 안정적으로 지원하며, 주민들도 안정적으로 일을 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서대문구의 역할”이라며 행사 개최 의의를 강조했다.
◇ 아이돌보미 90%가 느끼는 고용불안… 낮은 임금에 교통비 부담까지
이 자리에서는 현장노동자의 발언과 더불어, 서울 서대문구 건강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 소속 아이돌보미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도 공개됐다. 전체 151명 중 109명을 대상으로 한 이번 조사는 지난달 9일부터 17일까지 진행됐으며, 오프라인 설문으로 기본소득·근로 시간·교통비 사용금액·근로 환경 등을 조사했다.
전체 109명 아이돌보미 중 89.6%가 ‘고용불안을 느낀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이들은 “(아이돌보미) 진입장벽이 높지는 않지만 실제 방문자 가정수가 많지 않거나 이용자 가정의 사유로 취소되는 경우 모두 활동이 인정되지 않아 사실상 급여를 받을 수 없다”며 “기본 급여가 존재하지 않고 활동건수와 시급으로 급여가 책정된다”며 아이돌보미가 고용불안을 크게 느끼는 이유를 분석했다.
아이돌보미 노동환경을 살펴보면, 절반 이상인 52.9%가 하루 평균 한 가정을 방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가정 방문자 56명 중 주 40시간 이상 근무자는 8명뿐이다. 즉, 한 가정 방문자 대다수는 주 30시간 이하로 일하고 있으며 월 평균임금이 100만 원 이하로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아이돌보미들은 예방접종비용과 더불어 교통비 지급을 지자체에 요구하고 있다. 이번 조사에서 돌봄 가정 방문 시 평균 이동시간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9.4%가 30분에서 1시간 이상을 소요해 이용자 가정으로 이동하는 것으로 나왔다. 전체 중 77.1%가 버스를 이용한다고 답했으나, 월 평균 교통비 지출액을 묻는 질문에 67.7%가 5만 원에서 10만 원까지 사용한다고 답했다.
◇ 교통비·식비 각 1만 원과 서대문구 생활임금 조례 적용 요구
공공연대노동조합 서울경기지부 아이돌봄지회 서대문구분회 강성자 분회장은 “활동을 하기 위해서 다른 일도 못하고 하루종일 기다리는 대기 상태에 있다”고 말했다. 강 분회장은 “서대문구는 지대가 높은 곳이 많아 버스를 이용해 이동한 후 언덕을 오르고, 빌라 4층까지 올라가야 한다”며 “어렵게 올라가고 나면 이용자가 취소하는 집도 있다”고 말했다.
강 분회장은 “이전 활동이 있는 집에서 늦게 끝나면 어린이집 통학버스를 타고 귀가하는 (다음 돌봄) 아이를 기다리게 할 수 없어 택시를 타고 가기도 해야 한다”며, “돈을 벌겠다고 나오는 건지 돈을 쓰겠다고 나오는 건지 모르겠는 상황도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서대문구에서 활동하는 아이돌보미들은 구의회에 교통비와 식비 각각 1만 원 지급과 함께, 서대문구 생활임금 조례 적용을 요구했다. 교통비 지원금의 경우, 서대문구 아이돌보미 151명이 월 평균 근로일수가 20일임을 감안해 계산하면 필요 예산은 약 3억 6240만 원이다.
이 자리에는 구의회 예결특위 위원장인 차승연 의원도 참석했다. 차 의원은 “아이 낳는 분들의 노동환경을 개선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돌봐주는 분들의 노동환경도 개선돼야 저출산 문제도 해결될 수 있다”며 아이돌보미들의 처우개선 문제에 공감했다.
“서초구에서 실시하는 교통비와 식비 지원은 적극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지만 서초구와 서대문구의 재정상황이 다르다”라고 말한 차 의원은 “서대문구 재정상황을 고려해 세 가지 중에 단계적으로 실행할 수 있도록 고민해보겠다”고 말했다.
서대문구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다음달 3일부터 2020년도 예산안 심의를 시작한다. 내년도 구 예산은 6066억 원 규모다. 다음달 2일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아이돌보미들은 예산안 심사에 돌봄노동자 처우개선을 위한 행동에 나설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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