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 ‘최후의 방어선’ 실험복, 임신 중에 못 입었다 
과학자 ‘최후의 방어선’ 실험복, 임신 중에 못 입었다 
  • 칼럼니스트 윤정인
  • 승인 2019.12.24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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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과학자 생존기] 임신한 과학자를 지켜줄 이, 과연 누구인가

임신을 확인했다. 입덧이 시작됐다. 배는 점점 더 불러오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실험을 놓지 않고 있었다.

임신 기간 입덧은 사실 큰 문제가 안 됐다. 내 입덧은 흔히 어른들이 말하는 ‘착한 입덧’이었다. 일하는 동안에는 입덧이 없다가 퇴근하고 집에 돌아옴과 동시에 아무것도 못 먹고 다 토해냈다. 밖에서 볼 땐 아주 건강한 임신부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쓸데없는 입덧’이었다.

매일같이 아무것도 못 먹는 사람과 비교하면 먹고 토하는 게 낫다지만, 내게도 나름의 고충이 있었다. 내 ‘착한 입덧’은 고기를 거부하는 입덧이었다. 고기를 거부한다는 것은 내 몸에 단백질이 매우 부족해짐을 의미한다. 

그리고 나는 실험(이라 쓰고 ‘막노동’이라 읽는)을 하는 사람이었다. 늘 체력이 부족한데 단백질마저 모자랐다. 배 속의 아이에게 다량의 철분도 공급해야 했기에 내 몸의 철분 또한 부실해지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임신 중 빈혈로 나름대로 고생을 좀 했다. 

사실 입덧이 시작되고 가장 걱정했던 것은 유기화학 실험실 특유의 냄새였다. 아무리 배기와 환기에 신경을 써도 실험실에서는 늘 이상한 시약 냄새와 역한 Solvent(용매) 냄새가 나서 구역질이 더 심하게 날 줄 알았는데, 배 속 아이가 실험을 해야 하는 엄마의 상황을 이해한 덕분인지, 다행히 시약 냄새를 맡고 ‘우웩’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저,
임신부인데 ‘강제로’ 채식주의자가 되었고, 여전히 실험하고 있고, 그냥 배가 좀 나온 연구자일 뿐이었으니, 아주 평탄해 보이는 시간이었다. 

임신 6개월이 지나자 맞는 실험복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실험복을 포기했다. ⓒ윤정인
임신 6개월이 지나자 맞는 실험복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실험복을 포기했다. ⓒ윤정인

◇ 군복도 임신부용이 있는데, 왜 임신부를 위한 실험복은 없나 

하지만 배가 나오면서 아주 불편한 사항이 한가지 생겼다. 바로 실험복이었다. 맞는 실험복이 없었다. 유기화학자에게 실험복이란 수많은 시약은 물론이고 자상과 화상으로부터 나의 몸을 지켜주는 ‘최후의 방어선’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나는 임신부. 내 안에 생명이 하나 더 있으니 결국 실험복 한 벌이 두 명의 생명을 지킨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맞는 실험복이 없었다. 배가 나오면 나올수록 실험복은 작아졌다. 처음에는 한 치수 큰 실험복을 입었다. 그럭저럭 버텼는데 역시 임신 6개월이 넘어 배가 더 나오니 이젠 잠기지도 않았다. 그다음엔 남자 실험복을 구해서 입었다. 나는 키가 작아 옷이 땅에 끌렸다. 어쩔 수 없이 실험복을 포기하고 앞치마를 선택했다. 앞치마도 점점 들떠서 막달엔 그냥 앞치마를 몸에 걸치고 돌아다니는 것을 선택했다. 

왜 임신부를 위한 실험복은 없는 걸까? 임신한 군인을 위한 군복도 있고, 은행원들도 임부복이 있던데 왜 우린 없을까? 임신하고 랩(LAB)에 나오는 사람이 없어서, 필요하다고 말하는 이가 없어서였을까? 이제야 하는 말이지만 정말 너무 불편했다. 가뜩이나 배가 많이 나와서 실험 테이블에 배가 닿아 배 쪽에 뭐가 묻을 때가 많았는데, 그 배를 지켜줄 보호복이 없다는 사실이 너무 불편했다. 

안전교육도 문제였다. 아직 한국의 실험실은 안전문화에 대한 인식이 많이 부족하다. 실험자에게 노출되는 독성물질에 관한 교육과 연구 또한 부족하다. 개인적으로 교육이 가장 부족하다고 보는데, 특히나 유전독성에 대한 교육이 아주 부족하다는 사실을 이 시기에 경험했다. 

◇ 실험실 내 독성물질도 임신부가 알아서 검색… 후배들은 좀 나은 상황이길 

임신 사실을 지도 박사님께 알리고 나서 내가 제일 먼저 한 일 중 하나는 내가 사용하는 시약과 Solvent 등에 대한 독성정보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다행히 흡입 시 문제가 되는 시약은 없었고, 또 내가 있던 실험실은 장비, 특히 흄 후드(fume hood, 실험실 내 먼지, 연기, 유해가스 등을 배출해 화학물질의 노출로부터 작업자를 보호하는 장치 - 편집자 주)가 훌륭한 곳이어서 독성물질을 흡입할 일 자체는 없었다. 하지만 그런 정보를 임신부인 내가 일일이 찾아야 한다는 점이 좀 불편했다. 

일일이 MSDS(물질안전보건자료)를 찾아서 독성정보를 확인한다는 것이 얼마나 불편한 일이냐고 묻는다면, 1000만 원을 100원짜리 동전으로 바꿔서 일일이 세는 일과 같다고 표현하고 싶다. 나에겐 실험실에 쌓인 시약의 MSDS를 일일이 찾으며 유전독성을 확인하는 일이 100원짜리 동전으로 1000만 원을 세는 일과 같게 느껴졌다. 

앞으로는 실험실 안전에 대한 체계가 잘 구축되어 임신하는 내 후배들은 클릭 한 번에 임신 시 위험한 시약이나 용매들에 대한 정보를 바로 볼 수 있음 참 좋겠다. 

그래도,
내 몸에 해당하는 일을 알아보고 대처하는 것은 그나마 쉬운 일에 속했다. 

자신의 실험실을 꾸며놓고 물티슈를 연구하겠다는 아들. ⓒ윤정인
자신의 실험실을 꾸며놓고 물티슈를 연구하겠다는 아들. ⓒ윤정인

◇ “배 속에서부터 ‘사이언스지’ 읽게 해서 미안해, 땡글아” 

이제 다음으로 내가 준비해야 하는 것은 휴가가 존재하지 않는 대학원생이 출산휴가를 어떻게 쓸 수 있는지를 찾아보는 것과 (사실 출산휴가가 있는지도 모르겠고…),여기에 옵션으로 혹시라도 육아휴직은 가능한 것인지와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마지막으로 어린이집 등록 등 다양한 빅 이벤트들이 남아 있었다.

이런 빅 이벤트가 기다리고 있었기에 다른 산모들처럼 조리원이나 출산 병원에 대해 고민할 시간이 없었다. 그냥 적당한 조리원, 적당한 병원이면 만족할 수 있었다. 사실 나에겐 그러한 일이 중요하지 않았으니까. 아이를 낳는 것은 의료행위라고, 그래서 의료진에게 맡긴다고 생각하고, 남은 임신 기간 위의 일들을 걱정하며 지냈다.

그러다 보니 사실 태교를 해본 적도 없던 것 같다. 그래도 내가 아이에게 해준 태교라고, 굳이 찾아 말해 본다면 임신 중 진행한 랩 미팅과 랩 세미나에서 한 논문 세미나 정도?

아마도 우리 땡그리(태명)는 엄마 배 속에서부터 사이언스지, 네이처캠, OL 등의 페이퍼에서 total synthesis와 organic chemistry의 아름다운 메커니즘 공부를 하며 지낸 셈이라고 쳐야 할 것 같다.

얼마 전까진 태교를 우습게 생각했는데, 요즘 우리 아들이 하는 행동을 보면 태교는 무시할 것도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 아들은 자신의 실험실을 세팅한 후 물티슈를 연구하겠다고 나서며, 이런 걸 좋아하는 ‘사이언스 키즈(Science Kids)’가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절대로 이건 엄마가 강요한 일이 아니다. 

그리고 랩 미팅으로 태교한 덕인지, 우리 아이는 영어를 좋아한다. 영어를 알아서 좋아한다기보다는 그냥 누군가 영어로 ‘솰라솰라’하는 것 듣기를 좋아한다. 아마도 아기 때 주말 출근하는 나를 따라 실험실을 오가며 외국인 연구자들이 아주 잠깐이었지만, 아기를 봐준 덕분인 것 같기도 하다. 

하여튼,
실험복도 못 입는 ‘불쌍한’ 실험인의 생활보다, 더 중요한 육아휴직과 어린이집을 알아보기 위해, 배불뚝이가 된 나는 미친 듯이 전화 돌리는 일을 임신 7개월 때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우리나라에는 정말 많은 정책이 존재한다는 거, 근데 직접 찾아야 알 수 있다는 거, 어디서도 홍보를 안 해 준다는 거!

격동의 임신기, 빅 이벤트인 휴가와 어린이집을 알아보러 이렇게 배불뚝이 임신부가 직접 움직이게 된 것이었다. 

*칼럼니스트 윤정인은 대학원생엄마, 취준생엄마, 백수엄마, 직장맘 등을 전전하며 엄마 과학자로 살기 위해 "정치하는엄마들"이 되었고, ESC(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에서 젠더다양성특별위원회의 위원장이 되어 프로불만러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실은 회사 다니는 유기화학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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