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에 먼저 잘리는 여성…“‘경력단절’에 차별·혐오 있다”
구조조정에 먼저 잘리는 여성…“‘경력단절’에 차별·혐오 있다”
  • 김재희 기자
  • 승인 2020.01.31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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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30일 국회서 성평등노동정책 토론회 열려

【베이비뉴스 김재희 기자】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는 30일 ‘21대 국회에 바란다 : 성평등노동정책토론회’에서 경력단절의 패러다임을 확대할 것을 주장했다. 서종민 기자 ⓒ베이비뉴스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는 30일 ‘21대 국회에 바란다 : 성평등노동정책토론회’에서 경력단절의 패러다임을 확대할 것을 주장했다. 서종민 기자 ⓒ베이비뉴스

‘여성의 경력단절은 임신과 출산, 육아 때문’이라는 것이 그간의 정설이었다. 통계청의 ‘2017년 상반기 경력단절여성 및 사회보험 가입현황’도 여성의 경력단절 이유로 결혼(34.5%), 육아(32.1%), 임신·출산(24.9%)을 꼽았다. 

하지만 보기를 바꾸면 어떨까. 2014년 서울시여성가족재단에서 실시한 조사에서 여성들은 ‘근로조건 및 직장환경(23.1%)’, ‘계약만료(19.6%)’, ‘결혼·임신·출산 시 퇴사 관행(13.7%)’ 때문에 경력단절을 경험하게 됐다고 응답했다.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는 “경력단절이라는 상황 속에 여성차별과 여성혐오가 자리 잡고 있다”고 분석했다. ‘여성의 경력단절’이라는 말 안에 갇혀 있게 되면 구조조정 때 남성보다 여성이 먼저 등 떠밀리는 상황을 이해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 배 대표의 설명이다. 따라서 “‘고용단절’이라는 보다 포괄적인 용어를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1대 총선을 70여 일 앞두고, 민중당과 전국여성연대는 3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21대 국회에 바란다 : 성평등노동정책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번 토론회는 성평등 노동정책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관련 정책을 마련하고자 열렸다. 각계각층 여성노동자들이 참석해 그 실태를 말하고 성평등한 노동현장을 만들기 위한 개선방안을 제시했다.

◇ “노동정책은 구조적 차별 없애는 방향으로… 임금공시제, 해결이 아닌 출발” 

배 대표는 ‘성평등 노동’이라는 용어를 두고 “2017년부터 전국여성노동조합 전국 지부와 함께 모여 ‘여성에게만 한정된 정책이 아니고 보편적인 노동정책이 필요하다’는 의미로 (이 용어를) 만들게 됐다”고 설명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고 사회적으로 합의를 했기 때문에 이 말이 확산됐다고 본다”고 말했다.

‘존중받는 노동, 성평등 노동실현을 위한 제언’이라는 제목으로 발제한 배 대표는 현재 노동정책이 가진 문제를 진단하고 ‘성평등 노동’을 위한 정책 과제를 제안했다. 

성평등 노동정책 방향을 ▲여성인력활용정책이 아닌 성평등 노동정책 수립 ▲경력단절이 아닌 고용단절 문제 해법 필요 ▲낮은 곳에 위치한 여성노동자들의 노동인권 확보 방안 시급 ▲남성생계부양자모델이 아닌 개인독립생활자 모델로의 정책 수립 등 네 가지로 제시했다.

2017년 여성 일자리 대책 기본방향. ⓒ고용노동부
2017년 여성 일자리 대책 기본방향. ⓒ고용노동부

이런 차원에서 2017년 12월 정부가 발표한 ‘여성 일자리 대책’에 배 대표는 우려를 표시했다. “여성을 도구화해서 저출산 고령사회에 대응하고 국가 성장률을 높이겠다는 말일 뿐, 여성의 삶은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면서 “노동정책은 젠더 불평등을 해소하고 구조적 차별을 제거할 수 있도록 확장되고 통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배 대표는 “‘경력단절’ 패러다임을 다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고용단절’이라는 보다 포괄적인 의미구조 속에서 다양한 고용형태와 고용지위를 구분해 고용단절의 성격을 분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여덟 가지 정책과제도 함께 제시했다. ‘성평등 노동 실현을 위한 국가 기반 조성’, ‘성별임금격차 해소’, ‘성평등한 직장문화 구축’, ‘일·생활 균형’, ‘모·부성권 보장’, ‘안전한 일터와 사회 안전망 강화’, ‘노동관계법 사각지대 해소’, ‘돌봄노동자 노동권 확보’ 등이 그것이다.  

이 중에서도 성별임금격차 해소도 시급하다는 점을 언급했다. 2019년 기준 남성 정규직 임금을 100이라고 가정할 때, 여성 비정규직 임금은 37.7에 불과하다. 한국은 2000년 이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서 성별임금격차를 집계한 이후 한 번도 1위를 놓친 적이 없다. 2017년 기준 한국의 남녀 임금 격차는 34.6%까지 벌어져 있다.

배 대표는 “‘왜 고위직에 여성이 없고 하위직에 여성이 몰려 있는지’와 같은 질문을 시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재 정부는 일부 공공기관에 한해 ‘성평등 임금공시제’를 시행 중이다. 성평등 임금공시제는 직원들의 성별·고용형태별 임금 정보를 공개하는 제도다.

이 제도를 두고 배 대표는 “임금 격차를 눈에 보이게 제시하기 때문에 문제의 시작이지 완결이 아니”라며 “문제를 드러내고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고 다음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중당과 전국여성연대는 3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21대 국회에 바란다 : 성평등노동정책토론회’를 개최했다. 서종민 기자 ⓒ베이비뉴스
민중당과 전국여성연대는 3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21대 국회에 바란다 : 성평등노동정책토론회’를 개최했다. 서종민 기자 ⓒ베이비뉴스

◇ “농촌에도 서비스와 예산을”… “‘82년생 김지영법’으로 육아노동 가치 인정해야”

“농촌에 들어오는 순간 20년 전으로 되돌아가는 것 같아요. 적나라하게 현실을 얘기했다가는 남성들이 ‘농촌 여성들에 비해 얼마나 행복하냐’고 반발할 것 같아서 망설여져요.”

오순이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정책위원장은 가사와 마을 행사, 농외수익 등을 위한 노동도 짊어진 여성농민의 현실을 전했다. 2018년 기준 여성농민은 전체 농가인구의 51%를 차지한다. 여성농업인이 농사일의 절반 이상을 담당하는 농가 비중은 52.5%에 달한다. 지난해 6월에서야 농림축산식품부는 6명의 전담인력이 속한 농촌여성정책팀을 신설했다. 

‘농촌은 농촌 현실에 맞는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 오 위원장의 설명. 지난해 11월 농식품부와 고용노동부는 ‘고용보험 미적용자 출산급여 지원제도’ 시행지침 지원 대상으로 여성농민을 포함했다.

일해야 하는 시기가 정해져 있는 농촌. 출산을 마친 여성에게 수당보다 실질적인 ‘쉼’이 더 시급하다. 오 위원장은 “농번기에 출산하면 ‘애 낳자마자 일하러 나가는 상황’이 당연히 벌어진다”며 “쉼터나 시설 등을 마련해서 실제로 쉴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오 위원장은 여성농민의 처우를 함께 고민해달라고 당부했다. “농촌 자체를 중요한 산업으로 보고 국가적으로 도시에 준하는 서비스망을 확보하고 예산을 투입하지 않으면 농촌의 소멸을 막을 수 없다”고 말했다.

30일 ‘21대 국회에 바란다 : 성평등노동정책토론회’에서 오순이 위원장은 농촌 상황에 맞는 예산과 정책을 지원해줄 것을 당부했다. 서종민 기자 ⓒ베이비뉴스
30일 ‘21대 국회에 바란다 : 성평등노동정책토론회’에서 오순이 위원장은 농촌 상황에 맞는 예산과 정책을 지원해줄 것을 당부했다. 서종민 기자 ⓒ베이비뉴스

일명 ‘82년생 김지영법’ 입법을 청원한 박수경 씨는 토론에서 “어렵게 진입한 노동현장을 출산과 육아 때문에 더 이상 유지할 수 없게 한 것은 국가와 사회 책임”이라고 정의했다. 박 씨는 “육아노동의 사회적 가치를 인정하고 사회적으로 보상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박 씨가 청원한 법은 육아보험법과 바로복직법 두 법안으로 구성된다. 육아보험법은 ‘육아기 여성의 노동권을 보장하기 위해 사회급여가 제공돼야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며, 바로복직법은 ‘출산·육아휴직 이후 여성이 동일 임금·동일 지급으로 복직을 보장하자’는 내용을 담았다. 

박 씨는 “‘82년생 김지영법’을 제정해 육아노동자의 노동권을 보장하고 여성의 노동권을 안정화해야 한다”며 “육아와 가사노동이 그 가치를 인정받고 보상받아 누구나 아이를 낳고 키우는 데 주저함 없이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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