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내 손을 잡은 걸까, 내가 네 손을 잡은 걸까
네가 내 손을 잡은 걸까, 내가 네 손을 잡은 걸까
  • 칼럼니스트 이샛별
  • 승인 2020.06.23 14: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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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듣는 엄마가 아닌 더 '잘' 보는 엄마로 성장하기] 엄마에게 소리를 보여준 아이 덕에 '큰 사고' 피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이어지는 평일은 나도 아이도 각자의 일상을 분주히 살아가느라 여념이 없다. 하지만 주말은 온전히 서로를 바라보는 시간이다. 나는 예준이와 함께 어린이집 알림장과 어린이집에서 보내온 예준이의 활동사진을 보며 주말을 시작한다. 

주말엔 서로 바쁜 티를 안 내는 것 같다. 느리면 느릴수록, 천천히 시간이 가는 동안 서로의 눈빛을 읽을 수 있어서 좋은 주말이다. 물론 워킹맘으로서 충분히 쉴 수 있는 여유가 없는 것이 아쉽기도 하다.

“예준아, 오늘 아침밥은 그냥 오믈렛에, 식빵 구워서 먹을까?”

질문이 다 끝나기도 전에 엄마의 손은 이미 식빵을 향한다. 평소엔 아무리 바빠도 밥과 반찬, 그리고 국까지 골고루 챙겨 먹이는 편이다. 그런데 오늘은 아침만큼은 브런치로 즐기고 싶었던 엄마는 ‘작은 욕심’을 부려본다.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예준이는 엄마의 손에 들려 있는 식빵에서 시선을 떼지 않는다. 엄마의 브런치 메뉴가 식빵에 딸기잼, 그리고 시원한 커피라면, 예준이의 브런치 메뉴는 달걀과 잘게 다진 브로콜리를 한데 모은 오믈렛, 식빵, 그리고 우유다. 

배도 채웠겠다, 더워지기 전에 동네 한 바퀴 후딱 산책하고 오자는 엄마의 제안에, 예준이는 현관 앞에서 제 신발을 엄마 눈앞에 보여준다. 그 작은 정성이 새삼 대견하다.

“자, 신발도 다 신었다. 나가자!”

예준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햇빛의 인사가 뜨거울까 싶어 귀여운 파라솔도 유모차 손잡이에 설치하고 나서야 비로소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었다. 엘리베이터의 알림음이 울리자마자 예준이는 벌써 발을 동동 구른다. 

유모차 손잡이를 두 손으로 꼭 움켜쥔 예준이의 눈망울에 바람에 살랑이는 나뭇잎 소리, 앞집 할머니 지팡이 소리,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 웃음소리가 가득한 동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할 때 “밖에 나오니까 어때? 시원하지?”라고 물으며 예준이의 얼굴을 살짝 들여다봤다. 그 순간, 예준이가 갑자기 뒤돌아보며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킨다.

“저~ 저~ 빵빵!”

엄마에게 소리를 보여준 예준이 덕에 정말이지 '큰 사고'를 피할 수 있었다. ⓒ이샛별
엄마에게 소리를 보여준 예준이 덕에 정말이지 '큰 사고'를 피할 수 있었다. ⓒ이샛별

아차, 급하게 나오느라 보청기를 미처 챙기지 못했는데…. 알고 보니 우리 뒤에서 택배 트럭이 조용히 따라오고 있었다. 화들짝 놀라 유모차를 급하게 돌려 샛길로 피했다. 예준이는 트럭 소리가 난다고 엄마에게 알려준 것인데, 나는 그게 주변 풍경을 가리킨 것인 줄로만 알았다.

이미 몇 차례 경적을 울렸는데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마냥 다정하게 걷기만 한 우리에게 화도 내지 않고 조용히 따라와 주신 택배 기사님께 괜스레 죄송스러웠다. 집마다 택배를 배송하느라 바빠 여념이 없으셨을 텐데…. 하지만 기사님도, 예준이도 나를 어느 정도 이해한 것 같았다. 

정말이지 큰일 날뻔한 사고를 면했다. 우리 옆쪽으로 비켜나가던 택배 기사님의 얼굴이 창문 근처로 보였을 때 유모차에 있던 예준이가 미소를 지어 보이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 모습을 본 엄마도 함께 택배 기사님께 고개를 숙이며 감사한 마음을 표현했다. 나와 예준이가 겪은 것처럼, 어느 날 어디선가 누군가가 경적에도 외침에도 반응이 없다면 조금 더 기다리는 여유를 가져주면 어떨까 하는 마음이 드는 순간이었다.

*칼럼니스트 이샛별은 경기도농아인협회 미디어접근지원센터에서 농인(=청각장애인)을 위한 보이는 뉴스를 제작하며, 틈날 때마다 글을 쓴다. 유튜브 ‘달콤살벌 농인부부’ 채널 운영, 다수 매체 인터뷰 출연 등 농인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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