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살 어린이가 온다
100살 어린이가 온다
  • 칼럼니스트 문선종
  • 승인 2022.05.27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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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점멘토 레오의 실존육아] 어린이날 100주년을 되돌아 보며

올해는 어린이날 100주년을 맞은 해다. 어린이날을 뒤돌아보며 100주년 키워드를 검색했다. 긍정적 키워드가 대부분이었지만 유독 눈에 띄는 부정 키워드가 있었다. ‘차별’이었다. 어린이날 하루 전 인권위에서는 주린이·부린이·캠린이와 같은 용어는 아동 비하·차별 단어라는 보도자료를 냈다. 최근 어떤 분야에 ‘어린이’를 합성해 초보자를 뜻하는 단어를 많이 쓰고 있다. ‘~린이’라는 신조어의 포문을 연 ‘헬린이’의 경우는 인스타그램 헤시 태그로 올라온 게시물이 무려 387만 개다. 텍스트의 시대는 저물고, 새롭게 등장한 이미지의 시대에 귀엽고, 순진무구한 ‘어린이’의 심상을 도둑질한 듯 마음껏 쓰고 있다.    

이렇게 아동을 비하하는 발언이 자칫 차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인권위는 주무부처에 공문을 보냈다. 문체부와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등 공공기관에 '~린이‘ 표현을 쓰지 않도록 방안을 마련하라는 주문이었다. 하지만 돌아온 반응은 의아했다. 문체부는 오히려 정감 있게 들린다며 차별 표현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했다. 국립국어원은 아직은 차별 표현이라는 범위가 명확하지 않아 국민적 공감과 합의가 필요한 사안이라고 전했다.  

◇ 어린이가 쫓겨나고 있다

‘근대철학의 신 비트겐슈타인은 같은 국어를 사용한다고 해도 삶의 맥락에서 다양한 언어들이 존재한다고 했다. 어린이를 위대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사리분별 못하는 미숙한 존재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 가정, 어떤 집단, 어떤 사회에서 어린이라는 언어는 다양하게 존재한다. 우리에게 선택권이 없다. 통용되는 언어의 사유를 맹목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다. ‘어린이’는 사전적 정의로 ‘어린아이를 대접하거나 격식을 갖추어 이르는 말’이다. 이런 사전적 정의를 위해서는 적어도 무릎을 굽혀서 어린이의 눈높이를 맞추든가 그 아래로 가야 쓸 수 있는 말처럼 물리적으로 느껴진다.      

비트겐슈타인은 “제발 생각하지 말고, 보라”고 항상 강조했다. ‘헬린이’ ‘요린이’ 이런 말을 쓰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기 전에 우리 사회가 어린이라는 언어를 쓰는 규칙과 맥락은 무엇인지를 진단해야 한다는 말처럼 들린다. 간혹 아이에게 ‘넌 어린이 같지 않구나’라고 말하며 은근슬쩍 ‘어른스럽다’는 말로 어린이의 세계에서 추방시켜버린다. 아이들에게도 ‘어린이’라는 명칭을 썼을 때 썩 좋아하는 아이들을 보지 못한 것 같다. 첫째에게 어린이라는 호칭을 붙였는데 돌아오는 답은 “(화를 내며) 아니야! 난 언니야!”라는 말이었다. 어린이 자체가 어린 존재를 높이는 말이 아니라 뭔가 어리다고 깔보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네가 무슨 어린애도 아니고 그런 걸 하냐?’라는 말을 자주 듣곤 한다. 굳이 왜 이런 걸 하냐고 따지면 좋았을 것이다. 굳이 ‘어린이’를 ‘어린애’로 실추시켜 끌고 들어오는 것은 왜일까?? 어리고, 무지하고, 모자란 프레임에 가두기 위해 ‘어린이’가 필요한 것일까?    

◇ ‘어리다’ ‘무지하다와 어린이는 같지 않다

영화 레미제라블의 가브로쉬. ⓒ네이버영화 스틸컷
영화 레미제라블의 가브로쉬. ⓒ네이버영화 스틸컷

“깔보지 마세요. 조그만 놈이라고, 만만치 않지요. 허술해 보여도 누구든 덤벼요. 뼈 부러지지요. 만만히 보았다간 큰코다치죠. 작다고 날 얕봤다간 큰 일 나지요."

‘레미제라블’에 등장하는 가브로쉬의 대사다. 18세기 이전에는 ‘어린이’라는 언어가 없었다. 가브로쉬는 어른의 축소판이다. 어른처럼 행동하고, 사회의 한 일원으로 그려졌다. 사회는 그를 어리다고 구분 짓지 않았고, 혁명에 참여하는 동등한 인격체로 봤다. 지금과 무엇이 다른 것일까? 1960년 출간된 필립 아리에스의 「아동의 탄생」에서는 ‘아동’이라는 언어는 근대의 발명품이라 소개하면서 그 결과 18세기에서 19세기 엄격한 규율로 그들을 기숙사에 감금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1923년 5월 최초의 어린이날 행사를 열면서 방정환 선생은 "어린이를 어른보다 더 높게 대접하십시오"라고 말했다. 그 이후 ‘어린이’라는 언어는 험난한 여정을 거치며 100년을 흘러 왔다. 지금 우리 사회의 맥락에서 어떤 규칙으로 사용하고 있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린이’의 규칙은 ‘어리다’ ‘무지하다’ ‘잘 모른다’는 패턴이 들어가 있다. 이는 어린이였던 우리 스스로를 깔보는 것과 같다.

◇ 100살 먹은 새로운 어린이가 온다

지금 어린이 거나 막 어른이 Z세대가 ‘어린이’에 대한 지표가 될 것 같다. 꼰대들은 Z세대를 좀비처럼 주변화 시키는 세태지만 나는 그들에게 희망을 건다. 환경운동을 하는 그레타 툰베리나 비거니즘을 선언하며 학생식당에 채식 식단을 요구하는 어린이들처럼 어른들의 억압과 강요에 굴하지 않은 모습들을 만난다. 체제와 시스템에 ‘미투’를 외치며 어른들의 이중 구속의 속박에서 벗어나 당당해지려 한다. “먼저들 퇴근해요. 난 좀 더 일하고 갈 테니...”라는 부장님의 말에 어엿이 퇴근하는 그들을 선망한다. 100년의 세월을 마신 어린이들은 강인하다. 앞으로의 미래에 유일하게 희망을 걸 수 있는 존재들이다. 그러니 오늘부터라도 ‘어린이’라는 말에 무게감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강점멘토 레오(본명 문선종)은 아이들을 좋아해 대학시절 비영리민간단체(NPO)를 시작으로 사회복지법인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 이르기까지 지난 18년 동안 아동상담 및 교육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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