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산부 배려석 양보 받아본 적요? 단 한 번도 없었어요"
"임산부 배려석 양보 받아본 적요? 단 한 번도 없었어요"
  • 김정아 기자
  • 승인 2022.02.10 12: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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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목소리를 청와대로, '대선 마이크'] ⑥ 임산부 박지은 씨

【베이비뉴스 김정아 기자】

20대 대통령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아이 낳고 기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대통령이 꼭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 베이비뉴스는 대선을 앞두고 육아와 생계를 위해 매일 고군분투하고 있는 아빠·엄마들에게 마이크를 건넸다. 아이를 기르기 위해 우리 사회에서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그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봤다. -기자 말

임신 소양증으로 고생했던 경험을 얘기한 박지은 씨.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임신 소양증으로 고생했던 경험을 얘기한 박지은 씨.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첫 아이 임신했을 때 임신 소양증 때문에 온 몸이 가려워서 잠을 거의 못 잤어요. 가려운 부위를 절단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회사에서 일을 하다가 몸이 가려우면 가려움을 잊기 위해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하기도 하고 화장실에서 몸을 긁으면서 울기도 했어요."

둘째 임신 25주차인 박지은(36·전업주부)씨가 현재 생후 23개월인 아들 이준이를 임신했을 때 임신 소양증으로 고생했던 이야기다. 첫째 출산 전까지 8년 9개월 간 신발 디자이너로 일했던 박 씨는 회사에서 일을 하다가도 불현듯 찾아오는 가려움 때문에 눈물을 삼킨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겪어본 사람만 안다는 임신 소양증 고통을 구구절절 설명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직업 특성상 임신한 몸으로 시장조사를 하느라 걸어 다닐 일도 많았다는 박 씨. 

"디자이너 직업 특성상 번화가에 나가 시장조사를 다니는 일이 많았어요. 명동이나 강남 일대 백화점을 걸어서 1~2시간씩 돌아다니고 지하철을 타게 되면 임산부의 몸으로 만원 지하철에 몸이 끼어 서있게 되죠. 배가 눌릴까봐 조심조심 배를 가리고 서있었어요. 임신 후에는 늘 가방에 임산부 배지를 달고 다녔는데 임산부 배려석 양보를 받아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어요."

지하철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휴대전화를 쳐다보고 있느라 고개를 들지 않기 때문에 앞에 임산부가 서있는지 확인하기 어려웠을 거라고 박지은 씨는 얘기한다. 박 씨는 "저도 임신 전에는 그랬거든요. 야근하고 힘든 몸을 이끌고 지하철에 탔는데 임산부배려석이 비어있을 땐 앉았어요. '임산부가 오면 비켜주면 되지' 하는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제가 임신을 해보니, 그게 아니더라고요. 다들 휴대폰을 쳐다보느라 못 보는 경우가 많아요. 그리고 임신 초기는 배가 나오지 않아서 잘 모르기도 하고요. 임산부를 위해서 임산부배려석은 비워두는 게 맞아요."

◇ '출산은 곧 퇴사?'…"첫 번째 육아휴직자가 돼야 하는 부담감"

디자이너라는 직업 특성상 빠르게 변하는 트렌드를 따라잡아야하고 시장 흐름을 읽을 수 있어야 해서 업계에서 출산은 곧 퇴사라는 얘기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박 씨가 첫 째 출산 전 다녔던 회사는 '감사하게도' 육아휴직을 사용한 전례가 많았다고 박 씨는 표현했다. 

"저는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데 큰 불편함은 없었어요. 하지만 같은 업계, 다른 회사에 다니는 분들 중에는 출산휴가 3개월 쓰고 바로 복직하는 경우가 대다수였어요. 대기업이 아닌 이상 대부분 육아휴직 사용은 어렵다고 보시면 돼요. 본인보다 경력이 많은 윗분들이 육아휴직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첫 번째 육아휴직자가 돼야 하는 부담감이 커서 선뜻 육아휴직을 하겠다고 말을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또, 육아휴직 1년 사용하고 와서 내가 다시 디자이너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 사용하지 못하기도 해요. 그래서 임신 후 출산할 때 맞춰서 아예 퇴직을 결심하는 디자이너들을 많이 봤어요."

현재 전업주부인 박지은 씨도 혹시 같은 이유에서 퇴사를 하게 된 걸까 궁금해졌다. 박 씨는 "남편 직장과 가까운 지역으로 이사를 했는데 그러다보니 원래 다니던 회사와 거리가 너무 멀어졌다"고 퇴사 이유를 설명했다. 또 "막상 육아휴직을 하고 아이를 키우다보니 복직할 때가 됐는데 아이는 생각보다 너무 어렸고 엄마의 손이 많이 필요한 시기이더라"면서 "무엇에 중점을 둘 것인지 고민하다가 아이에게 에너지를 투자하기로 결정했다"고 얘기했다.

◇ "나를 힘들게 하려고 태어났나?"…그럼에도 첫째를 위해 둘째를 낳기로 결심했다

박지은씨는 남편과 양가부모님의 도움으로 둘째를 가질 수 있었다고 말한다. ⓒ박지은
박지은씨는 남편과 양가부모님의 도움으로 둘째를 가질 수 있었다고 말한다. ⓒ박지은

첫 아들이 태어나고 아이가 성장하는 것을 보는 것은 무엇보다 기쁜 일이었다는 박 씨. 아이가 처음 뒤집기를 했을 때, 걷기 시작했을 때, 이유식을 한 그릇 다 비웠을 때 등 매일매일 행복함을 계속 느낄 수 있어서 좋다고 얘기한다. 그렇지만 때론 '나를 힘들게 하려고 아이가 태어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힘든 날도 있었다고. 

"이준이는 모유수유만 고집하는 아이였어요. 젖병도 물지 않았고 분유도 거부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아이와 한시도 떨어져있을 수가 없었어요. 병원을 가거나 개인 업무를 보고 싶어도 아이를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가 없었어요. 젖병이라도 좀 빨아주면 모유를 유축한 뒤 누군가에게 맡길 수가 있는데 그러질 않아서 정말 24시간 매일매일 붙어 다닐 수밖에 없었어요."

이렇게 힘든 육아를 경험했음에도 둘째를 갖기로 결심한 이유는 역시 첫째 아이 때문이었다. 박 씨는 "남편이 외아들인데 부모님 건강문제나 가정사가 생겼을 때 혼자 온전히 감당해야하는 게 안쓰럽더라고요. 우리 아이도 나중에 가족 일을 공유할 형제·자매가 없다면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신혼 때부터 자녀 계획은 2명 이상으로 세워놨었어요"라고 얘기했다.

또 "그럼에도 만약 남편이 매일 야근하고 잦은 출장이 있다거나 했다면 둘째를 갖기 힘들었을 거예요. 다행히 저희는 남편이 사업을 하다 보니 시간을 유연하게 쓸 수 있고, 또 양가 부모님이 근처에 사셔서 용기를 낼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해’…부모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 

첫째 아이 육아에 온 신경이 쏠려있어서 뱃속 둘째 태교는 꿈도 못 꾸는 일상이다. ⓒ박지은
첫째 아이 육아에 온 신경이 쏠려있어서 뱃속 둘째 태교는 꿈도 못 꾸는 일상이다. ⓒ박지은

첫째를 임신했을 때는 일을 하고 있었고 둘째를 임신한 지금은 전업주부로 살고 있는 박 씨. 둘 중 어느 때가 더 힘든지를 물어봤다. 박 씨는 본인의 힘듦보다 둘째에 대한 미안함을 먼저 토로했다. 

"첫째 임신했을 때는 부부 둘만의 관계에서 뱃속에 아이가 있는 것이다 보니 제가 더 배려를 많이 받았어요. 저 스스로도 저 자신을 챙길 시간이 많았고요. 퇴근하고 와서 태교를 위해 책을 읽거나 바느질을 하기도 하고 그림도 그렸어요. 주 2회 저녁마다 운동도 했고요. 그런데 지금은 첫째 육아를 하면서 임신한 상태기 때문에 온 신경이 첫째에게 쏠려있을 수밖에 없어요."

임신한 몸이지만 첫째 육아는 여전히 하루하루 전쟁터이다. 아침에 일어나 아이를 씻기고 먹이고 차로 어린이집에 데려다준다. 어린이집에 등원시킨 뒤 장을 보고 집에 와서 아침 겸 점심을 먹고 본격적으로 집안일을 한다. 설거지, 청소, 세탁기 돌리기, 빨래 개키기 등 일상적인 집안일을 마치고 이제 좀 쉬어볼까 하면 어느새 아이 하원 시간이다. 아이를 하원시켜 집에 오면 저녁을 준비하고 먹이고 씻기고 함께 놀아주다가 아이를 재우면 하루가 끝이 난다. 

“아이를 키우다보니 바닥에 앉아서 생활하는 시간이 많아요. 이제 임신 6개월이 넘어가다보니 배는 많이 나왔는데 아이와 바닥에 앉아서 놀다가 일어나려면 힘이 들죠. 몸이 무거운데 첫째는 챙겨야 해서 쉽지 않아요. 코로나 시국이다 보니 집에서 하루 종일 있다 보면 갇혀있다는 생각도 들고 답답한 마음에 힘들 때도 있고요. 디자이너였다 보니 옷이나 신발, 액세서리에 관심이 많은데 요샌 매일 운동복만 입고 있어요. 2~3일 머리를 못 감기도 하는데, 어느 날 거울을 보니 너무 슬프더라고요.”

첫 째를 임신하고 키우며, 또 현재 둘째를 임신한 채 첫째를 육아하고 있는 엄마 박 씨가 생각하는 육아의 필수요소는 무엇일까. 

"육아서적을 보면 항상 나오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어요.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인데요. 정말 그렇더라고요. 엄마 혼자 온 에너지를 쏟아 부어 아이를 키운다는 게 쉽지 않거든요. 이게(육아가) 한두 달짜리 프로젝트가 아니라 20년을 해야 하는 일인데 엄마도 언젠가 번아웃이 오거든요. 육아는 엄마 혼자 하는 게 아니라 부부가 함께, 그리고 할머니, 할아버지, 주변인 모두의 도움으로 할 수 있는 일이에요."

끝으로, 대선을 앞둔 지금, 임산부로서 육아를 하고 있는 전업주부로서 대선 후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없는지 물었다. 

"아이가 행복하려면 부모가 행복해야하더라고요. 아이의 친구가 행복하면 내 아이도 행복하고요. 부모가 행복하고 또 아이가 행복한 세상이 어떤 건지 생각해줬으면 좋겠어요. 새로운 출산·육아제도보다는 지금 시행되고 있는 제도가 현장에서 잘 적용되고 있는지, 어려움은 없는지 검토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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