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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교육, 그 이름 앞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들

[김영명의 아이들이 행복한 세상] 영유아 교육의 질 개선을 촉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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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급식이 사회적 논쟁의 중심에 섰던 시기가 있었다. 당시 논쟁의 핵심은 ‘무상’이라는 형식이었지만, 조금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본질은 다른 곳에 있었다. 만약 그 급식이 ‘질 낮은 급식’이었다면, 과연 그토록 큰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었을까. 오히려 사람들은 ‘무상’이기 때문이 아니라, 최소한의 영양과 안전이 담보된 ‘적정 수준 이상의 급식’이었기 때문에 그 정책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중요한 질문 하나를 다시 던져야 한다. 지금 우리가 말하는 ‘무상교육’은 과연 무엇을 무상으로 하겠다는 것인가. 

아이를 위한 정책은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쌓이는 것’이어야 한다. ⓒ베이비뉴스

◇ ‘무상’이라는 말이 불편하게 들리는 이유 

영유아 교육 현장을 오래 경험한 입장에서, 무상교육이라는 단어는 단순히 긍정적으로만 들리지 않는다. 물론 영유아 역시 교육받을 권리가 있으며, 국가가 그 비용을 책임지는 방향은 사회적으로도 바람직하다. 그러나 문제는 ‘무상’이 정책의 중심이 될 때, 정작 더 중요한 ‘질’이 주변으로 밀려나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현장에서는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한 핵심 요소들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대표적으로 교사 대 아동 비율 개선, 교사 인건비의 안정적 지원, 물리적 환경 개선(공간, 놀이터 등)이 있다. 이 세 가지는 영유아 발달과 직결되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다.

이와 관련해 국제적으로도 공통된 합의가 존재한다. 예를 들어, OECD는 유아교육의 질을 결정짓는 핵심 요인으로 교사-아동 상호작용과 교사 대 아동 비율을 가장 중요한 요소로 지목한다. 

또한 National Research Council의 보고서 『From Neurons to Neighborhoods』(2000)는 초기 환경의 질, 특히 성인과의 안정적 상호작용이 뇌 발달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구조적 질 개선을 위한 재정 지원을 요구하면 돌아오는 답은 대부분 “재정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선거 시기가 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무상 교육’ 공약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질을 높이기 위한 구조적 투자에는 돈이 없다고 하면서, 상대적으로 본질에서 벗어난 영역에는 재정을 투입하겠다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무상교육’이라는 말이 불편하게 들리는 이유가 분명해진다. 그것이 아이들을 위한 정책이라기보다, 표를 유도하기 위한 정책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 질을 외면한 무상은 결국 ‘싼 정책’이 된다
  
교육에서 질은 선택사항이 아니다. 특히 영유아기는 뇌 발달의 기초가 형성되는 결정적 시기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이 시기의 경험은 단순한 지식 습득이 아니라, 감각·운동·정서·관계·집중과 같은 핵심 회로를 형성한다.
  
이러한 발달은 교사의 질 높은 상호작용, 충분한 시간과 공간, 안정적인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즉, 구조적 조건이 확보되지 않으면 아무리 다양한 프로그램이 제공되더라도 발달적 효과는 제한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현재 일부 무상교육 정책은 이러한 본질을 건너뛰고, 특별활동이나 특성화 프로그램 지원에 집중되는 경향을 보인다. 물론 이러한 활동이 전적으로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문제는 그것이 과도해질 때, 오히려 영유아 중심·놀이 중심 교육과정을 훼손할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부모의 과도한 요구와 결합될 경우, 조기교육적 성격이 강화되면서 영유아에게 부적절한 학습 환경이 만들어질 위험도 존재한다. 이는 뇌발달 연구에서도 일관되게 경고하는 부분이다. 과도한 인지 중심 자극은 초기 발달에서 필요한 감각·운동·정서 기반 경험을 약화시킬 수 있다. 결국 질이 담보되지 않은 무상은 ‘혜택’이 아니라 ‘저가 정책’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그 비용은 고스란히 아이들의 불충분한 발달로 돌아온다.

◇ 정책에도 ‘순서’가 있다
  
모든 정책에는 우선순위가 있다. 재정이 한정되어 있다면 더욱 그렇다. 현재 영유아 교육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는 무엇인가. 현장의 답은 분명하다. 
  
첫째, 교사 대 아동 비율 개선이다.
둘째, 교사의 처우와 전문성 지원이다.
셋째, 실외놀이터를 비롯한 안전하고 충분한 놀이 환경 조성이다.

이 세 가지는 선택이 아니라 ‘기본’이다. 이 기본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무상교육을 확대하는 것은, 기초공사 없이 건물을 올리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책이 ‘무상’이라는 이름으로 먼저 제시되는 이유는 명확하다. 체감도가 높기 때문이다. 부모 입장에서는 당장의 비용이 줄어드는 것이 가장 직접적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교육은 단기적 체감이 아니라, 장기적 발달을 기준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이 점에서 현재의 정책 흐름은 방향을 다시 점검할 필요가 있다.

◇ 이제는 질문을 바꿔야 할 때
  
무상교육이 필요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궁극적으로는 더 강화되어야 할 방향이다. 다만 지금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무엇을 무상으로 할 것인가”가 아니라, “아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이다. 그리고 그 답은 이미 충분히 축적되어 있다. 뇌과학 연구, 국제기구 보고서, 그리고 무엇보다 현장의 경험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이제는 ‘무상’이라는 단어의 매력에 머무르지 말고, ‘질’이라는 본질로 논의를 이동시켜야 한다. AI 시대를 살아갈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프로그램이 아니라, 더 깊이 있는 경험이다.

◇ 아이를 위한 정책은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쌓이는 것’이어야 한다
  
정책은 결과로 평가받는다. 그리고 영유아 교육의 결과는 수년, 수십 년 후에 드러난다. 지금 우리가 선택하는 정책이 아이들의 뇌에, 삶에, 사회에 어떤 흔적을 남길 것인가. 그 질문 앞에서, ‘무상’이라는 단어 하나로 충분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제는 보다 정직한 정책이 필요하다. 조금 더 비용이 들더라도, 조금 더 시간이 걸리더라도, 아이들에게 실제로 도움이 되는 방향을 선택하는 용기 말이다. 그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아이들을 위한 교육이며, 미래를 위한 가장 확실한 투자일 것이다.

*칼럼니스트 김영명은 영유아교육·보육 현장과 학계를 오가며 30년 가까이 연구와 실천을 이어온 아동 보육·교육 전문가다. 국공립 어린이집 원장을 비롯해 중앙보육정보센터, 인천광역시 보육정보센터 센터장을 역임하며 정책과 현장을 두루 경험했다. 현재 영유아 권리 존중 단체 ‘아이들이행복한세상’ 공동대표로 활동하며, 베이비뉴스 칼럼을 통해 아이의 일상과 권리를 중심에 둔 보육·교육 정책과 현장의 목소리를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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