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한 통학로 만들기… 어른들을 바꾼 아이들의 '힘'
안전한 통학로 만들기… 어른들을 바꾼 아이들의 '힘'
  • 기고=김정호
  • 승인 2020.11.16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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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로드 대장정⑫] 김정호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제주종합사회복지관 과장

아이들은 집에서부터 학교에 도착하는 순간까지 안전하게 보호받아야 합니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과 베이비뉴스는 아이들과 학부모, 전문가들과 함께 어린이 통학로 안전을 위한 ‘그린로드 대장정’ 연속 특별기고를 마련했습니다. 매주 월요일 어린이 안전 인식 개선을 위한 글을 전해드립니다. - 편집자 말

통학로 안전을 위한 어린이들의 활동 ⓒ김정호
통학로 안전을 위한 어린이들의 활동 ⓒ김정호

아이들과 제가 ‘함께하는’ 곳은 제주시에 위치한 한 마을입니다. ‘함께한다’는 말은, 정확히는 아이들과 통학로를 안전하게 만들기 위한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사는 사람도 거쳐 가는 사람도 많은 마을, 도심 한가운데에 위치한 이곳은 차량이 많고 과속, 불법 주정차, 신호위반, 교통사고로 걱정과 불만이 많은 곳입니다. 그 안에서 통학로 안전도 무척 불안한 상황이었구요.

그래서 6개월 동안 마을 길을 다니면서 통학로가 얼마나 위험한지 살피고 그곳의 안전에 대해 주민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물어보는 활동을 했습니다. 평소 생소했던 통계자료도 자주 들춰보게 됐구요.

이 모든 과정이 아이들의 참여로 함께 이뤄졌습니다. 아이들의 참여는 이 활동을 하는 이유이며 목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경험이 적었던 우리에게 예상보다 훨씬 힘들게 느껴졌던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만나는 분들 마음 속의 ‘여지 없음’이었습니다.

◇ 대체 지금까지 통학로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아이들이 진행한 '통학로 안전조사 결과 발표 설명회'에서 “교문 앞에 신호등 만들어달라고 더 이상 요구하지 않겠다. 지금까지 할 만큼 했는데 이젠 지쳤다.”라고 하시던 학부모.

통학로와 관련한 협의 자리에서 “사진 찍고 홍보하고 끝낼 거면 이제 그만하자. 너무 많이 겪었다. 앞으로 똑바로 되는지 지켜보겠다.”라고 하셨던 마을 주민.

협조 요청을 하러 갔던 곳에서 “민원은 많지만 각자 생각도 너무 다르고 의견이 잘 안 모아져서 답변하기 힘들다. 누가 의견을 모아주면 좋겠다.”라고 하시던 공무원.

관계기관이 모인 회의에서 “통학로에서 차량을 가장 많이 타고 가는 지나는 분들이 학부모님들이다. 요구도 요구지만 학부모님들도 안전을 위해 솔선수범해야 한다.”라고 하셨던 담당자.

너무 오랜 기간, 크게 달라지지 않는 모습으로 인해 서로가 지쳐버린 것이었을까요? 아이들의 안전이 중요하다는 데 다들 공감하면서도 등하굣길에서, 아니 어찌 보면 더 많은 부분에서 아이들을 위한, 아이들이 함께할 ‘여지’는 쉽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 "해야 돼" VS. "절대 안 돼"

통학로 안전을 위한 어린이들의 활동 ⓒ김정호
통학로 안전을 위한 어린이들의 활동 ⓒ김정호

일방통행로 지정, 어린이 승하차구역 설치, 등하교시간 차량 통제, 교통 안전지도 협조 요청, 어린이 안전 통학로 설치, CCTV 설치, 주민참여예산 공모…. 안전한 통학로를 만들기 위해 생각할 수 있는 일들은 많습니다. 그러나 무엇부터 해야 할지 엄두조차 나지 않을 때도 많습니다.

더구나 그 하나하나가 종종 다툼과 갈등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한 예로 어느 마을에서는 일방통행로가 지정됐다가 일부 주민의 반대로 철회되기도 했고, 초등학교 주변 통학로 확보 문제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지만 차량통행과 교통 흐름에 지장이 많다는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습니다.

학교 부지 일부를 통학로로 조성하자는 이야기도 있었는데, 관련 기관 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달라서 의견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기도 하구요. 이러한 일들은 비단 제주지역에서만 벌어지고 있는 상황은 아닐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 아이들의 통학로를 안전하게 만들기 위한 여지는 없는 것일까요?

◇ 아이들이 안전할 권리는 지금, 우리 모두가 만드는 것

“'된다, 안 된다'부터 말고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부터 얘기해보면 어떨까요?”

아이들, 그리고 지역주민과 함께하는 3년간, 서로가 자주 하게 된 말입니다. 돌이켜보면 그 기간은, ‘여지 없음’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과정이었기도 하고, 동시에 함께해주시는 분들을 만나 뜻밖의 일들을 이뤄가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각자의 시간을 쪼개어 꾸준히 그리고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더디지만 조금씩 사람들 마음속의 ‘여지’를 여는 가장 큰 힘이 돼줬습니다.

이런 변화는 아이들의 설명회를 찾아오는 마을 분들이 30명에서 60명, 70명, 90명으로 조금씩 많아지게 했고, 지쳤다고 하셨던 학부모님들이 통학로의 위험한 곳을 살피고 조치해줄 것을 요청하도록 했습니다.

아파트단지 입주자 대표님이 어린이 승하차구역 설치를 위해 입주민들의 동의를 받도록 해줬고, 사람이 부족하다고 했던 청년회가 통학로 안전을 위한 주민참여예산 공모를 계획해서 신청하고 정기적으로 교통봉사도 하도록 해줬습니다.

또한 지역구의 한 의원님이 아이들의 활동과 제안을 통해 통학로 조례를 개정하도록 해줬고, 통학로를 안전하게 만드는 활동이 옆 마을에서도 추진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누구에게나 아이들을 위한 ‘여지’는 있다고. 지금도 통학로로부터 시작된 사람들 마음 속 ‘여지’는 작지만 많은 것들을 변화시키고 있는 중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통학로에서 ‘여지’를 꿈꿉니다. 아이들이 행복하고 안전하게 살아갈 ‘여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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