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뉴스 김재희 기자】
문재인 대통령의 주요 보육공약 이행을 감시하는 공약퍼즐과 공약신호등. 문재인 정부 출범 3년을 맞아, 현재 추진이 중단된 주요 공약들을 다시 살펴봅니다. 이번에 ‘소환’할 공약은 양육비 대지급 제도입니다. - 기자 말
“지금 양육비를 못 받는 70% 이상의 사람들이 생활 자체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이 분들은 국가에 기댈 수밖에 없어요. 더군다나 이것을 민사적인 개인 간의 채권 채무관계로 본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것이 양육비는 아이들을 기르는 데 아주 기본적인 요건이에요. 애들 입장에서 보면 인권의 문제고요.”
지난해 6월 27일 국회에서 열린 369회 여성가족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 회의에서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양육비 지급 문제를 국가가 신경 써야 하는 이유에 대해 이와 같이 설명했습니다.
양육비 대지급은 국가가 양육비를 먼저 지급한 뒤, 양육비를 줘야 하는 사람에게 국가가 대신 받는 제도입니다. 2017년 5월 제19대 대통령선거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양육비 대지급 제도 도입을 공약했습니다.
이 제도는 2018년 2월 23일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서 진행된 도입 청원에 20만 명 이상이 참여하면서 화제를 모았습니다. 같은 해 4월 24일 있었던 국민청원 답변에서 엄규숙 청와대 여성가족비서관은 “여성가족부는 대지급제를 포함한 ‘양육비 이행지원제도 실효성 확보 방안’ 연구용역을 시작했다”며 “오는 11월 결과가 나오면 외국의 대지급제와 우리나라 양육비 지원 제도 등을 종합 분석해, 실효성 있는 구체적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같은 해 5월 8일에는 정현백 당시 여성가족부 장관이 SBS 라디오 ‘김성준의 시사전망대’에 출연해 “덴마크의 히트 앤드 런 방지법처럼 우리도 정부가 우선 양육비를 지급하고, 그 다음에 양육하지 않는 부모로부터 소득에서 원천징수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 ‘양육비 법적 성격·지위’ 탓에 논의 막힌 법안들, 회기 만료 폐기 눈앞
국회에서도 그동안 양육비 대지급 제도 도입을 두고 논의해왔습니다. 정춘숙 의원은 지난해 2월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대표발의했습니다. 한시적 양육비를 긴급지원하는 경우에 한해 구상권을 청구하는 안입니다. 아울러 운전면허 제한, 출국 금지, 명단 공개 등의 양육비 채무자 형사처벌도 포함합니다.
정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 멈춰있습니다. “양육비의 법적 성격과 지위를 고려한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제369회 여성가족위원회 법안심사소위 회의록을 확인해보면 정 의원을 비롯한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여성가족부가 경찰청, 법무부 등의 관련 부처 간 의견을 조율해줄 것을 촉구했습니다.
이후 8월과 11월에 두 차례 회의가 더 있었습니다. 부처 간 의견이 조율되지 않아 논의가 더 나가지는 못했습니다.
정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같은 해 3월 6일 송희경 미래한국당 의원이 발의한 법안과 함께 국회에서 검토됐습니다. 송 의원의 안은 양육비 지급을 지연 또는 거부하는 비양육자에게 출국금지, 운전면허 정지 등의 제재를 가하겠다는 내용을 골자로 합니다.
두 법안이 발의된 이후에도 이완영 전 자유한국당 의원, 전재수 더불어민주당 의원,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의원, 윤영석 미래통합당 의원 등이 양육비 관련 법안을 대표발의 했습니다. 이들 법안은 정춘숙, 송희경 의원의 법안과 달리 여성가족위원회 법안심사소위 심사도 받지 못한 채로 계류돼 있습니다.
이들 법안은 오는 5월 20대 국회 회기 만료로 폐기될 위기에 처해있습니다. 정춘숙 의원실은 22일 베이비뉴스의 질의에 “21대 국회가 열리면 다시 법안을 발의하겠다”는 의지를 밝혔습니다.
◇ 양육비 이행강화 방안에 무게 둔 정부… ‘도입 추진’ 공약 내건 민주당
양육비 대지급 제도가 국회에서 머물러 있는 사이, 정부는 양육비 이행강화 방안 쪽으로 제도를 확대하고 있었습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인 2017년 7월 발표한 ‘100대 국정과제’는 양육비 관련 공약을 양육비 이행강화 방안 마련으로 그 수준을 낮췄습니다. 세부 실행 사항으로 “비양육자의 양육비 이행을 위한 소득재산 조회 등 제도 개선”이라고 적었습니다.
국무총리 정부업무평가위원회가 발간한 2019년 국정과제별 보고서도 100대 국정과제에 맞춰 ▲양육비 채무자의 양육비 이행률 제고 ▲양육비 긴급지원 확대 ▲한시적 양육비 긴급지원 요건 완화를 통한 지원대상 확대 등을 양육비 이행강화 방안을 지난해 주요 성과로 꼽았습니다.
이 보고서는 ‘개선·보완 필요사항’으로 양육비와 관련한 내용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정부가 앞으로도 양육비 대지급 제도 도입보다는 양육비 이행강화 방안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추진할 것으로 해석되는 부분입니다.
한편, 더불어민주당은 제21대 국회의원 선거공약으로 ‘양육비 대지급 제도 도입 추진’을 내놨습니다. “공공부조 성격의 저소득 한부모가족 아동양육비의 보편적 수당화 추진”을 세부 이행 사항으로 밝혔습니다.
양육비 지급률을 높이기 위해 활동하는 단체들은 정부와 국회의 노력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요? 단체들은 양육비 대지급 제도가 갖는 국민적 저항을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양육비 대지급 제도가 세금으로 양육비를 먼저 지급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양육비 대지급 제도를 도입하기 전에 미지급자 처벌 강화 방안만이라도 마련해주기를 바란다는 의견을 내놨습니다.
양육비 미지급자를 신상공개하는 ‘배드파더스’ 활동가 구본창 씨는 22일 베이비뉴스와 전화 인터뷰에서 “대지급제는 국가 예산이 들어가기 때문에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며 “국민적 저항을 없애고 합의가 이뤄지는 동안 양육비 미지급자를 처벌하는 제도부터 마련됐으면 한다”고 밝혔습니다.
구 씨는 “현재 검찰에서 양육비 미지급하고 있는 코피노 아빠들을 아동 방임 혐의로 조사 중”이라며 “해당 사건이 처벌을 받게 되면 한국 내 양육비 미지급자를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생긴다”고 덧붙였습니다.
강민서 양육비해결모임 대표 또한 “양육비 대지급 제도는 국가에서 안정적으로 양육비를 지급하기 때문에 좋은 제도지만, 논의 과정에서 예산 문제를 지적하고 반대했기 때문에 거의 접근을 못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강 대표는 “따라서 단체에서 미지급자 처벌 강화 방안을 마련해줄 것을 먼저 요구하고 있는 것”이라며 운전면허 정지나 출국 금지 등을 언급했습니다.
양육비해결모임은 양육비 제도 개선을 정부에 촉구하며 지난해 1월 1일 청와대 앞에서 삭발식을 갖고, 같은 해 2월 14일에는 양육비 제도에 헌법소원을 제기했습니다. 이들은 기자회견에서 “양육비 미지급은 아동의 생존권인 기본권 침해”라고 말했습니다.
◇ 양육비 관련 단체 “여가부 적극성 부족”… “대지급제, 면접교섭률 높일 것”
강 대표는 이 정책의 주무기관인 여성가족부가 제도 도입에 적극성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21대 국회에서 국회의원이 양육비 대지급 제도 도입 법안을 발의하겠지만, 다른 부처에서 반대하면 도입 시기는 또 미뤄질 것”이라며 “지금이라도 여성가족부가 움직여주면 21대 국회에서 논의가 수월해질텐데 이 점이 아쉽다”고 설명했습니다.
국무총리 정부업무평가위원회의 2019년 국정과제별 보고서는 2018년 32.3%인 양육비 이행률이 지난해 35.6%로 3.3%p 높아졌다고 밝혔습니다. 그럼에도 양육비 관련 단체들은 양육비 이행강화에서 나아가 대지급 제도가 꼭 도입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양육비해결모임 회원을 대상으로 지급 중재를 하고 있는 강 대표는 “양육비 이행강화 방안이 마련됐지만, 체감 상 양육비 이행 정도는 낮아졌다고 느낀다”고 밝혔습니다. 감치결정문이 나와도 미지급자가 자취를 감추거나, 형사가 집에 찾아가는 경우에도 미지급자가 밖으로 나오지 않으면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현재 정부 방침대로 양육비 이행강화 방안을 늘리고, 제한적인 한부모 지원 제도로만은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이영 양육비해결총연합회 대표는 23일 베이비뉴스에 보낸 서면 질의서에서 “한시적인 한부모 지원제도들이 있지만, 한정적이고 대상의 폭이 좁기 때문에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불만의 목소리도 높다”며 “국가가 대지급을 하고 구상권 청구가 잘 이뤄지면 제도 사각지대에서 피해받는 아이들을 안정적으로 보호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대표는 “대지급 제도는 국가가 개입해 문제 해결을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양육비 권리의 주체가 아동임을 국가가 인식하고, 이 나라의 아이들 모두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지와 책임의 표현”이라고 말했습니다.
‘양육비 대지급 제도 도입이 면접교섭률을 높일 수 있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이도윤 양육비해결총연합회 부대표는 지난 22일 베이비뉴스와의 통화에서 “대지급제는 돈뿐 아니라 양육자 간 감정 문제와도 관련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대표에 따르면, 채무 관계를 이유로 양육자 간에 감정 상할 일이 발생하고 때문에 면접교섭이 흐트러져서 가족 간의 단절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이 부대표는 “대지급 제도가 도입돼 양육자가 분란을 겪지 않는다면 많은 면접교섭이 성사될 것이기 때문에 아이들도 상처를 받지 않을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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