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행학습은 '반칙'… 반칙한 선수가 경기 이겨선 안 돼"
"선행학습은 '반칙'… 반칙한 선수가 경기 이겨선 안 돼"
  • 김정아·최규화 기자
  • 승인 2020.02.06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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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살 사교육, ‘불안’을 팝니다⑦] 김승현 숭실고등학교 영어교사 인터뷰(下)

【베이비뉴스 김정아·최규화 기자】

연간 3조 7000억 원 규모로 추정되는 영유아 사교육비. 등골 휘는 비용에도 많은 부모들은 ‘불안’ 때문에 오늘도 사교육을 선택하고 있다. 그 불안의 실체는 무엇일까. 우리에겐 어떤 대안이 있는 걸까. 베이비뉴스는 사교육걱정없는세상과 공동기획으로 열두 명의 전문가들을 직접 찾아가 답을 구했다. - 기자 말

☞ (상편) 기저귀 차고 시작하는 영어 사교육… "부작용이 더 크다"에서 이어집니다.

영어 교사로 교직에서 22년 간 근무해 온 김승현 교사는 영어 조기교육이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얘기한다.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영어 교사로 교직에서 22년 간 근무해 온 김승현 교사는 영어 조기교육이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얘기한다.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외국어고등학교 입시가 과도한 영어 사교육을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으면서, 그동안 영어 듣기 시험 폐지나 자격시험화 등의 대책이 나온 바 있다. 결국 정부는 지난해 11월, 오는 2025년부터 자율형 사립고, 외국어고, 국제고를 모두 일반고로 전환하는 ‘고교서열화 해소방안’을 발표했다.

또한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영어 과목이 지난 2018학년도부터 절대평가로 전환된 바 있다. 과도한 학습 부담과 사교육비를 줄인다는 취지로 도입된 이 제도에 따라, 원점수 100점 만점에 90점 이상을 받으면 1등급, 10점 간격으로 총 9등급까지 매겨진다.

하지만 김 교사의 지적처럼 영어 사교육 시장의 ‘파이’에는 큰 변화가 없는 모양새다. 한국교육개발원(KEDI)의 2019년 교육여론조사에 따르면, ‘사교육비 경감 효과가 가장 큰 정책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수능(영어·한국사 등) 절대평가’를 꼽은 초·중·고 학부모는 4.9%에 불과했다.

영어 사교육 문제가 우리 사회에서 이렇게 심각하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근본적인 문제가 있겠지만, 영어 사교육의 방법과 효과에 대한 잘못된 믿음도 주요한 원인 중 하나입니다. 주로 학원을 비롯한 사교육 시장과 소위 ‘옆집 엄마’에 의해 부풀려진 잘못된 믿음에 대다수의 부모들이 포섭된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굿바이 영어 사교육」 168쪽)

Q. 중·고등학교 교육 현장에서 만난 아이들 중, 유아 대상 영어학원 등에서 조기 사교육을 받은 학생들은 그렇지 않은 학생들에 비해 어떤 점이 다른가요?

“큰 영향이 없어요. 실제로 학생들한테 물어본 적이 있어요. 어릴 때 유아 대상 영어학원에 다닌 경험이나 초등학교 때 영어학원을 다닌 아이들이 있는지 직접 설문조사를 했죠. 그런데 그렇게 영어 조기교육을 한 아이들과 그렇지 않은 아이들 사이에 성적에서 큰 차이가 없었어요.

유아 대상 영어학원부터 초등학생 대상 영어학원, 사립초등학교, 어학연수 등 조기교육 코스를 밟아온 아이들 중에 학습능력이 좋고 부모와의 관계가 좋은 일부만이 그 트랙으로 성공하는 겁니다. 그 일부를 보고 모든 부모와 아이들이 따라 움직이고 있는데, 그러려면 정말 많은 돈을 계속 쏟아부어야 할 거예요.

중학교부터는 공부 잘하는 애들이 영어도 잘해요. 어릴 때부터 영어학원을 얼마나 다녔는지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중학교부터는 교육과정에서 요구하는 학습량이 많아져서, 빨리 소화해내야 해요. 전반적인 학업 성취도가 높은 아이들이 영어뿐 아니라 모든 과목에 있어서 자존감과 자신감을 가지고 공부하더라고요.

즉 중학교 이후 영어 능력은 영유아 시기의 영어 조기 사교육 여부와는 별개로, 학습 성취도와 연관이 크다는 얘기죠. 스스로 꾸준히 공부하는 습관을 다져온 아이들이 영어를 더 잘해요. 어릴 때부터 학원 다니며 공부해온 아이들은 오히려 본인만의 공부 스타일을 찾을 기회를 잃어버려서 부작용이 있더라고요.”

Q. 일정한 사교육 매뉴얼을 따르기 위해 강남 대치동, 양천구 목동, 노원 중계동 같은 일부 사교육 특화 지구로 이사하는 사람들도 많잖아요. 선생님은 이것 역시 불필요한 일이라고 보시겠네요?

“무조건 학원 다니지 말란 얘기가 아니에요. 어떤 매뉴얼대로 하면 다 같은 결론을 얻을 것이란 기대가 잘못됐다는 거죠. 학원 다녀서 성적이 오르는 아이들은 일부일 뿐이란 얘기예요. 학습에서 ‘어떤 학원’이라는 변수보다는 ‘그 아이’라는 변수가 더 크다는 얘길 하고 싶어요.

사교육이라는 트랙을 꾸준히 밟아서 끝내 성공하려면 부모가 정말 많은 에너지를 그쪽에 쏟아부어야 합니다. 그걸 할 수 있는 부모들도 아주 소수이고, 아등바등 흉내만 내려고 하면 스트레스만 받는 거예요. 특히 직장을 다니는 엄마라면 시간도 별로 없고 정보 교류도 늦어서 더 어려워지죠.

우리 애를 잘 키우려면 옆집 애를 보지 말아야 해요. 다른 집 애를 보고 비교해서 ‘우리 애만 뒤처지면 안 되지’ 하고 사교육을 따라 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부모가 자기 삶을 잘 살아내는 것이 가장 좋은 교육이에요. 부모가 차라리 게으르거나 무관심한 게 아이들에겐 더 좋을 수 있어요.”

영어 전문학원을 ‘다니고 안 다니고’의 문제는 결정적인 변수가 아니라는 것이죠. 그런 이유 때문에 눈앞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아직 영어 학습에 대한 동기가 높지 않은 초등학생 (또는 중학생) 자녀를 ‘빡세게’ 영어를 공부시키는 영어 전문학원에 보내는 것은 당장 조금 앞서나가는 단기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좀 더 길게 본다면 결코 현명한 선택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굿바이 영어 사교육」 174쪽)

◇ "공교육만 손대는 건 효과 없어… 영유아기 사교육 총량 규제 논의해야"

남들보다 앞서 나가겠다는 욕심에, 또는 뒤처지면 안 된다는 불안에 너도나도 뛰어들고 있는 영유아 사교육. 김 교사는 이런 ‘과열’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법적인 규제가 어느 정도 필요하다는 답을 내놨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사교육과 조기교육 관련 규제로는 ‘선행학습금지법’과 ‘학원 심야교습 금지법’ 등을 들 수 있다. 먼저 ‘선행학습금지법’ 또는 ‘공교육정상화법’이라 불리는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은 2014년부터 시행되고 있다.

초·중·고교 및 대학의 정규 교육 과정과 '방과 후 학교' 과정에서 선행교육을 금지하는 것은 물론, 선행학습을 유발하는 평가를 하지 못하도록 금지한 법. 또 학원·교습소 등 사교육 기관은 선행교육을 광고하거나 선전하지 못하게 하는 내용도 담겨 있다.

방과 후 교실도 이러한 선행교육 금지 대상에 포함돼, 초등 1·2학년 방과 후 영어 수업도 원칙적으로 불가능해졌다. 하지만 공교육에서 영어교육이 이뤄지지 않으면 학생들이 사교육으로 몰린다는 비판과 학부모들의 반발로 인해 초등 1·2학년 방과 후 영어 수업은 2018년 2월까지 선행교육 금지 ‘예외’로 지정됐다.

하지만 유예기간이 끝나고 초등 1·2학년 방과 후 영어 수업이 금지되면서, 학부모들의 불만이 높아졌다. 결국 정부는 지난해 3월 법을 개정해 초등 1·2학년 방과 후 영어 수업을 다시 선행교육 금지조항 ‘예외’로 규정했다. 금지된 지 1년 만에 초등 1·2학년 방과 후 영어 수업은 ‘놀이 중심’이라는 이름으로 재개된 것이다.

김 교사는 “사교육 시장 규제는 방법을 못 찾는 상황에서 (선행학습금지법처럼) 공교육에서만 규제하는 건 효과가 없고 ‘풍선효과’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현행법의 한계점을 지적했다. 풍선효과란 풍선의 한 곳을 누르면 다른 곳이 팽창되는 것처럼, 어떤 현상을 억제하자 다른 현상이 불거져 나오는 현상을 말한다.

김 교사는 “특히 유아 대상 영어학원이 전체 영유아 사교육 시장에 주는 신호가 크다”며, “‘남들은 저렇게까지 돈을 들여서 사교육을 시키는데’라는 생각에 모두가 불안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영유아기 사교육 총량 규제와 같은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 김 교사의 주장이다.

사립초등학교에서는 1학년부터 영어몰입교육이 실시되고 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사립초등학교에서는 1학년부터 영어몰입교육이 실시되고 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같은 이유로 김 교사는 “사립초등학교에서 행해지는 과도한 영어교육도 계속해서 감시할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지난해 11월 서울 사립초등학교 9곳을 조사한 결과 일부 학교는 방과 후 영어 수업 때 미국 초등학교 교과서로 공부시키거나 참여를 사실상 강제하고 있었다.

또 영어 수업을 주당 최대 19차시까지 진행하는 등, ‘최대 5차시’라는 교육청의 권고를 무시하고 있었다. 2012년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서울 사립초등학교 40곳을 조사한 결과에서도, 불법적인 1·2학년 영어 몰입교육 시간이 평균 일주일에 7시간, 연간 255시간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난 바 있다.

사립초등학교의 과도한 영어교육은 그대로 영유아 영어 조기교육으로 이어진다. 사립초등학교의 영어 레벨 테스트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 학부모들은 일찍부터 영유아 대상 사교육 프로그램이나 학원 등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김 교사가 사립초등학교의 영어 교육과정에 대한 감시가 필요하다 말하는 이유다.

아울러 김 교사는 “사교육에 대한 직접 규제가 무리해 보일 수 있다 해도 논의는 반드시 필요하다”며, “교육의 문제만이 아니라 아동인권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필요도 있다”고 덧붙였다.

유명 영어 전문학원의 방학 중 프로그램 선전 문구를 보면 ‘1만 시간을 향한 학습 로드맵 프로그램’이라고 강조하고 있었습니다. 방학 중에 1만 시간의 학습량을 채워주겠다는 것이죠. 저는 이건 거의 아동 인권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굿바이 영어 사교육」 174~175쪽)

◇ "선행학습이 부모 능력의 척도? '반칙'이라는 인식 있는 사회 돼야"

이른바 ‘영어유치원’이라는 명칭 문제도 중요하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유아 대상 영어학원을 유치원의 대체 개념처럼 생각하게 하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정부에서는 지난 1월 21일 기준으로 ‘영어유치원’이라는 불법적인 이름을 쓰는 유아 대상 영어학원을 더 강하게 처벌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현행 유아교육법 시행령은 유치원이 아닌데 유치원이라는 이름을 쓸 경우, 1회 위반 시 200만 원, 2회 위반 시 300만원, 3회 이상 위반 시 50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벌금 등 처벌 규정이 없는데다, 신고를 거쳐 선별적으로 과태료를 부과하다 보니 실제 단속에는 한계가 많았다.

과태료는 의무 위반 사항에 대한 제재로 행정관청이 부과하는 것이고, 벌금은 법을 위반한 혐의로 판결이나 약식명령을 통해 형벌 중 하나인 벌금형으로 처벌받는 것을 말한다. 과태료 부과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벌금형으로 처벌하면 그 기록이 범죄경력자료로 남기 때문에 과태료보다 훨씬 강한 규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규제만 강화한다고 해결될 리가 없다. 사교육은 공교육이 미처 채우지 못한 빈틈을 파고들어 시장을 키워나가기 때문이다. 김 교사는 현행 교육과정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현행 교육과정이 사교육의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고 김승현 교사는 지적했다.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현행 교육과정이 사교육의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고 김승현 교사는 지적했다.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Q. 현행 교육과정의 문제점 때문에 사교육 과열로 이어지고 있다고 보시는 거죠?

“맞아요. 중학교 이후에는 학년이 올라갈수록 1년마다 교과과정 수준이 가파르게 올라가요. 수업시간 외에 상당한 학습량을 쏟아붓지 않고서는 쫓아갈 수 없는 수준이에요. 그렇다면 무조건 수업시간에 배운 것만으로 도달할 수 있는 수준으로 교육과정을 짜야 하느냐? 그것도 논의가 필요한데 이런 논의 자체가 전무해요.

고3 교과서보다 수능 문제는 더 어려워요. 수업 열심히 들었다고 풀 수 있는 수준이 아니죠. 수능 영어가 절대평가로 바뀌면서 오히려 문제가 더 까다로워지고 난이도가 올라간 것 아세요? 그런 게 바로 사교육 시장에 빌미를 제공하는 거예요. ‘절대평가라고 해서 영어를 우습게 보면 안 돼!’라는 메시지를 주는 거죠.

학교 현장에서 보면, 고등학교 1학년이 되면 이른바 ‘영포자’, 영어를 포기한 아이들이 많이 생겨나요. 학교 영어 수준을 따라가지 못하는 거거든요. 고등학교 첫 중간고사를 보고 나면 겁먹고 포기해버리는 거예요. 고등학교 이후에 성적이 올라가는 애들은 정말 소수인데, 영어, 수학이 제일 큰 벽이죠.” 

Q. 그렇게 어려운 영어를 배웠는데 사회에 나오면 영어로 한 마디 제대로 못하는 것도 교육과정의 문제가 아닐까 생각되는데요.

“수능에서 영어 1등급을 받은 아이들 중에 영어로 된 동화책을 못 읽는 아이들도 많아요. 난이도의 문제도 있지만, 수능 독해 지문에서 다양성이 부족하고 특정 분야에 편중된 문제점도 있거든요. 저는 지금처럼 모든 아이들이 똑같은 수준의 영어를 배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기본적인 수준이 되면 학문적 영어, 실용 영어 등 다양한 목표에 따라 공부할 수 있도록 열어주고, 수능에서는 공통된 교육과정만 평가한다면 된다고 보거든요. 우리 아이들은 수능 영어만 공부하느라 영어를 재밌게 읽어본 경험이 없어요. 우리나라 공교육 영어교육은 실패했다고 봐야죠.”

끝으로 김 교사는 “선행학습은 반칙”이라는 말로 인터뷰를 정리했다. 선행학습을 하고 오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심지어 그것을 ‘능력’이라 생각하는 “이상한 상태”. 언제까지 우리 아이들이 공부하는 교실에서 이런 ‘반칙교육’을 허락해야 할까. 김 교사의 마지막 일침은 우리 사회의 ‘상식’을 향하고 있었다.

“외국에서는 애들한테 선행학습을 시키면 교사의 수업권과 다른 학생들의 학습권을 침해했다고 해서 제지를 받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학생들이 거의 다 선행학습을 하고 학교에 오니까, 교사들도 선행학습을 하고 온 애들한테 초점을 맞춰서 수업을 진행하잖아요.

마치 고액을 들여 선행학습을 하고 오는 게 당연하고, 더 나아가 그게 부모 능력의 척도로 평가되는 이상한 상태예요. 선행학습은 반칙입니다. 반칙한 선수가 경기에 이겨서는 안 되죠. ‘선행학습은 반칙이니까 반칙한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아이들을 기다려줘야 해’라고 말할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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